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생(殘生)

잔생 10

바라쿠다 2016. 12. 17. 11:46

암사자에게 덤벼들어 새끼만 싸질러 놓고 사냥한 먹이마저 가로채 가는 숫사자같은 인간이다.

그에 비해 자식들의 먹을거리까지 신경써 주며 집에 데려다 준 국진이랑은 하늘과 땅 차이만큼 비교조차 어렵다.

아무래도 찜찜한 생각을 지울수 없기에 들고 온 반찬거리를 대충 정리하고는 남편이 사라진 의상실에 가 보기로 했다.

집을 나서 의상실을 기웃거렸더니 서너명의 여자들과 자리한 남편의 얼굴이 보인다.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어깨까지 두드리며 파안대소를 하는데 눈꼴이 시어 봐 주기가 민망할 지경이다.

한참을 지켜보던 중에 여자 셋과 남편이 의상실을 나서서는 시장 구석에 있는 포장마차로 들어가더니 그럴듯한 모임의

형태를 이루어 희희낙낙 즐거운 표정들이다.

그 일행중에서 곱상하게 생긴 여자의 옆에 바짝 달라붙어 술잔이 빌때마다 술을 따르고, 심지어는 안주까지 챙겨 준다.

교통사고 휴유증으로 고무호스를 배에 꽂아 용변까지 해결해야 하는 처지에 언감생심 노는 꼴이 가관이다.

성불구자나 다름없는 인간임에도 다른 여자와의 어울림은 웬수나 다름없는 남편에게도 즐거움이지 싶다.

집안 살림을 내팽겨 치고 모른척 할수는 없기에, 피곤한 몸이지만 나름 이를 악 물고 열심히 살아 온 지난날이다.

여유도 없이 반복되는 생활이 지겨워 가끔씩 외도를 하기는 했지만, 커 가는 자식들에게 못난 에미는 되기 싫기에 더

더욱 빈틈을 보이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살아 왔다고 자부하는 희정이다.

그 자리로 쳐들어 가서는 온통 헤집어 놓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똑같은 인간이 되지 싶어 발길을 돌려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 빨래 다시 했나 봐요. "

" 어쩌누, 다 젖었는데.. "

아마도 비가 와서 빨래줄 위의 옷들이 다 젖었을테고 그것을 본 아랫집 여자가 소쿠리에 몽땅 거두어 담아 처마밑에 숨겨

놨지 싶다.

그걸 다시 세탁기에 넣어 헹구어서는 빨래를 너는데 옥상으로 올라 온 그녀가 참견을 한다.

" 미안해요, 집에 있었으면 비 맞지 않았을거구만.. "

" 할수없지 뭐, 하늘의 뜻인데.. "

" 이리 줘요, 남자는 빨래너는거 아니래요. "

" 또 신세지네. "

다시 보는게지만 입꼬리 옆에 박힌 점이 눈에 띈다.

여자의 얼굴에 박힌 점은 보통 남자가 꼬이는 사주인지라 팔짜가 순탄치는 않으리라 보여 진다.

유난히 살결이 흰 그녀의 종아리가 자꾸 눈에 들어 온다.

식성이 까다롭지 않은 나이기에 조만간 사고치지 싶은데, 몸을 뉘이는 이 곳에 여자들이 들락거리게 되면 예전과 같이

복잡하게 꼬일까 싶은 기우가 생긴다.

" 맛있는거 사 주신다며요. "

" 술? "

" 아무거나,호호.. "

" 그러자구, 해장이나 한잔하지. "

스스로 내 뱉은 적이 있기에 평상위에 부르스타와 삼겹살, 그리고 김치까지 가져다 놨다.

음식 준비를 하는 틈에 자신의 집에 다녀 온 그녀 역시 부르스타와 후라이 팬, 갖가지 재료를 쟁반에 받쳐 온 가짓수를

내려 놓으니 제법 풍성한 식탁이 되지 싶다.

" 한잔해야지. "

" 먼저 드세요, 이것 마저 하구서.. "

삼겹살을 먹음직하게 익히고, 두 잔에 소주를 따라 내 밀었다.

잔이나마 부디치자고 했건만 프라이 팬에 올린 재료를 볶느라 정신이 없는 그녀다.

두부와 각종 야채가 있지 싶은데 버얼겋게 보여 맛있는 맛은 아니지 싶다.

