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 느낌은 어때? "
" 그냥.. 잘 모르겠어.. "
선배인 최영철의 사무실이다. 어제 선영이와의 만남에 대해 묻고있는 것이다.
" 모르긴.. 그러니까 니가 여자가 없는거야, 임마.. 니 나이때가 되면 연애 경험이 열번은 넘었어야지, 지가 무슨 수도승도
아니고.. "
" 맞어, 차라리 신부님이나 될걸 그랬나.후후.. "
" 말하는 짝퉁머리 하고는.. 선영씨는 니가 싫지 않은 모양이더라, 한번 더 만나 봐.. "
" 글쎄.. "
어제 같이 저녁 식사를 하면서도, 음식이 무슨 맛인지도 모를만큼 지루했었다. 겉 모습만 보면 여느 여자들과 별다르지
않았지만, 어떤 교감이 통할만큼 발전을 하기까지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느낌까지 받았다.
" 언제부터 츨근할래? "
" 집에서 작업하는게 편해, 나중에라도 출퇴근 같은 부담은 없었으면 좋겠어.. "
" 하여간 별종이라니까.. 일단, 정사장부터 만나보자.. "
정사장이라 함은 영철이 선배에게 투자를 한 사람이다. 제법 자금에 여유가 있는지 이 사무실도 그가 마련해 줬다고 했다.
처음에 선배가 새로운 음향을 만들었다며 벤쳐 사업을 하자고 했을때만 해도 반신반의 했었다.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었기에, 국내에서 음반을 만드는 회사를 비롯한 몇 곳의 스카웃 제의도 받은 시점이었다.
워낙 대인관계가 좋은 영철이 선배가, 재밌는 아이템이 있다며 귀띔을 했기에 동업을 수락하기에 이른것이다.
" 사업이야 선배가 알아서 해, 난 기술적인 것만 돕기로 했잖어.. "
" 하여간.. 알았어, 나 혼자 만나보지 뭐.. "
선배와 얘기중에 핸폰이 떨어댄다. 액정을 들여다 보니 모르는 전화번호다.
" 네, 여보세요.. "
~ 저기.. 나, 선영이 이모요.. ~~
" 아, 네.. "
밝은 미소를 보여줬던 그녀의 얼굴이 떠 오른다.
~ 이런 부탁.. 지금 음악듣고 있는데.. ~~
" 네.. "
어제 처음 만난 자리에서까지, 음악 얘기를 했던걸로 봐서는 상당한 애호가 수준인 듯 싶다.
~ 산타나라고.. 라틴 락이거든요.. 근데, 키타 음률이 영 예전같지 않아서.. ~~
" 아~ 네.. "
~ 미안한 얘긴데.. 혹, 시간 되면 우리집 오디오를 한번 봐 주면 어쩔까 싶어서 ~~
" 그러세요.. 마침 지금 시간이 괜찮은데, 집이 어디신지.. "
어제 한 약속도 있었고, 다시금 그녀의 환한 미소가 보고 싶어진다. 오디오 기기를 살펴보고 스피커의 증폭만 조절하면
될 것이다.
~ 남태령이라고 알아요? ~~
사당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남태령에 있는 전원 주택단지에서 내렸다.
가르쳐 준대로 작은 슈퍼 옆의 골목길을 들어서니, 집집 대문마다 큼지막하게 주소가 붙어있다.
거의 골목길이 끝나는 지점에 있는 이층 양옥이다. 남향이라 그런지, 잘 꾸며진 정원이 따사로운 햇빛을 받는 전경이
싱그러워 보인다.
" 찌 ~ 잉.. "
초인종을 누르고 이름을 밝혔더니 묵직한 대문이 열린다. 대문안에 돌로 쌓은 계단을 오르니, 현관문이 열리며 선영이의
이모가 걸어 나온다. 연한 하늘색 점들이 박힌 하얀 원피스를 입은 맵시가 고와 보인다.
" 미안해요, 초면에 여기까지 오시게 해서.. "
" 아닙니다.. 마침 할일도 없었는데요, 뭐.. "
" 에이~ 아무리.. 박사님인데. 호호.. 일단 들어가요.. "
환하게 웃으며 반겨주는 그녀를 따라 현관 안으로 들어섰다. 대리석으로 되어있는 거실 바닥으로 올라선 그녀의
종아리와 발 뒷꿈치가 앙증스럽다. 손톱과 마찬가지로 엄지발톱에까지 칠해진 연두색 메니큐어가 눈길을 끈다.
" 이리 들어와요.. "
1층 거실 안쪽에 있는 방문을 열고 안을 가리킨다. 음악만을 감상하기 위한 방을 일부러 꾸민듯, 여타의 가구는 없고
한 쪽 벽면에는 오디오와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고, 맞은편에는 감상을 하기 위한 자리인듯 긴 가죽 쇼파가 하나 있을뿐이다.
