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무게

삶의 무게 37

바라쿠다 2016. 11. 24. 11:29

" 새까맣게 탔네.호호.. "

" 시간이 났나 보다.. "

이제 며칠후면 결혼식이다.    아직은 정호와 정식 부부가 되기 전인지라 마음이 뒤숭숭했던 터에, 기식이가 자대에

배치됐다는 편지를 받고는 면회오기로 작정한 미영이다.

" 보고 싶다며? "

" 이렇게 올줄 몰랐지, 고마워.. "

" 에구~ 그래도 나 밖에 없지?   앞으로 누나한테 잘 해.."

정호에게는 결혼식 준비로 바쁘다며 거짓말까지 하고서는 PC방을 하루 빠지기로 했다.

기식이가 알려준대로 영등포에서 시외버스를 타고는 2시간 가까이 걸려 이곳 면회소까지 올수 있었다.

면회소에서 기식이의 이름을 알려주고도 30여분이나 기다리고서야 새까맣게 탄 그의 얼굴을 마주했다.

얼룩무늬 군복을 입어서인지, 어릴적 치기어리게 쫒아다니던 그 모습은 간데 없고 제법 늠름하게 변해 청년 티가 난다.

" PC방은 잘되지? "

" 응, 그런편이야.. "

" 언제가 결혼식이야? "

" 담 주 토요일.. "

" 난 못가, 아직 졸따구라.. "

" 에긍~ 괜찮어, 군생활이나 잘해.. "

귀찮게 굴지 않으면서도 그나마 시키는대로 잘 따라 준 기식이였기에, 그에 대한 보답으로 이곳 전방까지 면회를 온

폭이다.

" 자고 가도 돼? "

" 오늘? "

" 응, 외박증 끊어 준대.. "

" ....글쎄.. "

" 웬만하면 그래라..  숫놈들하고만 있어서 그런지 여자 냄새가 그리워.. "

" ....알았어, 대신 아침에 일찍 가야 해.. "

늠름히 변한 모습을 보니 녀석의 조름을 뿌리치기가 어려운 미영이다.

정호에게서 핸폰만 오지 않는다면 별 탈은 없을것이다.     오랜만에 기식이를 만나니 스스로 쓸만한 녀석의 담금질이

기대가 되는 중이다.

" 아직도 누나 꽁무니만 쫒아다니나 보네.후후.. "

" 또 까분다.. "

" 그렇찮어..  그전에도 자기 색시가 어디로 샐까봐 감시했잖어.. "

아닌게 아니라 자유를 만끽하던 처녀시절이 끝났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 자주 우울한 맘이 생기기에 이 곳으로 발길이

왔는지도 모른다.

꺼릴것 없이 활개를 치고 살던 예전과 달리, 무난하게 처신을 잘 하면서 살아질런지도 걱정스럽다.

 

외박증을 끊어온다며 기식이가 면회실을 나섰고, 그를 기다리며 부대 정문 앞 구석진 곳에서 하릴없이 서 있어야 했다.

부대 외곽에 일렬로 자리한 프라타너스 가로수는 잎이 모두 떨어진채 을씨년스럽다.

보초를 서는 군인 둘이 가끔 힐끗거리는 시선을 주는건 눈치챘지만, 그런 소소한 즐거움조차 먼나라의 얘기마냥 흥미조차

일어나지 않기에 애써 외면한 채 오가는 차량들만 쳐다 본다.

어찌어찌 정호와 결혼하기로 작정한 폭이지만, 이 결정이 최선이었는가 하는 자문에는 솔직이 의문이 든다.

나름 내키는대로 재미만 쫒으며 친구들에게도 뒤지기 싫은 의도적인 우월감을 갖고 살아왔기에 어찌보면 미련같은건

없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웬지 모를 허전함이 자꾸 괴롭힌다.

타고 난 천성이 남에게 지는건 죽기보다 싫었기에 결혼후의 미래 역시 장미빛 그림만 그리며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일찍 결혼한 친구들을 보면서 스스로 저울질하기도 하고, 나 자신과 비교해 어찌 살아가야 할지 돌다리 두드리는

심경으로 물샐틈 없는지 이리저리 재 보기까지 했다.

최선을 다한 결심이지만 내심 한구석에는 여전히 불안감이 있고 이미 청첩장까지 돌린 마당에 돌이킬수는 없다.

" 오래 기다렸지 "

" 괜찮어 "

찬바람이 옷깃을 스쳐 쌀쌀한 기운마저 감돌때 함박웃음을 띤 기식이가 다가선다.

" 가자,누나 "

" 어디 갈건데 "

" 우선 한잔하자구.. "

예전과 다름없이 어떤 기대감으로 붕 뜬 표정까지 읽히기에 면회오기 잘했다는 기분이다.

 

" 무슨일인데 여기까지 불러내? "

" 일단 앉어, 냉커피 마실거지? "

영철이에게 지게차 하나를 더 사주기 위해 정호아빠를 커피숍에 들리라고 했다.

" 알아서 해.. "

무슨 일이나며 자꾸 오지 않으려고 버티는 전남편에게 결혼을 앞둔 애들 문제라며 거짓말까지 해야 했다.

그가 오기전에 어찌해야 돈을 더 뜯어낼수 있을지 여러모로 머리를 굴려 본 미숙이다.

커피에 얼음조각을 넣어 휘휘 저으면서 저 짠돌이가 꼼짝못하게끔 둘러댈 핑계를 대기 위해 수없이 잔머리를 굴리게

된다.

" 마셔 "

" 왜 불렀는지 용건이나 말해 "

" 미영이가 김치담궈 줬다며.. "

" .............. "

냉커피를 정호아빠 앞에 내려놓고는 마주 앉았다.

" 젊은여자 얘기는 뭐야 "

" ..젊은여자라니.. "

항시 그랬지만 건성건성 날 대하던 웬수같은 남편의 얼굴이 의외라는 듯 고개를 드는데 눈동자마저 편안치 못한듯

좌우로 흔들린다.

이십여년을 살아왔기에 그의 작은 움직임 하나하나 모든걸 궤뚫고 있는 미숙이다.

아들 정호에게 들은 얘기지만 그 날 수산시장에서 마주쳤던 아가씨와 어떤 썸씽이 있다는 확신마저 든다.

" 정호가 그러더라, 아빠한테 애인있는것 같다구 "

" 그게 뭐 어때서..  혼자 사는 놈이 당연한거 아냐?   당신도 있는거 같더만.. "

하기사 뭐 어떠랴 싶다.   그 날 봤던 젊디젊은 아가씨가 애인이던 아니던 별로 신경쓰기는 싫다.

어차피 맘이 맞지 않아 헤어져 사는 마당에 서로의 사생활에 태클걸고 싶지도 않다.

더군다나 나 역시 연하의 애인과 미래를 꿈꾸고 있지 아니한가.

" 그건 그렇구, 미영이한테 돈 좀 줬으면 하는데.. "

" 돈이라니..  걔들한테 아파트까지 사 줬구만, 뭔 돈이 더 필요하다는거야 "

" 그럼 어째, 사돈집 사는게 빠듯해서 혼수해 오기 힘든 눈치던데..  어차피 우리 며느리 아냐, 뭘 해 오든 정호 살림살이고

이왕이면 미영이 기 좀 살려주자는거지 "

" ................. "

어찌됐든 정호아빠의 돈만 울궈내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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