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서, 같이 술이나 한잔하지 그랬어.. "
" 천천히 두고 볼래, 남자들은 다 도둑놈이라고 니가 그랬잖어.. "
멘토나 다름없는 윤수에게는 모든걸 털어 놓는게 차라리 마음이 가볍다.
학원 앞에서 홍영민과 커피를 마시며 데이트를 한 셈이지만, 저녁 시간이 지나 출출한지라 윤수네 집으로 온 수진이다.
요즘 들어서는 학원이 끝나고 당연히 이 곳으로 들리는 코스가 돼 버렸고, 술이 많이 취해 집으로 가기 싫을때는
이 곳에서 잠을 자고 직접 학원으로 갈때도 있었다.
" 다 됐어, 이리와.. "
" 응, 잠깐만.. "
거실에 있는 거울앞에 서서 젖은 머리를 말리고 있는 사이 주방에서 식사 준비가 끝났는지 윤수가 부른다.
뭘 끓였는지 아까부터 고소한 냄새가 온통 집안을 휘젓고 있어 궁금하던 참이다.
" 팬티가 또 늘었더라.. "
" 지나치다가 이뻐 보이길래 몇장 더 샀어.. "
" 하여간에, 누가 변태 아니랄까 봐.. "
안방 옷장 한켠에 나를 위한 공간을 따로 마련해서는, 그 곳에 둔 내 옷들까지 윤수가 정리를 해 놓곤 한다.
속옷이나 겉에 입는 옷들도 그냥 벗어놓기만 하면 모든걸 윤수가 알아서 세탁까지 해 놓는다.
" 어머~ 샤브샤브네, 이건 또 언제 배웠대.. "
" 우리 귀요미 먹일라고 별 짓을 다한다니까.. 인터넷을 안 보나, 샤브집 주인에게 아첨까지 떨어야 하구.. "
" 귀요미도 알어? 참, 여러가지 많이도 배운다.호호.. "
" 그럼, 어쩌냐.. 눈높이가 비슷하려면 배워야지.. "
처음에 윤수를 만났을땐 도저히 어울리는 구석이 하나도 없다고 느꼈다. 나이 차이가 무려 30년이 넘은 탓도 있지만
응큼하게 내 몸만 탐하려는 꼰대의 접근이 너무도 징그러웠기에 그저 돈이나 뜯어낼 목적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던 것이 차츰 만나는 횟수가 늘어 나면서 진심으로 날 아끼는 그의 마음을 읽을수 있었고, 더군다나 내 곁에 있는
단 하나의 핏줄인 할머니가 다치셨을때 정성으로 보살펴 준 그가 고마움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물론 남들 앞에서 떳떳할수 없는 사이이긴 하지만, 그가 있어 매일매일 힘겹게 버티던 내 생활이 이만큼이나마 여유를
찾게 된건 부인할수 없는 사실이다.
또한 온전히 나를 소유하려는 태도가 아닌, 진심으로 내 앞날까지 걱정하는 그의 마음도 믿게끔 됐다.
아무리 어린 내가 이쁘기로서니 어느 남자가 그런 큰 돈을 아낌없이 써가며, 집과 자립할수 있는 가게까지 얻어주면서
진심으로 챙기는걸 볼때는, 비록 육체적인 관계로 맺어진 사이이긴 하더라도 어떤때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푸근함마저
느껴지기도 한다.
" 술부터 한잔 줘.. "
" 응, 오늘은 더 이뻐 보인다.. "
학원을 다녀와서는 샤워부터 한 수진이의 민낯에 생기가 돈다.
" 당연하지, 우리 윤수 누난데.호호.. "
" 에구~ 그래라, 이젠 완전히 바뀌었네.후후.. "
" 왜 싫어? 싫으면 무르든가.. "
" 아냐, 싫긴.. 이게 더 좋아.. "
이 늦은 나이에 이런 행복을 누릴수 있다는게 꿈만 같은 윤수다.
처음 나이어린 수진이를 지하철 안에서 우연히 마주친 뒤 벌써 6개월이 지났다.
꾸벅꾸벅 졸고 있는 수진이를 보며 실로 몇년만인지 아랫도리가 은근히 뻗쳐 올라, 남자로서 자부심마저 들었다.
어찌어찌 수진이를 취할수 있었고, 그 후로도 계속 곁에 머무르고 있는 그녀를 보며 삶의 기쁨을 만끽하는 요즘이다.
