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왕벌

여왕벌 1

바라쿠다 2011. 10. 10. 19:57

올해 내 나이 38.    그동안 내 삶을 다시한번 돌아볼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

세상을 겁없이 바라보고 무리하게 사업을 키우다, 나를 시기한 사람의 투서로 인해 세무조사와 검찰의 수사를 받고

구치소에 갇히게 된 지금이다.

 

여자로서의 인생을 논하자 한다면 나의 처녀 시절은 또래와 마찬가지로 그저 평범했지 싶다.     

그닥 잘사는 집안은 아니었지만 비교적 평범한 회사원인 아빠밑에서 남들과 엇비슷한 추억을 만들어가며 지냈다.

공부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다만 여자이기 때문이었을까 거울앞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기억나기로는 엄마를 닮아서인지, 미모가 뛰어난 덕에 여고시절부터 남자들이 많이 꼬였던것 같다.       

근처에 있는 남학교 학생들의 시선을 끌어, 하교때는 학교 교문앞에 진을 치는 껄렁한 애들이 종종 있었고, 덕분에 주위

친구들에게 부러움과 질시를 받기도 했다.

단체로 친구들과 짝을 맞춰 미팅을 했던 남학생들 눈길 역시 나에게만 쏠리는 느낌을 자주 받게 되면서 자신감이나

우월감이 자리했으리라.

그저 가만히 앉아 미소만 짓고 있어도 그네들은 마냥 행복해 하는 표정들이었고 그런일이 자주 있다보니 분위기를 내

맘대로 주무르기가 용이했다.

당시 몇번인가 남자애들과 사귀기는 했지만, 고만고만 했을때 누구나 경험했던 일이었기에 특별히 기억되는 일은

없다.

여고를 졸업하고 변변찮은 성적 탓에, 서울근교에 있는 전문대를 다니면서 지금의 내 모습이 만들어 졌으리라 본다.

같이 몰려다니는 친구들 역시 나랑 비슷한 애들이 대부분이었다.      

조금은 넉넉한 집안에서 자란 애들이 그러하듯 학문이나 취업 따윈 뒷전이고,  또래 친구들에게 부여된 젊음을 즐기는

것에 서로가 경쟁을 하듯 지냈다.

특히나 명품에 대한 과시 의욕이 유달리 강한 친구들이 두엇 있었는데,  미모는 어느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만큼 자신이

있던 나였지만, 몇백만원씩 하는 옷이나 구두, 액세사리들로 치장을 한 친구들에게는 은근 주눅이 들곤 했다.

나의 허영심이 보통 사람들보다 크다고 스스로 느낀적이 있었다.        

사귀던 남자친구가 생일이라며, 비싼 이태리제 명품백을 선물 했을때, 허영심을 충족시켜 준 남자친구 앞에서 스스로

옷을 벗어 처녀를 주었더랬다.

 

대학을 졸업하고 작은 회사에 취직을 했다.     초년 시절에는 멋 모르고 직장 생활에 빠져 바쁘게 지냈다.

그 시점에 느낀게지만 됨됨이보다는 능력 위주로 주변의 남자들을 저울질하게 된 나를 보게 되었고, 하지만 그런것이

당연하다는 시각도 가지게 됐다.

바이어들의 출입이 많은 사무실에, 명품을 수입한다는 개인 오파상 한사람이 눈에 들어 왔다.

외제차를 끌고다니며 몸에는 명품으로만 걸치고 다니던 그가, 어느날인가 은근하게 데이트 신청을 해왔고  이리저리

재 볼 여유도 없이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응했다.

한번,두번 그가 내미는 명품 선물에 몸과 마음이 세뇌되어 갔다.      

사귄지 얼마 지나지않아, 그가 유부남이란걸 알게 됐지만 이미 나에게 그것은 중요치 않았다.        

달콤했던 몇달간의 시간이 흐른 어느날, 그의 부인이 어찌 알고는 둘이 있는 모텔방으로 쳐 들어와 그와의 관계가 끝나게

됐을때도, 그 간의 정때문이 아니라 허영심을 채워주는 사람이 사라졌다는 것만이 나를 우울하게 했지 싶다.

그와 지낸 일년여의 시간이었지만 배운것이 많았다.     그 중 하나가 여자임을 일깨워 준 섹스였다.

남자중에서도 섹스를 치루는 능력이 뛰어난 축에 드는 사람으로, 여러가지 체위를 바꿔 가면서 나를 즐겁게 했던 그는

탁월하게 여자의 몸을 다룰줄 알았다.

" 진희야, 넌 타고난 명기야..  널 안고 있으면 힘에 부칠때가 많아.. "

그의 말처럼 여타의 남자들과 섹스를 했을땐 별다른 감흥을 몰랐지만,  그와 일년여를 만나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성적인 감각이 훌쩍 성장할수 있었다.       

