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 수많은 국가가 있고, 각 나라마다 국민들 살아가는 모습이 다르다.
어느 누가 정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라별 행복지수라는게 있다.
북유럽의 몇나라와 아프리카, 동남아 그리고 남미의 후진국중에서 1위부터 10위까지를 차지했다.
스위스나 덴마크처럼 선진국이면서 살기좋은 나라가 있는 반면 부탄이나 콜롬비아처럼 생활수준은 열악할지언정
국민들 정서에 따라 만족감을 추구하는 방식이 다소 차이가 있음을 짐작케 한다.
부유하다 해서 반드시 행복할수도 없거니와, 다소 빈약하다 해서 불행하지도 않다는 얘기일것이다.
발표되어진 행복지수를 보면 우리나라가 50위 안쪽으로 들어선 예가 없다.
작금 우리나라가 겪고있는 복잡한 현실을 보게 되면 행복지수 50위 바깥이라는 점수가 어쩌면 맞다는 생각이다.
이렇듯 복잡다변한 구조속에서 행복을 논한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일수도 있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행복을 추구한다고 보여 진다.
물론 개개인의 행복을 논하자는게 아니며 나라 전체를 통털어 국민들이 느끼는 행복지수를 말하는 것이다.
비록 어스레기를 자처하는 못난 놈이지만 인생의 행복에 대하여 모르쇠는 아니다.
손톱만한 희망이지만 행복으로 가는 관문은 항시 목마르기 마련이다.
자, 그럼 행복을 느끼자면 무엇이 충족되어야 하며 어떻게 변해야 할까.
오늘 그것을 풀어 보고 싶다.
직업군이 많지 않았던 옛날과 달리 국민들의 세상살이는 훨씬 다변해 졌지만, 개개인의 기대폭은 거의 비슷하다고
보여 진다.
그것은 바로 행복을 추구하고자 하는 마음일게다.
개개인의 능력에 따라 만족감이 있을수도 없을수도 있겠지만 우리들이 원하는것 또한 대동소이하지 않을까.
국가적으로 경제가 활성화되어 살림살이가 풍족해 진다면 마음의 여유는 생기지 않을까.
하지만 예전과 같은 호황의 시기는 다시 오지 않을런지도 모른다.
희망이겠지만 우리나라가 세계 1위의 행복지수를 뽐낸다면 어떨까.
가소롭다며 주변에서 웃음소리가 들리는듯 하다.
과연 그럴까.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책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스레기의 흰소리라 여기겠지만 그런 희망을 품어 본들 누가 뭐라겠는가.
그런 희망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어떤 변화가 있어야 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국회의원이 명예직이었으면 한다.
과거 허울뿐인 위정자의 대리인이었던 그들의 위상은 작금에 와서 하늘을 찌르고도 남을 권력기관으로 부상했다.
국민을 대표하고 나라의 중요 법안을 논의하는 중차대한 임무를 지녔다.
나름 소신들을 갖고 일하겠지만 계파에 휩쓸리는 그네들을 보면 가뜩이나 힘겨운 심사가 더 꼬이기만 할 뿐이다.
지푸리기라도 쥐고 싶은 서민들의 애환을 들여다 보는 이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행복지수가 높은 선진국 국회의원의 모습을 들여다 보자.
그들의 대다수는 국회에 상정할 안건을 위해 보좌관 없이 직접 기차나 버스를 타고 현장을 누비면서 문제점을 점검하고
확인하며 자신의 임무에 충실하고자 한다.
반면 우리네 나릿님들은 보좌관을 여럿 거느리고 방대한 정보를 수집시키는가 하면 할일 많은 관계 부처 공무원들에게
산더미같은 자료를 요청해 애를 먹인다고 한다.
그리고는 자신이 모든걸 파악한 양 국회에서 떠벌인다.
어느것이 옳은지는 결과가 말해 준다.
굳이 답안지가 있다면 바로 국민들이 느끼는 행복지수일런지도 모르겠다.
한가지 짚고 넘어가자.
국회의원의 년간 세비가 1억 3756만원이고 툭별활동비조로 564만원, 거기에 보좌진들에게도 3억 9500만원이 지급된다.
그것뿐이 아니라 정근수당 1420, 해외시찰비 2000, 차량지원 5179, 통신요금 1092, 의원회관경비 4200, 또한 퇴임후
65세 이상부터 월 120의 연금이 주어 진다.
