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생각없어

아무생각없어 43

바라쿠다 2012. 4. 5. 09:53

동창모임인지 계모임인지는 몰라도 전혀 생각도 못했던 여자의 초대인지라 조금은 흥미가 당긴다.

새로 생겼다는 성인 나이트크럽으로 가면서 여자들 앞에 선을 보이러 간다는 자체가 처음 겪는 일이라, 내심 뱃속에

힘을 주고 당당하게 그녀들을 압도해야 겠다는 호승심까지 부려본다.

문여진이 일러준대로 입구에서 '춘향이'를 찾으니 여자 웨이터가 나와 반긴다.

" 아까부터 손님이 기다리네요, 따라 오세요.. "

알듯 모를듯 웃음을 흘린 웨이터를 따라 들어가는데, 이른 시간이여서인지 넓은 홀에 아직은 빈자리가 많다.

드넓은 홀을 돌아 그녀들이 있다는 룸으로 안내를 받아 들어갔더니 일련의 여자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꽂힌다.

다섯명의 여자들이 큰 테이블에 양주를 셋팅해 놓고 웃고 떠들다가 나의 출현에 비상한 관심들을 보이는 중이다.

" 자기 ~ 어서와..  글쎄, 얘네들이 자기를 꼭 봐야 되겠다고 생떼를 부리지 뭐야.. "

이미 핸폰으로 오래된 연인 사이로 행세를 해 달라는 부탁을 해온 여진이다.

" 나야 자기를 볼수 있으니까 더 좋지,뭐.. 친구분들 반가워요.. "

여진이 옆에 앉으며 내친김에 그녀의 어깨를 끌어안고 뺨에 뽀뽀를 했다.      다분히 의식적인 몸짓임에도 여진이

역시 어쩔수가 없었을게고 다른 친구들의 눈이 우리 두사람에게 쏠리고 있다.

" 어머 ~ 진짜 젠틀하다, 여진이 니 년은 여지껏 저렇게 멋진 애인을 숨겨 뒀던거야.. "

" 그러게 말이야, 에그 ~ 여우 같은년.. "

" 근데, 언제 만난거야.. "

모두들 한마디씩 하면서 아는척을 한다.      내 경험으로 미루어 처음 만난 여자들이 반길때는 어느정도의 호감을

나타내는걸로 봐도 무방하다.      

마음에도 없는 남자와 쓸데없이 웃음을 낭비하는 여자는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럴땐 처음 만난 기억이 오래 남도록 어필을 하는게 중요하다.      첫인상이 좋으면 먼 후일에 나타나는 어떠한

결점도 눈치채지 못하는게 여자들의 심리이기 때문이다.

" 친구들 만난 기념으로 오늘 술은 내가 살께.. 이왕이면 좋은걸로 하나 더 시키지.. "

여진의 허리에 손을 두르고 가볍게 끌어안으며 그녀들에게 애정을 과시했다.

" 어머 ~ 멋쟁이다.. "

" 우리들 회비로 낼거니까 괜찮은데, 그리고 여기 있는것부터 먼저 마셔야죠.. "

호구로 대하는게 아니라면 당연히 남자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리란걸 짐작한 내 의도대로다.

" 무슨 소리.. 우리 이쁜 여진이 친구들을 만났는데 당연히 내가 내야지, 자기야 안그래.. "

허리를 감은 손에 힘을 주며 여진의 얼굴을 다정하게 들여다본다.       더불어 옆눈으로 친구들의 동태까지 살폈다.

어차피 내가 계산을 하려고 들면 가만히 있을 여진이가 아니란걸 염두에 둔 말이다.

" 그래, 알았어..  니네들 들었지, 우리 오빠가 이렇게 멋있다니까.. "

한복을 입은 모습만 봤는데, 정정 투피스도 잘 어울리고 테이블 밑으로 곧게 뻗은 다리도 유혹적이다.

" 어머 ~ 기집애 좋겠다.. "

모두들 여진이를 부러워하는 눈빛들이다.

" 근데, 저렇게 멋있는 분이 혼자 산다는게 믿어지지가 않네..  그 거짓말 참말이에요.. "

여진이가 나에 대해 대략적인 홍보를 한 모양이다.       모두들의 시선이 호기심으로 번뜩인다.

" 맘에 없는 여자와 사느니 혼자 사니까 편하던데.후후.. "

" 남편도 있는 여진이가 어디가 그렇게 좋아요.호호.. "

아까부터 유독 나를 주시하던 건너편의 친구가 내 입으로 듣기를 원한다.      갸름한 얼굴에 도톰한 입술이 도발적이다.

눈매가 깊고 촉촉한것이 보기에도 좋지만, 뭔가를 갈구하듯 강한 흡인력마저 느껴진다.

" 내가 혼자 살면서도 기다릴만큼 이쁘다면 설명이 되겠어요.. "

다시한번 의도적으로 여진의 뺨에 뽀뽀를 하며 그녀들의 시샘을 불러 일으켰다.

