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게 장난이 아냐

사는게 장난이 아냐 38

바라쿠다 2013. 1. 9. 14:20

" 반갑습니다, 김동훈입니다.. "

" 바쁜 사람을 이렇게 불러서 미안하네, 이 쪽으로 앉지.. "

방송국 4층 전체를 제작 1국에서 쓰고 있었다.    한개층이라도 워낙 평수가 넓어 그 곳에서 근무하는 인원만 해도 백여명은

될 듯 싶다.

여의도 광장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창가에 위치한 국장실에서 처음 대면한 그가 쇼파를 가리키는 모습에서 뭔가 부탁할

일이 있으리란 냄새가 풍긴다.

머리가 적당히 벗겨진 것이, 오히려 여유로운 부르조아를 떠 올리게 하고 나이가 50은 족히 넘어 보인다.

" 김이사, 이번에 나 좀 도와줘야겠네.. "

" 무슨 말씀이신지.. "

여직원이 티 테이블에 차를 놓고 나가자, 다짜고짜 국장이 무릎께까지 바짝 다가와 앉는다.

" 왜, 정PD 프로에 나오는 쌍동이 자매 있지.. "

" 네, 그런데요.. "

방송국에 오기 전 만약의 경우에 대해 몇가지 예상을 하고 있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맞아 떨어짐을 떨칠수 없다.    

어줍잖은 끝발로 성 상납이나 바라는 인간이 있지 싶은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 어떤 양반이 걔네들을 소개시켜 달라고 성화지 뭔가.. "

" 소개라뇨, 걔네들하고 재미라도 보겠단 얘기 같이 들리네요 "

" 면목은 없네만 바로 짚었어.. "

" 그건 아니죠, 아무리 국장님이래도 이건 아니라고 봅니다.. "

누군지는 몰라도 어차피 힘이 있는 그네들의 요구를 무시할순 없겠지만, 최소한 그에 상응하는 이익은 챙겨야 한다고

마음을 먹기도 한 터다.

먼 타국에 돈을 벌기 위해 온 쌍동이 자매 역시 밤무대의 댄서 일조차 마다치 않고 있지만, 너무 쉽게 응해 주는 인상을

줄수는 없는 노룻이다.

" 어허 ~ 왜 이러시나..   김이사 입장이야 이해는 되지만 내가 지금 사면초가란 말이지.. "

" 글쎄, 걔네들은 그런 애들이 아닙니다..   여기 한국까지 왔을때는 나름대로 꿈을 가지고 왔구요..   대학에서 어학

연수까지 받으면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데, 그런 애들한테 매춘까지 시킬수는 없습니다.. "

최대한 버틸때까지 버티다가 마지 못해 받아 주는 척을 해야, 이네들과 끈끈한 유대 관계를 맺을수 있고 그에 따른  이득도

챙길수 있을 것이다.

" 이렇게 하지..   우리 제작국에서 만드는 작품마다 김이사네 식구들을 우선적으로 케스팅하겠네..   그러니 이번만큼만은

내 부탁 좀 들어주게나.. "

" 도대체 그 양반이 누구길래 국장님의 체면까지 구기면서 이러시는지 이해를 못하겠습니다.. "

" 어차피 김이사도 알게 될테니까 얘기함세..   문공위 국회의원이야, 방송국에서는 그 양반의 눈치를 안 볼수가 없구.. "

" 문공위 의원 정도면 몸가짐을 더 바르게 해야 하는거 아닌가요?   이게 무슨 경운지, 내 참.. "

국장의 입장이야 이해가 가더라도 칼자루는 내 쪽에서 쥐고 있으니 느긋하게 대처를 하기로 했다.    

바짝 몸이 단 국장의 입에서 우리 사무실 소속 탈렌트들의 캐스팅 약속까지 받아낸 지금에 있어, 어쩔수 없이 국장의

부탁을 들어 준다는 인상만 심어주면 될 일이다.

 

" 오늘 왜 이렇게 심각해, 무슨 걱정 있어? "

사무실에서 퇴근을 해, 유정이 집으로 와서는 셋이서 저녁을 먹는 내내 미경이의 안색이 어두웠다.

유정이가 제 방으로 들어가고, 거실 쇼파에 앉아 배기태가 나오는 개그 프로를 같이 지켜 보다가 궁금증을 참아 내기가

어려웠다. 

