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남자

숨겨진 남자 6

바라쿠다 2012. 9. 18. 19:33

" 별다른 일은 없었지? "

출장을 끝낸 남편이 집으로 돌아왔다.     헤어지기 싫어하던 준호의 안타까움이 아직도 생생하기만 하다.

무려 이틀 밤낮을 그와 같이 지냈다.      외아들인 선우가 집에 있을때는 이층 빈 방에 숨어 있었고, 잠을 잘때나

선우가 유치원에 가서 집에 없을때는 내내 같이 붙어 있었다.

" 네, 볼일은 잘 끝났어요?  "

" 항상 그렇지, 뭐..   내일 모레 또 다녀와야 해.. "

" 네에.. "

또 다시 출장을 간다는 말에 벌써부터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이틀 내내 옆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던, 준호를 다시 볼수

있다는 희망이 생긴 것이다.

" 빨리 들어와.. "

" 네..  선우 좀 보고 올께요.. "

저녁을 먹고 샤워를 끝낸 남편이 잠자리로 불렀지만, 마음이 편치 않은 정희다.      

남편이 샤워하고 있는 동안 준호에게서 메시지를 받았기 때문이다.

~ 보고 싶어요.. ~

헤어진지 몇시간 만에 메시지를 보내온 준호의 마음을 알기에 가슴 한편이 짠하다.

주방에 놔 둔 핸폰을 집어들고는 이층으로 올랐다.    이틀동안 준호와 사랑을 나눴던 침대에 걸터앉아 통화버튼을 눌렀다.

~ 네, 정희씨.. ~~

너무나도 반가워 하는 목소리다.      어린 아이처럼 들뜬 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 잠을 자야지, 왜 메시지를 보내..   남편이라도 알면 어쩌려구.. "

준호 역시 이틀밤을 꼬박 새우다시피 했기 때문에 그가 염려스러운 것이다.

~ 좌송해요..  보고 싶어서.. ~~

" 나도 마찬가지야..  그만 자요.. "

~ 여기 집 앞이에요.. ~~

" 어디..  우리집? "

~ 네에.. ~~

창가로 가서 밖을 기웃거렸다.      그가 보였다.      저 멀리 집 위쪽으로 산등성이 쪽  빈 공터에, 이쪽을 향해 서 있는

그의 모습이 있다.

가슴이 아려온다.      얼마나 그리웠으면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몇시간 동안 저렇듯 망부석이 됐는지 그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 미쳤어, 빨리 가..   나..  남편한테 가봐야 돼.. "

매몰차게 얘기를 해 줘야 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그가 포기하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 주길 진심으로 바랬다.

" ...................... "

" 이만 끊을께.. "

그가 누워있던 침대에는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느낌이다.

 

아침에 눈을 뜬 정희는 조심스레 침대에서 일어났다.       옆에 누워있는 남편이 깨지 않게끔 소리없이 방문을 열었다.

주방에 들어가 식사 준비를 해야겠지만, 준호의 안위가 더 급했다.

이층방으로 올라가 창밖을 내다 봤다.     그가 있다.     어젯밤 바로 그 자리에 머리를 무릎 사이에 묻고 쪼그리고 앉아

있는 그의 모습이 보인다.

가슴이 먹먹해 진다.     나같은 여자가 무에 그리 보고 싶다고, 밤새 저런 모양새가 됐는지 목이 메어 온다.

예전에 내가 어떤 여자였는지 알고 있을 것이다.     어려운 집안 때문에 재일교포의 현지처 노릇까지 했던, 몸쓸 과거를

안고 살아온 터다.     

마지막에 그의 애기를 낳았고, 결국 안 좋은 모양새로 헤어져야만 했다.

우연히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스무살이나 되는 딸아이까지 있던 남편은, 본처와 이혼을 하고 돌싱으로 살고 있었다.

나름대로 탄탄한 경제력이 있는 남편이 친정에 도움을 주면서, 두살 밖에 안 된 선우까지 거두겠다고 했다.