" 특이하다니까.. 남자들은 자기를 떠 받들어주는 여자가 좋다던데.. "
" 나름이지, 난 우리 수진이를 떠 받드는 재미가 더 좋아요.후후.. "
스스로도 이렇게 길게 가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그저 젊은 아가씨를 품는 기분이 좋았으며, 비아그라의 힘까지
빌려서는 그녀를 취하는 것에만 몰두했고 그 재미에 푹 빠져 살았더랬다.
그러던 것이 수진이의 할머니를 병원에 입원시키고, 단 둘이 힘겹게 사는 그녀들의 집을 찾고부터는 차츰 수진이를 향한
마음에 나도 모르게 변화가 일어났다.
어린 나이에 많은 어려움을 겪으며 사는 수진이를 보며, 그녀의 아픔이 내 아픔인양 모른척 할수가 없게 됐다.
오죽 의지할 곳이 없으면 나에게 기대겠는가 싶어, 남의 일같이 느껴지지가 않는다.
그 무렵부터 수진이를 위해 해 줄수 있는 일부터 챙기게 됐고, 그녀의 입장이 되어 모든것을 살피기로 했다.
" 내일 술 마시자고 하면 그래 볼까? "
" 아까 만났던 친구? "
" 응.. "
" 흠~ 한번만 더 빼 봐.. 그래야 그 놈이 더 애가 타지.후후.. "
" 내 생각도 그래, 쉽게 보이기는 싫어.. "
어차피 어린 수진이와 같이 나머지 생을 부부로 살아갈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만큼이나마 내 곁에 머물며 남자로서의
자부심을 느끼게 해 준 것만도 고마운 일이지 싶다.
마지막으로 바램이 있다면 수진이가 혼자의 힘으로 평범한 삶을 살아갈수 있게끔 지켜보는 것 뿐이다.
" 시간을 두고 만나 봐, 복이 있는 놈이라면 수진이가 얼마나 소중한 여잔지 알아 볼테니까.. "
" 그렇게까지나 바라진 않을래.. 그냥 착한 남자면 좋겠어, 너처럼.. "
" 고맙다, 이제서야 내 맘을 알아 주는구나.. "
" 피~ 그래봤자 도둑놈이지,뭐.. 순 날강도.. "
말하는거며 행동하는 것이 내 맘에 쏙 드는건 단순히 나이 차이만은 아닐터이다.
그런 수진이를 언젠간 떠나 보낸다는게 쉽지는 않겠지만, 나를 떠나 잘 살아주기만 한다면 그것으로 위안을 삼는 것도
보람된 일이지 싶다.
" 어허~ 착한 동생한테 날강도라니.. 좀 심하다~ "
" 응큼하긴.. 또 바라는거 있지? 아 ~ 취한다.. "
주방 식탁에 앉아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마신 소주가 어느새 3병째다.
" 그만 자, 내일 일찍 가야지.. "
" 응, 업어 줘.. "
얼굴이며 목덜미에 보기좋게 붉은 꽃이 핀 수진이 앞에 등을 대고 앉았다.
" 거들 안 입어? "
" 에이~ 꼭 술집여자가 된 기분이더라.. 꼭 입어야 돼? "
" 그랬어? 싫으면 입지 마.. "
" 그냥 벗고 잘래, 담배나 갖다 주라.. "
" 그래, 그럼.. "
윤수가 야해 보인다고 사다 준 속 비치는 거들이 영 맘에 들지를 않는다. 물론 윤수가 좋아한다면 싫어도 입어야
하겠지만 차라리 맨 몸으로 자는게 훨 편한 수진이다.
" 여기.. "
" 윤수야~ "
옷을 벗어 아무렇게나 침대위에 늘어놨을때, 윤수가 불이 붙은 담배와 재떨이를 가져와 침대옆 교탁에 내려놓는다.
시키는대로 따르면서도 한번도 싫다는 내색없는 그가 미더워 보이는 탓에 자꾸만 만만해 보인다.
" 응? "
" 너, 오늘 되게 귀여워 보인다.. "
" 그래? 다행이네.후후.. "
" 빨리 옷 벗고 올라와, 오늘 아주 죽여 버릴테니까.호호.. "
" 에구~ 겁난다.후후.. "
뭐가 그리 좋은지 입가에 가득 웃음을 머금은 채 서둘러 옷을 벗는 윤수를 바라보며, 침대 머리맡에 등을 기대고는
가랑이를 벌리고 앉아 그를 꼬실 준비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