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생각없어

아무생각없어 6

바라쿠다 2011. 11. 22. 15:05

" 어쩜 좋아, 완전히 오빠한테 매달리네..  웃기는 년이라니까. "       

집에 들어가자마자 볼멘 소리를 해대는 미진이다.

" 그러게..  저 진드기를 어떻게 하냐. "

" 그나저나 오빠는 좋겠네, 결혼 지참금으로 10억이나 준다니.. "

" 너 자꾸 오빠라고 부를래, 안 그래도 나쁜머리가 찌근거려 죽겠구만.. "      

" 미안해, 자기야..   수정이 년 때문에 심술이 나서.. "         

가뜩이나 심란스러워 큰 소리를 쳤더니 꼬랑지를 내린다.   여자들이란..

" 니가 빨리 결판을 짓지 못하니까 수정이 눈치를 보는거잖어,   이번주에 내려 가서라도 결론을 내리고 오던지.. "

무슨 정리가 필요했다.      셋중에 하나라도 결정이 나야 견딜것이다.      여자들 틈에서 말라죽지 싶다.

" 술상이나 차려..  취해 버리든지 해야지,  에구 ~ 다시 태어나면 여자로 태어 날거야.. "

술상을 마주하고 자꾸만 들이대는 수정이에 대해 얘기를 해 봐도 뾰족한 방법이 없다.      그냥 절교를 통보 하는것도

수정이가 납득을 못할테고, 미진이와의 관계라도 알게 된다면 그 성격에 무슨짓을 할지도 모른다.

모르긴 해도 미진이 남편에게 알리는 것은 물론이고, 더 심한 짓도 서슴치 않을 수정이 년이다.

원래 복잡한걸 싫어하는 터라, 술을 마셨는데도 취하질 않고 수정이 일로 속까지 더부룩하다.

" 나, 집에 갈란다.   두 여자들 사이에서 미치겠어.. "       

속이 부글거려 앉아 있기가 싫어 일어섰다.

" 왜, 그냥 자고 가면 안돼?   혼자 있기 싫은데.. "         

미진이가 눈치를 살피며 붙잡고 싶어 한다.

" 됐어, 이번주 내로 다녀와. "        

이곳에 있으면 엉킨 실타래가 풀리지 않을듯 싶어 바람이라도 쐬야 할 것이다.

미진이가 남편과 해결이 나든지 해야지, 수정이가 내민 10억의 유혹으로 시험에 빠지는것 같아 싫다.

 

저녁 10시 쯤이다.      택시를 집어타고 집으로 가던 중에 성미한테 핸폰을 했더니 자기집 근처로 오란다.

미진이와 수정이 사이에서 복잡했던 일들을 잊고 싶어, 성미에게서 위안을 찾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 오늘은 웬일이래..    초저녁에는 집에 들어가지 않는 사람이.. "

자신에 대해 가장 많이 아는 성미와 이수역 근처 허름한 식당에서 만나 묵은지 찌개를 시켰다.      졸지에 수정이 얘기를

듣고는 저녁도 거르고 술만 마셨기에 출출했다.

" 니가 보고싶어 일부러 왔구만, 그런식으로 비아냥 댈거냐? "      

" 에구,  오빠도 그냥 넘어 가는것 좀 배워야 돼..    매사가 가시돋힌 것처럼..    나도 편하게 말할수 있는 자격은 줘야지,

자기 하인도 아닌데.. "        

맞는 말이지 싶다.     내 맘대로 사는게 버릇이라, 안하무인격으로 행동하는게 결점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기도 했다.      

그때 성미의 핸폰이 울리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간다.

" 소영이야..   학원 끝나고 왔는데 어디냐고 하길래, 이리로 오라구 했어..   괜찮치 ? "

성미와 만날때 두어번 본 적이 있다.     그때가 중학생이었으니까, 지금은 고등학교에 다닐것이다.

지 엄마를 닮아 이쁘고 귀여워서 가끔 용돈까지 쥐어 준 기억이 난다.       식당문을 열고 소영이가 들어온다.

" 안녕하세요~   진짜 삼촌이네.. "       

반갑게 아는척을 하는 소영이는 벌써 아가씨 티가 난다.

" 그래, 소영이 많이 이뻐졌구나..    공부 하느라 힘들지.. "        

밝은 소영이를 보고 있자니 예전 기억이 새롭다.       성미와 자주 만났던 시절에 지 엄마를 닮아 칼칼한 성격이지만,

나를 좋아해 많이 따랐던 소영이다.

