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동안 고생 많았어, 우선 며칠간은 몸을 추스리라구.. "
철호와 성식이를 만나 향후 일을 의논하고 싶어, 일식집으로 불러내 점심을 먹는 중이다.
" 자기들도 그동안 고생했어.. 사무실 직원이 그러는데, 워낙 꼼꼼이 챙겨줘서 어려운 일은 없었다고.. "
창고에 남은 물건들을 정리해 준 철호와, 변호사를 대준 성식이한테도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 우리들이야 당연히 해야 할일을 한거니까 그렇게까지 인사 차릴 필요는 없잖아, 니가 정색을 하면서 고맙다고 할만큼
우리 사이가 멀어진 것 같아 섭섭하다. "
" 이번에 그 안에서 느낀게 많어.. 두 사람 충고대로 지나친 내 잘못도 있겠지만 약간은 서운하더라. 다른 사람이야
그렇다 쳐도 한때는 내 남편이고, 남자친구였어. 아, 물론 두사람을 원망하는건 아냐. 다만 어느놈이 나를 음해해서
이 지경까지 만들었는데, 두사람은 나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얘기를 하는거야.. "
" 그래.. 니 말도 일리는 있지 싶다.. 하지만 너 역시 누구의 틀에 얽매이는걸 못 견뎌 했잖어. "
" 내 성격도 문제는 있겠지만 두 사람은 나에게 특별한 존재라는 얘기야, 무조건적인 내 편이길 바라는거라구.. "
각자 자신들만의 생활이 있기에 엄밀히 따진다면 두사람의 잘못만은 아니겠지만, 그들에게 기대고 싶은 진희의
연약함일수 있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술잔을 만지작 거리던 철호가 입을 연다.
" 앞으로 어쩔 작정이냐? "
그것이 둘의 관심사인양, 진희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
" 에구 ~ 남자들이 배포들은 약해 가지고설랑.. 왜 이런 사람들을 골랐었는지 내가 한심한 년 이라니까.. 어쩌긴 뭘
어째, 당연히 명예 회복을 해야지.. 대신 나도 똑같은 실수는 하지 않을테니까, 믿고들 도와 주기나 해. "
" 영필씨의 투자금은 거의 마무리가 됐을걸. "
철호와 성식이랑 헤어진 진희는 영필이와 마주 했다.
자신을 투고해 고생을 시키고 많은 손해를 끼친 그 누구에게 전투의지가 불타올라 가만히 있을수가 없는 것이다.
" 투자금이야 어떻든 진희가 무사해서 다행이야, 고생했네.. "
말이야 좋지만, 자신이 빌려준 돈을 못 받을까 봐 내심 걱정을 했을 것이다.
이번 기회에 끝내고 싶지만, 자금력이 만만치 않은 영필이가 당장은 필요하다.
" 조금 서운하긴 했지, 내 안위보다 원금을 회수할수 없을까 봐 걱정 했을테니까.. 하지만 어쩌겠어, 세상인심이 그런걸..
영필씨를 믿지 못하게끔 한 내 자신도 문제가 있겠지.. "
" 어허 ~ 아니라니까 그러네..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 내 마음을 몰라 주는구만. "
" 아니라면 믿어야지, 뭐. 처음에 만났을때랑 많이 틀려진 느낌이야. 물론 내 짐작이 맞다고 볼수는 없지만, 그 안에서
있다보니 생각이 많아 지더라고.. "
앞으로 영필이를 만나더라도 새롭게 관계 정립은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진희다. 이번처럼 자신을 쉽게 보지 못하도록
경각심을 심어줄 작정이다. 영필이가 아니더라도 큰 돈이 필요할 시점은 아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저녁 늦게 사무실 옆 오피스텔에서 태호랑 마주 앉아 양주를 칵테일 해서 마시는중이다.
