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에 애아빠가 누워 있을때는 귀찮고 싫더니, 새벽녘에 일어나 옆에 자고 있는 그를 보자니 흐뭇한 마음마저 든다.
내 기분이겠지만 단 하룻밤 사이에 수십년을 살아 온 애아빠를 떠나, 그의 존재가 당연히 내 사람인듯 바뀌어 져 있다.
곤하게 자고있는 그를 바라보다가 메모를 해서 침대옆 교탁에 놓고는 츄리닝만 걸치고 집을 나섰다.
아침바람이 쌀쌀한 것이 계절이 바뀌어 가고 있다. 헬스장에 들어서니 수정이가 런닝머신에서 땀을 흘리는 중이다.
간밤에 내 몸을 달구어 희롱하던 그의 힘찬 거시기가 떠오르며, 수정이와 그 사이를 어떤 방법으로 정리를 해야 할지
잠시 머리를 굴려 본다.
옆에 있는 머신에 올라 속도 버튼을 누르고 귀에 리시버를 꽂았다. 영국그룹 하트의 바라쿠다가 귀를 때린다.
속도를 차츰 높여가며 한참 열중하고 있는데, 내 어깨를 건드리는 손짓에 옆을 보니 수정이가 나를 보고있다.
" 잠깐 쉬었다 해, 할 얘기가 있어.. "
리시버를 귀에서 내리자 수정이가 휴게실로 향한다.
이온음료를 건네주며 옆자리에 앉으라고 손짓을 하는 수정이의 표정이 밝아 보인다.
" 차를 뽑아야 되는데 뭐가 좋겠니? 호호..밴댕이가 작은차는 싫어하잖어. "
이 새벽에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린지 모르겠다. 그 사람은 지금 내 침대에서 자고 있는데 차를 뽑아 준다니..
" 이년아~ 알아듣게 얘기를 해 줘야지, 느닷없이 무슨 차를 뽑는다고.. "
" 아, 글쎄.. 그 인간이 2억이 생긴다네, 그러면서 화해하는 뜻으로 주는거니까 앞으로 잘 해보자고.호호.. "
" 갑자기 큰돈이 어디서 난거래.. 그래서 화해는 했어? "
완전히 돌발상황이다. 세상에 선물을 받고 싫어할 인간이 있던가, 하물며 새차를 뽑아 준다는데..
" 미쳤니, 화해는.. 회사에서 돈이 나온대, 그리고는 당분간 중국지사로 장기 출장까지 간다고 덤벼 들더라.. 평소때는
보기만 해도 닭살이 돋았는데, 돈을 받아서 그런지 은근 땡기더라고.. "
갑자기 골머리가 아픈 미진이다.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와의 새 생활을 꿈꾸었는데 수정이 년 땜에 혼란스럽다.
우리집에 가서 의논을 하자는 수정이에게, 친정 올케한테 들려야 한다고 거짓말을 해야 했다.
그시간 목이 말라 잠에서 깬 태성이는, 교탁에 놓여있는 토마토 쥬스를 마시고는 미진이가 써 놓은 메모를 읽었다.
~ 자기야, 운동 다녀올께.. 가기 싫은데 수정이년이 집으로 찾아올까봐.. 토마토쥬스 마시고 조금만 기다려.. ~
욕실에서 샤워를 하고 나오는데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미진이가 들어온다. 잠자리를 옮기던지 해야지
다른사람이 들어오는줄 알고 잠시나마 불안하던 태성이다.
" 여자는 부지런을 떨어야 사랑받는거야, 얼마나 보가 좋으냐.. 운동하고 와서 그런지 더 이뻐보이네. "
아침부터 이쁘다고 칭찬해 줬는데도 얼굴이 밝지가 않다. 냉장고의 보리차를 들이키더니 내 옆으로 다가와 앉는다.
" 자기는 좋겠네.. 수정이년이 새차 뽑아 준다더라.. 여자복이 차고 넘쳐요.. "
표정이 좋지않은 이유를 이제야 알게 된 태성이다. 이 여자가 아직도 나라는 인간을 잘 모른다.
" 미진아~ 너는 그런 남자를 용서할수 있겠니.. 여자가 사주는 선물이나 용돈에 갈대처럼 쓰러지는 남자를 좋아할수
있겠냐구.. 난 말이다, 그런 여자가 필요한게 아니야.. 내가 좋아하는 여자는 무릎을 베게삼아 귀를 파 준다던지,
술좀 그만 마시라고 건강을 염려해 주고, 아침에 눈을 뜨면 편안히 잤느냐며 뽀뽀해 주는 그런 여자가 필요해..
