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쪽

반쪽을 찾아 17

바라쿠다 2011. 10. 11. 09:24

입원실 앞에서 하루종일 붙어있었다.     

수술을 끝낸 담당의를 만나 설명을 듣고 안심을 했지만,  초조하게 기다리던 우리 두사람은 한참을 입원실앞 쇼파에

앉아 지친 몸을 달래야 했다.

수술은 성공적이지만 골수가 체내에서 적응을 할때까지,  며칠을 관찰하며 기다리자고 한다.

성미를 부축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침대에 눕혀 이불을 덮어주고 방의 불까지 꺼 주고는 거실로 나와 쇼파에 누웠다.

한참동안 꿈을 꿨다.     전처인 수영이가 발가벗고 침대에 묶여진 자신에게 오줌을 먹이며 낄낄거리는..

초인종 소리에 눈을 떳다.    고차장과 금희가 찾아온 것이다.       수술이 잘됐는지 궁금해서 찾아왔노라고 했다.

안방문을 조용히 열어보니 아직까지도 곤하게 자고 있다.      잠에서 깰까봐 아파트 입구에 있는 호프집으로 향했다.

" 부모라는게 다 그런거다.   수술받은 애는 그렇다치고,  에미가 얼마나 애가 타서 지쳤으면 저렇게 곯아 떨어질꼬.. "

" 아까 병원에서부터 축 늘어져서 얼마나 놀랬는지 몰라요.   옆에 있으면 불편할까봐 거실에 있었죠. "

" 그래도 언니는 옆에 형부가 있어줘서 든든할거에요.   그전에 둘이 있을때도 형부가 도와준 얘기며,  사람이 진실돼

보인다고 의지하곤 했어요.   그러면서 욕심은 나는데 젊은 사람한테 못할짓 하는것 같다고도 하구요. "

그때 핸폰이 울려서 액정을 보니 울보였다.      집에 들어간다고 했더니 생맥주 마시고 싶다고 굳이 나온단다.

" 선배하고 금희씨 왔다니까 기어코 나오겠다고 하네요. "       

기력을 잃고 잠을 잔 성미의 허기를 채워 주려고 통닭 한마리를 미리 주문했다.

" 다 죽어가는줄 알았더니 생생하네,  갈사람은 빨리 가야하는데.호호.. "       

농담을 하면서도 생생한 성미의 얼굴을 보고는 안심이 되는 금희다.

" 이 지지배가 또 보자마자 언니를 보낼려구 그러네."     

내 앞에 놓여져 있던 맥주잔을 들고는 거푸 몇모금을  마신다.   갈증이 많았던 모양이다.

" 도대체 몇시간이나 잔거야,  형부 얘기로는 네시간인가 잤다는데.호호..  밤에 잠도 안 올거구, 이제 형부는 죽었다. "

" 그럼~ 밤새도록 껍데기를 홀랑 벗겨놓고 잡아 먹어야지. "       

야한 얘기를 스스럼 없이 할 정도로 많이 변한 성미를 보니, 딸아이를 수술시키고는 더 편안한 마음이지 싶다.

" 이번 일요일에 애들한테 금희랑 만나기로 약속은 해 놨는데.. "        

금희는 잠시 생각에 빠지는듯 하더니, 맥주컵을 들어 마신다.   성격이 밝은 금희도 이때만큼은 긴장이 되는 모양이다.

" 일단은 애들이 어떻게 받아 들일지 만나봐야 알겠네..   애들 반응이 어떨것 같아요? "

" 글쎄다..   애들도 지 엄마일은 대충 알고있어서 아빠 혼자 사는걸 걱정하긴 했는데, 만나서 어쩔지는 잘 모르겠어. "

" 애들이 착해서 안심은 되요.  처음 만나서 거부반응만 없다면 괜찮을것 같은데..   금희씨가 첫인상이 좋은편이라서.. "

" 그래, 금희가 성격도 밝은 편이라 애들도 잘 따를거야. "      

성미도 금희한테  힘을 실어주고 싶었는지 한마디 거들고 나선다.

