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생각없어

아무생각없어 39

바라쿠다 2012. 3. 28. 07:58

테이블 두곳에 손님들이 있는데, 한쪽은 국밥을 먹는 중이고 다른쪽은 엉덩이찜을 안주로 해서 술을 마시고 있다.

엉덩이 찜을 먹는 테이블을 살펴보기 좋게끔 대각선으로 앉았다.

" 아빠 ~ 먼저 오셨네,히히.. "

츄리닝을 아래위로 입었는데, 바지가 허벅지에 꼭 끼어서는 노골적으로 히프라인과 계곡선까지 선명하게 보인다.

내가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아직 미성년자인 소영이가 몸만은 성숙한지라 하체의 굴곡이 적나라하게 보이는게 걱정이 될

정도다.

" 소영아, 옷이 너무 야해 보인다..   엉덩이가 다 보이네.. "

" 피, 아빠도 옛날 사람이네..   요즘엔 친구들도 다 이런거 입는다구.. "

" 소영이가 아빠말을 잘 이해를 못하는구나..  나도 우리 막내딸이 밖에 나가서 이쁘게 보이는걸 바라지, 또 그럴만큼

충분히 이쁜것도 사실이구..  하지만 그런 옷은 무언가가 부족하거나, 자신이 없는 사람들이 입고 다니는거야.. "

성미가 바빠서인지 홀에 있는 아주머니에게 엉덩이찜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을 한 다음에 말을 이었다.

" 아무리 얼굴이나 몸매만을 보는 세상이라지만, 아빠는 우리 막내딸이 그걸로만 자신을 내 세우는게 싫은거야..

겉모습 말고도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을수 있는게 얼마나 많은지 너도 알것 아니냐..  예를 들어 공부를 잘한다든지,

목표로 삼은 일에 열심히 매진한다던가 또는 훌륭한 인격체로 자라던지, 겉모습보다 더 소중한게 얼마나 많은데.. "

" .................... "

" 우리 딸은 몸에 붙는옷을 안 입어도 남들보다 돋보일 정도로 이쁜데, 뭣땜에 자신없는 사람들이 초조해서 하는짓을

같이 따라 하는지 모르겠네.. "

너무 소영이를 몰아 세운게 아닌가 싶어 은근히 걱정도 됐지만, 필요하다면 더 심한 말도 할 작정이다.

" 아빠가 걱정하는게 뭔지 알것 같애..  그렇게까지 아빠가 심각하게 생각하는지 몰랐어.. "

내 말을 이해하는지 알수는 없지만, 받아 들이려는 태도를 보이는 것만도 다행스럽다.

엉덩이찜이 나오자 의례 소주병은 자신의 것인양 내가 소주잔을 들기를 기다린다.

" 그럼, 우리 막내가 주는 술을 마셔볼까나.후후.. "

" 아빠가 싫어하니까 이제부터 이 옷 안 입을래.. "

어린 녀석이 자신이 즐겨입던 옷을 포기할만큼 심성이 바른것 같아 저으기 안심이 된다.

" 니가 좋아하는걸 아빠가 반대를 해서 내 마음도 좋진 않지만 어른말이 맞는거란다.     대신에 니 친구들이 부러워

할만한 옷을 사주마.. "

" 괜찮어, 아빠가 나 잘 되라고 그러는거 아니까.히히 ~ "

" 이제 정말 다 컸구나, 사리분별을 할줄 아는걸 보니..   근데, 소영아..  이 안주 말이다, 엉덩이 찜보다 볼기찜이라고

하면 어떨까.. "

" 볼기찜..  맞아, 아빠..   훨씬 더 먹고싶다.히히.. "

 

손님들이 일찍 끊어지기에 늦손님이라도 들어올까 싶어, 평시보다 30 분 일찍 가게문을 닫으라고 이르고는 오랜만에

세식구가 같이 퇴근이란걸 했다.     

아파트로 걸어가는 중에 다른 가게들도 하나둘씩 간판불이 꺼져간다.

" 난 아빠하고 갈래.. "

소영이가 내 팔짱을 끼고 달라붙는다.

" 에그 ~ 저 여시 같은년..  아빠는 내꺼야, 이 년아..  어디서 함부로 가로챌려구.. "

가게에 들려 문을 닫아줘서 기분이 좋은지 성미까지 나머지 팔에 손을 낀다.

" 넌 다 좋은데 그 욕 좀 안하면 안되냐, 어째 그 버릇을 고치지 못할까. 에잉 ~ "

" 괜찮어, 아빠..  난 엄마가 욕해도 아무렇치도 않어.. "

딴에는 지 엄마와 또 말다툼이라도 할까봐, 소영이가 먼저 나서는 것이다.

" 지금이야 상관없지..  나도 엄마가 너한테 감정을 가지고 욕을 하는게 아니란건 알지만, 버릇이 될까봐 그러는거야..

나중에 우리 소영이 시댁 어른들 앞에서도 무심코 나올까 싶어서 그러는거지, 그만큼 버릇이라는건 무서운거야.. "

" 하여간에 남자가 쫀쫀하기는, 그때까지는 고칠테니까 그만 신경끄셔.. "

골목 사이로 걷고 있는데, 큰 길가 쪽으로 영업이 끝났을 백화점의 네온이 바라보인다.

