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스레기의 행복지수

위안부 문제를 보며

바라쿠다 2016. 6. 10. 06:59

 

일제시대 끌려간 우리네 할머니들에게 일본이 10억엔 규모로 보상한다고 한다.

결코 잊어서는 안될 사안이기에 곪은 상처처럼 우리네 맘을 아프게 하는 이 문제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다.

생각할때마다 참으로 분노는 치밀어 오른다.

우리나라의 젊은 처자들이 이유야 뭐가 됐든 저들 일본 군국주의자들의 성노리개가 되어야만 했던 때가 있었다.

힘 없던 우리나라는 일본의 속국이 되다시피 했고, 그네들의 이익에 따라 모든 국민의 자주는 말살되었다 보여 진다.

어찌 됐든 1945년 우리는 독립국가가 되었고 수많은 우환을 겪으며 지금에까지 이르렀다.

 

과거를 잊지말자는 취지의 일환으로 소녀상이 도처에 건립되고, 더불어 일본의 만행은 전 세계에 고해 졌다.

자신들의 잘못은 인정치 않으면서도 소녀상의 존재만큼은 보고 싶지 않다는 그들.

인권을 중시하는 선진국들의 입김을 도외시할수 없는 일본의 선택은 기로에 있지 싶다.

자신들의 만행을 인정하고 그 용서를 비는 독일과는 너무나 큰 차이가 보임은 왜일까.

우리 역시 지역상 이웃인 그들과 화해를 하고 잘 지내고 싶지만, 원인 제공자인 당사자의 나몰라라 하는 행태에 대해 

내내 찜찜할수 밖에 없고 지금까지 그래 왔다.

더군다나 일본이 자발적으로 화해를 해 보겠다는 제스처를 취하는게 아니라 작금 세계 정세에 떠밀려, 마지 못해

우리와 관계 개선을 하려 한다는 느낌이 드는 것도 문제다.

 

보상액의 많고 적음이 문제는 아닐 것이다.

그깟 푼돈 가지고 그들의 잘못을 용서하고픈 국민은 없으리라 본다.

성노리개로 전락했던 우리네 할머니들의 아픔을 어루 만지는데 있어 그깟 보상보다는 진심어린 사과를 당사자인

할머니들이나 우리 국민은 기대하고 있다.

위안부 문제는 이제 일본과 우리나라 둘만의 이해가 아닌 주변국들의 관심까지 끌어 냈지 싶다.

일본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미국에 적극적인 외교를 펼쳐 돈독한 동맹을 유지하려 하고, 분단된 현실의 우리나라는

안보라는 당면성 땜에 마지 못해 미국의 속내에 반대하기 어려운 입장일 것이다.

 

하여 할머니들 개개인 마음의 상처를 씻는 것이 아닌 외교에 따른 추상적인 합의가 이뤄질수도 있는게 현 시점이다.

피해자인 우리네 입장에서 개운한 합의점을 찾아낼수는 없는걸까.

일본이나 우리나라 모두 진심으로 마음을 열어 불행했던 과거를 덮고 미래의 행복을 위해 노력했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결돼야 할 요소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의 단합된 모습이 아닐까 한다.

예로부터 침략의 빌미를 제공한건 나라의 힘이 약했기 때문이리라.

강대국까진 아니지만 국민들의 정서가 일관성있고 단합된 민족이라는 꼬리표가 붙는다면, 다시는 불행한 과거가

되풀이되지 않으리라 본다.

 

일본이 누군가의 등에 떠밀려 마지못해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는 느낌을 준다면 그것은 곤란하지 싶다.

억울한 과거에 얽매어 있는 우리네 정서에 반하는 일이고 그 또한 개운치 못한 역사가 될 것이 명백하다.

불행했던 과거를 청산한다는건 분명 지양해야겠지만 속에서 우러난 진심이 없다면 우리네는 다시 한번 서운한 맘이

들 것이다.

20대 국회가 개원된다 한다.

여러가지 산적된 안건들이 어찌 처리될른지 두고 볼 일이다.

국민의 한사람으로 일본이 준다는 10억엔은 차라리 그들 나라의 지진피해에 보태라며 돌려주고, 위안부 할머니들의

보상은 우리네 실정에 맞게 우리 힘으로 맘을 썻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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