자신이 몸을 팔아 번 돈으로 어렵게 생활했던 친정은, 남편의 됨됨이보다 그의 능력을 높이 샀다.

술만 먹으면 여자를 때리는 사람인지도 모르고 그의 호적에 올랐다.     항시 권위적이고 맹목적인 복종을 강요 당했다.

남편이 술이라도 마시고 들어오는 날은 잔뜩 겁을 먹은채 그의 눈치를 살펴야 했고, 남편의 말 한마디를 곧 법으로 알고

살아야 했다.

자신의 말을 조금이라도 거슬리는 태도를 보였다가는, 오래 지나지 않아 술에 잔뜩 취해 들어와서는 그 일을 또 다시

끄집어 내곤 했던 남편이었다.

 

" 준호씨가 그러면 나도 힘들어..   왜 그래 남자가, 참을줄도 알아야지.. "

남편을 출근시키고 선우까지 유치원 차에 실려보낸 다음, 한참 동안을 준호와의 앞날에 대해 고민을 했다.

사회인으로서의 정상적인 삶을 살아 가게끔 이끌고 싶었다.      그렇지만 뚜렷한 해결책이 떠 오르질 않는다.

자꾸만 다가오고자 하는 그의 마음을 꺽기도 힘들거니와, 스스로도 준호를 멀리할 자신이 없음이다.

결국 아무런 실마리도 찾지 못한채, 밤이슬을 맞으며 밤새 떨었을 준호를 불러 들였다.

" 미안해요, 알긴 아는데.. "

하루밤 사이, 얼굴이 영 못쓰게 변해 있었다.    피부도 까칠해 보이고, 눈 밑도 까매 보인다.     준호를 보는 자체만으로

안쓰러울 만치 가슴이 찡하다.

" 우선 씻기라도 해, 밥 차려 줄께.. " 

" 그보다 나 졸려요..   그냥 잘께요.. "

이틀밤을 나와 같이 보내고도, 또 하룻밤을 까맣게 지샜으니 그럴만도 했다.

" 그래, 그럼..   올라가, 자리 봐 줄께.. "

방으로 들어가자 마자 침대로 엎어지는 준호다.     생각 같아선 옆에 앉아 다독여 주고도 싶지만, 준호에게 일말의

여지라도 줄것 같아 아쉬운 마음을 접고 돌아섰다.

" 그럼, 자..   이따가 선우 오기전에 깨워 줄께.. "

" 정희씨.. "

" ..................... "

" 나 좀 재워 줘요.. "

" .................... "

" 정희씨 무릎 베고 자면 안될까요? "

매몰차게 거절할수가 없다.      내 옆에 있고 싶다고, 밤새도록 이쪽만을 지켜보며 길게 목을 뺀 사람이다.

침대 머리맡에 앉아 그의 머리를 안아 무릎에 올렸다.     한번 꿈틀대더니 내 한쪽다리를 들어 자신의 배위에 올리고,

나머지 허벅지에 머리를 올리더니, 그 곳에 코를 박고는 이내 곯아 떨어진다.

 

" 다음부턴 그러지마, 나도 맘이 안 좋아.. "

조금 있으면 선우가 유치원에서 올 시간이다.      준호를 깨워, 밥이라도 먹일 요량으로 식탁에 마주 앉았다.

" 있고 싶어요, 옆에.. "

" ....자꾸 왜 이래, 준호씨 이런 사람이었어?    날 좋아한다면서 이런식으로 떼를 쓰면 어떡해.. "

" 아뇨..  정희씨를 불편하게 만들지 않을께요.. "   

" .................... "

" 아무도 내가 정희씨 옆에 있는줄 모를거예요.. "

" .................... "

" 밤새 생각했어요..   나도 정희씨를 가끔씩만 봐야 한다는건 알지만, 그게 자신이 없어요..   그래서 결심했어요, 정희씨

옆에 숨어 있기로.. "

" 그게 말이 돼?   준호씨가 무슨 투명인간이야?   그게 가능하냐구.. "

" 가능해요, 정희씨도 내가 옆에 있는줄 모를만큼..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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