" 내일은 고태산과 정재윤을 만나야 할텐데, 어떤식으로 처리를 해야 할지 모르겠어.. "
숨기려고 한다면 알아낼 방법이 막막하다. 측근을 통해 투서를 하고 발뺌을 한다면 도리가 없는 것이다.
" 그냥 두 사람을 함께 만나 툭 털어놓고 찔러보면 감이 잡힐거야.. 의심을 받는 사람은 펄쩍 뛸것이고, 양심에 찔리는
찔리는 사람은 모르긴 해도 표가 나지 않겠어? "
태호의 말이 그럴듯 하다. 실마리가 잡힐수도 있음이다.
" 제법이네,우리 강아지.호호.. 요즘 들어 점점 마음에 들어,에고 ~ 이뻐라.. "
" 나 원래 머리는 좋았잖어, 마님 눈에만 바보로 보일뿐이지.. 그전에는 컴퓨터로 통했던 사람이야. "
" 어이구 ~ 그저 조금만 이뻐 해주면 재롱을 떤다니까.호호.. 빨리 옷이나 벗고 무릎 꿇어, 강아지야.. "
" 그건 조금후에 하고 할 얘기가 있어.. 이번에 인터넷 사업을 하는 곳에서 상장을 하는데 마님이 들어가야 돼. "
" ..................... "
처음 듣는 얘기라, 이해를 하지 못해 멀거니 태호를 바라본다.
" 영필이도 모르는 얘기야, 내 개인적인 거래처거든.. 메리트가 엄청나지 싶어, 어차피 상장을 해야 하는데 오너가
준재벌 아들이야. 이사진을 구성하긴 해도 어차피 형식적일테고, 마님의 이름으로 내가 1억을 넣을테니까 그곳에서
회의할때 참석만 하라구.. 모르긴 해도, 잘만 되면 황금알을 낳는 양계장이 될수도 있어. "
" 내가 컴퓨터에 대해 아는것도 없잖어. 태호씨도 무식하다고 나를 깔봤으면서.. "
" 옛날 얘기는 뭣땜에 들먹일까.. 지금은 내가 마님의 강아지잖어. 그리고 가능하면 오너와도 친분을 유지해야,
나중에 떡고물이 많이 떨어지니까 명심하고.. "
진정으로 자신을 위해 주는게 느껴진다. 투서를 한 인간을 구별하는 것이나, 돈이 될만한 정보를 가지고 자신을 밀어
주는건 웬만한 친분으로는 어림도 없다는걸 아는 진희다.
그렇게 무시했던 태호가 점점 친근함으로 다가온다. 잘 해주고 싶은 마음인데도 학대 받기만를 원하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어차피 오늘밤은 태호와 지내려고 집을 나선 진희였다.
" 오늘은 어떻게 해줄까, 우리 강아지가 원하는대로 귀여워 해줄께.호호.. "
아침에 태호가 깨워 일어난 진희가 샤워를 하고 나오니, 식탁에는 무럭무럭 김이 나는 커피와 토스트가 올려 져 있고
침대에는 자신이 입을 속옷까지 올려져 있다. 태호도 출근한다고 쇼파에 앉아 있다.
어쩌다 올가미에 채워 져 집에도 못 들어가고, 와이프의 섬김을 받아야 할 사람인데 오히려 못된 여자의 시종이 되어
있다.
" 자기야.. 웃도리 좀 벗어 봐. "
양주를 마시고 난 후에 태호가 원하는대로 가죽 채찍으로 때렸었는데, 술기운이라 심하게 매질을 한 기억이 난다.
취한중이었건만 태호의 몸에 선명한 매질 자욱이 불식간에 떠오른다.
와이셔츠를 벗었는데, 윗몸의 상처는 줄이 그려진 듯 온통 휘감겨 있어 보기에 딱할 지경이다.
" 괜찮어, 내가 원해서 했으니까 맘쓰지 말어. "
측은해 하는걸 눈치 챘는지, 오히려 태호가 위로를 하고 나선다.
