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니버스 소통령

소통령 30

바라쿠다 2012. 10. 16. 10:58

결혼식 다음날, 택시를 대절해서 신혼여행지인 속리산으로 향했다.      장모님과 초희도 함께였다.

영식이 놈과 혜영이가 자신의 차로 바래다 준다고 했지만, 우리 식구들끼리 따로 할일이 있었다.

보은에 있는 관광 호텔에 짐을 풀고, 청송스님이 일러 준 무속인을 만나기로 했다.

별꽃선녀라는 무속인이 일러준대로, 4식구가 택시를 타고 속리산 입구에 있는 주차장에 도착했다.

" 어서 오세요.. "

부부로 보이는 남녀가 주차장에서 내린 우리를 향해 다가왔다.

부인이 신통한 무속인이고, 남편은 그녀를 위해 잡다한 뒤치닥거리를 한다고 미리 스님에게서 귀띔까지 받았다.

" 축하드려요..  두분 다 얼굴이 밝아보여서 맘이 놓이네요.. "

" 잘 부탁드릴께요.. "

선녀라는 무속인이 웃으며 반기자, 미진이가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인다.

" 따라오시죠, 길이 좀 가파라서.. "

남편이 걱정이 된다는 듯 장모님과 초희를 쳐다보더니 앞장을 선다.

속리산 공원으로 오르는 아스팔트 길을 따라 걷다가, 왼 쪽으로 꺽어진 산길로 접어 들었다.

그 친구 말 마따나 좁고 가파른 길이 이어진다.      벌써부터 장모님이 힘들어하는 기색이다.

" 되도록 천천히 갑시다.. "

장모님의 팔을 잡고 부축을 했다.

" 당신은 먼저 가서 마무리를 해요, 난 이분들과 천천히 갈께.. "

" 알았어요.. "

대답을 한 남편은 바쁜일이 있는 듯, 내쳐 가던길을 올라 등성이 넘어로 사라진다.

" 많이 가야 하나요? "

" 괜찮아요..  초행길이라 그렇지, 우리는 매일 다니는데요, 뭐.. "

운동을 게을리 했던 나까지 땀이 난다.     장모님도 많이 힘들어 하셨는데, 오히려 어린 초희만 지친 기색이 없다.

 

산 속에 아담하게 자리잡은 집 한채가 있었다.

수백년은 됐음직한 커다란 나무에 의지한 굴피집인데, 주위의 경관과 어울려 평온한 풍경이다.

큰 나무를 돌아 집 뒤쪽으로 가자, 나무 판자로 얼기설기 만든것으로 보이는 곳에 제단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 제단에는 갖가지 음식들이 제기위에 올려져 있었고, 아까 먼저 올랐던 남편이 이리저리 분주히 움직이는 중이다.

" 할머니는 한발 뒤로 물러나 계시고, 우리 공주님하고 두 분은 이 앞으로 나오세요.. "

시키는대로 선녀의 뒤에 섰다.    내 옆에 미진이가 있고, 그 옆에 초희까지 나란히 섰다.

" 별꽃 선녀가 신령님께 고합니다..   여기 있는 두 사람이 부부의 연을 맺고 신령님께 제를 올리고자 하나니, 부디... "

한참동안 축문을 읽어대는 선녀의 뒤에서 다소곳이 시립해 있어야 했다.

" 신랑은 이리 나와서 신령님께 술을 올리세요.. "

선녀의 말이 떨어지자, 옆에서 지켜보던 남편이 다가와서는 내 손에 술 주전자를 쥐어 준다.

미진이와 초희까지 차례차례 그네들이 시키는대로 술을 따랐고, 제단을 향해 절까지 올렸다.

" 이제 세 사람 모두 무릎을 꿇어요.. "

제단을 향해 무릎을 꿇자 무언가가 적혀있는 한지를 불에 붙이더니, 이리저리 손바닥을 놀리면서 모두 태워 버린다.

