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생(殘生)

잔생 4

바라쿠다 2016. 12. 12. 22:50

" 늦으면 안돼. "

" 안 멀어. "

초등학교 동창인 용수가 점심을 산다며 집 근처까지 왔다길래 녀석의 차에 올랐다.

가까우려니 했는데 대방 지하차도를 지난 차가 올림픽 도로로 진입하기에 슬며시 걱정이 된다.

" 먼저번에도 욕 먹었다구. "

" 바가지 긁디?,후후.. "

몇년만인가 동창모임에 참석한 연숙은 워낙 털털한 성격이었지만, 별다른 경계심없이 술이 술을 불러 얼추 취했고 2차로

간 나이트에서 부르스를 추자는 용수의 조름을 뿌리치지 못했다.

제법 인기가 있는 녀석의 추근댐이 싫지 않았고, 어쩌면 여동창들에게도 우월감이 생겼지 싶다.

어느 정도 취기가 도왔겠지만 동창생들의 눈을 피해 녀석이 이끄는대로 모텔까지 가기 이르렀고 당연히 살을 섞었다.

술기운이 사라지고는 약간은 후회하는 맘도 생기긴 했지만, 그럴수도 있다 싶었는데 요즘 들어 수시로 핸폰을 해 대며

들이대는 통에 골치아픈 일이 생길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심란스럽기만 하다.

동창회가 있던 날 밤 12시가 넘은 시각에 풀어헤쳐진 모습으로 귀가를 했고, 그때까지 화가 난 표정으로 거실에서 기다리던

남편의 눈빛이 내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오늘은 애 아빠가 동료들이랑 제주도로 라운딩을 갔기에 그나마 시간을 빼기가 쉬워 따라 나선것이다.

20분 정도 달리던 차가 일산쪽으로 빠져 나가더니, 길가에 그럴듯한 간판이 있는 곳으로 미끄러 져 들어 간다.

" 내려. "

" 이런데가 다 있네, 자주 왔었나 보다. "

" 잠깐 기다려. "

삼계탕과 오리백숙이란 글씨가 커다랗게 씌여진 식당은 그 곳을 알지 않고는 찾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현관앞에서 기다리라고 하더니 식당을 다녀 온 그가 주문을 마쳤는지 뚜벅이며 군데군데 보이는 별실같은 곳중 한 켠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꼬셔 낸 여자들과 이 곳을 자주 찾는지 제 집인양 스스럼없이 행동하는지라 녀석의 바람끼가 눈에 보이는듯 하다.

 

" 음주운전 하게? "

" 몇잔 안 마실거야, 걱정하지 마. "

식당에서 가져 온 삼계탕을 먹으면서 반주까지 하는 용수의 정신세계가 궁금하다.

여자동창들끼리는 친하게 지내는 폭인지라, 숫놈들의 가지가지 정보를 씹어대곤 했기에 어느 정도의 동선이야 가늠한지

진작이다.

별 하는일 없이 놀러만 다니는 놈이라고 들어 알고 있기에, 이 기회에 제대로 파악하고 싶다. 

" 여긴 원래 이러니? "

" 다 그래, 이런데 처음이냐? "

" 응, 이상해. "

" 이상하긴..  여기 장사 잘돼. "

별실이란게 테이블 달랑 하나에 넓직한 쇼파가 있는데 둘이서 무슨짓을 하던지 거리낄게 없는 구조다.

하기사 예전에도 이런 곳에 가끔 와 본 터이지만 모르는 척 해야 하는게 옳지 싶다.

" 너 요즘 뭐하니.. "

" ..경매, 왜? "

" 돈 많이 버나 보다, 승용차도 좋아 보이던데.. "

" 가끔 주식도 해, 친구 놈이 쏘스를 주거든. "

" 많이 벌겠다,얘. "

남편이 주식회사에서 근무한지 이십년이 지났지만 가까운 지기 말고는 모르는 친구가 대부분이다.

" 그냥 그렇지 뭐, 관심있냐? "

" 내가 뭘 아나.. "

" 후후.. 오늘 더 이뻐보인다. "

" 니가 사람 볼줄 아는거지,호호.. "

얼추 불콰해 진 용수가 일어나더니 식탁을 돌아 내 쪽으로 온다.

추후의 일이야 뻔한지라 은근 기대감이 인다.

먼저번에는 술이 취했는지 제대로 된 달금질조차 시원스럽게 못한 녀석이었다.

" 아이, 왜 이래.. "

" 빼기는.. "

어차피 이 곳까지 온 터라 녀석의 덤빔이야 당연한 게지만 순진한 척 다시 한번 내숭을 떨어 본다.

 

~ 뭐해. ~

" 걍 집에 있지 뭐, 할 일 많어서. "

~ 안 나올래? ~

" 어딘데.. "

~ 영등포, 며칠전 그 사람들.. ~

" 40분쯤 걸릴거야. "

~ 그래, 빨리 와. ~

집에 있던 길순이는 친구 윤자의 폰을 받고는 거울앞에 앉았다.

고향인 연변에서 돈을 벌기 위해 서울로 온지 벌써 7년이 넘었다.

처음엔 식당을 전전하며 고된 일을 했지만, 2년전쯤 당시 이 계통에서 일하던 윤자를 알게 됐고 그 후로는 노래방

도우미 생활을 하게 됐다.

남들이야 그렇다 쳐도 자신만큼은 열심히 살려고, 아둥바둥 허리띠를 조르며 번 돈을 고향으로 송금했다.

하지만 한달내내 뼈 빠지게 일해서 번 돈보다 노래방에서의 수입이 훨씬 많았고 수월하였기로,  지금은 이 길로 빠져

정착하게 된 폭이다.

다만 그 전에 살던 대림동에서는 눈에 익은 사람들이 더러 있었기에, 나름 불편함을 피해 이 곳 상도동으로 보름전

이사를 했다.

 

질러 노래방으로 내려가는 계단에서부터 음악소리가 시끄럽다.

" 어서 와, 언니 "

" 어딘가요. "

밖은 대낮이건만 이 곳은 어둠을 밝히는 조명등이 곳곳을 비춘다.

처음 노래방이란 곳으로 출근이란걸 하게 됐을때 이해를 하지 못했던 길순이다.

적은 돈이나마 귀하게 여겼기에 밥 한끼를 먹더라도 아끼는 습성이 몸에 뱃고, 그 돈을 모아 고향으로 보내는 자부심이

있었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만성이 돼 뻔뻔해졌는지, 어찌하면 손님에게 돈을 더 뜯어낼수 있을지 잔머리까지 굴리게 된다.

요즘에는 이 일을 하면서 떳떳하지 못했던 한가닥 양심마저 희미해 진다.

" 3번 방이야. "

" 네. "

" 부탁해. "

주인의 입장에서는 기왕이면 손님들의 주머니를 터는게 목적이겠지만, 하루도 거르지 않고 술을 마셔야 하는

길순이로서는 부대낄수 밖에 없다.

3번이라는 표찰이 붙은 노래방 문을 열고 들어서자 자욱한 담배연기와 시끄러운 음악소리가 뒤섞여 뇌리를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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