내가 너랑 살고 싶다고 말을 꺼내놓고 그런 선물을 받겠니? 그 정도로 형편없는 놈 아니다.. "
말하는 내 눈을 보면서 조용히 응시하던 그녀가 내 가슴에 들어와 안긴다. 그녀의 등을 쓸어주며 토닥여 주었다.
" 혼자다 보니까 밤이 외로웠던건 사실이야.. 그래서 수정이를 만난거지만, 만나는 내내 숨겨진 남자가 된것 같아
마음이 찝찝했어.. 너도 마찬가지야, 니 남편하고 빨리 해결이 안되면 너를 떠날지도 몰라. "
둘이서 밥을 먹고는 거실쇼파에 앉아 낚시 채널을 틀어놓고 있는데 미진이가 주방에서 덜그덕거린다.
" 자기야 ~ 일어나, 당신 집으로 가자.. 반찬이라도 챙겨줘야지.. "
보따리를 들고있는 폼이, 집에서 먹던 반찬 몇가지를 챙겨서는 우리집에 가 보자는 속셈이다.
집에 도착해서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니, 모친께서 베란다에 있는 화분들에 물을 뿌리다가 거실로 들어오신다.
" 여자친구에요.. 어머니야, 인사드려.. "
모친께선 아래위로 관찰중이고, 미진이는 허리까지 숙여 인사를 하고는 순진한 척 내숭을 떤다.
그저 여자들이란 금방 탄로가 날텐데, 탄로가 날때까진 자기 스스로에게 최면을 건다. 타고 난 순진덩어리인 양..
그런걸 지켜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쇼파에 앉으라는 모친에게 보따리를 들어보인 미진이가 주방으로 가더니,
자기집인양 냉장고 음식들을 꺼내 정리를 한다. 씽크대까지 뒤져 빈 반찬통을 찾아서는, 집에서 가져온 반찬을 담는다.
모친과 나는 미진이의 하는양을 지켜만 볼 뿐, 특히 모친께선 유심히 바라보시는 폼이 수사관 못지 않은 눈길이다.
" 그래, 여자 친구라면서 홀애비 반찬까지 챙겨주고.. 고맙구먼, 하긴 애비가 어릴때부터 인기는 있었지.. "
" 어머~ 그렇게 여자들이 많았어요? 호호..어머니~ 옛날 얘기 좀 해주세요. "
지가 언제 봤다고 보자마자 애교를 떨면서, 며느리라도 된 것처럼 모친의 맘에 들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란..
한참동안을 나를 주제로 도마위에 올려놓고 즐거워 하더니, 드디어 내가 우려하던 얘기가 모친 입에서 나온다.
" 살림솜씨는 야무져 보이는데.. 그래,지금은 누구랑 살고 있는거야? "
" 딸 하나 있는데 얼마전에 결혼하고 혼자 살아요. " 나라도 나서서 대신 거짓말을 해야 했다.
" 아, 그랬구만. 큰일 치뤘네.. 근데 나이가 어려 보이는데, 벌써 딸이 시집을 갔네, 그려.. "
" 네, 제가 학교를 마치고 곧바로 결혼해서.. 친구들보다 빠른편이죠, 지금 46입니다. "
" 애비랑 4살 차이네.. 딱 좋구먼, 나이차이도 적당한게 좋아.. " 벌써부터 며느리감 보듯 말투에 힘이 실린다.
" 어머니.. 그만 하세요, 아직까지 친구로 지내는데.. 그러시면 부담되요. "
모친의 거듭되는 궁금증을 풀기 위한 질문에 부담을 느낀 미진이를 데리고 내 방으로 피신을 와 버렸다.
" 그러길래 반찬을 가져와서 봉변까지 당하냐.후후.. " 마음 써주는게 이뻐서 하는 소리다.
" 챙겨줘도 그러니, 오빠는 얄밉게. 호호.. 어떻게 사는지 궁금도 하고.. "
" 니가 하는짓이 이뻐서 그러는거야.. 근데, 아까 보니까 며느리 해도 잘 하겠더라. "
" 수정이도 집에 데려온건 아니겠지.. 앞으로는 수정이년한테 용돈 받지마, 내가 줄테니까.. "
" 얘가 완전히 무시하네.. 지금은 때가 아니라 쉬고 있을뿐이지. "
" 하이고~ 솔직이 말해서 자기는 날건달이거든.호호.. 괜히 뭘 한답시고 없는돈 까먹지 말고 가만히 있어. "
그 때 미진이의 핸폰이 울린다. 내 입술에 손가락을 붙이더니 통화를 한다.
