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생각없어

아무생각없어 36

바라쿠다 2012. 3. 21. 19:08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성미집으로 들어섰다.

같이 한번 마셔보자는 미숙이를 뿌리치고 '아지트'를 나선것이다.      맘에는 없더라도 쉬운 남자로 인식되는건 싫었다.

" 일찍도 오네, 소영이가 회까지 사다놓고 내내 기다렸구만.. "

대충 이사짐을 마무리 지면서 손걸레를 들고 있던 성미가 입이 댓발이나 나와 툴툴거린다.

" 아빠, 들어오셨네..  친구가 자고 간대,히히.. "

친구와 제 방에서 노닥거리다 내가 들어온 기척을 듣고는 거실로 나온 소영이가 반긴다.

" 새 침대는 맘에 드니? "

열려진 소영이의 방을 기웃거리니 방안에 있던 소영이 친구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다.

" 그럼, 누가 고른건데..  술 드셨어요? "

" 많이 안 마셨다, 우리 막내가 회를 사 왔다며..   좋은 안주에 한잔 더 마셔볼까나.. "

이사하는 날 제 옆에 있어주지 않고 늦게 들어왔다고 삐져있는 성미를 풀어주어야 했다.      그냥 무시를 할수도

있었지만, 나를 다시 만나 행복을 꿈꾸고 있을 여자를 따뜻하게 안아주는게 도리일거란 생각이 들었다.

더군다나 눈치가 빨라 제 엄마와 나 사이에서 애쓰는 막내딸의 노력이 이뻐보여 모른척 할수도 없음이다.

" 무슨 큰일이나 했다고 늦은밤에 안주까지 해서 바치냐.. "

" 치 ~ 엄마는..  먼저 이사해야 한다고 한게 아빠잖어, 으이그 ~ 눈치없는 엄마땜에 내가 늙는다,늙어.. "

제 친구를 불러내더니 거실에다 작은 교자상을 놓고는 술상까지 차린다.

" 아빠 ~ 첫잔은 내꺼지,히히..  엄마 ~ 빨리 안오면 나 삐진다.. "

아직도 주방에서 미적거리는 성미까지 오라고 채근하면서 소영이가 소주잔에 술을 따른다.

" 그래, 얼른 와서 같이 마시자..  이사하느라 우리 마님이 고생이 많았겠네.. "

그제서야 마지못해 술상으로 다가와 앉는다.       술병을 들어 성미잔에 술을 따라줬다.

" 우리 건배하자, 아빠..  새로 이사한 집에서 엄마가 좋아하는 돈을 많이 벌기를.히히.. "

제 친구와 콜라를 유리컵에 따라 잔을 부딛친다.

" 그래도 우리 마님이 옆에서 안주를 챙겨줘야 술맛이 나는 법이지.후후.. "

성미의 엉덩이를 토닥여 주며 소주잔을 털어넣은 입을 들이밀자, 마지못한 척 회 한점을 내 입에 넣어준다.

" 우리 공주하고 친한 모양이구나..  같이 거들어줘서 고맙다, 집에서는 여기서 잔다고 얘기 했겠지.. "

" 그럼, 말밥이지.히히..  얘네 아빠 경찰이라 디지게 무섭다.. "

" 아빠가 공무원이구나, 그래 어디서 근무하시냐.. "

" 노량진에 계세요, 형사걸랑요.. "

" 아 ~ 그렇구나, 잘 됐다..  우리마님이 삐지면 앞으로 니 아빠한테 일러 바쳐야겠다, 그치 ~ 소영아.. "

" 응, 또 그러면 잡아가라고 해야지.히히.. "

" 누가 부녀지간 아니랄까봐 나만 왕따시키고, 죽이 척척 맞아서 좋겠네.. "

내일부터 장사를 해야하는 성미와 아침일찍 학교를 가야하는 소영이땜에 적당한 선에서 술상을 물려야 했다.

다행히 토라진 성미가 맘을 풀었는지 새로 산 침대에서 가슴속을 파고들며 턱밑에 얼굴을 들이댄다.

 

한달여가 지나자 '이차선 다리'의 자리가 잡혔음인지 제법 초저녁부터 붐비기 시작했다.

네명의 여자들이 번갈아 손님들의 테이블에 앉아 기분을 맞춰주는 수완을 보이는 덕이기도 했을것이다.

수봉이와 미숙이를 찾는 손님들이 많았고, 수정이와 미진이를 보러오는 노신사들도 있는 편이다.

바깥 사장인양 자리를 지키고 있을수도 없기에 그녀들이 바쁜만큼 오히려 내가 한가롭게 다닐수 있었다.

낮에는 성미의 국밥집도 자리가 없을 정도였고, 저녁에도 안주로 내놓은 엉덩이 찜을 찾는 손님이 늘어갔다.

