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무게

삶의 무게 33

바라쿠다 2013. 4. 29. 11:30

일단 결심을 하고 나니 모든게 일사천리로 빠르게 진행되었다.

정호의 부모와 우리 부모가 만나 상견례를 했으며 결혼식 날짜까지 잡았다.

이제 보름후면 정호와는 정식 부부가 되어 새 인생을 시작할 것이다.

" 조신하게 보여, 시아버지를 만나러 가면서 짧은 치마가 웬일이래.. "

" 엄마는 걱정도 많어, 신랑이 이쁘다면 된거지.. "

" 그래도 그러면 못써.. "

" 글쎄, 내가 알아서 한다니까.. "

잔소리를 해 대는 엄마를 뒤로 하고 집을 나선 미영이다.

엊저녁에는 시어머니가 될 정호 엄마에게 한복 저고리를 맞추게끔 편리를 봐 드렸고, 시아버지가 될 정호 아빠에게는

양복 티켓을 직접 전해주기 위해 아파트로 찾아가는 길이다.

신접 살림을 차릴 아파트까지 마련을 해 주었기에 잘 보이기 위함도 있지만, 앞으로도 시아버지의 동선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아직은 시부모가 젊은 탓에 서둘러 재산 상속을 서두르지야 않겠지만, 그 재산 중의 일부가 다른쪽으로 새는건 참을수

없는 일이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시아버지 혼자 살고 있는 아파트의 초인종을 눌렀다.

" 됐다니까 뭘 일부러 가져 와..   정호 녀석 얼굴도 한번 볼겸 피씨방에 들리려고 했는데.. "

" 그래도요, 엄마가 미리 가져다 드리는게 도리라면서.. "

" 거참, 번거롭게..  왔으니 음료수라도 한잔하거라.. "

시아버지를 따라 현관에 들어 간 미영이는 현관부터 살폈다.    오늘도 예외없이 작은 운동화 하나가 눈에 띈다.

여자 신발이 분명해 보이는 것이, 분홍색 무늬가 새겨진 유명 메이커로 요즘에 뜨는 그런 운동화였다.

주방 냉장고에서 오렌지 쥬스를 꺼내 컵에 따르는 시아버지의 눈을 피해 빠르게 집안을 살피는데, 베란다 바깥의 빨래

건조대 위에 여자 팬티로 보이는 것이 설핏 시야에 들어온다.

예전에 아파트로 찾아 왔을때도 누군가가 숨어있는 느낌을 받았던 미영이로서는, 비로서 시아버지에게 여자가 있음을

심중으로 굳히는 순간이다.

" 나도 볼일이 있어 나가봐야 하니 얼른 마시고 같이 나가자꾸나.. "

" 네, 아버님.. "

음료수 잔을 내려 놓은 시아버지가 외출복으로 갈아 입는다며 방으로 들어간 사이, 베란다로 가까이 다가선 미영이는 

눈 앞에서 빨래 건조대를 자세히 살필수 있었다.

 

" 아저씨~ 빨리 저 앞차 좀 따라가세요.. "

" 흰색 자가용이요? "

" 네, 놓치면 안돼요.. "

아파트 입구에서 인사를 하고 돌아선 미영이는 시아버지가 주차장으로 사라지는 사이, 대로변으로 나와 마침 손님을

기다리던 택시를 잡아 타고는 미행을 부탁해 놨었다.

여자 친구를 만나러 가는게 틀림없다면 미리 확인을 하는게 옳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후에 어찌 행동을 할지를 가늠

하는게 맞지 싶다.

다행히 차들이 많지 않은 시각이라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고 시아버지의 차를 따라갈수 있었다.

보라매 역에서 우회전을 하더니 여의도로 진입하는 대방 지하차도를 빠져 나가서는 좌회전 깜박이가 켜 진다.

