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게 장난이 아냐

사는게 장난이 아냐 37

바라쿠다 2012. 12. 12. 16:10

" 아침 먹어야지.. "

엄미리가 침대 머리맡에 앉아 나를 내려다 본다.     그녀와 함께 불타는 밤을 만끽하던 민식이가 새벽녘께에 돌아 갔고,

시간이 너무 늦어 미경이 집에 가기가 애매했던 나로서는 내친김에 그녀의 침대에서 잠이 들었다.

" 그냥 놔 두지, 번거롭게 아침까지 차렸대.. "

" 그래도 그럴수는 없지.. "

일찍 샤워를 했는지 그녀의 몸에서는 향긋한 비누 냄새가 풍겼고, 머리도 단정히 빗어 뒤로 묶은 모습이 단아하다.

엊저녁 그다지도 요염스레 울부짓던 그녀는 어디로 갔는지 신기한 일이다.     저토록 포근한 주부의 인상을 가진 여자가,

마치 섹스의 화신인 양 두 남자를 번갈아가며 받아 들이면서도 지치지도 않아 보인다.

" 왜, 누이를 만족시켜서?   후후.. "

" 또 놀린다, 얼른 씻어.. "

자기딴에도 쑥스러운지, 살짝 볼 끝에 홍조가 어리더니 안방을 나간다.

방에 딸린 화장실 세면대에서 대충 세수를 하고는 주방으로 나갔다.    앞치마를 두르고 된장찌게를 식탁에 올려 놓는

그녀의 모습에서 제법 주부 티가 난다.

" 뭘 이렇게 차렸어요, 아침인데.. "

" 차려주고 싶었어, 맛 없다고 흉보기 없기.호호.. "

오랫동안 혼자 사는게 몸에 밴 여자들이 술좌석에서 농담처럼 풀어내는 얘기가 있다.     남편과 같이 살때는 그렇게나

집안 일이 하기가 싫고 지겹더니, 만약 다시 옆지기가 생긴다면 정성스레 밥을 지어 먹이고 싶어 진다는 얘기를 종종

들었다.

엄미리도 그런 경우가 아닌가 싶다.    혼자만의 자유스러움이 편하기도 했겠지만, 가끔은 비어있는 옆자리가 쓸쓸하기도

했을 터이다. 

" 민식이는 어때요? "

" 좋은 사람이야, 점잖고.. "

" 다행이네, 누이한테 소개시켜 놓고는 조심스러웠는데.. "

" 와이프가 임신했다고 옆에 오지도 못하게 한다며?   날마다 들렸다가 가.. "

타고난 정력을 어쩌지 못해 가끔씩 변태업소를 찾아 해결하기도 한다는 민식이가, 엄미리를 만나서는 마음껏 회포를

풀었을 것이다.

" 잘 됐네, 두사람이 그렇게나 궁합이 맞으니.후후.. "

" 나도 좋아..   서로에게 얽매지 않아도 되니까.. "

이혼이란걸 하고는 혼자 사는 외로움을 못 견뎌하던 그녀가 남자를 골라 동거라는 방법을 써 보기도 했지만, 같은 틀

안에서 부대끼며 살다보니 잦은 싸움이 있었다고 한다.

" 박선희는 어떻게 아는 사이유?    끌어들이기가 만만치 않았을텐데.. "

" 조카야, 언니 딸..  우리 언니도 나처럼 한 미모 하걸랑.호호.. "

" 그래요..  난 처음 듣는 소리네.. "

" 동훈씨도 모른척 해, 선희랑 그렇게 하기로 약속했거든..   이모가 이혼녀라는게 걔한테는 데미지가 될수도 있잖어.. "

" 그러죠, 뭐..  그게 내가 할일이기도 하니까..   아뭏튼지 고마워요.. "

영화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만큼 이름 있는 여배우를 끌어다 준 그녀의 마음씀이 진심으로 고마웠다.