나랏일을 올바르게 이끌어 달라고 정부에서 국회의원들에게 주는 이 돈은 모두 국민들의 세금이다.
이 금액이 많다고 투덜대는 것이 아니라, 과연 그네들이 이에 상응하는 만큼 일을 해 내느냐가 문제일 것이다.
국회의원의 임기는 4년이다.
회기 기간을 뺀 기간동안 그들이 지역주민과 직접 만나 애로사항을 듣는 횟수는 과연 몇차례일까.
국민들이 진정으로 원하는게 무엇인지는 아는걸까.
혹여 국민들 대다수가 대책없이 무상 혜택만 바란다고 짐작하는건 아닐까.
요즘은 정보의 홍수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통령이나 각 부처 장관들, 국회의원 개개인 최근 모습을 보며 그네들의 생활습성까지 어림짐작 할수도 있다.
한마디로 눈가리고 아웅하던 시대는 끝났다고 보여 진다.
진심으로 국민을 위하는 국회의원이 되어야 하며, 가식적으로 사탕발림식 되풀이를 한다면 눈치빠른 이들은 그들에게
적개심을 품을지도 모른다.
입으로만 국민들을 위한다고 호도한다면 필시 지탄이 돌아가는 세상이 됐다.
국회의원이 명예직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명예직이란 수고한 대가에 대한 보수를 부정하라는건 아니다.
또한 권력자가 됐던 국민 개개인이 됐던 그들 국회의원들에게 일방적인 강요를 해서도 안된다는 생각이다.
자정적인 차원에서 그들 스스로가 국민을 위해 봉사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일 뿐이다.
여유롭게 사는 국민들이 있는 반면 다소 애처로운 삶을 영위하는 이들도 있기 마련이다.
국회 회기를 떠나 남는 시간에 나라에서 받은 수고비를 그들에게 돌려주고자 하는 국회의원이 있다면, 아마도
그들은 주민에게 깊은 신뢰감을 주리라 본다.
양심선언 하듯 한사람,두사람 그런 국회의원이 늘어나게 되면 전체로 파급되는건 당연지사.
또한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이득도 상당히 많다고 보여진다.
파생되어 지는 호사 역시 이루 열거할수 없을 정도다.
예를 들어 인구수가 감소하는 문제에 대해 떠들어 보겠다.
신생아가 태어난 집에 여러가지 이득을 주는 정책을 편다 한들 예전처럼 다식구가 되기는 어렵다고 보여 진다.
하지만 투명한 정치가 펼쳐지게 된다면 많은 국민들이 앞다투어 그들을 흠모하고 믿는 마음이 생길것이며, 더불어
자녀들과 함께 행복한 미래를 꿈 꾸고자 할 것이다.
이는 한가지만 예를 든 것일뿐, 파생되는 이득은 나열하기도 벅찰 지경이다.
지역주민 모두를 내 식구마냥 따스하게 감싸주는 국회의원을 보며 모든 사람들은 그들을 칭송할 것이며, 무한한
신뢰를 보낼것이다.
또한 그렇게 봉사를 하는 지도자들의 행실을 따라하려는 국민들이 늘어날 것이니, 자신만의 부를 위해 물 먹인
소고기를 파는 사람이나 여객선의 불법 운행으로 꽃다운 생명들을 앗아 간 파렴치 따위는 이 땅에 발붙일 틈새가
없을 것이라 본다.
비록 경제가 어렵다 한들 우리네 서민들은 청백한 지도자를 보며 희망을 품으리란 생각이다.
작금의 볼썽 사나운 국회의 모습이 아니라 서로 경쟁하듯 서민을 위해 봉사하고자 하는 그들의 행실이 기다려진다.
자원이 부족한 나라에서 우리나라는 눈부신 성장을 했다.
노동력과 기술력을 팔아 이만큼 이뤄낸 나라도 드물거라고 생각한다.
심지어는 K팝이나 배우들까지 외국에 수출하는 나라가 됐다.
명예직으로 일하는 국회의원들의 청렴성을 배우기 위해 외국 공무원들이 찾아 와, 국회의원의 일상성을 수출하게
되는 날이라도 온다면 비로소 우리나라는 행복지수 1위에 올라 살기좋은 나라가 될 것이다.
너무 무지개빛 꿈을 펼치진 않았는지 모르겠다.
2016. 4월 바라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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