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하루 온종일을 성미와 소영이랑 셋이서 무슨 장사를 해야 좋을지 의논들을 하면서 보냈다.
성미가 차려준 점심을 식탁에 둘러앉아 먹으며, 밝은 얼굴로 연신 떠드는 소영이를 보니 나름대로 흡족스런 태성이다.
아무 생각없이 사는게 편해져 버린 내가, 근래에 저지른 일중에 흐뭇한 기분이 들었던 적은 없었다.
" 소영이는 엄마가 해 준 음식중에서 뭐가 제일 맛있더냐.. "
" 다 맛있죠, 히히.. 삼촌도 다 알면서.. "
제 엄마가 밝아진 것에 더 기분이 좋아진듯 하다. 먼저번 남자와 자주 싸우고 나서는, 남몰래 눈물짓던 엄마가 제
자리로 찾아온것 같아서 마음이 놓인 탓일게다.
" 그래, 니 엄마가 못 생기긴 했지만 음식솜씨는 타고 났나 보더라. 후후.. "
" 어 ~ 울 엄마가 얼마나 이쁜데.. 모두들 내가 엄마 닮아서 이쁘다고 한다니까요. "
" 아냐, 임마. 니가 이쁜건 맞는데 니 엄마는 못 생겼어. "
" 내 친구들은 다들 이쁘다고 하던데.. "
" 소영아~ 냅둬.. 밴댕이 삼촌이 엄마한테 복수 하는거야. "
못 생겼다고 놀리는데도 노여움을 타지않고 발랄하게 웃는 성미가 생선살을 발라 내 밥그릇에 얹는다.
약을 올리는데도 무신경이니 재미가 없어 진다.
" 흠, 내가 어제부터 생각 한건데.. 뼈다귀 감자탕이나 해장국도 좋지만 돼지국밥이 어떨까 싶어. 니가 생각하는
백반집은 반찬준비도 만만치 않고 배달까지 하려면 힘들거야.. 몇번 지방에 갈때마다 먹어봤는데 밑반찬도 필요없고
국물맛만 담백하게 뽑아낼수 있다면 괜찮을것 같은데.. "
" 오빠 많이 변했네, 무슨 남자가 그런걸 다 아누, 호호.. "
" 그게 누구 때문인데.. 소영이 앞에서 욕도 못하겠구, 미치겠다. 에구 ~ "
" 삼촌~ 참지 말고 울 엄마를 때려주면 되지, 히히.. "
" 이 지지배가 다 키워 놨더니, 누구를 때리라고.. "
" 에이~ 답답한 아줌마야.. 삼촌이 입술로 때려주면 좋찮어, 내숭은.. 히히.. "
소영이가 어른들의 대화에 끼여 들만큼 많이 큰 듯 싶어 대견스럽다. 이렇게 살수 있어도 괜찮을 듯 싶다.
월요일이다. 집에서 잠을 깬 태성이가 시간을 보니 오후 2시다.
핸폰을 열어보니 수정이에게 메시지가 와 있다. 저녁에 만나자는 내용이다.
거제도에 간 미진이가 아무런 연락이 없어 궁금한 터라 통화버튼을 누른다. 한참만에 미진이 목소리가 들린다.
" 웬일로 연락이 없어, 다녀 왔으면 무슨 얘기가 있어야지.. "
~ 오빠.. 나중에 전화할께, 지금은 많이 피곤해.. ~~
뭔가 계획한대로 일이 안 풀린것 같은 느낌이다. 잔뜩 기대를 하고 내려갔던 미진이였다.
집에 앉아 곰곰이 생각에 잠기는 태성이다. 요즘 들어 부쩍 외로왔던 그였다. 많은 여자들이 스쳐 지나가고
그녀들과 밤을 지새고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면, 뭔가 허전하고 쓸쓸한 마음으로 가득 차 다시한번 가정을 꾸리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더랬다.
그런데 그것이 어떤 사주에 의해 운명이란게 정해 졌는지 마음 먹은대로 일이 풀리질 않았다.
성미가 떠난 후에도 수정이 뿐이 아니고, 몇명의 여자들과 만나 봤지만 그저 스쳐가는 인연이었는지 길게 가질 못했다.
그나마 미진이와 약속 비슷하게 언질을 주고 받았는데, 낌새상 틀어졌을수도 있겠다는 느낌이 온다.
더군다나 수정이가 남편이 사고로 갑자기 죽으면서, 자신에게 돈까지 들이대며 유혹을 하는 중이다.
