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생각없어

아무생각 없어 1

바라쿠다 2011. 10. 8. 10:38

몇년전, 코미디 프로에 젊은 친구 둘이 나와 말장난을 주고 받으며 시청자를 웃긴 코너가 있다.

하나는 진행자 역할이고, 다른 한사람은 초대손님 역할로 짜여진 2인조 코미디다.    

진행자가 초대손님으로 나온 조원석에게 어떤 주제를 던지면 전혀 엉뚱하고 기상천외한 말로 당황케 했다.     

듣다못한 진행자가, 당신 머리속에는 도대체 뭐가 들었냐는 식으로 면박을 주면..   이 조원석의 대답이 바로 그것이다.    

" 아무생각 없어. 피 ~스 "   능청스러움에 배꼽을 잡았었다.

난 조원석의 열렬한 팬임을 자처한다.     왜...  나의 이상형이니까 ~~~~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리라.       

나이 오십이 되도록, 머리속에 뭐하나 제대로 정립 되어진게 없는 놈이다.

나이가 오십이면 지천명이라고 하늘의 뜻을 따라 세상에 순응하며 산다는 말이지 싶다.       

하지만 나란 놈에게는 전혀 이해가 되질 않는다.       

뭣땜에 하늘의 뜻이라는 어려운 과제를 짊어져야 하는건지,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놈이 세상뜻에 순응하며

발맞춰 살아가야 하는건지, 복잡한 문구가 튀어 나와 나같이 단순한 놈을 헷갈리게 만드냐구..

더군다나 나이 사십이면 나보다도 한참 어린나인데 불혹이란다.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흔들리지 않을 나이란 뜻이란다.

이런, 제기랄..   여자 하나땜에도 정신줄을 놓는 인간에게 이 무슨 가당치도 못할 소린지 모르겠다.

각설하고,  지켜야 할 세상의 도리라는건 애초 나에게는 불가항력이라 할 만큼 뜬구름 잡는 얘기다.     

주위 사람들이 나를 보고 손가락질을 하던지,말던지 내 식대로 살아온게 벌써 오래전이다.       

어쩌면 순리에 맞춰 살아 간다는게 힘들어 내 스스로 포기 했는지도 모르겠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는 딸년마저 지 애비 알기를 나사가 빠지다 못해, 조립이 불가능한 아빠라고 치부해

버릴 정도니 더 말해 무엇하리..

하지만 나도 엄연히 숨을 쉬고 사는 인간인데, 인정받지 못한다고 기죽어 살일도 아니며 남들이 누리는 재미까지 포기

하고 전전긍긍 한대서야, 애초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헌법에도 위배되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하여, 원래 법 만큼은 철두철미하게 지키는 놈인지라, 남들처럼 누릴건 다 누리고 살려고 하는게 내 인생철학이 되었다.

비록 그것이 아무 생각없이 사는것 일지라도 어느 누가 뭐라 하겠는가..

 

아무 생각없이 일어난 시간이 오후 3시.  

평소에도 비슷한 기상시간이다.      남들이 보면 직장이나 사업체가 밤에 업무를 보는 직업인줄 알게다.   

이 시간이면 집에는 아무도 없다.     욕실에 들어가 샤워기를 틀어놓고 욕조속에 앉아 비누거품을 묻혀 온몸을 씻었다.

거실로 나와 TV를 틀어놓고 머리 마르는동안 냉장고를 뒤져 홍삼물부터 들이키고, 쇼파에 앉아 핸폰을 열어본다.

메시지 온 것을 일일히 확인하고는 그 중의 하나를 골라 통화버튼을 눌렀다.      하필이면 컬러링이 싫어하는 클래식이다.

~ 일어났네.. 어제는 사냥감이 없었나봐. ~~      

가끔 만나 술마시는 여자 중 하나인 김수정이다.

" 웬일이냐, 아침부터.. "       

재수없는 컬러링에 첫마디가 사냥감이라니, 오늘은 일진이 별로일듯 싶다.

~ 아침은.. 오빠나 아침이지, 공무원들 퇴근시간 다 됐구먼.  내 친구 미진이 알지..  심심하다고 오빠한테 전화해서

바람이나 쐬러 가자네. ~~        

하여간 팔자좋은 여편네들이다.      신랑들이 뭐하는 놈들인지 새벽까지 술 마시다 들어가도 관여치 않고, 술값도 항상

자기네가 계산하는 편이다.     그나저나 휘발유 값도 없는데..

" 귀찮어..   심심하면 이따 술이나 한잔하던지.. "      

결국 다시 전화가 와 일곱시 쯤에 막걸리집에서 만나기로 했다.       친구 민식이에게도 약속시간을 알려줬다.