" 피 ~ 서운하네..   우리끼린데 고맙긴.. "

" 우리 사이가 어떤 사인데, 속궁합 맞춘 사인가.후후.. "

" 꼭 그래서만은 아니지, 이상하게 동훈씨만 보면 친동생처럼 편안하더라..  자꾸 챙겨주고 싶구.. "

남자 없이 살수없는 여자로 태어나긴 했지만, 밝히는 여자로 비쳐지는건 싫다고 했다.    기본적인 의식만큼은 지키고저

나름 애를 쓰는 그녀가 안쓰러워 보인다.

" 동생 잡아먹는 누이도 있나.후후.. "

" 정말 미워죽겠어.. "

" 아야 ~  후후.. "

옆에 앉아 반찬을 챙겨주던 그녀가 허벅지를 꼬집는 바람에 수저가 식탁 아래로 떨어진다.

 

" 환영합니다, 박선희씨.. "

" 잘 부탁드릴께요.. "

계약껀 중에도 대박인지라 프라임의 실질적인 대표인 남선배도 사무실에 나와야 했고, 박선희와 나까지 셋이서 서류를

마무리 했다.

사무실 직원인 미스최와 미스리도 박선희의 실물을 보고는 모두들 자기의 일인양 기뻐들 했다.

" 필요한게 있으면 언제든 연락줘요, 우리도 최대한 선희씨한테 신경쓸테니까.. "

" 네, 그럴께요..   그럼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

" 조만간 또 봅시다.. "

나이는 어리지만 워낙 흥행이 되는 배우라서 그런지 나도 모르게 예를 갖추게 된다.     단발 영화 한편의 출연료가 수억이

호가하지만 광고 수익도 적잖이 들어올 것이다.    그에 따라 사무실로 떨어지는 콩고물도 만만치 않은 까닭이다.

" 제대로 큰 거 하나 건졌네, 수고했다.. "

" 축하드려요, 이사님.. "

박선희가 사무실을 나가자 자축하는 분위기가 됐다.     남선배를 비롯한 모든 사무실 식구들이 한결같이 좋아한다.

" 커진만큼 준비할게 많아요, 승용차도 사야 하고 사람도 더 뽑아야지 싶어요.. "

스케줄이 많아진 유정이에게 차를 하나 배정해 줘야지 싶다.     더불어 미경이까지 유용하게 쓸수 있을것이다.

" 그런 투자야 뭐가 아깝겠누, 김이사가 알아서 하라구.. "

" 미스최~ 순호 좀 불러, 내근을 시켜야겠어.. "

" 순호를 사무실에서 쓰게요? "

" 응, 왜 싫어? "

" 그게 아니고, 갑자기 그러시니까.. "

" 갑자기가 아냐, 여태까지 쭉 지켜봤어..   눈치가 빨라서 잘 하지 싶어.. "

이연우의 신곡이 음악프로에서 자주 들리면서 좋은 호응을 보이고 있다.   개그맨들의 인원도 많아지고 그네들의 행사도

그만큼 늘어나기에, 앞으로 나혼자 처리하기에는 벅찬 감이 있다.     순호를 잘만 가르치면 제 역할은 해 내지 싶다.

" 조금전에 방송국 국장님이 이사님을 뵙고 싶다고 전화왔었어요.. "

" 무슨 일인지는 모르고.. "

" 정현석 PD가 좋은일이라고 그러던데여.. "

박선희와 매니저먼트에 대한 얘기를 나누는 중에 연락이 온 모양이다.   일면식도 없는 간부가 직접 찾는일은 처음이다.

" 높으신 양반이 어쩐일로 김이사를 찾누.. "

" 그러게..  한번도 만난적이 없는데.. "

" 뭘 ~ 좋은일이네..   벌써 니 소문이 방송국까지 퍼진 모양이다.후후.. "

대표이사인 남선배를 제쳐두고 날 만나려는 의도는 모르지만 피할일은 아니다.     대외적으로 내 이름이 알려지게 된건

고무적인 일이다.

" 가 보면 알겠지,뭐..   그나저나 오늘은 회식이라도 해야지.. "

" 어머 ~ 진짜요? "

" 그래, 맘껏들 먹어..  오늘은 내가 쏠테니까.. "

" 고맙습니다, 사장님.. "

사무실이 활기를 띠자 남선배도 한껏 기분이 좋은 모양새다.     한발 물러나 있던 작금의 태도에서 벗어나, 직원들의

회식까지 챙기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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