그에게서 들은 얘기지만 일반적으로 여자가 남자의 물건을 꼼짝 못하게 가둘수 있는 재주는 아무나 가질수 있는게

아니라고 했다.      

나에게는 별반 어렵지 않은 일이, 남자를 맘대로 요리할수 있는 기술이 된다는 점도 그 시절에 깨달았다.

 

그 비슷한 시점이었을게다.     

대학시절의 친구들과 놀러간 나이트클럽에서 지금의 애 아빠를 만났다.    

첫인상에서 풍기듯 부자집 아들이었다.    

그 역시 친구들과 놀러왔는데, 그들 모두는 부티가 날만큼 차려입은 입성들이 훌륭했다.

그 무리중에 나에게 반한 두 친구가 대시를 해 왔다.       물론 처음엔 결혼상대가 아닌, 단순히 즐기기 위한 마음으로 

둘 사이를 번갈아 만나며 데이트를 했다.      

그 두사람 역시 그런 내 마음에 들기 위해서 경쟁을 하기 시작했다.

애 아빠인 철호는 큰 사업을 하는 부친밑에서 자라 씀씀이도 크고 자기 과시욕에 젖어, 누구한테 지고는 못 사는 성격이고

깔끔한 외모 탓에 주위에 여자가 끊이질 않았다.      보란듯 외제차를 몰고 다니며 돈의 위력을 과시하곤 했다.

그의 친구 성식이는 잘사는 집안까지는 아니지만서도, 공무원인 부모밑에서 교육을 받고 자란 때문인지 명문대를 

졸업하고 누구나 알아주는 대기업에 입사한 사회 초년생이었다.      생김새도 반듯해 모범생의 이미지를 풍겼다.

번갈아 데이트를 하며 줄타기를 즐겼지만, 어느정도 친해지자 둘 사이에서 마음의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성식이는 머리가 좋고 생김새 역시 내가 평소 좋아하는 참신한 이미지로, 그와 있으면 마음 한켠 뿌듯함이 일었고, 철호는

내 허영심을 채워줄수 있는 능력이 있었을 뿐 아니라 살아가는 패턴까지 닮았다.

 

" 내일 뭐 할거야, 별구경 가지않을래? "    

금요일 오후,  진희에게 데이트 신청을 한 성식이다.

성식이는 진희를 처음 본 그날을 잊을수가 없다.     우연히 친구들과 어울려 나이트에 놀러갔던 성식이는, 수많은

여자들 중에 확연히 눈에 띄는 진희를 보고는 그만 첫눈에 반하고 말았다.     

여러 친구들과 어울려 가볍게 몸을 흔들고 있는 그녀는 눈이 부실만큼 너무나 아름다웠다.    

같이 간 친구들 모두가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할만큼, 치명적인 매력을 뿜어냈다.

철호가 웨이터를 불러 팁을 쥐어주고, 그녀들을 룸으로 초대해 값비싼 양주를 시켜 환심을 샀다.

서로가 자신을 간략하게나마 소개하고는, 누구랄 것도 없이 웃고 떠들며 격의없이 어울려 가면서 가끔씩 진희와 눈빛이

마주쳤을때, 성식이는 단박에 그녀에게 빠져 버렸다.

어느 누구에게나 당당하던 그녀의 눈빛은 결코 거만하지는 않았지만, 유독 그 눈길을 접한 성식이는 불가항력적으로

자신이 위축됨을 느꼈다.      

학창시절부터 여자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던 성식이도, 그녀 앞에서는 한낱 고양이 앞에 겁먹은 쥐처럼 그녀와 눈빛을

마주치지 못하고 시선을 거두어야 했다.

다행히 그녀는 철호와 자신에게 호감을 보였고, 그녀와 단둘이 저녁에 만나 첫 데이트를 하던 날에는 세상을 모두

얻은것처럼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

철호와도 만나는걸 알았지만, 진희에게 빠져버린 성식이는 하등의 선택권이 있을수가 없었다.    

아직은 두사람 중 누구의 소속이라고는 할수 없는지라, 둘을 저울질하는 진희의 선택에 뽑히도록 점수를 따야만 했다.

대기업 초봉이란것이 웬만한 가족이 생계를 이어갈만큼 적지는 않은 액수지만, 진희의 마음을 얻기위해 월급의

대부분을 써야 했고, 철호처럼 외제차는 아니지만 중형차를 할부로 뽑아 진희의 마음에 들기위해 무던한 노력을 했다.

오늘을 디데이로 잡은 성식이는 나름 많은 생각끝에 결론에 이르렀다.      

아무리 진희에게 명품 선물을 한다던지, 분위기 좋은곳에서 데이트를 한다손 치더라도, 상대적으로 철호의 경제력에는

당할수가 없다는 판단이었다. 

