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생(殘生)

잔생 3

바라쿠다 2016. 12. 8. 16:02

가뜩이나 기분이 우울했던 희정이는 어이가 없다.

모처럼 쉬는 날이기에 그 동안 애인 노릇을 해 왔던 놈팽이와 만나기로 며칠전부터 약속을 했었다.

무려 30분이나 기다렸건만 폰조차 없는 인간이다.

하기사 그간 만난 시간이 오래 됐기에, 슬슬 정이 쌓이지 싶어 조만간 헤어지려던 참이었지만 먼저 팽 당한꼴이 된지라

기가 막힌다.

내 쪽에서 먼저 연락을 취해 볼수도 있지만 자존심이 허락치 않는다.

(그래 잘 먹고 잘 살아라, 아니 쳐 먹다 뒈져 버리든지..)

심사가 배배 꼬인 채 희정이는 커피숍을 나서야 했다.

그 동안 사귀어 왔던 놈팽이에게 바람까지 맞다니 스스로 한심하기 짝이 없다.

모텔이 즐비한 골목으로 들어 두,세번 구부러지니 저 멀리 콜라텍의 뒤쪽 입구가 보인다.

3층에 자리한 그 곳으로 오르는데 벌써부터 음악소리가 쿵쿵 울리며 반긴다.

 

밖은 훤한 대낮이건만 훌로어에는 짝을 이룬 인간들이 빈자리를 찾아가며 스텝을 밟아 댄다.

벽을 따라 길게 늘어진 간이 의자에 앉아 그들의 군무를 지켜보기로 한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닮아 제법 늘씬한 키를 물려 받은지라 어려서부터 또래 남자애들이 꼬이곤 했다.

팔짜가 사나워선지 지금의 남편이 교통사고를 당해 큰 수술을 몇차례씩이나 했건만, 아랫배에 고무호스를 끼고 볼일을

봐야 하는 처지가 됐고 그 이후로 부부관계는 생각조차 할수 없었다.

음악에 맞춰 빙글빙글 돌아가는 무리들 틈으로 제법 젠틀한 놈씨 하나가 눈에 들어 온다.

단정한 머리가 눈에 띄고 생긴 모습도 참하니 얌전해 보인다.

" 언제 왔니? "

" 응,방금.. "

이 곳 콜라텍에서 이른바 부킹을 시켜주는 미란이다.

가끔 스트레스를 풀러 이 곳을 찾곤 했을때, 어쩌다 보니 안쪽 식당에서 마주 쳐 같이 술 마시게 됐고 동갑이라는

이유로 친구가 됐다.

" 한놈 붙여줄까? "

" 저기 흰색 옷 입은 사람.. 쟤 괜찮어 보이네. "

" 호호.. 기집애 보는 눈은 있어 가지고.. "

 

" 뭘로 할까요, 맥주? "

" 소주가 좋던데.. "

" 후후.. 식성이 같네, 두부김치 어때요. "

" 맘대로,호호.. "

콜라텍에 와 봐야 그렇고 그런 여자들 뿐이다.

무료하던 차에 이 곳을 찾은게지만 운이 좋은겐지 드물게 눈에 띄는 미모에 몸매 역시 늘씬한 그녀를 만나게 된 국진이다.

몇곡인가 같이 스텝을 밟으며 유심히 눈 여겨 봤지만 군살도 없어 보인다.

힐을 신었지만 내 눈과 나란히 마주치는 여자는 별반 없었기에 은근 회가 동한다.

" 자, 일단 부디치시고.. "

" 반가워요,호호.. "

안주가 나오기 전 날라져 온 소주를 두개의 잔에 따르고 건배를 했다.

거리낌없이 한번에 들이키는 모습이 이뻐 보인다.

보통이야 땀을 흘린 뒤라 시원스런 맥주를 찾는게 일반적이기도 하고, 또한 재차 흥을 돋구기 위해 돗수 높은 소주는

삼가기 마련인데 거침없이 들이키는걸 보면 즉석적인 겨루기도 가능하지 싶다.