" 병원에 가서 상담이라도 받아야 되겠어, 나도 더 이상은 자신없어. 어쩌다 재미로 한두번이지.. 매번 이렇게 살순
없잖아.. 창피하게 생각하지 말고 정신과라도 가 보자구. "
매질뿐만이 아니고 오줌을 마셔대는 태호 때문에, 변기에 앉아 볼일을 본 기억조차 희미하다.
" 알았어, 한번 갈테니까 그건 나에게 맡기고.. 진희는 오늘 만나는 두사람이나 잘 파악하라구.. "
" 혹시 모르니까 그 사람들 만날때 근처에서 기다려 줄거지? "
고태산과 정재윤의 사이가 틀어져서 서로 만나질 않지만, 사업관계로 합석을 하자고 진희가 우기는 바람에 노량진에
있는 일식집에서 조우를 했다.
" 두분 사이가 이런식으로 벌어져서 나도 안타깝네요. "
어려운 일을 겪었다고 위로의 말이 오가고, 몇순배 술이 돈 다음에 본론을 꺼내가는 진희다.
" 세상만사 새옹지마라고 더 한일도 있는 법인데, 까짓게 무슨 대수겠나.. 그저 진희씨가 걱정이지. "
고태산이 정재윤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며 상관이 없다는 투로 내 뱉는다.
" 나 역시 마찬가지야, 별로 신경쓸 일도 아니고.. "
정재윤 역시 단단히 비껴난 듯, 심기가 불편함을 드러낸다.
" 내가 검찰에서 들은 얘긴데 두 분이 나를 고발하셨다면서요. 그 이유가 뭔지 모르겠네.. "
느닷없는 내 말에 두사람이 놀라는 표정은 똑 같은데, 어느쪽이 당사자인지는 파악이 어렵다.
" 고발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뭣땜에 진희씨를.. 아 ~ 그러고 보니 니 놈이 술을 마시고 행패를 부리던 날에.. 이런
치사한 놈. 아무리 여자가 좋기로.. 못 먹는 감을 찔러 본다더니, 지가 좋아하는 여자한테 못된짓을 하다니. "
길길이 뛰는 고태산이다. 술이 취해서 자신에게 찾아와 진희를 놔 달라고 횡설수설 하길래, 여왕벌은 한 남자에게 속할
여자가 아니니 이 상태로 만족하라 타 일렀단다.
그랬는데도 진희와 아는 놈들은 가만두지 않겠다며 정재윤이 호언장담까지 했단다.
술이 취해서 그랬겠지 싶었는데, 창고에 있던 자신의 물건까지 빼 내어 다른곳으로 옮겨 버린 재윤이다.
" 무슨 모함을 하는거야? 내가 그랬다는 증거 있어, 있냐구.. "
이제사 조금 감이 잡히는 진희다. 고태산이야말로 태호를 두어번 보고도 아무런 내색도 않던 사람이다.
첩들끼리 싸워 머리가 빠졌다는 남자 얘기는 들어 봤지만, 숫놈끼리 질투를 해서 자신이 엮였다는 생각이 들자 기가
막힌다.
" 물건 달린 남자새끼가 나같은 여자땜에 질투를 해서 검찰에까지 투서를 넣었단 말이지.. "
" 그건 아냐, 그런게 아니라구.. "
정재윤이 부인을 하고는 있지만, 행동이 부자연스럽고 당당하지가 못하다.
" 아직도 이 여왕벌에 대해서 잘 모르나 본데, 지금 당장이라도 확인시켜 줄수도 있어. "
" ...................... "
겁 주는 말을 했더니, 금방 기가 죽는 정재윤이다.
" 더군다나 그런다고 죽을 여왕벌이 아니거든.. 사내새끼가 치사하게 뭐하는 짓이래.. 두고 보겠어, 진심으로 용서를
구할지 아니면 끝까지 잡아떼고 응당의 댓가를 치룰지.. 기한은 48시간이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