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큰일이네, 이제 어쩌냐.. "
" 매형은 뭐래? "
" ..몰라, 모르겠어.. "
" 그러길래 조심 좀 하랬더니, 틀림없이 성희가 그랬을거야.. "
진호의 비닐하우스에서 동생 치영이와 함께 시댁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전전긍긍, 머리를 맞대는 중이다.
하지만 애초부터 해결방안이라는건 있을수 없는 막연함이기에 그저 한숨만 나올뿐이고, 내 일로 인해 가까운 이들까지
힘들게 하지 싶어 맘이 편치가 못하다.
돌이켜 생각해 보지만 또래 친구들과 별다르지 않는 삶을 살아 왔다.
특별나게 욕심내지 않았고, 굴곡진 삶을 원하지도 않았을 뿐인데 지금의 현실은 벼랑끝에 내 몰린 것처럼 아득하기만
하다.
" 수경이는.. "
" 유치원 다녀와서 집안에 있을거야.. 오늘은 꼼짝도 않네. "
" 나 먼저 들어갈래, 우혁이부터 뉘어야지. "
" 당신도 같이 누워, 피곤해 보여. "
뉘라서 나같은 인생을 이해할것인가, 어차피 혼자 짊어질수밖에 없을것이다.
" 수경이 뭐하니.. "
" 그림 그려.. "
붙임성이 많은 수경이가 작은 상위에 하얀 스케치북을 올려놓고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
눈도 마주치지 않고 열중하는걸 보니 지금 하는 일에 모든 정신을 빼앗긴듯 하다. 콧잔등에 땀까지 맺혀 있다.
" 숙제야? "
" 응, 우리 가족사진. "
호기심에 옆으로 다가가 보니 고만고만한 또래들처럼 남자와 여자의 차이점이란게 머리카락의 길고 짧음이고, 키가
크고 작음으로 구분되어져 있다.
완성되어져 가는 그림의 실체가 누군지 짐작이 되자 가슴 한편이 아려오는 선영이다.
그도 그럴것이 진호는 꽃화분을 만지며 땅에 무릎걸음으로 앉아있고, 본인 수경이 역시 그 옆에 앉아 아빠를 돕느라고
바짝 붙어있지만, 뒤에서 멀치감치 바라다 보는 여자는 날 그린듯 하다.
기죽기 싫어 날 엄마로 끼여준것만은 이해가 가지만 어린 우혁이는 아예 도외시 돼 있다.
" 이쁘게 잘 그렸네. 이건 누구야? "
" 울 엄만데 얼굴을 모르잖어, 그래서 아줌마를 그렸다~ "
" 그랬구나. 이왕이면 우혁이도 끼워주지. "
" 아줌마는 바보야, 우혁이는 방에서 자고 있잖어. "
" 맞다, 여기는 비닐하우스 안이구나 호호.. "
그나마 우혁이를 이뻐하는 수경이의 맘을 들여다 볼수 있음에 저으기 안심은 된다.
" 얼른 끝내, 수경아. 저녁먹어야지. "
수경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는 주방으로 향하는 선영이다.
시댁에서의 일로 어수선 했지만 아이들을 위해 맘을 다잡아 본다.
그나마 내 뱃속에서 나온 수경이와 우혁이가 같이 있음은 작은 위로가 된다.
" 어쩔거야, 애들이 조르는데.. "
" 조금만 기다려, 금방 될거야. "
인희와 함께 빈 룸에서 마주 앉은 민수다.
이 난국을 어찌 헤쳐나가야 할지 고심해 봤지만 별다른 생각이 떠오르질 않기에 이곳으로 온 폭이다.
" 마냥 기다릴순 없어, 걔네들도 먼저번 업소에 갚을 돈이라 질질 끌수도 없고.. "
" 이삼일만 기다려, 돈이 나올거야. "
" 아이,참.. 첨부터 애들한테 약점잡히기 싫은데.. "
" 글쎄, 염려말라니까.. "
인희가 혀를 차며 룸을 나갔고, 마냥 눙치고 있을수도 없기에 외국계 은행에 다니는 친구에게 연락을 취해 보기로 했다.
" 높은 자리에 있을때 좀 봐 주라, 친구 좋다는게 뭐냐. "
일전에도 녀석에게 대출을 의뢰했지만 속 시원한 답을 들을수는 없었다.
" 참, 답답하다. 내가 해주기 싫어서가 아니잖어. "
목마른 놈이 우물을 판다고 은행 근처까지 찾아오게 됐다.
학창시절부터 술이란 술은 계속 얻어마시던 놈이기에 자존심마저 상한다.
" 임마, 오죽 답답하면 여기까지 찾아왔겠냐. "
" 그러길래 갑자기 술장사는 왜 한다고.. "
귀찮다는듯 앞에 놓인 생맥주 잔을 거머쥔 녀석이 목을 축인다.
" 은행에 있다는 놈이 그런 빽도 없냐? "
이미 얼마간의 대출이 있는지라 기껏해야 이삼천 정도 더 나오리란 얘기는 이미 들었었다.
하지만 지금 필요한 돈은 2억 가까이 가져야 한다. 점점 초조해 진다.
오늘 일만 없었어도 형에게서 받아낼 생각이었지만, 이제는 물 건너간 희망사항일 뿐이다.
" 사람하나 소개시켜 줄까? "
" 사채쓰라는 얘기야? "
" 아냐, 사채는.. 일종의 브로컨데.. "
" 브로커? "
" 응, 아파트 감정가를 높게 책정하는 방법이 있어. 그건 전문가만 할수있는거고.. 물론 수고료가 들어가야 하지만
이자는 은행이랑 똑같애. "
" 커미션이 얼만데.. "
이런 조급한 처리가 맘에 들진 않지만 지금은 위기상황이나 마찬가지다.
" 한 7%쯤 달라고 할거야. "
" 이런, 날강도가.. "
2억 추가 대출을 받으면 쌩돈 천사백이 날라가는 것이다.
" 술이나 한잔하자, 개업했다는데 한번은 팔아줘야지. "
" 한잔같은 소리 하네. 지점 회식할때마다 와야지, 임마. "
" 은행원이 무슨 돈이 있냐구~ "
소싯적부터 친구를 가려 사귀어야만 했다는 생각마저 든다. 친구놈이지만 도대체 의리라는게 없다.
실망은 실망이고 룸에 데려가 양주나 팔아야겠다는 생각이다.
" 가게 이름이 데킬라라며.. 간판 죽인다, 애들도 화끈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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