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생각없어

아무생각없어 42

바라쿠다 2012. 4. 4. 12:24

" 아주 여기서 살림을 차려라.. "

민식이와 술한잔 하자고 했더니 '아지트'로 오란다.

'아지트'에 들어섰더니 장사하기 이른 시간이라, 초희와 둘이 앉아 커피를 마시며 희희덕 거리고 있다.

못보던 화분도 두어개가 보이는게, 물어보나 마나 민식이가 사다준 꼴이다.

" 어서와라, 안 그래도 한번 볼려고 했지.. "

" 왜, 새 애인 생겼다고 자랑하려구.. "

" 역시 귀신이네.흐흐.. "

" 애인은 무슨, 민식이 오빠가 손님들 다 쫒는다니까.. "

이래서 여자와 남자는 틀릴수밖에 없나보다.       남자야 여자를 아는 순간부터 들이대느라 앞뒤 분간을 못하는 것이고,

여자는 남자를 받아 들이고도 완전한 제 남자로 등록이 되기전까진 얼마만큼은 거리를 두려 한다.

" 잘 어울리는 한쌍의 바퀴벌레로구만, 보기좋아.후후.. "

어차피 초희와 나는 어울리지 않은 인연이라고 생각했기에, 민식이와 어찌되든 별다른 감흥은 있을리 없다.

" 니가 보기에도 그러냐.흐흐..  왜 이제서야 만났는지 모르겠다.

본의 아니게 친구놈이랑 동서지간이 되었으니 쓴 웃음만 날 뿐이다.

" 남자녀석이 너무 그러면 못나 보이는거야,임마..    입이 귀밑까지 찢어지기는,에구 ~ "

" 하여튼 민식이 오빠는 입이 너무 가벼워서 탈이야, 손님들이 있을때는 조심 좀 해줘야 하는데.. "

" 우리 다음주에 제주도에 놀러가기로 했는데, 너도 같이 안갈래.. "

" 느닷없이 제주도는 왜.. "

" 우리 초희가 회를 좋아하거든.흐흐.. "

하기사 골프치러 필리핀이며 베트남까지 가는 녀석이니, 까짓 제주도에 싱싱한 회를 먹으러 간다는게 큰일일리도 없다.

" 둘이서 재밌게 놀다와라, 같이 가고 싶은 사람도 없고.. "

" 왜, 수정이가 그렇게 목을 매는데 같이 바람이나 쐬고 오지..  경비는 내가 다 책임질께.. "

차라리 가려면 미진이나 인숙이라면 모를까, 수정이하고는 절대로 아니다.

행여 미진이나 인숙이와 동행을 하게 된다면, 입이 가벼운 민식이를 통제할 자신도 없음이다.

" 싫어, 혼자가서 즉석 헌팅이라도 한다면 모를까, 뭣땜에 혹을 달고 제주도까지 가서 고생을 하냐.. "

" 누가 바람둥이 아니랄까봐, 원정까지 가서 사냥을 하려고 들까..  그냥 셋이서 같이 가요, 맛있는거나 먹고 오게.. "

아무리 별다른 약속없이 몸을 섞은 사이라지만, 도통 개념이 없는 초희가 신기할 정도다.

" 됐다니까, 둘이서 깨가 쏟아질텐데..  나보구 그 꼴을 보라구,에이 ~ "

저런 여자를 이뻐하는 민식이가 친구로서 한심하기도 하지만, 한창 좋아서 몸이 달아있는 녀석의 꿈을 깨뜨리는것도

할짓이 아닌것 같아 그냥 모른척 하기로 했다.

" 그냥 같이 가면 좋을텐데.. "

민식이가 화장실에 간 사이 초희가 속삭인다.

" 참, 너도 어지간하다..  나랑 그러고도 민식이한테 미안 하지도 않냐.. "

" 내가, 뭘 ~  민식이 오빠가 좋다는데 굳이 내가 떠벌릴 이유도 없잖어.. "

맞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내 자신의 일도 정리를 못하면서 초희의 행실을 따질 자격이 없음이다.

" 그래, 민식이한테나 잘해줘라.. "

" 근데, 오빠보다는 시원치 않어.호호..  무슨 남자가 한번 했다고 곯아 떨어지냐.. "

 

가슴을 누르는 압박감에 잠에서 깨어났다.      성미가 내 몸위에 체중을 실어 나를 내려다 보는 중이다.

" 언제까지 잘건데, 벌써 12 시가 다 됐어.. "

민식이와 술을 마시다 새벽이 되어 성미네 집으로 온것이다.      오랜만에 집으로 갈까 하다가 성미의 잠옷을 사

주기로 한 약속이 떠올라 이곳으로 온것이다.