그때까지는 얼만큼의 시간적 여유가 있어 집앞에 있는 아지트로 향했다.       어디라고 밝힐순 없지만 내가 사는 아파트

초입에 있는 카페다.

가끔 친구들과 같이 오기도 하지만,  집에 들어가다가 맹숭한 기분일때는 들려서 매상도 올려주곤 하는 집이다.

대신 오늘처럼 오후쯤 혼자 들릴때면, 단골이라며 차값은 굳이 안 받는다.     

주인여자 이름이 초희라고 40 정도는 됐을것이다.

가끔 딸년하고 한잔씩 해서 알고 지내는데, 우리 모친 얼굴은 어찌 알았는지 지나 갈때마다 인사를 하더란다.

" 그 동안 바쁘셨나보다. "       

올때마다 주는 칡즙을 내려놓으며 건너편에 눙치고 앉는다.

" 바쁘긴, 백수인걸 뻔히 알면서.. "       

마담이 고개를 돌리더니 구석을 향하여 손짓을 하자 한 아가씨가 다가온다.

" 여자들 땜에 바쁘잖어요. 호호..  인사해, 우리집 킬러 오빠야.  너도 조심해라. "     

" 안녕하세요,  정양입니다.  잘 부탁드릴께요. "     

새로온 아가씨가 인사를 하는데, 이곳에서 보기 드물게 이쁘다.

" 나한테 부탁할게 뭐 있나, 자기하기 나름이지..   어려 보이는데 나이가 몇이야.. "

" 나이 많은데 24..  진짜로..   민증 보여드릴까? "     

" 뭐하러 보여줘, 애들은 싫어.. "

" 이 오빠는 어린애들하고는 안놀아,호호..  딸보다 어리면 여자가 아니고 애들이란다.  너는 애들이야. "

" 피 ~ 그런게 어딨어, 아무리 그래도 남자들은 어린여자만 찾더라.. "

" 임마, 주인언니 말이 진짜야.  내가 무서워 하는게 딸년이거든. 후후.. 니가 아무리 이뻐도 자격미달이야. "

 

약속시간이 다가오도록 시간을 보내다 막걸리 집으로 향했다.     이미 친구 민식이와 수정이,미진이가 동동주를 앞에

놓고 키득거린다.     

수정이와 미진이가 등산복 차림으로 있는 폼이 자신들의 집에서 나올때를 짐작케 한다.

" 니들은 북한산에 와서 동동주를 마시는중이네. 후후..

" 한번도 약속시간에 제대로 오는적이 없냐, 오빠는.. "      

보자마자 입을 내미는 수정이다.   요즘들어 바가지 비슷하게 들이대며 챙기려 든다.    

틀에 갇히는걸 싫어하는 내 성격 탓에 가끔 말다툼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 그게 고쳐질수가 없지, 나하고 알고 지낸지도 30년이 넘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게 없어. "   

친구 민식이가 미진이에게 눈독을 들이는 중이라, 중간에 끼여 든다.

" 얘네들이 맛있는 음식 먹으면서 왜들 이러냐.  그만해라, 오빠 듣기 싫으니까.. "

" 그래, 그만해라.  오빠성격 뻔히 알면서..  소화도 안되겠다. 호호.. "       

그때 테이블 위에 올려둔 핸폰이 부르르 떤다.     메시지를 학인하고는 답장을 해주는데 수정이의 안색이 변한다. 

" 눈앞에 사람이 있는데도 미안해 하지도 않네,  핸폰에 문자 찍는걸 보면 날 완전 무시하는거야."

" 수정아 ~ 오늘 그날이냐.  왜 자꾸 들이대냐,들이대길.. 니가 마누라라도 되느냐구,  그렇게 간섭이 하고 싶으면

이혼하고 우리집으로 들어오든지.."

" 자 ~ 그만하고 술이나 한잔씩 하자구,  왜들 이러냐.."      

민식이가 술잔을 들어 분위기를 바꾸려 든다.

" 저 지지배가 자꾸 딴지를 걸잖어,  그런게 싫어서 혼자 사는줄 뻔히 알면서.. "

수정이와 나는 열받아 마시고,  미진이한테 마음이 있는 민식이는 작전상 술을 권하면서 술잔들을 비워갔다.

무슨 여자들이 주량이 얼마나 센지 벌써 동동주 주전자가 5개나 비워진다.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먼저번에도 술이 취한다며 집에 데려다 달래길래 수정이 집 근처에 내려주고 왔더니,   이 여자가 자기동네 지구대

문앞에 노상방뇨를 하다 들켜설랑, 나를 신랑이라며 핸폰을 바꿔준 일도 있었다. 

민식이 놈이 흥에 겨워 노래방까지 끌고가는 바람에 할수없이 따라갔지만 수정이년 땜에 조마조마하다.  