" 수정이 년이야, 저녁에 만나자네.. 자기 만나서 차 뽑아준다고, 어쩔거야.. "
" 어쩌긴, 당연히 거절해야지.. 그리고 때를 봐서 얘기할거야, 미진이 너하고 사귄다고.. "
" 지금은 안돼, 애 아빠하고 갈라설때까지는.. 수정이 년이 꼭지가 돌면 무슨짓을 할지도 몰라. "
결국 저녁에 수정이를 만날수 밖에 없었다. 마음이 떠나서 그런지 별다른 감흥도 없었고, 그나마 나를 챙겨주던
여자였는데 그녀의 친구랑 몰래 사귄다는게 양심에 찔리기도 해서 불편스럽다.
" 왜 싫다는거야, 차가 낡았다고 바꾸고 싶어했잖어. "
건너편에 앉은 미진이가 모르는척 하며 막걸리를 홀짝인다.
" 야, 수정아 하나만 묻자.. 내가 니 신랑이냐.. 아니 설사 신랑이래도 그렇지, 왜 들이대는데.. 너한테 용돈 몇번
받아 썻다고 그래도 되는거냐? 임마~ 니가 나를 용돈주고 샀어? 니 꼴리는대로 나를 갖고 놀아도 되느냐구.. "
짐짓 화난척 하는 내가 이상할 것이다. 자기 딴에는 나를 챙겨주고 싶어서 5천만원씩이나 하는 차를 선물 한다는데,
정작 선물받을 놈이 버티고 있으니 황당할만도 할게다.
" 내가 뭘 어쨌다구 화를 내고 그래.. 그냥 오빠가 좋아할줄 알고 선물 하겠다는데.. "
선물을 하겠다는 사람이 오히려 비굴하게 사정하는 꼴이 되어 울상을 짓고, 앞에서는 미진이가 미소를 흘린다.
" 아, 글쎄.. 필요 없다니까, 내가 돈벌이 못 한다고 우습게 보이는 모양인데.. 앞으로는 용돈도 필요없어. "
이렇게 편할수가 없다. 새차를 뽑아 준다는걸 마다하고 주는 용돈까지 멋들어지게 거절하니까, 스스로 멋진 사나이가
된 것 같은 뿌듯한 기분이다. 물론 앞에서 흐뭇해 하는 미진이 덕분이지만..
어차피 분위기도 가라앉아 술마실 이유도 없는터라 내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진이는 수정이한테 붙잡혀서
고문을 당해야 할것이다. 현실은 미진이와 같이 팔장을 끼고 갈수 없음이기 때문이다.
미진이가 알려준 비밀번호로 미진이 집으로 들어섰다. TV에서 먹거리 프로그램을 시청하는데 핸폰이 울린다.
" 나야.. 지금 막 헤어졌어, 택시타고 금방 들어갈께.. 뭐 먹고 싶은거는.. "
" 지금이 생굴 철이란다.. 올때 굴이나 사와라, 한잔 할란다.. "
내가 생각해도 아무 생각없는 인간이다. 누가 먹는걸 보면 따라서 먹고싶은지, 남자가 임신할리는 없는데..
아파트 앞 마트에서 먹거리를 고르며 기분이 좋은 미진이다.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식육코너를 기웃거린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기분인 것이다. 집에서 기다리는 남자를 위해서 장을 보는게 얼마만인가..
태성이의 손길에도 익숙해 져 가는 몸이다. 그가 만져주는 곳마다 열기를 느끼게 된다.
생각만으로 벌써 몸이 달아오른다. 계산을 치루고 집을 향해 종종걸음으로 바삐 걸었다.
" 수정이년 코가 댓발이나 빠져서 한숨만 쉬더라, 보고 있자니 안쓰럽더라고.. "
거실 탁자위에 부루스타를 놓고 차돌배기를 구으며 말을 꺼낸다. 샤워를 끝내고는 거실에 술상을 차린 미진이다.
원피스 잠옷을 입은채 한쪽 무릎을 세우고 고기를 굽는데 노팬티다. 거뭇하게 음모가 드러나 눈을 유혹한다.
" 니가 받지 말라고 시켜놓고 안쓰러운건 또 뭐냐. "
술 한잔을 털어 낸 순간 바쁘게 차돌배기 한점을 들이대 입에 넣어 준다.
" 그 년이 우리가 이렇게 집에서 술 마시고 있는걸 알면, 모르긴 해도 까무러칠거야. "
" 그나저나 오늘 땡기는 모양이다.. 나한테 쳐다보라고 팬티도 없이 무릎까지 벌리고 있는폼이.. "
" 어차피 자기가 벗겨 줄거잖어.호호.. 벗기기 귀찮다며~ "
이젠 대놓고 자신의 남자처럼 스스럼이 없다. 미진이가 따라주는 술과, 안주까지 입에 넣어주는 호사에 취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