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연애 1

바라쿠다 2012. 8. 13. 14:02

올해 내 나이 꽉 찬 40 이다.

어찌하다 보니 여지껏 싱글이다.     내 스스로를 평가하기는 좀 그렇지만, 특별히 못난 부분은 없는듯 싶은데 여지껏 솔로인걸

보면 다분히 문제는 있지 싶다.

남들처럼 젊었을때는 상큼한 연애도 해 봤고, 결혼 적령기에 이르러서는 여러번 맞선이라는 것도 보긴 했지만 아직 인연을

만나지 못했을 뿐이라고 자위하고 있다.

" 어이~ 김주사..   빨리 가자구.. "

" 꼭 가야 합니까?   별로 땡기지 않는데.. "

시청 건축과의 행정을 책임지는 박과장이다.     근 한달여 동안 건축허가를 내 달라는 업자들의 등쌀에 시달리고 있다.

청백리를 추구하는 타입은 아니지만, 위험한 소지를 안고있는 이번 건은 담당인 나로서도 허가를 내 주기가 쉽지 않아

차일피일 미루는 중이다.

" 이사람이 자꾸..   세상은 둥근거야, 큰 결격 사유도 없는데 대충 넘어갈 줄도 알아야지.. "

" 과장님도 아시잖아요, 괜히 말썽이라도 났다간 여러사람 다칠텐데.. "

서울과 근접한 안양의 야산 주변에 엄청난 물류센타를 짓겠다는 프로젝트다.       가뜩이나 멀지 않은곳에 KTX 의 기착지인

광명역이 있어 땅값이 준동을 할수있는 지역이다.      

차칫 용도가 변경이라도 된다면 대단지 아파트로 바뀔수도 있는곳이기에 더욱 조심스러울수밖에 없다.

" 어차피 국장님이 허가를 내 주라는 사안인데, 김주사 혼자서 버틴다면 모양새도 그렇잖어, 적당히 넘어가자구.. "

" 이게 보통 껀수하곤 틀리는걸 아시잖아요, 과장님이나 제가 하루아침에 짤릴수도 있는데.. "

" 우리가 막는다고 막아질 일인가, 어차피 우리 힘으론 어쩔수 없어..   그냥 눈치나 보는 우리들이 무슨 힘이 있냐구, 어찌

보면 국장도 바람막이에 불과할지 몰라.. "

박과장 말이 맞을수도 있다.      근처 그린벨트의 땅값만 해도 평당 3백만원이 넘는다.      무려 5만평이나 되는 땅이다.

일반적인 산술로는 계산하기 조차 어려운 액수다.       현 시세만도 가늠하기 어려운데, 힘이 있는 정치권이라도 등에 업고

용도를 바꾼다면 그에 따른 실익은 가히 엄청나리라.        뒤에 도사린 물주의 힘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 어이구~ 박과장님, 얼굴 뵙기가 힘듭니다. 허허.. "

" 나같은 말단이 무슨 힘이 있나요, 위에서 시키는대로 할수밖에.. "

결국 박과장의 닥달을 뿌리치지 못하고 업자와 만날수 밖에 없었다.       주위의 눈을 의식해서인지 관내를 벗어나 관악산

자락에 있는 한식전문 음식점에서 마주 앉았다. 

단골 손님만으로 영업을 하는지 작은 입간판이 전부인 음식점이지만 서구식 별장모양의 이쁜 본채와 넓은 정원 곳곳에

독립된 작은 별실이 여러개 흩어져 있다.

허가 서류를 제출한 의뢰인과 공무원이 마주 한다는것 자체가 비리의 표적이 되는 세상이다.

더군다나 직속상관인 국장의 종용까지 받고 나온 자리기에, 박과장이나 나 역시 찝찝한 마음일수 밖에 없었다.

" 이분이 담당이신 김계장님이군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

건네주는 명함을 받으면서도, 억지로 떠밀려 온 자리라 내내 떳떳하지 못한 기분이 떨쳐지지가 않는다.

두사람중에 나이가 엇비슷한 사람이 대표명함을 건넸고, 젊은 사람은 실무를 담당하는 걸로 보인다.

" 글쎄요..   이 자리에 나와서도 안되는 거지만, 이왕 나온김에 말씀드리죠..    사실 허가를 내 드리기 어려운 사안입니다..

다분히 투기성이 있는 지역이라, 나같은 말단이 결정할 문제도 아니구요.. "    

돈의 힘으로 관공서의 결재마저 좌지우지하려는 그네들의 행태에 거부감이 인다.     무슨 떡고물이라도 바라는 모습으로

비쳐질 듯 싶기도 하고, 저네들에게 오해를 살 소지도 있기에 단호하게 짜르고 싶었다.