오랜만에 만났기에 학교 생활이며 근래의 얘기를 하는 사이 소주 2병이 비워진다.

 

" 삼촌~  내가 한잔 따라 드릴께요. 히히.."       

" 소영이가 따라줘서 그런지 술맛이 기가 막히네, 후후.. "         

" 삼촌..  울 엄마, 용서해 줘요. "

" ........... "

" 엄마 많이 울었어요..   헤어지고 나서 맨날 술만 마시고, 삼촌 보고 싶다면서 울기만 했어요. "

" ........... "        

태성이의 마음도 착잡할수 밖에 없다.      성미의 잘못보다는 자신의 무능력 때문에 헤어졌는지도 모른다.

" 그 쪽 아저씨랑도 그래서 싸우기만 하구..     내가 처음부터 반대 했는데, 내 말을 안 듣더니.. "

옆에 있던 성미의 큰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곧 떨굴 기세다.      돈과는 인연이 없는 내가 한심스러웠다.

그놈의 돈이 뭔지, 자신을 좋아하는 여자하나 잡아주지 못하고 보낼수 밖에 없었다.      

" 난, 삼촌이 좋은데..     울 엄마를 한번만 봐 주면 좋겠는데.. "       

소영이까지 울먹이며 말을 잇지 못한다.     흐르는 눈물을 감추려 고개까지 돌린 성미의 어깨가 들썩이고 있다.

" 삼촌이 미안하구나, 엄마를 지켜주지 못해서..   우리 소영이한테까지 마음고생 시키고.. "

" 나 먼저 집에 갈께, 히히..     엄마는 천천히 놀다 와. "

더 이상 흐르는 눈물을 보여주기 싫었는지, 애써 웃으며 식당문을 열고 사라지는 소영이의 뒷모습이 안타깝다.

" 에구~ 바보 같은년, 지 딸한테 못난 꼴만 보이고..   잘한다.. "

한참동안이나 고개를 들지 못하는 성미의 모습을 지켜보며, 술잔을 기울이는 태성이의 가슴이 먹먹해 진다.

 

토요일이다.     평상시보다 일찍 일어난 태성이가 만지작거리던 핸폰을 열어 통화버튼을 누른다.

" 지금 곧바로 택시타고 우리집 근처에 와서 전화해라. "       

성미와 자정이 넘도록 술을 마신지라, 취해서 집에 들어와 잠을 잔 태성이는 깨어나자 마자 수정이에게 전화를 했다.

엊저녁에 구상한 일을 처리하려고 수정이를 부르고 욕조에 더운 물을 받는다.

 

구반포 삼거리에서 수정이와 만나, 얘기할 곳을 찾아 동작역을 지나 고수부지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이른 시간이라 커피를 시키고 마주 앉았다.     최근 동작대교 위에, 성냥곽을 올려논 것처럼 그림같이 이쁜 카페가 생겼다.

카페 창문밖으로는 흐르는 한강물이 내려다 보이고, 고수부지에는 운동을 즐기는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 웬일로 새벽에 불러냈어? "

태성이로 볼때는 오후 1시가 새벽 시간이다.      태성이의 시간 리듬에 맞춰 저녁에만 만나던 수정이가 궁금한 것이다.

" 너한테 부탁하나 하자..   저기..  그게 말이야.. "

" 돈 얘기구나, 천하의 까칠남이 주저하는걸 보니까. 호호.. "

확실히 여자의 육감은 무섭기까지 하다.       미진이와의 관계를 눈치채지 못할만큼 단순할때도 있지만, 대개는 정확히

찝어내는 능력들을 타고 났다고 보여진다.    

태성이를 편하게 해 주려고 먼저 말을 꺼낸 수정이한테는 미안한 마음이다.

" 귀신이네..   먼저번에 차 한대 뽑아준다고 했지,  꼭 그래서만은 아닌데 급히 쓸데가 있거든. "

" 오빠답지 않게 뜸 들이기는..   얼마야, 급한 돈이.. "

" 오천만원,  일단 빌리는 걸로 하자..   니가 필요할때 돌려 준다는 조건으로.. "     

1억이면 더 좋겠지만, 갚아야 한다면 자신의 능력이 모자른다.    

수정이와 어찌 될른지 알수없는 일이다.      좋지않게 헤어져야 한다면 돌려줘야 할것이다.