" 자, 지금부터 다시 예를 올리세요.. "

다시한번 차례대로 제단을 향해 절을 올려야 했다.      미진이가 절을 올리는 모습이 너무나도 진지하다.

" 다 끝났어요, 이리 따라 오세요.. "

선녀를 따라 굴피집 안으로 들어갔다.     집 안 마루 위 벽에도 신령님인 듯, 험상궃은 형상으로 우리를 내려다 보고 있다.

" 스님에게서 세사람의 생시를 받았어요..   정성을 다해 모셨으니 나쁜일을 막아 주실겝니다.. "

" 감사합니다, 선녀님.. "

" 그리고 이건 부적인데, 두 사람이 자는 이불에 넣어두세요..   이건 저 아이것이고.. "

연신 고개를 숙이는 미진이를 보자니 안타까운 마음이 고개를 든다.

스님이 시킨대로 선녀에게 삼백만원을 건네고 그곳을 나왔다.     거금이지만 그 정도 액수를 쓰고 액땜을 할수만 있다면

누구라도 그리했을 것이다.     그만큼 얼마전의 흉한 충격이 너무 컸던 까닭이다.

 

다시금 호텔쪽으로 돌아와, 늦은 점심부터 먹어야 했다.      아침을 먹고 부지런을 떨었지만 이곳까지 내려온 시간에다

치성까지 드리다 보니 벌써 오후 5시가 가까웠다.

" 초희 많이 먹어라..   장모님도 맛있게 드세요.. "

" 고맙네, 김서방..   나까지 챙겨줘서.. "

" 나한텐 왜 맛있게 먹으라는 소리를 안 하는데.. "

" 에그 ~맛있게 먹어라..  꼭 애들처럼, 초희도 가만 있구만.후후.. "

산채 비빔밥과 버섯 불고기를 시켰다.     다들 허기가 져서인지 꿀맛 같은 점심이었다.

내일 쯤 속리산 구경을 하기로 하고 일찍 호텔방에서 쉬기로 했다.

" 빨리 씻어.. "

" 이제 초저녁인데, 나중에 씻을께.. "

침대에 누워 TV를 보며 뒹굴거리고 있었다.

" 씻으라니까.. "

정색을 하는 미진이의 표정을 보고는 욕실로 쫒겨 들어가야 했다.

욕실에서 나오자, 미진이가 뒤이어 욕실로 들어갔다.     아무 생각없이 침대에 누워 TV 를 보고 있었다.

" 일어나.. "

" .................... "

알몸으로 욕실에서 나온 미진이가 날 불러 일으킨다.

" 절부터 받아, 오빠.. "

" 절?    무슨 절? "

알몸의 그녀가 침대에 앉아있는 나를 향해, 한쪽 무릎을 꿇고는 진지하게 절을 한다.

" 날 받아줘서 고마워.. "

" 무슨 소리야, 내가 고맙지.. "

미진이의 절을 받기는 했지만, 무슨 의미인지는 생각치 못했다.

" 더러워진 나를 매일 깨끗이 씻어 줬잖어.. "

" ..................... "

" 정말 고마웠어, 평생토록 오빠만 바라보고 살께.. "

그런 뜻인지는 몰랐었다.     놈들에게 강간을 당하고는, 마음 고생이 많았을 터이다.   

자신의 잘못이 아닌데도 나에게 용서를 구하고 있는것이다.

" 그게 왜 니 잘못이야..   내 잘못이 더 크지.. "

홍경장의 비리를 눈 감고 지나쳤더라면, 이번일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 오빠는 내꺼 하기로 했잖어..  앞으론 오빠 잘못이 내 잘못이고, 내 잘못도 오빠 잘못이야.. "

" 그래..  그렇게 알고 살자.. "

미진이가 얘기한 의미를 알것 같았다.     이제 부부의 연을 맺었으니, 살아감에 있어 어떤 바램을 품었지 싶다.

" 나 오빠랑 합환주라는걸 마시고 싶어, 우리 나가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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