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촌, 나도 알아요. 엄마가 가벼운걸.. 그치만 악의는 없잖아요. 한번만 더 봐주세요. 소영이는 삼촌이 좋아요. ~
성미네 집에서 나와 집에 가려고 택시를 탔는데 미진이가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미진이가 술상을 차린다고 주방에
있을때 소영이의 메시지를 받았다.
~ 삼촌도 소영이가 좋아. 진짜로 내 딸이면 싶을만큼 이쁘단다. 내일 보자. ~
" 누구한테 메시지를 보내는 건데.. 혹시 수정이야? "
거실 탁자에 안주거리를 내려 놓으면서 미진이가 궁금해 한다.
" 딸이야, 내 기분이 울적해 보인다고 화이팅 하라네.. "
" 자기 딸은 야무지더라, 요즘 애들치고는 속이 찼더라구.. "
작은 딸이 하나 더 생겼다고 얘기하고 싶은걸 목 안으로 삼켜 버렸다.
올때마다 내오는 양주를 꺼내 얼음과 같이 언더락스 잔에 따르고도 말이 없다. 스스로 얘기를 꺼낼때까지 잠자코
기다려야 할듯 싶다. 자신의 잔에도 술을 따라서 홀짝인다. 한참을 말없이 술잔만 비워야 했다.
" 이혼은 못해 주겠대, 이제와서 갈라선다고 뭐가 달라 지겠냐구.. "
" ........... "
" 남들 보는 눈도 있으니까, 지금처럼 서로에게 간섭하지 말고 살자네.. "
할말이 떠 오르질 않는다. 금방이라도 이혼 할것처럼 자신하더니, 미진이도 속수무책일 것이다. 남편에게
뚜렷한 잘못이 없는데 이혼을 해달라고 조를수도 없는 노릇이다. 자신에게 남자가 생겼다고 얘기 할수도 없음이다.
" 결국 그렇게 되는구나.. 내 팔자에 여자한테 밥을 얻어 먹는다는게 어려운 모양이다. "
" ........... "
" 수정이가 들이대는걸 며칠후에 보자고 미뤄 놨구만.. 이제는 핑계조차 댈것도 없으니, 허 ~ "
뾰족한 수라는게 없는 문제다. 서로에게 위로를 할 건덕지도 없이 죄없는 술만 들이킬 뿐이다.
" 오늘은 오빠하고 같이 있을래.. "
심란한 마음을 달래 달라는 말인데, 나 역시 심란스럽기는 마찬가지 아닌가.
남자라는 이유로 미진이의 상처를 어루만져 줘야 했다. 평상시 보다 깊숙이 품속으로 들어와 안긴다.
엊저녁에 이어 오늘 낮까지 성미에게 시달리고, 미진이를 위로 해 준답시고 밤새 두번이나 거사를 치뤄야 했다.
체력도 예전 같지 않아 아침에는 힘이 부대낀다. 미진이 집을 나오면서도 서로가 개운치를 못했다.
가게를 계약하고 보름후부터 실내공사를 하는데 왼종일 붙어 있어야 했다. 모르긴 해도 일주일 이상 걸리지 싶다.
공사기간 중에 냉장고와 에어컨 겸용 온풍기를 알아보러 다녀야 했고, 주방그릇을 사러 왕십리까지 갔다.
마침 토요일이라 소영이까지 데리고 왕십리까지 간 김에, 유명한 곱창집에 들어가서 저녁을 대신 하기로 했다.
" 삼촌이 고른 그릇은 참 이쁘더라.. 엄마보다 더 살림꾼 같애.히히.."
" 삼촌이 너만 할때 그림 공부를 했거든, 그런게 도움이 많이 되는거야. "
" 자기야 ~ 돼지고기 냄새 잡는거는 언제 가르쳐 줄거야.. "
" 안 가르쳐 줄거거든.. 큰 들통에다 육수 끓일때 국자 하나씩이면 되니까, 한달에 한번씩 만들어 줄께. "
" 그냥 가르쳐 주면 편할텐데, 왜 고생을 사서 한다니.. "
" 내가 밴댕이라며.. 나중에 소영이가 내 딸이 된다면 몰라도, 지금은 아냐.. "
그까짓 음식을 만드는 방법 따위가 무에 그리 중요하다고, 좋아하는 여자를 서운하게 만드냐고 생각할수도 있다.