아니나 다를까,  노래방에서 나온 맥주까지 몇잔을 들이키더니 눈이 풀려설랑 술주정까지 해댄다.

" 야 ~ 최태성, 똑바로 해 임마. 너 까불다 죽는수 있어.. "   

등산화는 벗어 제낀체 쇼파 위에 양반다리까지 하고 앉아서는, 지 몸도 간수를 못하겠는지 비스듬이 등을 기대고 있는

꼴이다.

미진이한테 마음이 있는 민식이에게는 미안하지만, 서둘러 수정이 집을 아는 미진이와 택시를 잡아타고는 수정이를

바래다 줘야 했다.  

뒷자석에 앉아서 몸을 가누지 못하는 수정이를 챙겨주며, 다시는 만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택시에서 내려서는, 완전히 다리가 풀려버린 수정이를 들쳐업고서 빌라 3층까지 올라가야 했다.

 

" 띵 ~똥 .. 띵 ~똥 .. "

현관문이 열리고 수정이 남편인듯한 남자가 나왔는데, 별로 놀라지도 않는것이 가끔 있는일이라 미루어 짐작된다.

" 아이고 ~ 미진씨, 오랜만이네요.  친구 잘 둬서 수고많습니다.  이쪽으로 내려 놓으시면 됩니다. "

거실 쇼파에 내려놓고 나니 허리까지 뻐근하다.     집안을 대충 둘러보니 얼추 꾸미고 사는 폭이다.

" 괜찮어요, 나도 늦어서 가 봐야죠. "       

커피라도 대접하겠다는 수정이 남편에게 미진이가 인사를 대신한다.

" 저기, 미진씨 친구분이 고생하셨는데..  언제 시간되면 술이라도 한잔하시죠. "

제대로 정신이 박힌 인간인지,  지 마누라와 뒹군놈 인줄도 모르고 같이 술을 마시자는 건 무슨 시추에이션인지..

 

" 오빠 ~ 간단하게 맥주나 한잔 더하자. "     

큰길까지 걸어 나오다, 느닷없이 미진이가 태클을 걸어온다.

원래 아무 생각없이 살아가는 놈인데다가,  집으로 가기에는 아직 이른 시간이긴 하다.

" 수정이 남편은 마누라가 술이 취해 들어왔는데도 개의치를 않네. "    

" 그럴 자격이 없지,   오빠한테 얘기를 안했나 보네..     그전에 젊은 계집애한테 살림 차려줬다가 수정이년한테

된통으로 걸렸거든..   그 후로는 수정이 눈치만 보는거야,   그러니까 저런 상황이래도 말을 못하지. "

" 근데..   민식이 말이야, 너한테 마음이 있는거 같던데.. "

오매불망 미진이한테 눈독을 들이는 친구 민식이의 맘을 전하고자 했다.

" 싫어, 오빠 친구니까 걍 술이나 마시는거지, 뭐..   필이 안 꽂혀. "      

" 필은 무슨 얼어죽을. 후후..   미진이는 특이하네.   요즘 여자들은 능력있는 남자를 좋아하던데.. "

" 능력은 무슨 얼어죽을. 호호..   그 정도 능력은 나도 있네요. "       

내 흉내를 내면서 입을 가린채 귀엽게 웃는데 은근히 땡기기는 하다.

" 민식이가 섭섭하겠다,  그전부터 미진이를 어찌 해 보려고 눈독 들이던데.. "

" 어찌 해 보긴..   혼자서 그런다고 되나, 나한테 허락도 없이..   오빠가 들이대면 또 모르지만.호호.. "

" 내가 유혹에 약한걸 어찌 알았누. 후후..   니가 이쁘긴 해도 수정이 친구잖어. "

" 오빠 ~ 솔직해 봐라,  오빠가 그런거 따질만큼 양심적이었나..    내가 알기론 그게 아닐텐데, 수정이년이 주는 용돈

때문에 비위 맞춰주는거 아냐.. "      

수정이가 시시콜콜 떠벌릴 줄은 몰랐다.  에고, 쪽팔려..

" 옆에서 보는게 맞겠지, 변명하고 싶진 않다..   하지만 차를 갈아 탄다는건 쉬운게 아니잖어. "

" 선수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순진하네, 오빠는.. 호호..    첫눈에 뿅 가는건 애들이나 하는 짓이고, 걍 오빠하고 한번쯤

저질러 보고 아니다 싶으면 둘이 입 다물면 되는거지. "

" 그러다가 불이 붙으면 어쩔건데,  내가 복잡한건 싫어하걸랑. "

" 츠암 ~ 오빠가 어린애야?  내가 그런거까지 일일이 가르쳐 주게.. "

" 당근, 가르쳐 줘야지.  내가 원래 아무 생각이 없는 놈이잖어,후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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