방문과 마주 한 나머지 벽은 밖으로 통할수 있는 유리창 문이 있고, 그 밖은 산자락 밑이라 야생 수목들이 늘어서 있다.
" 오디오가 명품이네요.. "
" 뭐, 마실거라도 내 올께요.. "
외국의 유명 브랜드인 오디오 세트가 온통 벽면을 채우고 있어 그 쪽으로 다가섰다. 스치듯 곁을 지나는 그녀의 몸에서
옅은 냄새가 코를 찌르면서 오래된 기억이 되살아 난다.
바로 그녀였다. 그녀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벌써 15년도 더 지난 옛날의 기억이 빠르게 재생이 된다.
~ 바보 같은 놈.. 오매불망 그리던 그녀와 같이 커피를 마시고도 몰랐으며, 산타나라고 했는데도 눈치를 못 챘다니.. ~~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한창 여자에 대한 호기심이 왕성할 무렵, 눈부신 그녀가 내 옆에 있었다.
당시 아버지는 작은 이층 상가를 소유하고 있었고, 살고 있는 집은 그 상가의 뒤쪽 주택이었다.
아버지는 상가 1층에서 목재소를 운영했고, 그 뒤로 우물이 있었던 마당을 중심으로 여러가구가 모여 살고있는 형태로
된 다가구 주택이었다.
네, 다섯 가구가 모여 살았지 싶다. 공부에 취미가 없던 나는, 목재소에 있는 목수 아저씨들의 잔 심부름을 하곤 했다.
하기 싫었던 공부보다는, 공구들을 이용해 목재를 소재로 여러가지 물건들을 만드는데 훨씬 재미를 붙였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가 그 곳으로 이사를 온 뒤, 상당 기간 그녀에게 빠져 헤매게 되었다.
여러 가구중 가장 구석진 곳에 살게 된 그녀는, 항시 통통 튀고 생기가 넘치던 여자였다.
직업이 있는지 조차 몰랐고, 혼자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던 그녀였다. 또, 혼자 있을때는 그 집에서 팝송이
흘러 나올때가 많았다.
그 때 귀에 익었던 음악중의 하나가, 산타나의 '삼바파티'라는 곡이었다.
매달 정기적으로 나이 많은 신사가 와서는, 며칠씩 그녀가 살고있는 집에서 자고 가곤 했다.
어느 늦은밤, 그녀의 집 앞을 지나 치는데 갑자기 부엌에 불이 커졌다. 호기심이 생긴 나머지, 유리창 문이 조금 열려있는
틈을 통해 처음으로 그녀의 알몸을 볼수있는 행운이 찾아왔다.
얇은 원피스인 잠옷을 벗고 힘겹게 엉덩이를 감싼 팬티까지 내려 부뚜막 위로 올려 놓은 그녀가, 부엌 바닥에 쪼그려 앉아
소변을 보는데 너무 가까운 나머지 그 소리까지 들을수 있었다.
이내 들통에 있는 물을 끼얹으며 몸을 닦기 시작하는 그녀의 알몸을, 구석구석 머리속에 담아 둘수가 있었다.
아담한 젖무덤에 비누칠을 하던 모습이며, 자신만의 은밀한 계곡을 꼼꼼이 씻어가는 손짓까지,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머리속에 각인을 시켰다.
그 후로 그녀가 자는 시간만 되면, 몰래 집 안으로 숨어 들어 빨래감으로 벗어 놓은 속옷의 냄새를 맡을수 있었고, 심지어
그녀가 신고 다니는 슬리퍼의 냄새를 맡으며 수음을 하곤 했다.
한창 성에 대해 예민할 때라, 혈기가 왕성한 그 시절의 나에게 있어 그녀는 맹목적인 우상이였고, 나만의 비너스였던
것이다.
어느날 옆집에 사는 대학생 형에게서 그녀에 대한 비밀을 들을수가 있었다.
" 저년, 다찌야.. "
" 다찌? 다찌가 뭔데.. "
" 현지처란 말이야.. 저 집에 드나드는 놈이 일본 사람이거든.. "
처음에는 나만의 여신이던 그녀가 일본놈에게 몸을 팔고 있다는 사실에 큰 쇼크를 먹었지만, 차츰 그런것 쯤은 안중에 두지
않게끔 되었다.
한 밤중 몰래 숨어들어, 세숫대야 안에서 꺼내 든 그녀의 속옷 냄새로 인해 차츰 중독이 되어 갔다.
나중에 카츄사로 군복무를 하면서, 그녀의 몸에서 나는 냄새와 비슷한 냄새를 많이 맡게 되었다.
외국 사람들에게서 흔히 나는 땀 냄새가, 우리네 여자들에게는 암내로 불린다는 사실도 그때 처음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