사실 마음속에 담고 있는 한가지 서운한 것이 있다면, 딴 남자에게 자신의 인생을 맡긴다고 나를 떠났던 점이다.
더군다나 아직도 그런 내 마음을 헤아릴줄 모르는 그 무딘 성격이 더 큰 문제다. 다시 만났을때 미안하다는 말만 했을뿐
내 사람이 되려 했던 여자가 떠났을때 겪었을, 시련의 무게를 가늠하지 못하는 그 무지에 있는것이다.
쫀쫀한 남자라고 치부되더라도, 그녀를 좋아했던 무게 만큼은 알려줘야 한다.
세상을 살다보면 또 다시 어려운 시기가 올수도 있다. 그럴때마다 믿고 의지하는 사람이 경제적인 능력이 없다고
다른 생각을 품는 사람이라면, 그런 상대를 위해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도 없는것이다.
나 하나만을 절절이 원하는 해바라기가 되었을때, 그런 그녀를 위해 내 한몸을 혹사시켜도 아까운 생각이 들지 않게끔
해 줘야 하는 것이다. 그걸 알게 해주고 싶은것이다. 아무 생각없이 살고 싶은데 머리를 쓰게 만든다.
서운해 하는 성미와 가게에 들려 주방용품을 내려 놓고, 수정이와 미진이를 만나러 가야 했다.
" 어떻게 됐어, 가게를 팔 생각은 있는거야? " 막걸리집에 앉기 급하게 수정이가 물어온다.
" 그쪽에서도 이천정도 양보하기로 했어, 그만한 가격이면 괜찮지 싶은데.. "
5억씩이나 투자를 해야 하는 갈비집보다는, 1억만 가지고 단란주점을 하기로 수정이와 얘기를 하고서는 일주일 전부터
권리금에 대한 흥정을 해 왔다.
" 그 정도면 많이 깍은 편이네.. "
수정이를 따라나온 미진이가 중간에 끼여든다. 보름동안 미진이를 따로 만나지 않았기에 오랜만에 본 것이다.
그렇게 느껴서인지 많이 수척해 보인다. 아마도 미진이는 내가 먼저 전화라도 해 주길 바랐을것이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남편과 정리가 안된 미진이를 만나봐야 서로간에 끊지못할 정만 쌓일 뿐이라는 생각이었다.
" 그럼 계약만 하면 되는거네.. "
곱게만 커서 잘 헤쳐 나갈지 걱정이 앞선다. 수정이한테 돈을 빌린 죄로 모른척 할수가 없어 참견을 하다보니,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인데, 앞으로는 장사까지 신경을 써 줘야 할것 같아 심란스럽다.
" 되긴 뭐가 돼.. 술이나 안주거리 가격도 알아둬야 하고, 홀에서 일하는 여자도 수배를 해야지. "
" 카운터는 미진이와 번갈아 보면 될게고, 아가씨들이야 오빠가 알아서 구해 주겠지, 호호.. "
어쩐지 예감이 좋지가 않다. 지가 할 장사를 남에게 떠 맡기고, 쏘꿉장난이나 하려고 드는 철부지다.
더군다나 미진이까지 끌어들이면 두 여자 사이에서 어찌 처신을 해야할지 난감할 것이다. 가만히 듣고만 있는 미진이도
이곳으로 나올 작정을 한것 같아 좋지않은 머리를 굴려야지 싶다.
그나마 다행인것은 세 여자가 장사를 한다고 가게에 몸이 묶여 있어, 그 시간 만큼은 여유가 있을것이다.
" 오빠~ 오늘은 바쁜일 없지, 다른데로 새면 안돼. "
하기야 수정이 입장으로 본다면 나를 위해 모든걸 걸고 싶다는데, 뿌리치기만 하는 내가 야속할 것이다.
옆에서 지켜보던 미진이의 표정이 별로 좋지가 않다. 보름간을 핑계만 대고 피했기에 또 다른 변명이 있을수 없다.
