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게 장난이 아냐

사는게 장난이 아냐 39

바라쿠다 2013. 4. 3. 19:01

갑자기 바빠진 사무실이다.   

미리 예상했던 터라 미스최의 동생 순호를 내근으로 돌리긴 했지만 아직은 소소한 심부름이나 소화할 뿐인지라, 내가 직접

처리해야 할일이 많아진 탓이다.

가수 이연우의 노래가 뜨기 시작한다는 소문에 TV 음악 프로그램등에서 섭외가 줄을 이었고, 박선희를 주인공으로 영화를

만들겠다는 제작자들도 심심치 않게 나를 찾았으며, 광고를 찍겠다면서 프로덕션에서 페이를 저울질 해 오기도 했다.

" 순호야 ~ 방으로 커피 두잔 가져와.. "

" 제가요? "

" 그래, 임마..  니 누나 바쁜거 안보여? "

순호에게 시킬일이 있어 방으로 불러 들였다.

커피 두잔을 쟁반에 받쳐 든 순호가 주뼛거리며 방 안으로 들어선 모습이 위태로워 보인다.

" 그 쪽으로 앉아라.. "

" 네.. "

" 커피마셔.. "

" ...네.. "

아직 사무실로 출근한지 며칠이 지나지 않았기에 조심스러워 하는 폭이다.

" 너 말이다..  혹시 CCTV는 다뤄봤냐? "

" 잘 모르는데요.. "

" 당장 배워.. "

" ................. "

" 용산에 가면 가르쳐 줄거야, 내가 미리 연락을 취해 놨으니까.. "

" 지금요? "

" 그래..  거기서 컴퓨터에 연결하는거랑 작동법을 가르쳐 줄거야, 듣기로는 나도 할수있지 싶으니까 너는 더 쉽겠지.."

쌍동이 자매들이 숙식을 하는 거처에 CCTV를 설치할 생각이다.

국회의원이나 되는 작자가 성상납이나 받으려는 작태를 보자니 기가 막혔지만, 방송국의 국장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막강한

힘을 가진 위인이니 모르쇠로 일관할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의 압력에 못이겨 들어주기는 해야겠지만, 혹시 모를 앞날에 대비해 바람막이가 되어 줄 증거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겠다는 생각에서다.

 

태어나  처음으로 와 본 교도소라 마냥 어색하기만 하다.

더군다나 전국구 건달로 이름이 난 미경이의 남편이 뭣때문에 보자고 했는지 의구심마저 잔뜩 있던 터라, 그 어색함은

자꾸 무거운 중압감으로 변해만 간다.

길게 늘어선 면회소 앞에서 순번을 기다리다가 스피커에서 호명하는 3번 방으로 들어섰다.

미경이도 많이 어색한지 나와는 약간의 거리를 둔 채, 죄수들과는 쇠창살로 구분 지어진 면회 창구에 섰다.

이윽고 교도관의 인솔에 따라 죄수복을 입은 건장해 보이는 사내가 나타난다.

" 잘 지내지, 오랜만이야.. "

" ...네.. "

" 동훈씨라고..  반갑네.. "

" .................. "

잠깐 미경이에게 시선을 둔 그가 나를 향해 말문을 열었으나, 뭐라고 답례를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 유정이 엄마는 나가서 기다리지, 이 친구한테 할 얘기가 있으니까.. "

그의 말에 내 얼굴을 잠시 바라보던 미경이가 고개를 떨구고는 면회소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 그만 자리에 앉게나.. "

" .................. "

그때까지 어찌 대처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서 있었기에, 그를 마주하고 자리에 앉았다.

" 양해도 없이 말을 놔서 미안하구만, 나하고는 나이 차이가 많다고 들었어.. "

" 편한대로 하시지요.. "

" 유정이 엄마한테 들었지, 자네가 많이 도와줬다고 하더이.. "

" 그저 운때가 맞았습니다.. "

눈매가 날카롭지는 않지만, 어딘가 모르게 위압감이 느껴지는 기분이다.    모든걸 갈무리 한듯 일말의 동요도 보이지

않는 그 눈빛에 이미 남자로서는 졌다는 표현이 맞을것이다.

" 맘씨도 따뜻한 사람이라고 하더군.. "

" ................... "

" 내 여자랑 사귄다고 따지려는건 아닐세, 알다시피 난 이곳에서 죽을때까지 썩을 몸이야.. "

" ...며칠전에 들었습니다.. "

" 내 대신 딸과 미경이를 돌봐줘서 고맙네..  어떤 친군지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어.. "

" ................... "

말투의 높낮이가 적고, 보스다운 면모를 지닌 인물이다.    건달이랍시고 우쭐대는 부류들과 달리 훨씬 위엄이 있다.

" 자네가 미경이와 인연을 맺는다고 해도 상관않겠네.. "

" 아직 어찌 될지는 모릅니다, 우연찮게 만나게 됐습니다만.. "

" 알아, 어떤 결정을 해도 자네한테 책임을 물을 생각도 없고..  다만 지금처럼만 따뜻하게 보살펴 주면 좋겠어, 내 바램은

거기까지야.. "

" .................. "

" 직접 자네를 보니 안심이 돼, 야비한 친구는 아닌것 같애서.. "

" 좋게 봐 주셔서 고맙습니다.. "

잠깐의 만남이지만 나쁜 의도는 없는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    갇혀있는 몸으로 자신의 가족을 돌보지 못함에 내심으로

생각이 많았을 터였다.    어렴풋 그의 진심이 느껴진다.

" 연예계에서 일하려면 어려운 일도 생길거야..   영등포에 하마라고 있어, 도움 받을일이 있으면 찾아가게..  내 일처럼

도와줄테니까.. "

" .................. "

" 이만 가보게..  내가 거둘 일을 대신해 줘서 고마우이,동생.. "

말을 마친 그가 내 말 따위는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들어왔던 문으로 등을 돌리고야 만다.

그가 사라지고도 잠시동안 자리에서 일어서지를 못했다.   동생이라고 부른 그의 마지막 말이 귓전을 맴돌고 있다.

 

" 뭐래.. "

" 별말 없었어, 당신하고 유정이를 돌봐줘서 고맙대.. "

" 그렇지?   나쁜 사람은 아니야.. "

아마도 유정이 아빠를 만나는 동안, 밖에서 내내 혼자서 초조했을지도 모른다.

미경이의 말마따나 꿈많던 시절 자신을 옭아맸던 남편과, 지금의 남자가 대면을 했으니 여러가지로 착잡했을 것이다.

" 이제 그만가지, 유정이가 올 시간이 지난거 같은데.. "

" 응.. "

교도소 안 쪽으로 한번 눈길을 준 그녀가 몸을 돌린채 걸음을 옮긴다.

승용차를 세워 놓은 주차장까지 걸어오는 동안 땅 끝으로만 시선을 둔 그녀의 어깨를 살며시 안아 주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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