부끄러운듯 하면서도 우쭐해 하는 여진의 표정에서 오늘의 만남에 일말의 성과가 있었음을 스스로 자위했다. 

 

" 미안해요, 오늘 황당했을텐데.. "

여진이가 친구들과 헤어질때도 마지막까지 그녀들에게 애정을 과시하듯 허리에 손을 두른채로였다.

친구들이 택시를 타고 시야에서 멀어지고 나서야, 매무새를 가다듬는 여진이다.

" 나는 좋던데.후후..  이런 기회가 아니면 언제 문여사의 뺨에 뽀뽀를 하누.. "

" 아이 ~ 놀리지 말아요, 안 그래도 친구들한테 사장님을 팔아서 창피해 죽겠는데.. "

" 그러지 말고 어디가서 한잔 더 하지,뭐..  조금 늦어도 괜찮을지 모르겠네.. "

이런 기회가 아니라도 언제한번 여진이를 공략하려 했던 참이다.

" 그래요, 내가 살께요.. "

" 괜찮아요, 아까 문여사가 준돈도 남았는데.. "

친구들 앞에서 계산하라며 남모르게 돈을 쥐어줬던 여진이다.    그 돈으로 웨이타한테 팁까지 주며 여진이 친구들에게

과시를 했다.      

큰 길에서 돌아가는 골목에 호젓한 호프집이 눈에 들어온다.

" 나 때문에 너무 늦는건 아닌지 모르겠네.. "

병맥주를 시켜 그녀의 잔에 부어주고 내 잔에도 따라 잔을 부딛쳤다.

" 포기하고 산지 오래 됐어요, 지금도 어떤 년이랑 시간가는줄 모르고 있을 위인인데..   평생을 이러고 살았어요.. "

" 저런 ~ 아픈 과거가 있었구만.. "

" 친구들이 그런 남편하고 어찌 사냐구..  그런데 나도 모르게 사장님 생각이 나길래 좋아하는 애인이 있어서 그나마

참고 산다고 했더니, 그 년들이 믿지 못하겠다면서 당장에 불러 보라고 닥달을 하기에.. "

흔히 밖으로만 맴도는 남편을 둔 여자들처럼, 포기하고 사는게 만성이 돼서 차라리 무덤덤해진 얼굴이다.

" 앞으로도 필요하면 언제든지 불러요..  아니, 차라리 그냥 애인하면 되겠네.후후.. "

" 아이 ~ 또 놀린다..   그날 왔던 분이 애인이라면서.. "

수정이를 가리키는 말이다.      행여 자기 남편이 요즘에 쫒아 다니는 여자가 수정이라는걸 알면, 여진이의 표정이 어찌

변할지 궁금해 진다.

" 남들처럼 그냥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죠, 내가 평생 껴안고 살 여자는 아니구.. "

" 그 여자분도 그렇게 생각할까요, 모르긴 해도 사장님을 바라보는 눈빛이 보통은 넘던데.. "

" 인연이라는게 한사람이 원한다고 이뤄질리가 없는게 인생 아닐까..     그래서 사는게 요지경 속이라고도 했구.. "

" 나중에 오신 언니 말처럼 바람둥이 맞네.호호..   하여간에 남자들은 알수가 없어, 도대체 몇명의 여자가 있어야지

만족을 하고 살런지.. "

나를 두고 하는 말처럼 들려 속으로 쓴웃음을 흘렸다.

" 남자들이야 문지방을 넘어갈 힘만 남았어도 여자를 밝힌다는 말이 있잖아요, 나도 그중에 하나일테고.후후.. "

" 여자들은 자기 마음을 알아주는 남자 하나만 믿고 살려고 하는데.. "

" 어 ~ 그건 나도 마찬가진데, 내 옆에 있는 여자가 나만을 바라보고 살기를 바라는건 똑같지.. "

" 사장님 옆에 여자가 많은게 본인 책임은 아니시다 그 말이네.호호..  욕심쟁이.. "

" 문여사도 한번 끼어들지,뭐..  어차피 지켜야 할것도 없는것 같은데 지금처럼 산다고 누가 알아줄리도 없고.. "

" 나도 맞바람을 펴라 그말이네.호호..   정말 그래볼까.. "

이제서야 술이 오르는지 처음보다 훨씬 쾌활해진 여진이다.

" 내 말이 모두 맞지는 않겠지만 좋아하는 이성과 감정을 간직하는 맛도 꽤 괜찮거든.. "

" 정말 사장님하고 한번 그래볼까.호호.. "

" 오케이 ~ 지금 이 시간부터 내 애인으로 호적에 올렸슴. 땅땅..  첫번째 명령.. 사장님 대신에 오빠라고 불러주면

고맙겠는데, 아까 나이트에서는 잘도 부르더니.후후.. "

탁자까지 두드리며 너스레를 떨자 곱게 눈을 흘기는 여진이다.

" 말은 청산유수야, 그러니까 여자들이 빠지지.. "

" 일단 한번 빠져보라구, 대신에 한번 빠지면 헤어나오기 힘들걸.후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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