" 어차피 만나보긴 해야지, 골치아프게 생각 안 할거야.   내 식대로 솔직하게 대할래.."   

" 자, 그런뜻에서 화이팅 한번하자구.. "       

금희가 결심한듯 하자 고차장이 맥주잔을 들어 건배를 하잔다.

 

골수이식 수술경과가 좋아 열흘후에 퇴원을 할수 있었다.      당분간 서울집에 지내면서 검진을 받기로 했다.

영애의 혈색이 점차 좋아지며 또래 애들처럼 뛰어 다닐 날을 손꼽게 되고,  영애를 바라보는 성미의 얼굴도 밝아져서

예전의 어두웠던 그림자를 찾을수 없었다.      

영애도 나를 많이 따르고, 지난 일요일에는 잠실 롯데월드에도 다녀왔다.

크게 행복하다고 말할순 없더라도 잔잔하게나마  이렇게 살아가는 것에 만족하고 싶다.

퇴근해서 식탁에 모여 저녁을 먹노라면 항시 웃으며,  눈에 보이진 않지만 서로에 대한 신뢰가 쌓이는 분위기다.

그러나 그 잔잔했던 기쁨마저 산산이 부서지는 일이 일어났다.     그날을 생각하면 지금도 아픔으로 다가온다.

최미진이 은행에 들렸다가 여동생을 만났는데,  오빠와의 진도를 물어보던 동생의 질문에 한달여를 만나지 못했다고

얘기하자,  오빠의 우유부단한 성격 때문이라며 동생이 주동이 되어 불시에 집으로 찾아왔던 것이다.

결국 오빠와 동거를 하는 애 딸린 여자의 존재를 확인하고는 시골집에 알려서 온집안이 난리가 났었다.

내가 회사에 있는 시간대에 시골에서 어머니가 올라오셔서는 성미와 오랜시간 얘기를 나눈 직후, 성미는 영애를 데리고 

나에게 말도없이 집을 나가 버렸다.     

내가 퇴근해서 집에 왔을땐 어머니와 여동생이 집을 지키고 있었다.

부모님 말씀을 거역하지 않았지만  그날 만큼은 내 주장을 굽히지 않았고, 고집을 밀고나갔다.

내가 좋아하고 같이 살고싶은 여자라고 주장을 했지만, 어머니와 여동생은 여우같은 여자에게 홀렸다는 식이었다.

나이도 많고 다른남자의 아이까지 키우는 여자를 며느리로 삼을수 없으며, 심지어는 동수의 장래를 망칠 여자라고 했다.

가장 가슴아픈 일은 성미가 떠난후에 본인의 핸폰을 바꿔 버리고는 연락 자체가 안되는 일이었다.

사실 처음엔 몰랐었다.      그녀의 빈자리가 그토록 클줄은 상상을 못했었다.      보고싶은데 볼수없고, 무슨 얘기라도

듣고싶고, 묻고싶은데 얘기자체는 내 맘속에만 있을뿐..     아무도 모르게 사라져 버린 그녀 때문에 가슴이 시렸다.

금희에게도 연락이 없었고,  춘천집에도 몇차례 다녀왔지만 흔적조차 없었다.       힘들고 가슴아픈 시간이 더디게 흘러

갔다.   

그러는 동안에 한달이 지나가고,  연말 제야의 종소리가 울렸다..     나하고는 상관없는 새해가 밝아왔다.

너무도 견디기 어려워서 며칠씩이나 몸살을 앓기도 했다.     몸살이 끝난후에도 손가락 하나 까딱거리기 싫은 동수다.  

몇십년만에 찾아온 추위라지만 동수에게는 남의 일이다.     지금의 일상이 모두 덧없고 무의미한 생활인 것이다.

 

구정을 며칠 앞둔 어느날,  최미진이 여의도로 찾아왔다.      막걸리 전문집에서 마주 앉게 됐지만 어색하기만 했다.