" 참, 소영이 내일 학교에 가니.. "

" 아니, 내일 놀토잖어.. "

" 그럼 내일 백화점에 가보자, 츄리닝 대신에 다른게 있나 보자구.. "

조금전에 얘기한대로 쓸만한 평상복을 하나 골라주려 한다.

" 내일 친구 만나기로 했는데, 같이 가도 돼요? "

" 안될거 없지..  옷이나 사고 맛있는거라도 사 먹지, 뭐.. "

" 백화점엔 또 뭘 사주러 가는데, 먼저번에도 나만 빼 놨잖어.. "

워낙 추웠던 지난 겨울에 소영이만 패딩을 사 줬다고, 엄마라는 여자가 입이 댓발이나 나왔었다.

" 당신이 지금 옷 사입을때냐, 장사하느라고 바쁜데..   새옷 입고 나 다닐만큼 한가한 것도 아니고.. "

" 누가 외출복 사달래, 먼저번에 내가 오빠 잠옷 사다 줬잖어.. "

당연히 제가 해야 할 일을 하고서도 생색을 내려 든다.

" 그래서 당신도 잠옷이 입고 싶단 말이네, 에구 ~ 언제나 철이 날려나..  그래, 알았어.. 이번 일요일에 같이 가자.. "

그냥 여자한테 져 주는게 편하지 싶어 더 이상 따지지 않기로 했다.

 

" 술집은 장사가 잘 되나.. "

집에 도착해서 욕실에서 샤워를 하고 나온 성미가 안방으로 들어와 화장대에 앉아 머리를 털고 있다.

" 그럭저럭 현상유지는 하는 편이야.. "

성미가 갑자기 '이차선 다리'에 촉각을 세우는걸 경계를 해야 했다.

" 거긴 언제까지 봐 줄건데.. "

보나마나 그곳으로 나가는 나를 못 마땅해 물어보는 말일게다.

" 대충 봐 주다가 발 빼야지, 먼저도 얘기했잖어..  그곳에서 빌린돈만 갚으면 언제라도 그만 둔다고.. "

" 거기서 빌린돈이 오천이라고 그랬지.. "

" 응, 그런데. 왜.. "

" 소영이 앞으로 해놓은 땅인데 얼마나 대출받을수 있나 알아봐..  원래 당신 전공이잖어.. "

서류봉투 하나를 옷장에서 꺼내 침대에 내려놓는다.     느닷없이 소영이 소유의 땅이 있다는게 궁금해진다.

" 이게 웬거냐.. " 

" 소영이 아빠 앞으로 있던거야, 나중에 소영이한테 큰 돈이 들어갈때 쓰려고 놔뒀던거지.. "

땅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수정이한테 빌린돈을 갚자는 통첩으로 들린다.

성미가 나서서 돈을 갚겠다는데 내 입장에서 말릴 명분이 없다.       밖으로 나도는 내 꼴을 보지 못하겠다는 뜻일게다.

" 대출을 받으면 은행이자도 내야 할텐데.. "

" 그래서 지금 빌린돈은 이자가 없으니까, 갚을때까지는 계속 술집을 봐주고 싶다는 얘기야? "

날이 선 목소리로 따지려 든다.     성미의 의도를 확실히 짐작할수 있었다.

" 그런말이 아니잖어, 나도 그곳에 가는게 맘에 들지 않는다구.. "

" 맘에 들지 않는다면 내가 시킨대로 해, 누구는 돈이 남아 돌아서 갚을려고 그러냐.. "

미리 할말까지 준비한듯 단호하고 빈틈이 없다.      더 이상 버틴다면 내 속내를 의심하면서 물고 늘어질 분위기다.

" 알았어, 당장에 알아볼께.. "

" 진작에 그럴것이지, 남자가 치사하게 핑계나 댈려구.. "

" 누가 핑계를 댔다는거야? "

" 오빠가 좋은 사람인건 알지만 더 이상 까불지마, 나도 이번에 독하게 마음 먹었어..   언제까지 다른 여자랑 만나 희희덕

거리는걸 보면서 살진 않을거야.. "

이불을 들추고 내 팔을 잡아당겨, 제 스스로 팔베게까지 하는 성미다.

" 누가 뭐래, 너도 알겠지만 나도 복잡하게 사는건 질색이야..   한군데 정착하고 싶다구.. "

어느정도는 진심이다.     젊을때처럼 무용담을 자랑하듯이 여자 품속을 찾아 헤매는 것도 시들하다.

이혼한지 10여년이 가까워지자 자유로운 삶을 만끽하던 즐거움이, 어느새 속 빈 허울뿐으로 가슴이 시려오곤 했다.

아무리 새로 만난 여자가 곁에 붙어 애교를 부려도 허전함을 채우는건 한계가 있었다.

그 당시 만난 여자가 바로 소영이 엄마인 성미다.       실로 오랜만에 와이프한테 바가지를 긁히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성미의 잘못된 결정으로 인해 2년여를 더 방황을 했었다.      다시금 나를 찾아온 성미를 내치는 것도 쉽지 않았기에,

지금 이 순간이 있는것이다.

살아보지 않고서는 결론이 어찌날지 하늘만이 알것이지만, 양단간에 택일을 할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내 능력 이상의 행복을 욕심내지 않는 성미나 소영이에게 크나큰 부담감은 없다.

작은 웃음에 만족하며 살더라도 두 모녀는 나를 믿고 따라 오리란 생각엔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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