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무게

삶의 무게 34

바라쿠다 2013. 5. 2. 17:39

망치에라도 얻어 맞은듯 멍해 진 미영이다.

통유리창을 통해 새로이 나타난 젊은 아가씨를 바라보는 시아버지의 눈빛이 그렇게 그윽해 보일수가 없다.

한동안 소근거리던 그들이 밖으로 나오려는 듯 현관으로 다가섰고, 미영이는 기둥 뒤로 몸을 숨겨야 했다.

" 윤수야~ "

" 응, 누나.. "

" 나 회먹고 싶어.. "

" 그럼 먹어야지, 우리 마님이 먹고 싶다는데.후후.. "

기둥 앞을 스쳐가면서 시아버지와 젊은 아가씨가 나누는 대화를 듣고는 얼이 빠지는 듯 했다.

일견 보기에도 내 또래 정도밖에 보이지 않는 그녀가 스스럼 없이 시아버지의 이름을 불러 댔으며, 당연한 듯 시아버지는

그런 그녀에게 동조를 한다.

그녀의 어깨를 감싼 채 승용차로 가더니, 조수석의 문까지 열어 주고는 자신도 운전석에 오른 뒤 이내 차를 출발시킨다.

시아버지의 차가 건물을 돌아 사라지고 나서도 미영이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움직일수가 없었다. 

예상치 못한 그네들의 대화가 계속 귓전에서 맴 돌았고, 이 상황을 어찌 받아 들여야 할지 난감하기만 하다.

한참후에 정신을 차린 미영이는 그네들이 서 있던 로비로 들어가 매장을 살펴보기로 했다.

번듯한 10층짜리 건물이고, 1층 로비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은 커피 전문점은 비록 손님들이 앉을수 있는 테이블은 없는

아웃백이지만, 요즘 나날이 늘어가는 체인점이라 그런지 보기에는 그럴싸 하다.

모든 인테리어가 끝나고 개업 시점만 남겨 놓은듯, 각종 시설이며 집기들이 비닐에 쌓여 포장도 벗겨지지 않은 채

주인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 저기 아저씨..  언제나 커피를 마실수 있나요? " 

" 아마 월요일에 개업한다죠, 아가씨처럼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아요.. "

" 아, 네..  수고하세요.. "

여러가지 궁금증이 꼬리를 물었지만 안내 데스크에 앉아 있는 경비에게 이것저것 물을수도 없는 노릇이다.

 

" 우럭하고 광어로 할까? "

" 내가 회맛을 아나, 그냥 알아서 사.. "

영철이의 팔짱까지 끼고는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활어를 파는 앞 길을 기웃거리는 미숙이다.

여러가지 싱싱한 회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입 맛을 다시게 하고, 상인들이 우리네를 끌어 들이느라 아우성들이다.

" 에그~ 여기 회는 다른 횟집들하고 틀려..  고기처럼 두껍게 썰어줘서 씹을만 하다니까.. " 

" 그래,알았다..  어서 사기나 해.. "

" 들었죠?   두껍게 썰어주세요.. "

회 맛을 모르는 영철이를 위해 두텁게 짤라 달라고 주문을 한 뒤에, 밑반찬거리로 젓갈이나마 살 요량으로 뒷 골목으로

영철이를 이끌었다.

" 또 어디 가는데.. "

" 반찬 좀 사게, 자기가 창란젓은 잘 먹잖어.. "

이왕에 수산시장까지 온 터라 몇가지 밑반찬을 사기 위함도 있지만, 남은 인생을 같이 하고픈 영철이와의 동행이다 보니

은근히 시장보는 재미가 솟구친다.

해서 뒷골목 구석구석을 기웃거리며, 느긋하게 상인들의 호객마저 즐기는 중이다.

" 정호 엄마~ 여기 웬일이야? "

" 아니, 당신.. "

바로 등 뒤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아보니, 전 남편인 윤수가 이쪽을 쳐다보고 있다.