주로 인숙이와 성미의 집에서 번갈아 잠을 잤고, 수정이와는 가뭄에 콩나듯이 '이차선 다리'의 영업시간 전에 만나

모텔에서 잠시 쉬었다 오곤 했다.

미진이와는 성미나 인숙이와 시간이 맞지 않을때마다 그녀의 집에 머물러 지냈다.     

새로이 일을 도와주는 미숙이가 쉬는 일요일에는, '아지트'의 초희를 내세워 나를 불러내 호시탐탐 같이 있을 기회를

노리는걸 눈치 채긴 했지만, 몸이 따라줄 형편도 아니었기에 그냥저냥 시간이 흘러갔다. 

또한 미진이나 미숙이를 통해 수정이를 쫒아다니는 갈비집 박사장의 동태를 들어 알면서도 모르쇠로 일관했는데, 행여

두사람이 엮이길 내심 바랬는지도 모르겠다.

친구놈인 민식이는 미진이가 일관되게 쌀쌀맞게 대하자 스스로 지쳤는지, '아지트'의 초희에게로 과녁을 옮기고서는 

혼자서도 자주 들려 매상을 올려준다고 했다.

초희는 그런 민식이를 쌍수 들어 환대를 하며 장사속을 채웠고, 나와의 관계는 함구한채 미숙이까지 포함된 일요일은

넷이서 술을 마시기도 했다.

그 날도 '아지트'에서 넷이 모여 앉아 술을 마시게 됐는데, 미숙이가 수정이와 박사장이 수상하다고 귀뜸을 해 주는

바람에 수정이의 동선을 한번 체크해 볼 요량이 들었다.

"이차선 다리'의 하나밖에 없는 룸에서 연인들이나 할법한 포즈로 엉켜있다가 미숙이한테 들키고 말았단다.

박사장의 무릎위에 앉아 찐하게 키스를 하고 있더란다.       내심 수정이가 딴 남자에게 눈을 돌리길 바라고는 있었지만,

아직까지는 내 소유일수도 있는지라 그냥 지나치기도 자존심이 상했던 것이다. 

 

인숙이와 밤을 지샌 아침에 달거리가 시작됐다는 말을 듣고는, 문득 수정이의 일이 궁금해 미진이의 집으로 향했다.

여전히 살갑게 맞아주는 미진이의 침대로 들어가 모자른 잠을 보충하기위해, 그녀에게 팔베개를 해 주고 잠을

청하려 하는데 뭔지 모르게 미진이가 머뭇대는 눈치가 보인다.

" 왜 그래, 무슨 할말있어 ?.. "

잠시 망설이던 미진이가 이내 결심을 했는지, 몸을 일으켜 앉아서는 내 얼굴을 내려다 본다. 

" 말 안하려고 했는데 수정이와 박사장이 이상해.. "

" 이상하다니, 뭐가.. "

미숙이와 마찬가지로 미진이 역시 수상한 낌새를 차린 모양이다.

" 잘은 모르겠는데 가게에서 술을 마시면서 자신들만 아는 손짓을 주고받기도 하고, 못보던 목걸이까지 하고 다니는게

 아마도 박사장이 선물한 것 같애.. "

" 나도 대충 눈치는 챘어, 그렇지만 내가 이래라 저래라 참견할 문제는 아닌것 같은데.. "

수정이 본인이 알아서 할 개인적인 사생활이다.      법적인 부부도 아니고, 그저 좋은 감정으로 만나고 있을 뿐이다.

다만 나에게 이렇다 할 말도 없이, 딴 남자에게 눈독을 들였으니 기분이 좋을리는 없다.

" 사실..  나도 오빠한테 알려줘야 하는건지 고민 되더라, 차라리 박사장하고 좋아지내길 바랬는지도 몰라.. "

솔직한 말일게다.     수정이가 선점한 나를 몰래 만나야 하는 미진이로서는, 박사장과 수정이가 공식적인 애인 사이가

되면 떳떳하게 나를 차지할수도 있는 까닭일게다.

" 두고보기로 하자, 나도 수정이한테 마음을 준적이 없어 그런지 미련은 없으니까.. "

" 응큼한 년이라니까, 박사장이 치근덕 거린다고 했을때 눈치를 챘어야 하는건데.. "

" 그나저나 괘씸하긴 하네, 나한테 허락도 없이 눈이 맞았으니..    박사장 와이프나 한번 꼬셔 볼까나.후후.. "

수정이한테 배신을 당한것은 뒷전이고, 은근히 박사장한테 장난스런 승부욕마저 생긴다.

" 하여간에 오빠도 참..   누가 바람둥이 아니랄까봐.호호.. "

미진이도 재미 있다는듯 웃어 제낀다.

" 이리와, 오랜만에 만났는데 우리 얘기를 해야지.. "

앉아있던 미진이의 허리를 끌어안아 품안으로 이끌었다.      턱 밑에서 미진이의 머리냄새가 코를 찌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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