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깨질것 같은 아픔에 눈을 떳다.
침대 옆 창으로 휘영청 보름달이 밝게 빛나고 있다. 처음 보는 가구들이 낯설기만 하다.
창가로 다가가 밖을 내다 봤다. 눈에 익은 정원이 내려다 보인다. 그녀의 집인 것이다.
순간순간 삼류 영화의 필림처럼 기억이 끊어지곤 한다. 희뿌연 연기들이 곱창집을 가득 메우고, 어느 틈엔가 가게는
손님들로 북적거려, 그네들이 떠드는 소리로 인해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다.
어떻게 그녀의 집으로 왔는지는 도통 기억이 없다. 타는 갈증이 느껴져, 소리를 죽여 아래층으로 내려와야 했다.
집안의 모든 불들이 꺼져 있어, 조심스럽게 발을 내 딛었다. 손으로 더듬어 주방을 찾아 냉장고를 열었다.
보리차로 보이는 프라스틱 물병을 꺼내 들고 갈증을 달랬다. 조금씩 주위의 사물이 구분이 되고 머리도 맑아진다.
방광이 묵직할 정도로 소변이 마려워 화장실을 찾았다. 어림 짐작되는 문을 살며시 여니 화장실이다.
" 달 ~ 칵 .. "
워낙 고요한 집안이라, 전등 스위치를 켜는 소리가 정적을 깬다.
눈이 부실만큼 환한 조명이 쏟아져 나온다. 급히 화장실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변기 뚜껑을 열고 시원스레 모든걸 쏟아 냈다. 세면대 위의 거울에 비친 얼굴이 푸석해 보인다.
무심코 돌아보던 참에, 세탁기 위에 빨래감을 담아놓은 소쿠리가 눈에 띈다. 그녀가 입었음직한 속옷들이다.
잠시 머뭇거리다, 검은색 천 조각 하나를 골라 손에 들고는 코에 가져다 댔다. 예전에 맡았던 시큼한 냄새가 코 안으로
스며 들자 아랫도리가 불끈거리며 솟아 난다. 이성과는 상관없이, 주책없는 그 놈이 반응을 하는것이다.
속으로 실소가 터진다. 이미 까마득한 옛날인데도 아직도 그런 감정이 남아 있다는 것이 신기할 뿐이다.
예전처럼 그녀의 팬티에 실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잠시 스쳤지만, 그래서는 안된다는 이성이 충동을 눌렀다.
손에 들었던 팬티를 다시 내려놓고는, 소리를 죽여 잠을 자던 이층방으로 돌아 와 침대에 엉덩이를 걸쳤다.
아침 일찍 일어난 정희는 현관부터 살폈다. 준호의 신발이 아직 그대로 놓여져 있다.
어제의 일이 떠올라 실소를 금할수가 없다. 술을 마시던 준호의 머리가 테이블 위로 떨어지더니, 아무리 흔들어도
꼼짝을 않는다.
어찌해야 할지 대략 난감했지만, 술집 주인의 도움을 받아 집으로 데려올수 있었다.
모텔로 데려다 줄수 없었기 때문이다. 무슨 짐짝처럼 준호를 팽개치는 것만 같아 마음이 허락치 않았다.
마침 남편이 제주도로 출장을 갔기에 집으로 왔던 것이다. 택시 기사와 함께 부축을 해서는 이층의 비워있는 방에
뉘일수 있었다.
" 정희씨~ "
겉에 걸친 잠바와 신고 있던 양말을 벗겨 냈을때다. 술에 취해 곯아 떨어진 준호가, 자신의 이름을 몇번씩이나 읊조리며
몸을 뒤척인다.
곤히 잠들어 있는 준호의 얼굴을 내려다 봤다. 예전의 모습이 희미하게나마 남아 있다.
어리기는 했지만 귀염성있게 생긴 준호가, 자신이 입었던 속옷으로 민망한 짓을 하다가 들통이 났을때 야릇한 기분이
들기도 했었다.
이제 막 콧수염이 송송이며 자라기 시작한 까까머리 학생인 준호의 마음속에, 자신이 들어있다는 생각에 흐뭇하기도 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머리속에서 스쳐 지나가는 해프닝으로 잊혀 졌었다.
그러던 준호가 이렇듯 반듯하고 훤칠한 청년으로 변해 바로 눈 앞에 누워있는 것이다. 감회가 새로웠다.
서둘러 아침밥을 짓고, 외아들인 선우를 유치원에 보내기 위해 부산을 떨었다.
선우를 유치원 차에 실려 보내고, 세탁기를 돌리기 위해 화장실에 들어간 정희는 또 한번 실소를 해야 했다.