" 목적지가 여의도인 모양이네, 쫒는 사람이 신랑인가요? "

" 우리 아빠에요, 요즘 외출이 많아서.. "

" 에이, 아빠도 자기 인생이 있을낀데..  자식이 이해를 해야지.. "

" 수고비는 더 드릴테니까, 놓치지나 마세요.. "

시아버지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개인택시 기사가 흥미를 보이는 태도도 마땅찮았지만, 곧 이어 드러날 어떤 여자의

정체가 밝혀지겠기에 새삼 투지까지 솟는 미영이다. 

대방교를 건너 좌회전을 하더니 곧 바로 우회전을 하고는, 사무실이 많은 빌딩들 사이로 들어 간 시아버지의 차는 이내

비상 깜빡이를 켜면서 속도를 줄이는가 싶더니 어느 건물 앞에 멈춰 선다.

" 여기서 세워주세요.. "

어느정도 거리를 두고 기다리다가 시아버지가 차에서 내리는걸 보고는 그 뒤를 따랐다.

자주 오는 곳인 듯 아무런 망설임 없이 한 건물의 현관으로 들어서는 시아버지다.

약간의 틈새를 두고는 시아버지가 사라진 건물 안으로 들어서다 흠짓 놀래서는 다시 현관을 나와야 했다.

경비가 근무중인 안내 데스크 앞에 누군가와 시아버지가 얘기를 나누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등을 돌리고 있는 시아버지에게 들키지 않았기에 통유리 사이로 그들을 한참이나 관찰할수 있었다.

얘기를 나누던 두사람은 엘리베이터 옆에 새로 인테리어를 한듯 한 테이크 아웃 커피점으로 자리를 옮겼고, 그 앞에서

매장을 둘러보며 무슨 의논이라도 하는듯 보인다. 

건물 한쪽 귀퉁이에서 조심스레 그들을 지켜보는 사이, 현관을 통해 그네들에게 다가가는 젊은 여자가 있었다. 

 

" 응?  웬일이야, 여기까지.. "

" 그냥..  갑자기 자기가 보고 싶더라.호호.. "

" 가게는 어쩌구.. "

" 애들이 둘씩이나 있는데, 뭐..   끝나려면 멀었어? "

" 일은 다 했고, 오늘 일한거 싸인만 받으면 돼.. "

" 그래 천천히 해, 여기서 기다릴께.. "

영철이에게 지게차 하나를 더 사 주고는 그가 일하는 모습이 궁금해 현장으로 찾아 온 미숙이다.

이제 보름 뒤면 아들 녀석도 따로 살림을 차릴것이고, 한껏 자유로운 삶을 만끽할수 있을것이다.

나이는 몇살 아래인 영철이지만, 그를 믿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자 달콤한 꿈을 꿔 본다.    

적지 않은 돈을 투자해 그가 일할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줬으니, 성실하게 자신의 본분을 지켜가기를 바랄뿐이다.

" 많이 기다렸지, 그만 가자구.. "

지게차를 철근 자재가 쌓여 진 곳에 세워 둔 영철이가 다가왔다.

" 나, 회 먹고 싶은데.. "

" 회?  에이, 난 고기가 땡기는구만.. "

" 자기때문에 회 먹어 본지가 언젠지 기억도 엄따~ "

" 츠암~ 알았어, 노량진으로 가자.. "

유난스레 고기를 밝히는 영철이를 챙겨주느라 정작 회를 좋아하는 미숙이는 항시 뒷전일수 밖에 없었다.

여지껏 그런 그의 식단에 맞춰 살았지만, 무뚝뚝한 면이 많은 영철이가 살가운 사람으로 변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 보면서 애교까지 떠는 미숙이다.

" 고마워,자기야.호호.. "

" 에구,재롱은.후후.. "

비록 미숙이 쪽에서 졸라 회를 먹으러 가는 폭이 됐지만, 흐뭇한 마음이 드는건 어쩔수가 없는지 영철이의 팔짱까지

끼고는 마냥 희희낙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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