진희를 얻기위해선 먼저 도장을 찍어 놔야겠다고 결심했다.

이미 보름전부터 오늘을 위한 준비를 해 왔다.     진희의 회사앞에서 픽업을 해서는 고속도로에 차를 올렸다.

" 갑자기 무슨 별구경이래..  고속도로까지 타면 너무 오래 걸리는거 아닌가. "

" 그렇지 않을거야,  꼭 집에 들어가야 한다면 조금 늦겠지만 다녀 올수는 있어. "

두시간 남짓 달린 덕에 강원도 영월에 있는 별자리 천문대에 도착할수 있었다.      

미리 예약해 놓은 펜션입구 공동식당에 들어 가 산나물로 차려진 저녁을 먹고는 천문대로 올랐다.        

금요일 저녁이라 우리처럼 별구경을 온 연인들도 간간이 마주쳤다.       

대형 망원경속에 보이는 밤하늘의 별들은 경이롭기까지 했고, 아름다운 우주를 바라보는 진희의 얼굴도 감동에 젖은듯

눈을 떼지 못한다.

 

진희는 나름대로 계산이 있었다.     고속도로에 들어섰을때부터 어느정도 성식이의 의도를 짐작할수 있었다.

하지만 짐짓 모르는 척 했을 뿐이고, 그동안 성식이가 자신을 떠 받들듯이 한 행동으로 봐서, 무리수는 쓰지 않으리라

짐작은 했다.    

설사 덤벼든다 한들 호감이 가는 그를 못이기는 척 받아주리라 생각까지 하면서, 다음 행동을 기다렸다.

철호와도 마찬가지지만 어느정도 친해진 마당에서 더 이상 줄다리기를 하기는 어려웠기 때문이다.

펜션을 예약했는지 열쇠를 건네받아 아담하게 꾸며진 별실로 향했다.

별실문을 열고 들어서자 거실 바닥 한가운데 촛불이 하트모양으로 펼쳐져 있고, 촛불들의 중앙에 의자 하나가 놓여있다.

뜻밖의 풍경에 조금은 과장스럽게 감탄하는 척을 하자, 그가 나를 이끌어 의자에 앉히고는 내 앞에 무릎을 꿇는다.

하는짓을 지켜볼 양으로 다리를 꼬고는 그를 바라봤다.     점퍼 안쪽 주머니에서 핸폰보다 약간 큰 쥬얼리 케이스를

꺼낸다.

케이스를 열어 내 눈앞에 펼쳐 보이는데, 작은 알이 박힌 목걸이로 진품인듯 밝은 빛을 발한다.

" 진희야 ~ 그동안 눈여겨 보다가 이제는 내 마음을 전해야겠다고 생각했어, 평생 너만을 바라볼께. "

내심으로야 얼른 받고 싶지만, 허락을 하게 된다면 쉽게 볼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 글쎄..  갑자기 이런 일을 당해서 어째야 할지 모르겠네.  성식씨가 나에게 잘해 주는건 알지만 아직은 누구한테 나를

맡긴다는게 좀 그래.. "    

어쩌면 타고난 천성이겠기에, 남자를 조급하게 만드는 법을 이미 터득한 진희다.

전에 사귀던 유부남에게서 많은것을 경험했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 성식이의 얼굴에 곤혹스러움이 스쳐 가는듯

싶더니 입을 연다.

" 지금 당장 결혼해 달라는건 아냐..   지금처럼 진희 옆에 있으면서 기회를 줬으면 하는 뜻이야. "

말을 마치더니 무릎걸음으로 다가와, 다리를 꼬고 있던 내 맨발등에 머리숙여 키스를 한다.    성식이의 모습을 도도하게

내려다 보며 진희는 쾌재를 부른다.   

~ 이제 넌 내거야.. ~

" 나도 성식이 오빠를 좋은사람으로 생각하지만, 아직까지는 간섭받고 싶지 않아..   내 의견을 따라만 준다면 오빠가

원하는 대로 옆에 있어도 좋아. "       

이전이나 지금이나 변한게 없는데도, 성식이는 감동 받은것처럼 고마워 한다.

일어서더니 내 목에 목걸이를 걸어 주고는 나를 이끌어 주방으로 데려간다.    

주방식탁 위에는 은은한 조명 밑으로 와인과 안주가 셋팅되어 있다.    

그가 하는대로 맡긴다는 듯 수줍은 모습을 보이며 내숭을 떠는 진희다.

서로의 잔을 부딪치며 분위기에 취해 있을때 진희의 핸폰이 울린다.     핸폰을 열어보니 철호의 이름이 뜬다.

대수롭지 않은듯 성식이 앞에서 통화버튼을 누르는 진희는, 두사람의 질투를 끌어 내려는 속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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