빨래를 담아 두었던 소쿠리 속의 팬티가 언뜻 눈에 거슬린다. 빨래이긴 하지만 항시 곱게 접어 담아두곤 했는데, 검은색
팬티 한장이 뭉쳐 져 있었기 때문이다.
콩나물 국을 가스렌지 위에 올려놓고, 준호를 깨우러 이층으로 오르는 계단을 밟았다.
" 무슨 잠을 그렇게 오래 자누.. "
잠자리가 편안한 듯 가볍게 코까지 골고 있는 준호다. 자는 모습이 상큼해 보인다.
" 빨리 내려와 식사해요.. "
준호의 어깨까지 흔들어 깨우고는, 콩나물 국이 넘치기 전에 다시 주방으로 내려와야 했다.
부시시한 얼굴로 주방에 들어온 준호가 쭈볏대고 있다. 콩나물 국을 담아 식탁으로 가져 갔다.
" 그쪽으로 앉아.. 속이 많이 쓰리겠네, 어서 들어요.. "
식탁 위에 있던 고추가루 통에서, 한 수저를 떠 국 그릇에 풀어 내 밀었다.
" ..죄송해요.. "
" 무슨 남자가 그리 술이 약해, 그래서 어찌 여자를 돌보겠다고.. "
" 원래부터 못 마셔요.. "
" 그런데 술을 마시자고 했어? "
" 그냥.. 같이 있고 싶어서.. "
또 한번 실소를 터뜨릴뻔 했다.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나와 함께 있고 싶은 마음에 대책없이 취해 버린 준호가 귀여웠다.
" 근데, 아직도 옛날 버릇을 못 버렸던데.. "
" 네? 무슨.. "
" 거짓말 못한다면서.. 빨래통에 있는 팬티가 구겨져 있더라.호호.. "
" ........................ "
수저로 국을 뜨다가, 귀 밑까지 얼굴이 빨개진 채 고개를 숙이는 준호다.
수줍어 하는 준호를 보고 있자니 은근히 흥미가 일고, 놀려주고 싶은 장난끼마저 생긴다.
" 궁금해.. 입던 팬티에서 냄새가 났을텐데.. "
" 냄새가 좋아서.. 옛날부터.. "
" 그게 말이 돼? 지저분한 냄새가 좋다는게.. "
" 나도 그게 이상해서.. 그때도 정희씨 팬티에서 나는 냄새를 맡으면 그냥 좋고.. "
말을 잇지 못하는 준호다. 그의 느낌이 이해가 되진 않았지만, 딱히 싫은 기분은 아니다.
" 지금도? "
" 네.. 나도 궁금해서 맡아 봤는데.. 옛날하고 똑같이.. "
" 어머~ 준호씨를 즐겁게 해 줄려면, 팬티를 벗어 줘야겠네. 호호.. "
참고 있었던 웃음을 터뜨려야 했다. 그에게는 심각했을 감정이겠지만 참을수가 없었다.
" 저기.. 한번 맡아봐도 될까요? "
" 어디를.. 거기를 직접 ?.. "
" ..... 네에.. "
기가 막힐 노릇이다. 박사 학위까지 받은 핸썸한 젊은이가 엉뚱한 짓을 조르고 있다.
" 나 기분이 이상해.. 커텐 좀 쳐 줄래? "
내 소원에 따라 이층방으로 다시 올라 온 그녀가 침대에 누웠다. 치마 밑으로 쭉 뻗은 그녀의 다리가 눈이 부시다.
그녀의 말에 따라 커텐을 닫고 치마를 들추어 속을 들여다 본다. 흰색 팬티가 그녀의 커다란 엉덩이를 힘겹게 감추고
있다.
17년 전부터 오매불망 꿈 꿔 오던 바램이다. 팬티를 내리기 위해 손을 가져 갔는데, 가슴이 심하게 뛰기 시작한다.
팬티에 손을 가져가자 그녀의 손이 잠시 가로 막는가 싶더니, 이내 엉덩이를 들어 팬티 벗기는걸 도와준다.
그녀가 부엌에서 샤워를 할때 훔쳐 보긴 했지만, 이렇듯 가까이서 본 적은 처음이다.
검은 숲이 우거진 그 곳에 코를 묻었다. 팬티의 냄새보다도 강한 시큼한 냄새가 코 속으로 스민다.
그 주변에 넓게 퍼진 음모가, 코와 입 주변에 닿아 까칠거리고 눈까지 찌른다.
숨을 크게 내쉬고 코 속으로 냄새를 빨아 들였다. 시큼한 냄새가 온통 머리속을 휘젓는다.
" 아 ~ 준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