무슨 남자의 팔자라는게 여자의 능력에 의해 좌지우지 되어, 한심한 인생을 감수하며 살아가야 하는지 답답스럽다.
결국 미진이와 헤어진후에 수정이에게 멱살이 잡힌 꼴이 되어 모텔까지 끌려와야 했다.
수정이와 나를 남겨놓고 쓸쓸히 돌아서는, 미진이의 뒷모습이 내내 뇌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객실에 들어가서 옷을 훌훌 벗어던진 수정이가 욕실로 들어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원치않는 섹스를 치뤄야 할 생각에
난감해 진다.
" 자기도 빨리 씻어. "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털며 욕실에서 나온 수정이가 T.V 에 눈을 둔 나를 재촉한다.
키가 커서 그런지 몸매로 치면 가장 볼만한 그녀다. 170 에 가까운 늘씬한 키에 미진이와 오랫동안 헬스를 해서인지
나이에 비해 군살이 별로 없다. 몸매에 자신이 있다는 양, 알몸인데도 첫 만남부터 부끄러운 기색이 없었다.
" 씻기는.. 못 잡아 먹어서 안달일세,귀찮어.. "
큰 키에도 철부지처럼 보채는 수정이에게 심통을 부려본다.
쇼파에 앉아 있는 나에게 다가오더니, 무릎위에 걸터앉고는 내 목에 손을 두른다.
" 생각해 봐라, 오빠가 나를 안아준게 언젠지.. 솔직하게 말해 봐, 다른 여자 생겼지.. "
항상 말이나 행동이 거칠게 없는 그녀다. 여자라면 한번쯤 생각해서 걸러야 할 언행을 조심성 없이 내 지른다.
" 얘가 느닷없이, 옆으로 비켜.. 뉴스 좀 보게.. "
수정이의 허리를 안아 옆으로 내려 놨더니, 옆에 앉아서도 내 팔에 팔장을 끼고는 얼굴을 내밀어 내 턱앞에 들이대고 조를
기세다.
" 오빠가 어디 한군데 정착할 사람이냐구.. 나 몰라라 할땐 그럴 이유가 있거든.. "
여자가 싫어질때 중의 하나가 지금처럼 지 멋대로 나설때다. 예전의 애 엄마도 내 앞에선 금기시 하던 짓을, 버젓이
저지르면서도 잘못 된 일인지도 모르는 수정이다.
" 수정아.. 언제 니가 내 마누라로 등록했냐.. 애 엄마도 안하던 바가지를 왜 긁고 있냐구.. "
" 하여간에 까칠하기는.. 여자가 그러면 그냥 좋아해서 그런가보다 하고 넘기면 되지, 뭘 그렇게 따지냐. "
어쩌면 여우처럼 이것저것 재지 않는게 장점일수도 있다. 하기사 그런 점에서는 상대하기가 편하다.
" 좋아하면 일일이 캐고 들어야 하냐, 마누라도 없는 놈이 뭔 짓을 뭣해.. 그리고, 알아봐야 너만 속 끓어. "
아무리 부처같은 여자도, 딴 여자한테 눈길을 주는 남자한테는 독기를 품는다고 했다.
" 그러니까 오빠를 묶어 놀려고 하는거지, 웬만하면 여자도 다 거기서 거기야.. 그냥 내가 들이댈때 받아 주는게 좋아..
사실, 오빠만 나를 찬밥 취급하지 딴데 가면 아직 인기 많다,호호.. "
틀린 말은 아닐게다. 처음 만났을때 지 친구들 중에 제일 돋보여서 찍힌 인물이니 그럴만도 하다.
" 에구~ 좋겠다. 인기가 많아서.. 너 좋아한다는 남자중에서 한 놈 골라잡지 그러냐. "
" 그러게 말이야.. 나도 그렇게 생각은 하는데, 자기 멋대로인 밴댕이만 떠 오르니 그게 병이지, 뭐. "
아무래도 당분간 오래갈 인연인듯 싶다. 원치 않는 여자인데 끊어지지 않고, 자꾸만 다른일로 인해 꼬여 엮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