" 벌써 그렇게 됐나, 많이 마신것 같지 않았는데 피곤했나 보다..   소영이는.. "

" 친구가 놀러와서 같이 나갔어.. "

욕실에서 씻고 나오자 반찬이 준비된 식탁에 국을 퍼서 올려놓는 중이다.

장사에 재미가 붙어서인지 힘들다는 내색없이 부지런을 떠는 성미에게 흐뭇한 마음이 드는 요즈음이다.

" 이제 제법 만성이 됐지, 니가 볼땐 어때.. "

청결하느라고 그랬겠지만, 손톱에 메니큐어도 칠할새가 없이 열심히 장사를 했으니 본인만의 감을 듣고 싶은것이다.

" 자리는 잡힌것 같애, 자기 말대로 체인점까지 생길지는 몰라도.. "

성미가 저런식으로 얘기를 할 정도면 얼추 수지타산이 맞아 떨어진다는 얘기다.

" 욕심이 많으면 화를 부르는 법이야, 니가 생각하는게 어느 정돈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조바심은 내지마.. "

보통 여자들보다 유난히 욕심이 큰 성미가 쓸데없는 짓을 벌일까봐 걱정이 된다.

" 알아, 나도..  근데 니가 뭐니, 소영이가 옆에 있을때도 그러더라.. "

다행히 가게를 넓힌다든지 하는 엉뚱한 생각은 품지 않은듯 싶다.      

편하고 잘 맞아서 나름 친근하게 대한다는게 성미에겐 언잖게 들리는 모양이다.     

하기사 다 자란 소영이 앞에서 애들처럼 '야'나 '너'라고 했으니 내가 생각해도 어감이 맘에 들지는 않는다.

" 그것도 그러네, 우리도 애칭이나 만들까.. "

" 애칭은 또 뭐야..  하여간에 엉뚱하기는.. "

" 요즘 애들은 그런다던데,뭐.. 어울리는걸로 한번 연구해 보자.. "

성미가 제 딸인 소영이에게 가끔 막말을 해 대는걸 고치기 위해서라도, 나부터 조심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늦은 아침을 느긋하게 먹고도 거실에서 빈둥거리다, 초저녁이 돼서야 성미와 백화점으로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기분이 좋은지 백화점으로 가는 내내 팔장을 끼고 달싹 붙어서는, 걷는 발걸음마저 가볍다.

" 이건 어때.. "

언더웨어가 있는 층을 두바퀴나 돌던 성미가 맘에 드는 잠옷을 들어 보인다.

" 너무 야한거 아니냐, 소영이라도 보면 어쩔려구.. "

허벅지밖에 오지않는 짧은 비단으로 된 슬립인데, 어깨에 걸치는 가는 줄만이 아슬아슬하게 달려있다.

" 거실에 나갈땐 가운을 걸치면 되지, 뭐..   오빠도 이런거 좋아하잖어.. "

" 하이구 ~ 맘대로 하세요, 핑계 대기는.. "

요즘 들어 유독 입는 옷이나 화장에 신경을 쓴다는 느낌을 받아온 터다.      

모르긴 해도 내가 밖으로 도는것에 대한 초조함일수도 있을것이다.

그전에야 작은 문제도 내 의견을 따르던 것이, 조금씩 성미의 견해로 결정이 지어지는게 많아지고 있다.

나름 장사를 하느라고 바쁜 성미의 노고가 대견해 보이기 때문이리라.

 

평상시 진동으로 해 놓은 핸폰을 버릇처럼 꺼내보니 못보던 번호 하나가 부재중 수신으로 들어와 있다.

혹여 인숙이한테 무슨일이라도 생긴것 같은 초조함에, 아파트 입구에서 성미를 집으로 들여보내고 통화버튼을 눌렀다.

" 누구신지.. "

~ 저기..  문여진인데요.. ~~

" 문여사께서 어쩐일로.. "

박사장 와이프의 느닷없는 핸폰이라 궁금증이 생긴다.

~ 부탁이 있어서..  친구들 모임이라 나이트 클럽에 놀러 왔는데, 오늘 하루만 애인 행세를 해주면 안될까요. ~~

전혀 기대도 않던 여자에게서 헌팅을 당하는 기분이다.

" 어떡하나, 난 부르스를 못 추는데.. "

~ 나도 똑같아요, 그냥 친구들끼리 오랜만에 구경이나 하려고 온거지.. ~~

" 지금 있는곳이 어디 쯤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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