" 됐어, 어차피 오빠한테 뭔가 해 주고 싶었어..   미안해 하지 마.. "

" 고맙구나, 너한테 잘해 주지도 못하는데 염치없이 도움을 받네. "

" 됐다니까..   먼저번에 내가 얘기한거나 생각해 봐. "

또 다시 돈을 앞세워 유혹하는 수정이 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린다.

 

" 소영이하고 저녁이나 먹자. "

집에 돌아온 태성이는 은행에 돈이 입금된걸 확인하고, 성미와 통화를 해서는 저녁 약속을 했다.

미진이는 남편을 만나러 거제도 조선소로 내려간다고 연락이 왔었다.       자신은 내려가기 싫지만, 오빠를 위해 다녀

오겠다며, 다녀 올때까지 수정이를 만나지 말라며 문단속까지 했다.

성미집으로 찾아간 태성이는 소영이의 의견을 물어 사당역쪽에 있는 스테이크 전문집으로 갔다.

토요일이라 어린 학생들을 앞세운 가족들이 많았다.     가격이 높은 스페셜로 주문을 하고는 소영이를 바라본다.

" 삼촌이 소영이한테 할 얘기가 있어서 저녁먹자고 한거야. "

성미가 긴장된 얼굴로 태성이를 주시하고, 소영이 역시 궁금한지 빤히 바라보는 중이다.

코스에 따라 첫번째 안심에 맥주가 나왔다.     바쁘게 서빙하는 친구땜에 중간중간 말을 끊어야 했다.

" 이제 소영이도 어린애가 아니니까 삼촌이 솔직하게 얘기하마..   소영이가 한잔 따라 주면 좋겠는데.. "

다소곳하니 조심스런 움직임으로 소영이가 따라준 맥주 한컵을 단번에 마시고 난 태성이는 오랜만에 진지한 얼굴이

된다.

" 사실 삼촌은 니 엄마가 떠나고 배신감에 힘들었어..   이년씩이나 엄마를 미워하면서 살았거든.. "

성미에게 품었던 애증을, 소영이를 통해 성미에게 들으라고 넋두리를 하고 있는 셈이다.

" 그런데..  그게 사실은 내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삼촌의 능력이 부족해서 니 엄마를 책임지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된거지..   어제 소영이가 한 얘기를 듣고 쇼크를 먹었다고나 할까.. "

" 미안해요, 삼촌..    난 그냥 엄마랑 잘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

어른들의 감정 다툼에 끼여 든 자신의 행동을 뉘우치듯 소영이가 고개를 숙인다.

" 아냐, 삼촌은 니 얘기를 듣고 기분이 좋았어..      우리 소영이처럼 이쁜 아가씨가 삼촌을 인정 해 준다는게 얼마나

뿌듯했던지 몰라..     사실, 너를 만나기 전에는 엄마의 실수를 용서할 생각이 없었거든.."

맥주 한잔을 더 마시고 잠시 진정을 하는 태성이고,  건너편의 성미는 다소곳이 듣는 중이다.

" 일단 니 엄마한테 장사 밑천을 대 줄 생각이야..    음식 솜씨가 좋은건 내가 잘 알지,  엄마가 남의 집에 다니면서

힘들게 사는것 보다는 편할거야. "      

" ....................... "                  

성미가 고개를 들어 태성이를 보면서 착잡해 하고 있다.

" 이런 결정을 한건 니 엄마가 이뻐서가 아냐..    못난 삼촌을 좋게 봐준 소영이에게 보답한다고나 할까..    엄마는

내가 대주는 장사 밑천이 어디서 나왔는지 짐작 할거야..    그래서 하는 말인데.. "

잠시 말을 멈춘 태성이가 소영이가 따라준 맥주를 마시고도 한참을 주저하고 있다.     어린 소영이를 상대로 실없는

사람으로 비춰질까봐 조심스러운 것이다.

" 나중에라도 소영이 아빠 노릇을 할 기회가 올지는 나도 잘 몰라..    어른들의 세상은 니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훨씬 복잡하거든..      한가지는 정확하게 말할수 있어..    니 아빠가 됐으면 좋겠다는게 지금의 내 바램이야. "

성미도, 소영이도 태성이를 바라보며  다음에 이어질 말에 귀를 기울인다.        

" 하지만, 이 말을 하면서도 두려워..      만약에 약속을 못 지키게 되면 너한테 실없는 아저씨로 남겠지..   혹시라도

만약이란게 현실이 된다 해도 나를 미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소영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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