수정이와는 전혀 그런쪽으로 생각지 않고 그저 자신에게 잘해주는 여자로만 만났을 뿐인데, 의중과는 달리 인연이
되는 쪽으로 흘러가는 것만 같아 마음이 심란스럽다.
정이 가는쪽은 미진이나 성미가 마음에 와 닿는데, 그들과 인연을 맺기에는 형편상 어려움이 많은것이다.
" 부지런해졌네, 호호.. 평상시에는 새벽일텐데.. "
" 요즘엔 술도 약해 졌나봐, 조금만 마셔도 취하더라구.. "
상도터널에 있는 민물 매운탕집이다. 대낮이라 막걸리집이 문을 열지 않은 탓이다.
" 그래도 오빠는 청춘이야, 배도 별로 나오지 않았잖어.. 밥도 같이 시킬거지? "
" 먹어 둬야지, 근데 무슨일로 불러낸거냐.. 니 말마따나 새벽바람에.. "
" 신림동쪽에 갈비집이 하나 나왔는데, 100평이라는데 한 5억정도면 할수 있겠더라구.. "
" 니가 갈비집을 해 본 경험이 없잖어, 내가 참견을 하려는건 아니지만 의견을 구하는 거라면 말리고 싶은데.. "
장사라고는 백화점 같은 매장에 점원을 두고, 옷이나 가방같은 쪽만 해 봤을텐데 고기집은 아니지 싶다.
" 그쪽에서 하던 곳이니까 직원들도 승계받아서 하면 승산이 있다고 했어. "
원래부터 고민이 없고 단순한 수정이지만, 일을 벌리는데도 거침이 없는 편이다. 자주 손해를 보면서도 겁이 없다.
" 시작하려는 니 사기를 꺽는것 같아 미안한데, 장사가 잘 되는걸 왜 팔겠어.. 갈비집을 할 정도면 그쪽으로 전문가로
대접 받을만큼 경력도 있을텐데, 그런 사람이 가게를 내 놨을땐 이유가 있겠지. "
차라리 몸으로 때울려는 성미가 한다면 어떻게든 꾸려 가겠지만, 수정이는 어림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 오빠가 반대할 정도로 가망이 없어 보이는거야 ?.. "
" 당연하지, 5억이나 주고 장사를 한다니까 남들이 볼땐 그럴듯 하게 보이겠지만, 오히려 투자하는 돈이 많을수록
위험 부담도 크다고 보면 돼.. 한번 내리막 길을 타면 걷잡을수 없어, 이 사람아. "
" 그럼 어떡해.. 뭐든지 오빠하고 시작하고 싶은데.. "
" 너, 그럼.. 나한테 뭔가 보여 줄려고 먹는 장사를 하겠다는 거냐? "
" 보여준다는 것보다 같이 하면 좋을것 같으니까.. "
또 다시 머리가 지끈거린다. 살얼음 같은 전쟁터에서 연애의 꽃밭을 가꾸려고 한다.
" 그전에도 대충은 알았지만 해도 너무한다. 니 남편도 없는데 망하면 어쩔려구 대책없는 짓을 하냐.. "
" 그러니까 오빠가 옆에서 도와줘야지,뭐. 히히.. " 웃는 얼굴에 꿀밤이라도 먹이고 싶다.
" 먹는 장사가 그렇게 소원이라면 작은것부터 경험을 쌓든지, 다른 장사를 알아봐. "
" 오빠도 좀 신경써서 알아봐 줘, 내가 뭘 했으면 좋을지.. 그리고 백화점이나 가자, 양복이나 몇벌 사 줄께.. "
결국 수정이한테 신세를 진 탓으로, 백화점에 가서 양복이며 구두를 사야 했다. 저녁에 같이 있고 싶다는걸, 입이
가벼운 수정이가 미진이에게 떠 벌릴게 분명한지라 며칠후에 만나자고 달래서 보내야 했다.
수정이와 헤어진후에 성미가 궁금해서 핸폰을 했더니 집으로 오란다.
초인종을 누르고 현관에 들어서니 구수한 냄새가 코를 찌르고 현관문을 열어준 소영이가 반긴다.
" 삼촌~ 빨리 오시지.. 배가 등에 붙었어요.. "
집에서 돼지국밥을 만들어 본다고 소영이 저녁까지 굶겼단다.
" 그렇다고 애를 굶기면 어쩌누, 일단 밥은 먹여야지. "
" 저 지지배는 좀 굶어야 돼, 여자가 50키로가 넘으면 어쩌자는 거야. "
" 엄마~ 삼촌한테 몸무게를 가르쳐 주면 어떡해, 씨 ~ "
소영이가 지 엄마한테 눈을 흘기며 악다구니를 해 댄다.