" 그게 뭔데.. "

" 마파두부..  고향에서 많이 먹었어요. "

한번쯤은 중식당에서 먹어 본 음식이지 싶은데 그 맛은 기억에 없다.

한동안 지지고 볶던 이상야릇한 음식이 상에 올라왔기에 한수저 입에 떠 넣어 음미를 한다.

워낙 술을 좋아하기에 남들이 찾는 안주는 가리지 않고 먹어 봤지만, 지금처럼 입에 땡기는 음식은 접하기 쉽지 않다.

" 맛있네. "

" 드시고 싶음 얘기해요, 만들어 드릴께. "

술은 그닥 좋아하지 않아 보이지만 여자의 내숭은 눈치채기 어렵다.

저렇게 멀쩡하다가도 술이 취했다며 미친척 달겨드는 경우를 왕왕 지켜봤기에 조심스럽다.

그 시점의 여자 감정은 단순한지라 처음 본 남자에게 필이 꽂혀 용감하게 덤벼들기도 한다.

 

" 냄새 죽입니다. "

" .................. "

평상에서 주거니,받거니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중에, 맨 밑 1층에서 사는 사내가 소쿠리에 빨래를 담아 옥상에 나타난다.

아마도 택시 운전하는듯, 가끔 주차된 차를 본 기억이 난다.

1,2층은 원룸으로 지어 진 구조이기에 커다란 이불은 좁은 방안에 널기 불편할 것이다.

" 이리와서 한잔해요. "

" 그래도 되나. "

주름진 얼굴로 봐서 50 중반은 돼 보이고, 선한 인상인지라 해를 끼칠 상은 아니다.

" 같은 지붕아래 사는데 서로 알고는 지내야죠. "

" 안녕하세요. "

쭈빗대면서도 반가운 기색으로 한쪽 귀퉁이에 엉덩이를 걸친 그에게 술을 따라줬고, 자연스레 아래층 여자와도 수인사를

나누게 된다.

간략하나마 자신의 소개를 하는데 조태식이라고 했고 나이는 55이며 짐작대로 택시회사에 다닌단다.

더불어 아래층 여자의 이름은 이길순이며 나이는 나와 동갑내기인 43이고 연변에서 온 교포라는데 한국에 온지 오래돼서

그런지 사투리는 눈치채기 어렵다.

 

" 짝~ "

" 아니, 이게 미쳤나. "

" 그래, 미쳤다 인간아.  너 같으면 안 미치겠니? "

" 이런 또라이같은 년이.. "

정기적으로 병원에 다니며 치료받아야 하기에 술은 쥐약이나 마찬가지인데, 얼굴이 벌개져서 나타난 인간이다.

어제도 5만원이나 줬는데 또 다시 손을 내미길래 참지 못하고 귀싸대기를 올려 붙였다.

누구는 먹고 살기 위해 고단한 몸을 이끌고 아둥바둥 살고 있건만, 못된 소 엉덩이에 뿔 난다고 동네 아줌마들과 몰려

다니며 희희덕거리는 꼴에 울화가 치민 것이다.

" 골골대면서 돈벌이도 못하는 인간이 여자 꽁무니나 쫒아 다니고..  하이고~ 애들이 보면 우리 아빠 능력있다고 좋아

하겠다. "

" ...무슨 여자.. "

"  저.. 저 인간이 누굴 속이려고.. "

양심은 있는지 여자 얘기가 나오자 찔끔하는 모양새다.

아마도 내가 지켜봤으리란 생각은 못했을 것이다.

" 생활비가 얼마나 들어 가는지는 아냐?   애들 학비도 못 줬어, 이 웬수야. "

" .................. "

보험회사에서 나오는 치료비와 쉬지도 못하고 식당에 나가 버는 돈이 우리집 수입의 전부라고 보면 된다.

날밤을 새야 만원이나마 더 받기에 한푼이나마 아낄 생각으로 악착같이 살아 온 지난 10년의 세월이다.

언젠가 이런 고생을 보상 받는다는 일념으로 살기야 했지만, 무쇠로 만든 몸이 아니기에 자꾸만 지쳐가는 요즘이다.

" 나가~  꼴도 보기싫어~ "

" ................... "

대꾸할 면목은 없는지 슬그머니 밖으로 사라지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자니, 허탈하고 의욕마저 사라진다. 

저녁에 식당으로 나가려면 잠깐이나마 눈을 붙여야 하는데 편히 잠이 오기는 틀렸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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