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남자

숨겨진 남자 26

바라쿠다 2012. 10. 22. 17:50

" 그 여자한테서 연락이 왔어.. "

정오쯤에 정희가 다락방으로 올라왔다.      하룻밤 새 얼굴이 많이 야위워 보인다.

" 만나게요? "

" 만나 봐야지.. "

" 어쩔건데요.. "

" 준호는 내가 헤어지길 바래? "

" 당연한거 아닌가..   그런 취급을 받으면서 계속 살게요? "

" 그렇게 간단한게 아니야.. "

" 무시를 당하면서도 버티고 사는 정희씨가 이해가 안되요.. "

" 난 할줄 아는게 아무것도 없어, 선우를 혼자서 키운다는게 만만치도 않고.. "

" 먹고 사는게 힘들어서, 그 모진 수모를 견디며 살겠다는 얘기네요.. "

" ......................... "

" 그럼, 뭣 땜에 만나요?    남편한테서 떨어지라고 하게요? "

" ......................... "

" 맘대로 해요..   더 이상 정희씨 옆에 있기가 싫어지네요, 난 그만 나갈래요.. "

" 조금만..   조금만 더 옆에 있어주면 안될까? "

" 싫어요, 정희씨를 좋아했던 나까지 바보가 된 기분이니까.. "

옷 가방을 들고 그녀의 집을 나서야 했다.      더 이상 그녀 곁에 머물 자신이 없었다.

어릴적부터 몽매 꿈 꿔 왔던 그녀는, 여자를 모르는 나에게 있어 유일한 이상형이었다.

우연히 꿈에 그리던 그녀를 재회하고, 많은 밤들을 그녀와 함께 지냈다.

비로서 세상을 살아가는 재미가 새록새록 생기기 시작했다.      온 세상이 내 위주로 돌아가는 착각에 빠져 있었다.

비록 남편이 있는 유뷰녀였지만, 그녀와의 몇달간은 기본적인 도덕심을 내 팽길 정도로 달콤한 시간이었다.

다락방에 숨어 살던 나에게는 한없이 사랑스럽기만 한 그녀가, 남편에게는 한낱 정액받이 취급을 받는게 보기 싫었다.

그런 수모를 견디며 살고자 하는 그녀가 미워서 견딜수가 없었다.     그녀를 떠날수 밖에 없는 이유다. 

 

" 힘들지 않아요? "

" 며칠은 힘들더니, 이제는 견딜만 해.. "

선희가 써빙일을 한지 보름이 넘은 시점이다.      가끔씩 통화는 했지만 직접 얼굴을 마주한 건 보름만이지 싶다.

그동안 새로 기획한 프로그램에 매달려 정신없이 바쁘게 지냈다.     한번 손을 대면 끝장을 보는 성격 탓에, 툭하면 

밤샘을 하기도 했었다.     

그럼으로 해서 자꾸만 떠 오르는 정희를 잊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 좋아보여요, 얼굴.. "

" 신기해..  여지껏 노름은 한번도 안했어.. "

" 하고 싶지 않아요? "

" 참는 중이지..   다행히 저녁 늦게까지 일하느라, 피곤해서 금방 곯아 떨어지거든.. "

" 진짜 다행이네.후후.. "

" 집에 있는 컴퓨터도 치워버렸어..   눈에 보이면 또 생각날까 봐.. "

소주잔을 기울이는 그녀가 대견해 보인다.      일견 보기에도 힘든 유혹을 이겨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것으로 보인다.

" 그 미스홍은 어찌 됐데요? "

정희의 안위가 궁금했다.     잊고자 모진 노력을 했지만 그리 쉽게 지워질리는 없었다.

" 한번 만났다네..   이상한게 오히려 그 와이프가 미스홍을 걱정해 주더래.. "

" ...................... "

" 남편에게서 떨어지라고 할줄 알았는데, 아픈데는 없냐며 안쓰러워 하더라나..   참, 이상한 여자야.. "

" 그래서요.. "

" 몰라..   미스홍이 시골집으로 내려갔대.. "

그럴만도 하지 싶었다.      남에게 싫은 소리라곤 할줄 모르던 정희였다.     

어린시절 그녀의 팬티를 훔친걸 들켜 민망했을때도, 따뜻하게 손을 잡아주고는 위로의 말을 건네 주던 그녀였다.

" 준호씨, 술이 많이 늘었네.. "

" 그런가 봐요..   안 취하네.후후.. "

술에 취하고 싶었다.      바보처럼 살아가는 정희가 떠 올라 술기운이라도 빌리고 싶었다.

" 너무 마시지마, 먼저번에도 술 취한 준호를 부축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는데.. "

" 그만 가죠.. "

반병 이상 마신듯 싶었는데 말짱한 정신이다.      선희의 알몸이나마 껴안고 뒹굴고 싶어진다.

 

" 천천히..  응? "

모텔방에 들어오자 옷을 벗기는 준호다.      순식간에 알몸을 만들더니 침대에 눕히고는 달려든다.

편안하게 그의 품에 안겨 따뜻한 체온을 느끼고 싶었지만, 술이 취했는지 거칠게 덤벼드는 바람에 무드에 젖고 싶었던

작은 바램조차 깨지고야 만다.

" 아야~ 아퍼, 자기야.. "

어느 틈엔가 젖가슴을 움켜쥐고, 한 입 가득 물어 세차게 빨아 댄다.     평소와는 다른 그의 애무가 낯설어진다.

그 전에는 아래쪽으로 내려가서는 부드러운 혀 놀림으로 한참을 달궈 주더니, 지금은 아직 준비도 덜 된 그곳에 무턱대고

찌르는 통에 아픔까지 느껴지고 있다.

" 왜 그래, 정말.. "

준호의 기분을 깨기는 싫었지만, 찢어질 듯 몰려오는 아픔을 참지 못하고 그를 밀쳐내야 했다.

" 미안해요, 나도 모르게.. "

" 무슨 일 있었어?    다른 사람처럼.. "

" 취했나 봐요.. "

" 그것 봐..   조금만 마시라니까.. "

기실 준호를 만나기 전에 많은 고심을 해야 했던 선희였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임신이 되었던 것이다.     

계산했던 날짜를 일주일이나 넘겼는데도 소식이 없어, 지난주 쉬는 날에 혹시나 하고 산부인과를 찾아 갔더랬다.

축하한다는 산부인과 의사의 말을 듣고도, 처음에는 믿기지가 않을 정도였다.

일주일 동안 별의 별 생각이 들었다.     이 나이에 애를 낳는다는 것도 말이 안 되지만, 애 아빠가 준호라는게 맘에 걸렸다.

이미 17살이나 된 아들까지 있는 아줌마가, 열살이나 어린 총각의 애를 낳아 그의 발목을 잡을수는 없는 일이었다.

밤에 잠까지 설쳐가며 어찌해야 할지 수없는 고민을 했던 것이다.

상상도 못할 일이었지만, 뒤늦게 여자임을 일깨워 준 준호의 얼굴이 떠 올랐다.

준호에게는 비밀로 하고 그의 애를 낳으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가도, 말도 안되는 짓이라며 고개를 젓기도 했다.

준호를 만나 그의 얘기라도 들어보고 싶었다.    아니, 그의 핏줄이 내 뱃속에서 자라고 있다고 자랑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다감스러운 준호의 몸을 받아 들이고 싶었는데, 그 전과는 달라진 준호의 거친 행동이 야속하다.

" 나, 씻어야 할까 봐요.. "

욕실로 들어가는 준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만감이 교차하는 선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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