영철이의 팔에 걸었던 손을 자신도 모르게 거둬 들이게 됐는데, 정호 아빠 역시도 어떤 젊은 아가씨와 동행이다.

" 누구.. "

" 그냥 아는..  근데 저 아가씨는.. "

" ...응,그냥.. "

" 참,인사해요..  여기는 애 아빠.. 이 사람은.. "

어차피 이혼까지 한 마당에 사귀고 있는 남자 친구를 숨길 이유도 없다는 생각이고, 제 마누라를 나 몰라라 하고 구박만

해 대던 남편에게 허우대가 번듯한 영철이를 자랑하고 싶은 불뚝심이 고개를 쳐 든다.

" 아~ 첨 뵙겠습니다..  신영철이라고 합니다.. "

" 그러시네요, 남자 친구신가 보네..  반갑습니다.. "

 

" 아무렇지도 않어? "

" 뭐가.. "

" 자기 와이프가 남자랑 있는데.. "

" 언제적 와이프라고, 정내미 떨어진지 오래됐어..  대신 우리 이쁜 누나가 있잖어.후후.. "

윤수의 와이프를 부닥뜨리게 된 수진이는 어찌 처신을 해야 할지 경황이 없었더랬다.   나이가 많은 윤수랑 다니면서

처음으로 아는 사람을 만나게 된지라 지레 죄를 지은것처럼 수습하기가 곤란스러웠다.

더군다나 그녀가 곱지 않은 시선으로 위아래를 훓어볼때는 더욱 몸둘바가 어려웠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와이프 역시 애인으로 보이는 남자와 동행이었고, 자신이 윤수의 애인이라 한들 이미 헤어진 부부라는게 떠

오르자 꺼리낄게 없다는 생각으로 오기마저 생겨, 아랫배에 힘을 주고 고개를 빳빳이 쳐드는 대담성도 보이긴 했다. 

" 남자가 더 어려 보이더라.. "

" 나도 그렇게 봤어, 어디서 젊은 놈 하나 물고서는 좋아하는 꼴이라니.. "

그들과 헤어져 윤수의 승용차를 타고는 집으로 돌아가면서 문득 여러가지 경우에 대해 궁금증이 이는 중이다.

" 그렇게 따지면 넌 더 횡재한거잖어.호호.. "

" 맞어, 나보다 더 복 터진 놈도 없을거야.후후.. "

" 근데 왜 거짓말 했어? "

" 자기를 친구 딸이라고 한거? "

" 응, 그냥 애인이라고 하지.. 어쩌나 보게.호호.. "

" 너 때문에 그랬어..  널 이상하게 볼까 봐.. "

어느덧 아파트 단지로 들어서서는 주차장에 차를 세우기 위해 윤수가 고개를 차 뒤로 돌린다.

" 상관없어, 담부터는 애인이라고 해.. "

" 진짜? "

" 응.. "

주차를 하다 만 윤수가 조금은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봤지만 모른척 했다.

" 괜찮겠어? "

" 그렇다니까.. "

윤수가 걱정하는 바를 모르지는 않지만, 그와의 관계를 숨겨야 하는 내 기분도 유쾌할리는 없다.

차라리 그네들에게 손가락질을 받는 한이 있더라도, 숨어 지내야 하는 기분보다는 덜 꿀꿀하지 싶다.

" 생각해 보자, 어느게 좋은지.. "

" 그냥 내 말대로 해.. "

" ....알았어.. "

트렁크에서 꺼낸 회와 매운탕거리를 윤수에게서 뺏어 들고는 아파트를 향해서 앞서 걸었다.

'삶의 무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삶의 무게 36  (0) 2013.06.18
삶의 무게 35  (0) 2013.05.15
삶의 무게 33  (0) 2013.04.29
삶의 무게 32  (0) 2013.04.12
삶의 무게 31  (0) 2013.0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