" 방으로 들어가 기다려, 술상 차려 갈께.. "

주방으로 가는 미경이의 뒷 모습에 거역할수 없는 분위기가 느껴지기에 시키는대로 안방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차를 마실때 내 놓는 작은 소반 위에 마시던 양주와 치즈,아몬드를 받쳐 들고 미경이가 들어선다.

뭔가 할말이 있지 싶어 그녀가 만들어 준 언더락스 잔을 홀짝이며 기다리고 있건만,  미경이 역시 술을 마실뿐 가타부타

침묵으로 일관중이다.

" 얘기 안 할거야?    디지게 궁금하네.. "

한동안 고개를 떨군채, 미동조차 없던 미경이가 고개를 들어 나를 마주 보는데 그 큰 눈에 눈물이 가득 담겨져 있다.

" 오늘..  유정이 아빠 만나고 왔어.. "

사람을 둘 씩이나 죽이는 바람에, 무기징역을 언도받아 교도소에서 복역중이라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난다.

" 면회 갔었단거야? "

" 응..  자기를 만나보고 싶대.. "

" 날?   나를 왜..  나에 대해 얘기를 해 줬나 보네.. "

전혀 생각도 못했던 말을 듣고 보니, 미경이의 주변에 대해 너무 안일하게 신경을 쓰지 않았던 내 불찰인것만 같고, 그에

따라 여러가지 예상이 머리속을 스친다.

그 사람의 입장으로 봐서는 자신의 여자를 훔쳐 간 내가 곱게 보일리가 없을것이다.     

자유롭지 못한 영어의 몸인 그는, 멀쩡하게 두 눈 뜨고 있으면서도 미경이를 도독질 해 간 나에게 반감을 품고 이를 갈고

있을지도 모른다.

" 아직도 그 사람을 따르는 후배들이 많어..   내가 얘기해 주지 않아도 그 속에서 이미 알고 있을거구.. "

그 정도로 밖에까지 영향력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무기징역을 치르면서도 밖의 일까지 참견할 정도면 거의

거물에 가까운 사람으로 보여지기에, 어찌 처신을 해야할지 당혹스러울 뿐이다.

" 날 보자는 이유는 뭐래..   당신을 훔쳐 갔다고 따지기라도 할 모양이네.. "

" 나도 잘 몰라..   그냥 자기한테 할 말이 있다면서.. "

죄 지은 사람처럼 풀이 죽은 그녀의 뺨에 기어코 굵은 눈물이 흘러내린다.

평상시 같았으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고 달래주기라도 했겠지만, 처해 진 내 운신이 더 복잡하기에 멀거니 바라볼수 밖에

없었다.

" 언제쯤 가면 되는데.. "

어차피 벌어진 일이라면 부닥쳐 보는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교도소에 갇혀 있는 몸이지만 건달 조직을

좌지우지 하던 사람을 피한다고 피해지지도 않을것이다.

" 다음주..   미안해, 동훈씨.. "

" 그게 어디 당신 잘못인가..   일단 만나나 보자구, 설마 그 안에서 죽이기야 하겠어.. "

스스로 마음을 다잡아 의연하게 대처를 하기로 했다.     앞뒤 사정을 모르고 미경이와 엮여 이런일이 닥치긴 했지만, 나쁜

의도를 가지고 접근한게 아니니만큼 미리부터 겁 먹을 일도 아니지 싶다.

" 그 정도로 치사한 사람은 아냐, 자기 대신 날 돌봐 준다고 고마운 친구라고도 했으니까.. "

" 유정이도 알어? "

" 아냐, 걔는 몰라..  유정이 다섯살 땐가 다시는 교도소에 데려오지 말라고 했으니까.. "

미경이 말로 미루어 봐서는 꽉 막힌 사람은 아닐성 싶어 조금은 안심이 되는 반면에, 그런 그가 나를 만나고 싶다는 이유가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 너무 걱정하지 말고 이만 자자, 만나 보면 알겠지.. "

" 안 씻어? "

" 응, 피곤하네..   그냥 잘래.. "

그녀 남편의 존재를 알고 나니, 미경이를 끌어안고 싶다는 생각이 이미 멀리 달아나 버렸다.

백화점에서 비싼 돈을 주고 선물한, 속이 훤히 비치는 슬립을 입고 곁에 누운 미경이를 보고도 성욕이 일어나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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