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유

살아가는 이유 31

바라쿠다 2013. 7. 30. 12:03

" 그쪽으로 앉거라.. "

남편인 민수와 연락이 닿아 부랴부랴 시댁에 올수 있었다.

시아버지인 김회장 내외와 아주버니 부부, 시누이 지수까지 거실 쇼파에 앉아 우리를 맞이하는데 웬지 찬바람이 부는

느낌이다.

" 편안하시죠.. "

" ............... "

" ............... "

요즘 들어 부쩍 거동이 불편해 진 시아버지 내외를 향해 인사를 드렸으나, 가타부타 입을 봉하고 있다.

머쓱한 기분이 되어 우혁이를 안은 채, 건너편 쇼파에 남편과 같이 자리했다.

" 무슨일이래요, 느닷없이..  내 몫은 빼 놨수? "

" 미친놈..  내가 뭐랬어요, 저 놈 말하는거 들으셨죠?   지 주제에 몫이라니.. "

" ...뭔 소리야, 당연한거지..  아버지가 내 앞으로 물려 준건데.. "

" 그만들 하거라..   둘째야, 하나만 물어보자.. "

형제가 만나자마자 으르렁대며 목소리를 높이자, 쇼파 깊숙이 등을 기댔던 시아버지가 자세를 고쳐잡는다.

" 우혁이 에미가 처녀가 아니었다고 하던데, 어찌 된 일이냐? "

" ...그게 무슨.. "

시아버지인 김회장의 입에서 느닷없이 터져 나온 충격적인 얘기에 남편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고, 나 역시

심장이 얼어붙는 기분이다.

" 오빠 만나기 전에 결혼까지 했다면서..  다섯살이나 된 애까지 있고.. "

" 에미..  네가 그런 사람인줄 몰랐구나, 감히 우리 식구들을 속이다니.. "

" ................ "

" ................ "

" 뻔하잖아요, 저 놈이 과거가 있는 여자한테 미쳐서는..  병신같은 새끼.. "

뭐가 뭔지 종잡을수가 없다.     시댁 식구들이 번갈아 내뱉는 소리가 허공에서 맴돌뿐이다.

우혁이는 품 안에 있지만, 느낌만은 어딘지도 모를 미개지에서 끈 없이 붕 떠 올라 중심을 잡기조차 힘들다.

" ...형이 참견할 일이 아냐, 내 일이라구~ "

" 뭐야?   이 자식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누구를 감싸고 도는거야? "

" 오빠~ 정신차려..  남들이 뭐라겠어?   우리 시댁에서 알게 되면 어쩌냐구~~ "

" 뭐가 어때서..  이 사람은 내 와이프야, 누가 뭐래든 상관없어.. "

" 저, 저..  미친놈.. "

" 하이구~ 우리집은 이제 망했구나.. "

기가 막힌듯 아주버니인 영수와 시누이 희수가 번갈아 남편을 윽박질렀고, 시어머니 역시 쇼파에 힘없이 기대고는

두손으로 머리까지 감싸쥔다.

" 언니~ 그 잘난 입으로 들어나 봅시다,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우리 모두를 속이고 오빠하고 결혼까지 했는지.. "

" ................. "

" 언니는 무슨..  난 저런 여자를 제수씨로 인정 못해, 어디서 감히.. "

" 그 입 다물어, 내 여자야..   형 맘대로 깍아내릴 자격은 없다구~~ "

연이은 시댁 식구들의 원성이 내 가슴을 후벼팠고, 그나마 남편이 가로막아 옹호하고자 했지만 돌아올리 없는 메아리일

뿐이다.

그네들의 악다구니를 고스란히 받으면서도 반박할 여지는 있을수가 없고, 남편의 바람막이식 항변마저 불편하기만 하다.

생각 같아선 그저 이 자리를 벗어나고픈 간절한 소망뿐이지만, 그마저 옴치고 나설수도 없는 죄인의 처지인 것이다.

