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생(殘生)

잔생 7

바라쿠다 2016. 12. 16. 11:18

" 한잔하자구. "

" 고마워. "

신림동에서 제법 이름 난 고기집 안, 꽃등심이 지글거리며 익어 간다.

" 고맙긴, 우리 만난 기념이야. "

" 나 그런 여자 아냐. "

혹여 남자에게 득이나 볼 여자로 오해할까 봐 걱정이다.

콜라텍 매점에서도 그랬고 모텔비도 그가 계산했다.

그 간 만나봤던 놈씨들과는 틀리지 싶다.

아마도 변변치 못한 팬티를 봤을테고, 못마땅한 그가 이십만원이 넘는 속옷을 사 줬을게다.

비록 아둥바둥 사는 폭이지만 꽃뱀처럼 보이는건 자존심이 허락치 않는다.

" 알았어, 이름이 뭐야. "

" 어머~ 그러네,호호..  서로 이름도 몰랐다니..  희정이야, 김희정. "

" 난 국진이.  쥐띠라고 그랬지? "

처음 봤을때부터 호감이 가는 인상이었기에 그의 마음씀이 고맙기는 하다.

남편과 두아들의 생계까지 책임져야 하는 처지인지라, 그의 선심이 와 닿긴 하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기에 어색해지는

중이다.

" 응."

" 나보다 두살많네. "

" 동생이구나,킥~ "

" 누나라고 불러줄까? "

" ...아냐, 걍 친구해. "

빈 속이나 다름없기에 몇잔 마신 술이 싸하니 몸을 덥히기 때문인지 처음 만난 그가 사랑스러워 보인다.

여자라는게 자신을 위해 맘을 써 주는 남자가 좋을수밖에 없다.

중뿔나게 2살 연상이란 이유로 대접받을 일도 없거니와 남자에게는 되도록 어려보이고 싶은게 솔직한 심정이다.

" 고상한 여자 별로야, 우는 여자도 싫지만.. "

" 호호.. 어떤 여자가 좋을까. "

술이 취하는지 비어있는 그의 술잔을 채워주는데 철철 넘치기까지 한다.

여전히 꼿꼿한 그를 보자니, 조금 전 몸을 섞을때와 마찬가지로 느긋한 끈기마저 있지 싶어 새록새록 맘이 간다.

" 후후.. 당근 섹시한 여자지. "

" 에구, 변태아냐?  호호.. "

" 그럴지도 모르지, 집에 가야지? "

" ...아냐, 출근했다 치지 뭐. "

어차피 술이 얼큰한데 집까지 다녀와 식당으로 출근하기는 싫어진다. 

비록 콜라텍에서 만났지만 그의 뜨거운 애무가 아직도 몸 구석구석 여운이 남아있는 지금이다.

" 밤에 일해? "

" ..응, 식당.. "

어쩌면 치부일수도 있는 지금의 한심스런 생활까지 그에게 얘기할수 있었던건 믿음이란게 생겨서일게다.

그저 우스개 소리로 여겼던 그의 점괘가 맞아 떨어진건지 근래 들어 제법 운수대통한 날이지 싶다.

 

" 입가심해야지. "

" 또?  취하면 어쩌누. "

" 이룬~ 내가 있잖어. "

" 흉 보면 안된다~ "

일견 보기에도 희정이의 취기는 적당해 보이지만 맥주 한잔이야 어떠랴 싶은 국진이다.

고기집을 나와 모텔쪽으로 방향을 잡았는데 걷는 내내 팔짱을 끼고 매달리는 그녀가 이뻐 보인다. 

오랜만에 내 맘에 쏙 드는 그녀와의 시간이 아쉬울만큼 새록새록 정을 쌓고 싶기도 하다.

" 쉬는 날은 언제야. "

" 일주일에 한번 정도.. "

벌써 빈 맥주병이 4병이다. 

불콰해 진 그녀의 모습도 모습이지만 숨이 가쁜듯 실룩거리는 콧망울도 귀여워 깨물어주고 싶다.

" 몇시에 끝나는데.. "

" 아침 9시. "

스스로 되뇌어도 이렇듯 처음 본 여자에게 빠져 본 기억이 없다.

그닥 빼어난 미모는 아니더라도 여러가지로 매력이 넘치는 희정이다.

호구조사일 듯 오해살수도 있지만 그녀의 미래까지 궁금해 진다.

가능하면 모시는 신에게 기원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 큰 애가 고3이라며.. "

" 응, 왜? "

" 걍.. 당신 아들이니까 궁금해서.. "

" 피~ "

버젓이 남편까지 있는 유부녀인데 그녀의 세세한 동선까지 궁금한 것은 왜일까 스스로 자문하게 된다.

밤새워 일해야 하는 그녀의 일상이 못내 가엾고, 가능하다면 그런 지친 맘조차 덜어주고 싶다.

 

" 먼저 씻을까? "

" 아냐, 나부터 할래. "

7080 호프집에서부터 이 곳까지 오는데 약간씩 휘청이던 희정이다.

자기딴에는 수줍은 듯 돌아서서 속옷까지 벗어 던지고 욕실로 사라지는 폭이지만, 몇번의 만남이 지속된다면 아마도

지금의 몸짓과는 달리 내 취향에 맞춰 바뀌어 질 것이다.

" 자기 씻어. "

" 내가 눈이 보배라니까..  이뻐,후후.. "

" 그만 놀려. "

수건으로 머리를 털면서 욕실에서 나온 그녀의 모습이 한층 싱그러워 보인다.

콧날이 뽀송뽀송하니 반지르 눈이 부시고, 늘씬한 다리에도 스킨을 발랐는지 윤기가 나 미끈하다.

먼저번에도 얘기했지만 교접하는 시간만큼은 여자를 주도해야 한다.

샤워기의 차거운 물줄기를 받으면서도 그녀와의 교미순서를 생각하며 잔머리를 굴려 본다.

" 아직 부끄러워?   이긍, 내외하기는.. "

" 추워서 그러지, 자기는.. "

에어컨이 빵빵하게 돌아간다지만 이 더위에 춥기까지 하다는건 말짱 거짓부렁이다.

그녀가 내뱉는 말 한마디도 놓치지 않아야 속심이 들여다 뵈 지는 법이고, 미세한 움직임 하나에도 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

좋아하는 체위가 있어도 아직은 속정이 깊지 않은 관계이기에 미리부터 모든걸 보여줘선 안된다는게 내 신조다.

성적인 지식이 얕은 이들이야 그저 삽입이나 하고 신나게 박음질 하는게 장땡이라 생각하겠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끼니를 채우기 위해 이것저것 먹어 보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식상하기 마련이다.

희정이에게 뭐든 해 주고픈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흔히 남녀간에는 밀당이란게 있어, 잘해 주는것만이 결코 능사가

아니란 것을 아는 남자만이 오랜 시간 여자에게 최면을 걸수가 있다.

" 오늘 죽여버릴거야,후후.. "

" 안돼, 조금만 죽여,호호.. "

그녀가 덮고 있는 시트를 걷어치우자 눈에 익은 늘씬한 자태가 유혹한다.

무덤덤한 그저 그런 교접이란 느낌을 주지 않으려면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하고 그래야만이 권태기라는 것도 스며들지

않는다.

그녀의 가랑이에 얼굴을 묻고 죄다 빨아들이고 싶지만 그것은 먼 훗날의 숙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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