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생(殘生)

잔생 9

바라쿠다 2016. 12. 17. 06:02

그가 이끄는대로 식품코너를 한참동안이나 뒤 따라야 했다.

어차피 퇴근후 집앞 시장에서 아들녀석들의 반찬가지를 사야 하는 시간이라 급히 서둘 이유는 없다.

" 애들 뭐 좋아해? "

" 걍, 아무거나 잘 먹어. "

" 엄마가 한다는 말이.. "

반찬코너 앞에서 카트를 멈춘 그의 뒤에서 마냥 뻘줌하게 머뭇거리기도 그렇지 싶어 비닐랩으로 포장된 반찬 몇가지를

골라 실었다.

" 이게 다야? "

" 응. "

" 이룬~  따라 와. "

카트를 밀며 걸어가는 그의 발걸음을 쫒으면서 진열된 판매대를 기웃거리게 된다.

의향따위는 무시한채 포장된 쏘시지와 햄등을 카트에 던지듯 연신 담는다.

그의 손에 골라지는 품목이야 당근 아이들이 좋아함직한 먹거리들이다.

빠듯한 집안 살림인지라 아이들의 입맛에까지 맞추는 과도한 지출은 아끼고자 하는게 평소의 내 습관이다.

" 꽃등심 얼마죠? "

" 근에 4만원입니다,손님. "

정육코너에 이르른 그의 곁에서 하는 양을 지켜봐야만 했다.

" 그거 두근하고 생삼겹 세근 주세요. "

" 넵, 잠시만요. "

신이 난 정육점의 직원이 고기를 썰어 저울에 올리는 움직임마저 경쾌해 보인다.

" 웬걸 그리 많이 사. "

" 가만있어, 자기 애들이잖어. "

평소 알고 지내던 남자들과는 확연히 다른 그의 모습이 차분히 전해져 온다.

기실 섹스를 위해 서로간의 만남이 이어졌지만, 여러가지 다른 점이 그들과는 구분이 간다.

어쩌다 인연이 된 게지만 오랜시간 그와 연결될지도 모르겠다는 예감마저 든다.

 

" 봉천동에 한사람 내리고 상도동 갈께요. "

" 네. "

이마트 앞 대기중이던 택시에 탄 시간이 10시가 가깝다.

퇴근시간과 매 한가지인지라 늦는다는 부담은 없다.

그럴리야 없지만 밖으로 맴도는 남편이 집에 있더라도 괜한 의심은 받지 않을것이다.

" 자기가 안내 해. "

" 응. "

예전에 사귀던 놈씨가 보낸 메시지를 훔쳐 본 남편과 대판 싸웠던 기억이 있는 희정이다.

10여년을 부부관계없이 지내는 남편이지만 불순한 짓을 대놓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 아저씨, 저쪽에서 좌회전이요. "

" 네. "

산등성이 가까운 집으로 향하는 골목에 접어 들었을때 저 만큼 앞에서 눈에 익은 인간이 의상실로 들어 간다.

분명히 웬수같은 남편이기에 순간적으로 몸이 움추려졌지 싶다.

하지만 집 앞에 이르르게 됐을때 쯤 여자들이 드나드는 의상실로 들어서는 남편의 행동에 의구심이 인다.

" 들어 가. "

" 가요. "

제법 묵직한 비닐봉투를 내려 준 그가 다시 택시에 올랐고, 그런 그에게 손을 흔들어 줬다.

 

" 어머, 거사님 오시네.

" 헐~ 미리 얘기나 하고 오던가.. "

" 얘가 마침 집에 있어서.. "

" 잠깐 기다리시게. "

날이 더워 천천히 계단을 올라 옥상에 올랐더니 며칠전 다녀 간 고연숙이가 딸과 함께 평상에 앉아 있다가 호들갑스레

반긴다.

부지런히 에어컨부터 작동시켜 온도를 최하로 낮추고는 방의 옷장에 곱게 걸어 둔 흰 모시옷을 꺼내 입었다.

빈틈이나 없는지 거울을 찬찬히 살펴 보고는 느긋하게 현관문을 열었다.

