" 이사짐 오면 여기로 옮기자. "
" 그러던지.. "
" 너도 참, 우혁이랑 같이 잘 방인데 그러던지라니.. "
" 짐은 여기 놔, 난 어머니 쓰던 방 쓸께. "
다행히 이층이 비어 있는지라 그 곳에 가구들을 비치하려 한다.
민수가 오더라도 수경이와는 경계를 두는게 낫지 싶다.
넓은 아파트에서 살았기로 다소 비좁은 듯 하겠지만 베란다까지 있어 당분간 지내기엔 무리가 없이 보인다.
" 괜찮겠어? "
" 그러는게 좋을것 같아, 이층은 무섭기도 하구.. "
" 네 뜻대로 해. "
맘 잡을 일 없는 선영이의 편리나마 봐 주어 속상함을 누그러뜨리고 싶지만 역시 쉽지가 않다.
있는 동안이나 마음을 추스려 힘든 지금을 이겨내 줬으면 하는 바램 뿐이다.
" 어디서 잘거야. "
" 하우스.. "
" 그래, 그럼. 나 먼저 잘께. "
" 응, 잘 자. "
현관안으로 사라지는 선영이의 뒤를 잠시 지키다 하우스로 발걸음을 옮기는 진호다.
우혁이가 잠 든 방으로 들어 간 선영이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안방에 있으리라는 예상을 깨고 어느틈엔가 우혁이 곁에 잠들어 있는 수경이가 보였기 때문이다.
두 애 모두 내 배를 통해 세상에 나왔기로 이런 모습조차 흐뭇하다.
어른들의 잘못으로 아버지가 다르게 자라고들 있지만, 두 녀석을 따로 떼어 논다는건 못할 짓이라는 생각이다.
어쩌면 민수의 사업실패가 이런 애뜻한 그림을 그리게 됐기로 하나의 기쁨은 생겼지 싶다.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선영이는 진호에게라도 애들의 이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진호가 보고 싶어 현관을 나섰을때 불 밝혀진 하우스가 저 앞 시야에 들어 온다.
어두운 저녁이지만 달빛이 소담히 비치는지라 한층 정겨운 그림이다.
이 거리에서 하우스를 보노라니 하나의 기억이 불현듯 선영이를 회상하게 한다.
지난 겨울 풍성한 첫 눈이 온 그 날, 진호의 아낌없는 사랑을 받은 꿈 같은 시간이 있었더랬다.
서로의 몸을 탐하며 뒤엉킨 그 모습을 마치 남편이 본 듯 묘사하는 얘기를 꺼냈을 때 얼마나 기겁을 했던가.
하우스인지라 불빛이 새어 나오는 문틈새로 작은 방의 모든게 선명하게 보여 져, 그 날 민수가 틀림없이 이 곳에 서서
모든걸 봤으리라는 확신이 든다.
어쨋거나 법적인 남편이기에, 그걸 지켜봐야만 했던 민수의 그 날이 또 다시 아픔인 양 다가 온다.
" 아직 안 자? "
" 웬일이야, 잔다더니.. "
예전부터 성실한 진호였기로, 지금처럼 분재 곁에서 밤늦게 연구하는 모습이 낯설지 않다.
" 수경이 때문에.. "
" ..왜? "
" 같이 자더라. "
" 안방에서 자던데.. "
" 깻었나 봐, 우혁이 옆에 꼭 붙어 자더라구,호호.. "
" 그게 웃을 일이냐? "
스스로 웃을 일이 없을줄 알았는데, 애들이 제 어미의 시름이나마 덜어 줬지 싶어 한결 기분이 나아 진다.
진호나 민수 두 사람을 저울질하고 싶은 생각은 없는 선영이다.
누가 됐든지 하는 일이 잘 돼서 애들의 아빠로서 제 역활을 무난히 해 줬으면 한다.
티 없이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장래가 그들 각자에게 달려 있다.
" 웃지 울어? "
" 하기야.. 웃으니까 좋긴 하다. "
" 그만큼 애들은 이쁜거야, 하늘이 준 선물이니까.. 그래서 오빠도 다시 만난거지만.. "
" 그래, 애들이 무슨 죄가 있겠니. "
" 밤 샐거야? "
" 자야지, 아침에 치영이 올텐데.. "
" 오빠. "
" 응. "
한번 삐끗해 진 인연이지만 성실히 살고자 하는 진호에게 상이라도 주고 싶다.
한국으로 돌아왔을때 다리를 절룩이면서도 자신의 몸을 원한 그의 마음을 알 듯 하다.
" 나 여기서 자도 되지. "
" 당연하지. "
그 전에야 진호가 이끌었지만 내가 주도하지 못하리란 법은 없다.
하우스에 꾸며진 작은 방은 화초를 위해서 온도를 높인 때문인지 아직도 온기가 남아 있다.
" 내가 벗을께. "
스스로 걸친 옷을 벗어 한쪽에 밀어두고는 맨 몸이 되어가는 진호를 기다린다.
낯설지 않은 익숙함이 맘을 편케 하고, 예전 소중한 사랑을 가르쳐 준 그가 미더웁다.
엎디어 온 그의 등을 감싸고 기나 긴 항해를 하기로 한다.
" 시간 많어. "
" 그래, 그러자. "
그의 입 속에서 까불어지는 가슴에서 잔잔히 파도가 인다.
워낙 자신을 이뻐하기도 했지만 성의 쾌감을 알려 준 사람이다.
그가 노 젓는대로 편안하게 맡기면 될 일이다.
" 아~ 더워.. "
어느틈엔가 모든 세포를 깨우기에 차츰 격랑이 불기 시작한다.
벌써부터 그 곳이 흥건하게 젖어 가려움을 견디기 어렵다.
날개를 벌리고 혀로 씻기기에 버티고자 하는 결심마저 흐트러진다.
" ..그래, 거기.. 하아~ "
전신이 아득할때쯤 그의 방망이가 송곳이 되어 깊게 파고 든다.
" 허~억~ 몰라~ "
그건 거친 풍랑이었고, 천둥까지 동반한 무서운 벼락이지 싶다.
짓쳐오는 몸짓으로 인해 산산이 부서지기에 모든걸 놔 버리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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