" 먼저번에는 본의 아니게 불편하게 해 드린것 같아서 내내 편치 못했어요. "     

" 아닙니다.   미진씨 잘못이 아니죠.    어찌보면 제가 더 미안한 마음이었어요.    이렇게도 빨리 제 자신이 변하리라곤

꿈도 꾸지 못했죠.    미진씨를 소개받을 쯤에 그녀를 만났습니다.     차츰 마음이 끌려 가더군요.    그런 시점에서는

미진씨를 만난다는 것이 옳치 못하다는 생각을 했구요."      

언제한번 만나게 되면 해주고 싶은 말이었다.    사과를 하는 그녀의 말에도 진심이 묻어나왔다.

" 너무 마음에 두지 마세요.   좋아하는 마음이야 어찌할수 없는 일이지요.   그보다 그분은 어찌되셨는지.. "

" 저도 알수가 없어 답답하네요.    아마도 어머니께서 심한 말씀을 하셨으리라 짐작이 갑니다.     그녀가 그런얘길

한적이 있거든요.    젊은 사람에게 짐이 되기 싫다고.. "

" 착한분이네요.   요즘처럼 자기 욕심만 차리는 세상에서..    동수씨를 위해 떠나면서도 마음은 아팠을거에요. "

그렇게 지난 얘기를 나누면서 한잔두잔 술이 늘어갔고,  그런 동수를 위로해주는 최미진이다.

술을 많이 마셨다며  동수를 걱정해주는 그녀를 택시에 태워 보내고는,  전철역 부근에 있는 포장마차로 들어갔다.

요 근래에 와서 술을 마시지 못하면 잠을 이룰수 없는 동수였다.     그것도 취할 정도가 되야만,  술기운에 잠이 들었다.

웬만큼 마셔서는 잠을 잘수가 없었다.    침대에 누웠다가도 다시 일어나 잠이 올때까지 식탁에서 술을 마셔야 했다.

당연히 회사에서도 표시가 날수밖에 없었다.     위에서 시키지 않더라도 시세흐름을 꿰고 있던 동수였지만,   이제는

그 모든것이 시들해져서 아무런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런 동수를 옆에서 지켜보는 고차장도 걱정이 태산이다.

그런 그의 마음을 위로해주고 예전의 동수로 되돌리려고,  여러차례 금희와 함께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동수 자신은 그런 고차장의 마음 씀씀이까지 부담스러워 했고, 혼자서 지내고 싶은 시간이 많아진 것이다.

 

오늘도 거나한 상태로 아파트 입구에서 택시를 내려, 집으로 휘적이며 걸어가는데 동수를 막아서는 그림자가 있었다.

" 무슨술을 이렇게 많이 드세요?   나한테는 그러지 말라고 호통까지 치던 사람이.. "

취한 눈으로 다가서는 그림자를 바라보던 동수의 정신이 퍼뜩 돌아온다.     그였다.   성미의 동생 박성필...

성필의 어깨를 잡고는 몇번이나 얼굴을 바라보던 동수가 그의 팔을 이끌어 집안으로 들어가 쇼파에 앉히고는,  욕실로

들어가 찬물로 세수부터 했다. 

" 누나가 극구 말렸어요.    동수씨를 좋아하긴 해도 자신으로 인해 피해를 줄순 없다고,  부모님도 누나가 있는곳을

알면서도 누나의 말대로 모른다고 했구요.   저 역시 몇번을 망설이다가 형님에게는 알려 드려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

자신과 동갑인 성필의 입에서 형님이라는 소리가 나왔지만,  오로지 성미의 소식을 알게 된 것만이 귀에 들어왔다.

" 지금 춘천에 있어요. 영애랑 둘이..   그런데 형님, 아빠가 될지도 몰라요..   누나는 시치미를 떼지만.. "

성필의 얘기는 충격이었다.      성미의 소식만으로도 놀라웠던 그에게 자신의 아이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성필의 말에

한동안 멍한 기분이었다.      

내가 그 생각을 왜 못했던가..  성미가 아닌 영애의 학교를 찾아봐야 했던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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