" 다혈질이신가 봐, 우리 계장님은.후후..    허가문제를 해결하자고 두분을 뵙자고 한건 아닙니다, 앞으로는 자주 뵈야 할것

같아서 얼굴이나 익히자는 겁니다.   오늘은 가볍게 술이나 한잔들 하십시다.. "

자신있어 하는 최대표의 언변에 불현듯 오기가 생긴다.       자기들이 욕심을 내는일이, 실무자인 내 의견을 우습게 알 정도로

자신이 있다는 의사 표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 같이 앉아서 술마실 이유도 없고 그럴 시간도 없습니다, 전 그만 일어나야겠네요.. "

도무지 시건방을 떠는 업자와 마주한다는 자체가 비위가 상하기 시작한다.      내일 아침 출근을 해서 국장한테 깨지는 한이

있더라도 이 자리를 뜨고 싶은 마음뿐이다.

" 보기보다 소심하시네..   내가 무슨 뇌물을 주겠다는 것도 아니고, 허가를 내달라고 조르지도 않겠다는데 굳이 이 자리를

어색하게 만들어야겠어요.. "

" 그래, 김계장..   간단하게 술이나 한잔하고 가자구..

박과장까지 자리에서 일어나 만류하는 바람에 엉거주춤한 모양새가 됐을때다.

" 손님 오셨습니다.. "

마침 미닫이 문이 열리더니 종업원이 얼굴을 내민다.      합석을 할 사람이 있다는 말인듯 싶다.

종업원이 사라지면서 여자 둘이 방안으로 들어선다.      30 전후로 보이는 여자들로, 업소에 다니는 타입은 아니지 싶은데 

미모가 보통이 넘는다. 

 

" 늦었네, 이리들 와서 앉지.. "

미리 네사람이 있던 테이블이라 양쪽에 한사람씩 자리를 잡고 앉는다.      

최대표의 옆에 앉은 여인이 가볍게 목례를 건네고, 나머지 한쪽은 박과장 옆에 자리했다.

뚜렷한 이목구비에 단아하고 아름다운 미인이다.      유난히 눈이 크고 짙은 눈썹이 매력적이다.

뒤로 질끈 동여맨 긴 생머리로 인해 생기가 넘쳐 보이고, 이쪽까지 옅은 향수가 은은하게 전해져 온다.

" 인사해요, 구청에 근무하시는 박과장님과 김계장님이셔..    얼마나 깐깐하신지 애를 많이 먹는중이야. 후후.. "

" 반갑습니다,  최 성희라고 해요.. "

가지런한 이를 드러내며 살며시 미소가 번지는데, 그 모습이 너무 매혹적이라 숨이 막힐 정도다.

" 잘 부탁드립니다, 김 여진입니다.. "

박과장의 옆에 앉은 여인의 목소리가 들린다.      방에 들어올때 얼핏 본 그녀의 얼굴도 상당한 미모였지 싶다.

" 저희들이 무슨 힘이 있을라구여, 그저 월급쟁이일 뿐인데.후후.. "

여자들이 들어와서 분위기가 바뀐 탓인지 박과장의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 성희는 내 사촌 동생이고 여진이와는 친구사이죠, 여진이가 인테리어를 전공했기 때문에 저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어요.

마침 근처에 건축중인 현장이 있어서 이리 부른겁니다, 두분에게 폐을 끼치진 않을겁니다.. "

" 원, 그럴리가요..   이런 미인들과 자리를 함께 했는데.. "

장황스런 최대표의 설명에 박과장이 손사래를 친다.      그 역시 여인들의 미모를 흘깃거리고 있다

" 계장님은 통 말씀이 없으시네요,혹시 저희들 땜에 기분이 상하신건 아니겠죠? 호호.. "

" 그럴리가요, 전혀 아닙니다.. "

최성희의 미모에 정신을 뺏기고 있는 마당이다.      언감생심 불손한 생각을 품지 못할 정도로 가슴까지 뛰고 있다.

말을 건네는 성희의 눈은 똑바로 마주치지도 못한채, 말까지 더듬으며 당황스런 속내를 내 보이고 말았다.

" 굉장히 샤프하시네요. 호호..    혹시 결혼은.. "

" 어허~ 처음 본 사람한테 무슨 결례를..   죄송합니다 계장님..  동생 성격이 직선적이라.. "

" 아닙니다, 결례는..   괜찮습니다.. "

조금전까지 최대표에게 가졌던 반감은 어느덧 사라지고, 최성희의 사촌 오빠라는 사실조차 부럽기만 하다.

어색했던 술좌석이 여자들이 들어온 후로 완전히 바뀌어 져 버렸다.

그녀들이 무슨 얘기를 해도 마냥 부드러운 분위기가 된지 오래고, 빈 소주병이 자꾸만 늘어갔다

술이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성희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질 못하는 철수다.

그녀와 눈만 마주쳐도 주눅이 들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게 되고 딴청을 피우게 된다.

최대표나 박과장, 그리고 그녀들이 나누는 얘기를 귓전으로 흘리며 잠깐씩이나마 성희의 얼굴을 훔쳐 보는게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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