" 들어오시게. "

" 죄송해요, 연락드려야 했는데.. "

" 괜찮어, 내가 신빨이 떨어져서 그런거니까. "

" 네? "

" 요즘 좀 그래, 이리 들어와요. "

신방문을 열고 그들을 맞이 했다.

하기사 그 전 신빨이 왕성할때는 찾아오는 손님들의 면상이 미리 그려지는 시절도 있었다.

모시는 신에게서 미움이라도 받는겐지 그런 신통력이 많이 떨어진 요즘이다.

그나저나 제 엄마를 닮아서인지 제법 이쁘고, 어린것이지만 도화끼마저 엿보인다.

" 생일이 12월 3일이라며.. "

" 네. "

" 자네는 잠깐 나가서 기다리게. "

" ..왜? "

요즘 애들은 영악하고 이기적이라 속내는 따로 챙기고 있을것이다.

" 헐~ 고약한 에미로세..  자네가 대학가나. "

" 죄송.. "

딸 대신 대답을 하려 드는 고연숙이를 밖에 기다리게 했다.

" 이름. "

" 박고은.. "

" 은혜 은 쓰니? "

" 네. "

들어올때 얼핏 봤지만 제 어미보다 큰 키에, 몸매 역시 숫놈들의 시선을 끌 만큼 뛰어난 미모다.

제 애비나 에미 역시 각각 따로 노는 사주이기에 콩가루 집안이나 별반 다를게 없다.

얌전한 척 무릎을 모으고야 있지만 당당히 쏘아보는 눈빛이 꺼리낄게 없다는 자신감까지 돋구어 보인다.

" 하나 물어보자, 대학 가고 싶냐? "

" ..네. "

" 공부 별로라며.. "

" ................. "

" 전문대학은 싫으냐. "

" 아뇨. "

공부해서 먹고 살 사주는 아니기에 재수까지 시킨다면 밑빠진 독에 물 붓는 격인지라 전문대라도 다니게 해 학벌이나마

취하는게 이로울 것이다.

" 어차피 눈 가리고 아웅이다, 거기 가서 재미붙이면 될 터이고.. "

" ..네. "

" 엄마 들여 보내고 넌 밖에서 기다려. "

" 네. "

깨진 쪽박을 어거지로 붙인다 해도 제대로 된 쓰임새가 될리 없다.

제 엄마에게서 태어났기로 하늘에서 부여한 삶을 영위하는게 신상에 이로울 것이다.

 

" 내 말 들어. "

" ..어떤.. "

딸과 자리를 바꾼 고연숙이가 다소곳한 자세로 내 앞에 자리했다.

" 안 좋은 머리 굴려봐야 도움 안돼, 전문대 보내. "

" 전문대라 하심은.. "

" 그냥 보조금만 내면 될거야,  다행히 딸내미 사주는 좋아..  시키는대로 해. "

" 감사합니다. "

제 새끼는 고슴도치라도 귀여운 법인데 딸내미가 도화살이 있노라고 가르쳐 줄수는 없다.

아는 후배가 안양근교 대학의 처장이다.

학생하나 입학시키는건 누워서 떡먹기마냥 쉬운 일이고 더불어 소개비까지 챙길수 있다.

" 가 봐. "

" ..근데..   남편이 집에 안 들어 왔어요, 핸폰도 꺼져있고.. "

" 뻔하지, 내가 그럴거라도 했잖어. "

인간이란 물에 빠졌을때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연약한 동물이다.

그 시점에서 지팡이를 내어 주면 그 은혜를 갚겠다고 고개를 수그릴 것이다.

" 어찌해야 할지.. "

" 부부가 겉돌아, 따로국밥이야.  내 말 맞지? "

" ................ "

" 내일 혼자 들려, 처방 가르쳐 줄께. "

드디어 큰 물고기가 낚시밥을 물었기로 어찌해야 상처없이 날름 건져내야 할까 머리를 굴려 본다.

눈치 차리지 못하게 작업을 곁들이면 제법 통통한 먹이를 가져다 바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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