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무게

삶의 무게 39

바라쿠다 2016. 12. 14. 06:28

" 이번에 내리실 역은 여의도, 여의도 역입니다. "

새벽에 집을 나서 9호선 여의도 전철역에 내린 시각이 오전 6시다.

오픈 시간이야 7시지만 미리 준비해야 할 것도 많고, 사업장의 오너인 수진이의 출근시간이 대략 6시 30분이기에

그 보다 앞서 가게문을 열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빨라진다.

부지런한 회사원들 역시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바쁜 걸음걸이로 전철역 계단을 오르는 모습들이다.

바리스타 학원에서 처음 수진이를 본 영민이로서는 지금의 기회를 붙잡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 어떡할거야 "

" 글쎄.. "

" 며칠내로 알려 줘 "

" 오키바리~  한잔 더 하자구. "

사실 바리스타 청강이야 무료하던 차에 등록했지만 직업으로 할 계획은 아니었다.

뚜렷한 미래가 없던 차에 마침 시간적 여유도 있었고, 또 어찌 보면 요즘 뜨는 아이템인지라 그저 스펙을 쌓기 위한

방편이었다.

그러다가 설핏 눈에 들어 온 수진이를 만났고, 무료했던 학원생활의 엔돌핀처럼 생각하게 됐다.

첫 느낌은 뭐랄까 뛰어난 미모는 아니지만서도 묘하게 남자를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었다.

여자 경험이야 많지 않은 영민이지만 사귀게 되면 꽤 재미있겠다 싶어 나름 여러번에 걸쳐 공을 들였고, 두어번 데이트를

한 뒤 수진이와 몸을 섞을수 있었다.

여느 아가씨와는 달리 남친을 구속한다거나 이쁜 척 대우받으려는 그런 보통의 여자들처럼, 엉덩이에 뿔난 못난 짓은

하지 않으리란 생각에 더 맘이 끌렸는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불타는 밤을 함께 보내게 된 후로는 아삼삼 자주 그녀의 이쁜 몸이 떠 올라 스스로 억제하기가 어려웠다.

여지껏 사귀었던 여친들과는 비교마저 되지 않을만큼, 밤자리에서의 끈적거림은 생각만 해도 즐거우리만치 만족스런

기억으로 남는다.

어느 정도의 페이를 책정해 줄지는 알수 없지만, 현재보다 더 나은 미래 역시 보이지 않기에 수진이와 같이 가는 것도

손해는 없으리란 계산이었다.

 

" 뭐 먹을까 "

" 아무거나 시켜, 먹을수 있을지 몰라도.. "

점심시간이 지나고 조금은 한가해 진 카페다.

부르기 좋아 카페이지 손님이 앉을수 있는 2인용 테이블이 두개뿐인, 요즘 유행하는 테이크아웃 커피 전문점이란게

더 맞는 표현일게다.

여의도에 있는 이 가게는 윤수가 장만해 준 것이기에, 그의 의견에 따라 이름있는 프랜차이즈 가맹점이 아닌 자신의

이름을 딴 '수진카페'로 간판을 걸었다.

체인점을 하기보다는 여지껏 학원에서 배운대로 직접 커피를 뽑아 장사를 하기에, 부수적으로 가맹점비를 지불하지

않아 좋았고 가격대비 저렴한 재료를 구입할수 있기에 이익을 창출하기가 유리하다는 판단이었다.

아무래도 혼자 카페를 꾸려가기에는 무리가 따를수 있다는 생각에, 그간 데이트를 하면서 눈여겨 보던 홍영민이를

끌여 들인것이다.

다행히 가게는 바쁘게 장사가 됐고, 밥 한끼 먹지도 쉽지 않을만큼 정신없이 2주일이 지난 시점이다.

윤수와는 간혹 폰으로 통화만 했을뿐, 직접적으로 대면할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그의 망나니 아들인 정호의 결혼식이 이번 토요일로 잡혀 있고, 주말에는 여의도의 모든 상가가 쉬는 날이기에 한번쯤

만나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수진이다.

" 어서오세요. "

" 에스프레소 3개하고 아메리카노 하나 주세요. "

" 종이상자에 담아 드릴께요. "

배달되어 온 짜장면의 비닐조차 벗기지 않았는데, 사무실 여직원이 주문을 하기에 영민이랑 커피를 담아 내 주기 위해

각자 맡기로 한 포트로 다가서야 했다.

첫날엔 다소 허둥대며 실수도 많았지만 차츰 손에 익어 점점 속도가 붙는다.

" 여기 커피 나왔습니다, 영수증 챙기시구요. "

업무시간이건만 몇잔씩 가져가는 손님들이 자주 있기에 눈코 뜰새조차 없는 요즈음이다.

" 다 불었겠다, 영민씨 어서 먹자구.. "

" 바뻐서 좋네,후후.. "

이미 짜장면은 퉁퉁 불어 잘 비벼지지도 않지만, 가게가 바빠서 그런지 내심 흐뭇하기만 하다.

떡이 되어버린 짜장면을 입속으로 쑤셔 넣기에 바쁜 영민이를 바라보자니 웃음이 절로 나온다.

" 미안해 영민씨, 다음주부터는 차라리 1시간씩 쉬자구.. "

" 손님들이 싫어하지 않을까. "

" 어쩔수 없지,뭐.   차라리 시간을 정해 놓는게 낫지 싶어.   손님 놓치는게 아깝긴 하지만 어쩌겠어. "

" 하긴, 잠시 쉬기라도 해야지.  아니면 번갈아가며 식사를 하던가. "

" 안돼, 혼자서는.. "

하기사 학원에서 배우긴 했지만, 전문가 입장에서 보면 초보자들이나 마찬가지일게다.

이 만큼 자리잡기가 쉽지 않다는건 수진이도 익히 가늠하기에, 운 좋게 주어 진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겠다고 다시 한번

작심까지 하게 된다.

 

" 술 다 떨어졌네. "

" 더 가져 와야지,후후.. "

20층짜리 건물을 짓는 현장 근처에 있는 맥주집에 들린 영철이다.

칸막이 된 테이블이 3개뿐이지만 제법 장사가 잘 된다.

지게차를 두대씩이나 지입케 해 준 현장소장과 가끔 들리는 집이다.

" 안주는.. "

" 물어보면 입 아파, 비싼걸로 줘. "

" 어머~ 오빠 짱이다,호호.. "

생글거리는 민마담의 붙임성에 오늘 묵은 피로가 사라지는 영철이다.

먼지가 가득 휘날리는 현장에서 왼종일 시달리면서도 민마담을 생각하면 흐뭇해 지곤 한다.

더구나 미숙이보다 12살이나 어리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싱싱함에 요염한 매력까지 넘쳐 흐른다.

" 오늘 몇시에 끝나냐 "

" 이 오빠는..  새벽이나 돼야 끝나지. "

" 데이트 안할래? "

" 데이트 할 시간이 어딨어, 한푼이라도 더 벌어야지. "

" 일요일은 쉴거 아냐. "

" 맛있는거 사 줄거야? "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만큼 새록새록 이뻐지는 민마담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꼬셔내고 싶은 영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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