" 내 며느리가 이렇듯 뻔뻔한 여자인줄 몰랐구나.. "        

" 아빠~ 아예 이혼을 시키세요.. "

" 너, 희수..  입 다물어.. "

" 보셨죠?   저 놈이 저런다니까요.. "

"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

모든 사실이 확연히 드러난 지금, 당연히 감수해야 할 대접이겠지만 시댁 식구들의 분란 앞에 묵묵히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도 모양새는 아니지 싶어 간신히 입을 뗀 선영이다.

" 그렇겠지, 뚫린 입이라도 할말은 없겠지.. "

" ...아버님.. "

" 어디서 아버님이야?  고얀것 같으니..  나도 너같은 며느리는 필요없다, 우혁이는 우리집 핏줄이니까, 너만 나가면

되겠구나.. "

" ...어머님.. 그건 안됩니다, 우혁이는 안됩니다.. "

" 흥~ 무슨 자격으로..  염치도 좋다니까..   저런 여자를 여지껏 올케라고 여겼으니, 아이~ 불쾌해.. "

" 난 절대 헤어지지 않습니다, 더 이상 참견하지 마세요.. " 

" 고얀 놈..  그런식으로 고집을 부린다면 널 자식으로 생각지 않을거다, 명심해.. "

" 당신 우혁이 데리고 일어나, 집으로 가자.. "

광풍이 몰아치듯 이곳 시댁에서의 거센 반발에 진저리가 쳐 질 즈음, 쇼파에서 일어선 남편이 우혁이의 가방을 챙겨

들고서는 내 팔까지 잡아 끈다.

" 끝까지 우혁 에미를 감싼다면 다시는 이 집에 오지 못할거야.. "

" ...이 여자는 내 여잡니다, 죄송합니다.. "

노기에 찬 시아버지의 최후 통첩과 다름없는 발언에도 남편인 민수는 내 어깨를 감싼채 의연하게 버티고자 한다.

" 아니, 저런 고얀 놈.. "

" 너 미쳤구나~ "

시어머니를 비롯한 모든 식구들의 눈총이 우리 부부를 어이없어 하는 중에도 남편은 마냥 꼿꼿하게 그들과 맞선다.

" 모두가 뭐라고 해도 난 이 여자 없이는 살수 없어요, 가겠습니다.. "

남편인 민수가 이끄는대로 거실을 나서는데, 그 끝인 현관까지 그렇게 멀어 보이기는 처음인듯 싶다.

등 뒤에서 그네들의 두런거리는 악다구니가 이어졌지만 그런건 아무래도 좋았다.     그저 이 집을 나가고픈

절심함만이 있을뿐이다.

 

" 누가 가르쳐 준것 같애? "

" 글쎄..  이제와서 무슨 소용이야, 모두 알아 버렸는데.. "

집에 들어서자 우혁이 가방을 팽개치듯 쇼파에 던진 남편이 입을 열었지만, 아직도 시댁에서의 여운이 남아 도무지

정신을 차릴수가 없다.

애초부터 시댁 식구들을 속일 생각은 없었던 선영이다.

처음 남편인 민수가 결혼 얘기를 꺼냈을때부터, 석연치 않은 심정으로 막연하게나마 이런일을 예감했는지도 모른다.

보편적인 통념상으로 볼때 전혀 다른 처지의 조건인지라 그의 청혼을 주저할수 밖에 없었고, 그런 고민을 안고 있는

나에게 자신이 모든걸 책임지겠노라며 시키는대로 따라 오라고 했다.

그 말을 곧이 곧대로 믿은건 아니지만, 당시 진호가 죽고 핏덩이나 다름없는 딸아이를 떼어낸 그 힘든 시기에 달리

어찌해 볼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기에 그저 묵묵히 남편을 따르기로 한 것이다. 

" 성희, 그 계집애가 맞을거야..  희수랑 여고때 동창이라고 했으니까.. "

" 아무려면 어때, 난 차라리 후련해.. "

" 그게 무슨 소리야, 후련하다니..   당신은 이게 아무렇지도 않단 말이야? "

" 잘된 일이야, 그동안 얼마나 맘을 졸였는데.. "

" 아니, 이 사람이.. "

살아오면서 문득문득 찜찜한 마음이 들곤 했다.    직접 겪었던 세월을 없던 일로 치부하고, 시댁 식구들을 속이는

며느리가 된 것 같아 내내 편치가 못했던 지난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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