" 뭐 어때서, 키가 165라며.. 보기엔 늘씬하고 좋구만.. 자기는 소영이에 비하면 짜리몽땅이구, 후후.. "
" 오빠~ 애 앞에서 몽땅이 뭐니, 내가 클때 보태준거 있어? 에고~ 순 밴댕이 주제에.. "
" 고거 봐라, 아주 쌤통이다.. 몽땅 아줌마 주제에, 히히.. "
" 고거 봐라, 얼마나 못났으면 소영이까지 내 편을 드누, 후후.. "
" 오늘 둘 다 저녁 먹지마.. 밥 안줄거야. "
농담을 하다가 진짜로 화가 났는지 주방쪽으로 등을 돌린다.
" 하여간, 저눔의 못된 성질하고는.. 빨리 밥 안주면 소영이하고 피자 시켜 먹는다. "
등을 보이고 있던 성미가 멈칫하며 돌아서더니, 마지못해 식탁에 음식을 올리면서도 입은 댓발이나 나와 있다.
맛을 보려고 국물을 떠 마셔보니 제법 비슷하게 만들어지긴 했지만 뭔가 한가지가 빠진듯 하다.
" 어때,오빠. 끓인다고 제법 많이 우려냈는데.. "
조금전까지는 칼칼하게 굴더니 어느새 진지하게 묻는다.
" 역시 당신이 음식솜씨는 타고 났나보다, 소영이는 어떠냐.. "
삐쳐있던 성미에게 일단은 칭찬을 해야 했다.
" 난 잘 모르겠어, 돼지고기 냄새가 순대국이랑 비슷한거 같애. "
젊은친구들 입맛이 정확할수도 있다.
" 소영이도 엄마 닮아서 나중에 시집가면 신랑이 좋아하겠다,후후.. "
" 솔직하게 말해봐,오빠.. 아까는 맛있다며.. "
성미가 몸이 달았는지 제법 걱정스런 얼굴이다.
" 제대로 만들긴 했어, 소영이 평가도 맞는 말이고.. 엊그제 너한테 국밥집을 해 보라고 하기전에, 오랫동안 요식업계에
있는 후배한테 메일로 레시피를 받았어. 거기를 보면 중요한게 한가지 있더라. "
" ................ "
성미가 상체까지 세우며 내 말에 귀를 기울인다.
" 후배가 가르쳐 준대로 얘기하는거야, 내 말이 맞으면 니가 술 사야 돼.. "
" 알았어,오빠.. 바람잡지 말고 빨랑 말해봐.. 사실 나도 국물맛이 맘에 안 들었어. "
" 소뼈를 우러낸 육수와 돼지뼈를 끓인 육수를 반반씩 섞으면 국물맛이 훨씬 찐해 질거야.. 그리고 냄새잡는 비밀이
하나 더 있어, 그건 내가 사다줄께, 오늘은 늦었으니까, 내일쯤 소뼈를 사다가 다시한번 끓여 봐.. 아마 소영이도
맛있다고 할껄. "
" 참, 신기한 사람이야.. 내가 오빠를 다 알았다고 생각할때마다 이런식으로 한번씩 놀래킨다니까. "
" 또 한가지, 국밥만 팔아서는 매상이 적을수도 있어.. 저녁에는 안주를 만들어서 술을 팔아야 되는데.. 돼지 엉덩이
찜이라고 못 들어봤지? 후후.. 요것이 대박이걸랑.. 근데 말이다, 하이라이트는 공짜로 못 가르쳐 주거든.. "
" 하여간에 누가 밴댕이 아니랄까봐.. 뭐를 원하는데, 말해봐. "
" 소영이 말이다.. 니 맘대로 야단치고 욕까지 하는데, 안 그런다고 약속하면 가르쳐 주지.. 난 말이다, 너보다는
소영이가 더 이쁘걸랑.. 앞으로 내 딸이 될지도 모르는데, 내가 아껴줘야 되지 않겠냐,후후.. "
" 하이고~ 잘났네.. 저 지지배가 어느틈에 삼촌을 꼬셔 가지고설랑, 나만 왕따 시키구.. "
" 삼촌.. 오늘 여기서 자고가라.. 아마도 삼촌이 없으면 저 깡패같은 아줌마가 날 잡아 먹으려 들거야. 히히.."
이렇게 아무 생각없이 살아도 낄낄거리며 웃고 살수 있거늘, 그 놈의 돈이 뭔지 단순한 나를 가만히 놔두질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