" 어찌 되누, 나이.. "

" 옴마나~ 처음부터 호구조사를 한다니,호호.. 45. "

" 쥐띠구나, 부지런하겠네. "

오전에 손님으로 왔던 고연숙보다 두살이 어리다.   

둘 다 연상인 폭이지만 하대를 하는게 버릇이 되어 응당 그리 된다.

" 이긍, 사주까지 보나 봐. "

" 후후.. 정답. "

" 어머, 진짜? "

여지껏 경험으로 미루어 내 직업을 싫어하는 여자는 본 적이 없다.

물론 대놓고 자랑할 직업까지는 아니지만, 그로 인해 미운 털이 박힌 적은 없었지 싶다.

" 그걸로 밥먹고 사니까.. "

" 재밌다,호호..  나 좀 봐줘 봐, 어찌 될른지. "

두 팔꿈치를 탁자 위에 올려 몸을 앞으로 기울이고는 얼굴마저 가까이 들이 대는데, 가지런한 치아까지 드러내어 웃어

제끼는 모습이 싱싱해 보인다.

큰 키에 어울리게 눈매도 시원스럽고, 곧은 콧날이며 가지런하듯 남들보다 긴 입술조차 매력적이다.

" 에이, 그게 어디 공짜로야 되나. "

" 치사하게 남자가..  얼마나 줘야 하는데.. "

" 술 한잔 따라 봐. "

" 그거야 쉽지,호호..   복채 대신이야. "

두손으로 공손히 따라 준 소주를 들이키며 어째야 그녀를 정복할지 머리를 굴려 본다.

날씨가 더워 소매가 없는 란제리와 비슷한 윗 옷을 입었고, 아마도 속에는 브라만 착용했을 것이다. 

탐스런 생각이 들 정도로 어깨 라인이 이쁘기에, 몸에 걸친 그 껍질을 벗기우고 눈요기하는 상상으로 벌써부터 오금이

저린다.

" 일단 오늘 운은 좋네, 괜찮은 놈 하나 물었어,후후.. "

" 헐~ 순 바람둥이네,호호.. "

자주 웃고 꼬박꼬박 대꾸하는걸로 봐서는 첫만남에 호감을 지닌듯 하다.

이제부터 이 만남이 편안하게끔 유도만 한다면 제대로 된 몸보시를 받을수 있을게다.

여자와 몸을 섞은지도 꽤나 오래됐기에 그 동안 몸이 찌뿌둥했었다.

" 그리고 느낌인데.. 우리 인연이지 싶어, 전생의 인연.. "

" 인연?  에이~ 아무리..  진짜 어떤데.. "

그간의 경험으로 미루어 보면 오래갈 인연은 첫느낌이 남다르다.

뭐라고 콕 찝어 얘기하지 어렵지만, 오늘처럼 보이지 않는 끈에 연걸된 것처럼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 팔짜가 드센 편이긴 하지만 너무 안달하지 마, 얼굴에 좋은 일 생긴다고 씌여 있어. "

" 정말이지?   나 믿는다. "

" 믿어, 믿는자에게 복이 오나니.. "

어느새 소주 두병이 비워졌고 나를 응시하는 느낌 역시 오래 된 지기마냥 친근하게 변해 있다.

더불어 취기가 느껴지는지 눈빛이 그윽하고 뭔가를 기대하는듯 뺨에 옅은 홍조마저 어린다.

" 나 복채 준거다, 틀리기만 해 봐라,호호.. "

" 안돼, 한가지 더 줘야지. "

" ..뭘.. "

" 나 따라오면 되지롱,흐흐.. "

이제는 밖으로 나가 모텔에 들더라도 내숭떨며 뒤로 빼려는 보기 싫은 모양새는 취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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