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생(殘生)

잔생 11

바라쿠다 2016. 12. 17. 11:48

" 엄마도 같이 먹어. "

" 됐어, 니들이나 많이 먹어. "

어차피 잠이 들긴 틀렸다 싶어 국진이가 사 준 꽃등심을 구워 아이들의 밥상을 차린 희정이다.

첫째보다는 그나마 막내녀석이 살갑게 굴기에 힘들때마다 위로가 된다.

" 아빠는.. "

" 볼일있다고 나갔어, 이따 들어오면 니들이 차려 줘. "

고 3인 첫째놈은 제 주관이 설 나이가 됐기로 입은 무거운 편이지만 요즘들어 가끔 사고를 치기에 가뜩이나 맘 둘 곳

없는 나를 힘들게 한다.

애들이 밥상머리에 앉아 먹는것만 봐도 배가 부르고 뿌듯하다.

비싼 고기를 먹이는게 얼마만인지 가슴 한편이 아려 온다.

" 물 마시면서 천천히 먹어. "

" 응. "

잠시 지켜보다가 안방으로 들어 온 희정이는 어째야 할지 잠시 기로에 빠진다.

집안 걱정에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기에 그나마 모든 근심을 떨치고자 열심히 일에 빠져 살았다.

하루의 일과가 펑크가 난 오늘같은 날은 콜라텍에 들러 스트레스를 풀곤 했다.

국진이가 뇌리를 스치지만 아침나절에 헤어졌는데 불과 몇시간만에 또 만나자고 하면 우습게 보이지 싶어 망설여 진다.

~ 술 마시고 싶어.~

고민끝에 국진이에게 메시지를 날리고는, 그 동안 미뤄 뒀던 집안일을 챙기기로 마음 먹는다.

 

" 고얀 놈~  네 잘못을 알렸다. "

" 신령님께 제가 무슨.. "

" 뻔뻔한 놈 같으니..  그래도 정신을 못 차리고.. "

" ..말씀은 해 주셔야.. "

느닷없이 신당에 나타 난 신령님의 불같은 호령에 넋이 빠진 국진이다.

멋들어진 두건과 함께 고운 두루마기로 여민 모습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허술해 보인다.

" 이 놈아, 내 발이 썩어 들어가. "

" 네? "

" 어떤 못된 놈이 똥물을 끼얹었어. "

" 똥물이라심은.. "

" 내가 그런것까지 일러 주랴? "

" 소인이 어찌해야.. "

조금전까지만 해도 긴 수염이 부르르 떨만큼 화를 내시더니 온화한 미소를 보여 주신다.

" 어쩌긴 이 놈아, 발 닦아줘야지. "

" ..발.. "

서 계시던 신령님이 버선을 벗으시는데 엄지 발톱에 빨간 메니큐어가 칠해 져 있다.

" 정성을 다 해야 하느니.. "

" 소자 열심히 하겠나이다. "

잠에서 깨어 난 국진이는 방금 전 생생한 꿈이 잊혀지지가 않는다.

 

" 어디 가요? "

" 네, 출근.. "

" 태워다 드릴까? "

" 아뇨, 됐어요. "

5시가 되어 집을 나섰는데 1층 입구에서 택시의 먼지를 털어내던 조태식 아저씨와 마주쳤다.

성의는 고맙지만 노래방 도우미라는게 탄로나지 싶어 거절하는게 맞지 싶다.

" 타요 그냥, 돈 안받어. "

" 그래도.. "

" 한집에 살면서 내외하기는..  타라니까. "

" ..그럼.. "

마냥 뻗대기도 그렇고 영등포 큰 길가에 내린다면 그저 식당쯤 가는줄 알 것이다.

" 힘들지 않아요? "

" .. 뭐 그냥.. "

" 힘들겠지, 그려러니 해요..  술취한 인간들이 다 그렇지. "

" ..................... "

깜짝 놀라 숨이 막히면서도 고개를 돌려 운전하는 그를 멀건히 쳐다봐야 했다.

" 우연히 봤어요, 친구들과 놀러왔다가.. "

" ..어디.. "

" 질러노래방이지 아마.. "

" ..................... "

아무것도 모르지 싶어 그의 호의를 거절치 못하고 택시를 얻어 탄 게지만, 역시 죄 짓곤 못 살지 싶다.

" 핸폰번호 가르쳐 줘요. "

" ..................... "

" 혹 놀러가게 되면 전화하게. "

 

" 뭐 먹을까. "

" 아무거나.. "

생생한 꿈에서 깨어 나 핸폰을 보니 메시지가 찍혀 있고, 남편까지 있는 여자에게는 먼저 연락하는 법이 없었지만

그녀에게서 먼저 소식이 왔기에 만나기로 한 폭이다.

" 츠암, 아무거나라니..  희정씨 싸구려야? "

" 그게 무슨.. "

" 당당해야지 여자가, 이렇게 이쁜데.. "

" 또 놀린다. "

답답한 여자중 하나가 스스로 이쁜걸 모르기 때문에 호강스레 대접받는걸 버거워 한다.

티비에 나온 탈렌트가 이쁘긴 하지만 그 중 절반은 화장빨이고, 그나마 배우로서의 수명은 다 됐다고 보여 진다.

아무래도 많은 시간을 두고 자분자분 가르쳐야 제 위치를 찾아가지 싶다.

" 이렇게 빠져도 돼? "

" 응, 일하기 싫어. "

" 우리 쇼핑부터 하자구. "

" 웬 쇼핑.. "

먼저도 얘기했지만 내 여자가 된 사람은 주위로부터 시샘을 받을만큼 당당했으면 한다.

그저 남의 눈치나 보며 주눅이나 든대서야 곁에 있는 나까지도 초라해 보일것이다.

백화점이라도 가고 싶지만 어차피 그곳에 진열된 품목이야 신림사거리에 위치한 쇼핑몰과 다르지 않다.

여성복 코너에서 시간을 두고 천천히 살피기로 했다.

" 저거 어때? "

" 넘 야하지 않나? "

" 한번 입어 봐. "

" .................. "

흰색에 가까운 원피스는 약간은 털실로 만든 느낌이 나는데, 제법 맵시마저 있어 보인다.

탈의실에서 나온 그녀가 거울 앞에 서서 스스로를 비춰보며 이리저리 몸을 바꾸어 확인을 한다.

라운드인지라 흰 목이 두드러 져 보이고 몸의 굴곡이 자연스레 드러나 섹시하기까지 하다.

" 이쁘다, 그거.. 저쪽으로 가자. "

" 또? "

망설이는 그녀의 손목을 나꿔 채 갖가지 신발이 가지런한 매장으로 이끌었다.

" 저것 꺼내줘요. "

" 네, 손님. "

이것저것 신겨봤는데 그 중 베이지색 힐이 어울리지 싶다.

옷이 날개라 했던가, 조금전 산 옷과 매칭이 되어 눈이 부실만큼 돋 보인다.

" 우리 나이트갈까? "

" 나이트? "

" 응, 콜라텍 말고.. "

저 정도 미모의 폼나는 여자가 중년의 아저씨들이 우글거리는 콜라텍에 가는건 아니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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