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생각없어

아무생각없어 35

바라쿠다 2012. 3. 16. 13:08

'이차선 다리'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고기집이다.

단독주택을 개조해 소갈비 전문집으로 인테리어를 한 듯 했다.     겉에서 보기에는 그럴싸 하다.

수정이가 이곳 사장이 자신에게 듬뿍 빠져있노라고 자랑삼아 얘기를 하길래 궁금하기도 했고, 이왕이면 '이차선 다리'의

매상을 올려주는 손님인지라 관상이라도 볼겸 이곳에서 회식을 하기로 한 것이다.

수정이와 미진이, 수봉이와 미숙이가 일찍부터 왔고, 주방에서 안주를 만드는 벌교 아줌마와 친구인 민식이까지 불러서

인원이 7명이나 됐다.

일단 소갈비 6인분을 시키고 육회를 하나 시켰다.       아무래도 일요일 저녁이면 장사가 뜸한 편이다.

적지않은 인원에 2만원씩이나 하는 소갈비 4인분을 추가로 시키자 주인여자가 인사차 우리 테이블에 들렸다.

지금까지 계산으로도 얼추 25만원이 넘어가니, 카운터에 앉아 그냥 있을수도 없는 매상이다.

" 처음 본 손님이신데 인사가 늦었네요, 잘 부탁 드립니다.호호.. "

수정이나 미진이보다는 어려보이고 미숙이보다는 더 들어보이니까 얼추 40초중반은 돼 보인다.

" 사장님이 미인이라 그런지 고기가 더 맛있네.후후..   자주는 못와도 좋은 고기를 주시면 가끔은 올께요.. " 

한복을 차려입은 안주인이 인사를 하는데, 갸름한 미인형이지만 입술끝이 살아있어 성격이 강해 보인다.

" 어머~ 별 걱정을 다 하셔, 우리집 고기는 일등품 아니면 쓰지를 않아요.호호.."

수입고기를 쓰면서도 자기집 고기가 좋다고 자랑하는 여자가 장사치답다.

" 자, 우리 사장님 내 술 한잔 받으시죠.흐흐.. "

민식이가 안테나를 세우고, 자신이 먹던 잔을 손으로 훔치고는 여사장에게 소주를 따른다.

즐겨 입안에 고기를 넣는 사람은 벌교 아줌마와 수봉이 뿐이고, 나머지는 그저 술안주로 한점씩 불판을 비워간다.

" 근데 사장님 혼자 장사하시네, 도와주는 사람도 없나봐.호호.. "

수정이가 못참고 자신을 쫒아다니는 바깥주인이 궁금했는지 촉각을 세운다.

" 저녁늦게 들려 문이나 닫아주죠, 워낙 바쁜 양반이라 저 혼자 꾸려가요.. "

민식이가 따라준 술을 단숨에 들이키고는, 빈잔을 돌려주고 술을 따른다.

" 에구 ~ 힘드시겠다, 여자혼자 장사하기 힘들텐데..  그래도 남자가 있어야 든든한 법이거늘.. "

미진이가 안주인한테 말을 건네고는 나를 보고 눈을 찡긋거린다.       수정이를 어찌 해 보려고 쫒아다니는 바깥 남편이

하는 짓을 아는터라 재밌는 모양이다.

" 바깥 사장님은 좋겠다, 부인이 알아서 돈 벌어오니까.. "

대충 눈치를 챈 미숙이마저 눈앞에 있는 여사장이 답답해 보여 찔러댄다.

" 근데, 이 동네 사시는 분들같지는 않고..  웬만한 토박이들은 내가 다 아는데.. "

자신의 집을 찾아온 손님들이니 대충 어떤 사람들인지는 꿰고 있어야 할게다.      손님관리를 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 인사가 늦었네요..   요 앞에서 구멍가게를 개업했는데, 우리 식구들과 저녁이나 먹을려구.. "

안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여사장에게 건넸다.      카운터에 다녀온 그녀가 명함을 내민다.

" 어머, 같은 동네에서 장사를 하시는구나..   문이라고 불러주세요, 2차 가실 손님이 오시면 그쪽으로 보내 드릴께요.

호호.. "

명함에 문여진이라 찍혀있다.    자신의 남편이 양주를 마시는 큰 손님인줄도 모르고 돕고 살잔다.     

자신의 남편이 수정이한테 빠져 치근거리는걸 알고 나서도 우호적인 태도를 보일지가 궁금하다.

" 저희집 술값이 싼편이죠, 많이 밀어주세요.호호.. "

수정이가 자신만이 아는 뜻모를 생각을 품고는 문사장에게 영업적인 멘트를 날린다.

" 어느분이 사모님인지.. "

그도 그럴것이 수봉이만 빼놓고는 나이가 엇비슷하니 세여자중에 하나를 내 와이프로 생각한 모양이다.

" 나는 와이프가 장사하는걸 싫어해요, 아까운걸 집안에 모셔놓고 나만 바라봐야지, 밖으로 내 돌리면 쓰나.후후.. "

내가 뱉은 말이 맘에 들지 않는지 수정이와 미진이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흔들린다.       그렇지만 내 입장에서는

그녀들이 좋아 할만한 얘기를 할수가 없음이다.      수정이와 미진이가 같이 있는데 누구를 띄워 주겠는가.

" 아 ~ 그렇다고 여기에 온 사람들은 종업원은 아니고 나랑 같이 동업하는 친구들이죠, 집에 있기가 심심하다고 나랑

같이 술이나 마시며 시간을 보낸다고 할까.. "

어차피 이해가 되지 않는 핑계다.      하기사 내가 처해 있는 입장 자체가 스스로도 이해가 되질 않으니, 누군가가 어찌

생각을 하든 이미 괘념할 처지도 아니다.

" 사장님도 시간되면 한번 놀러오세요..  스트레스도 풀겸, 나이도 비슷한데 같이 노래도 부르고 놀면 되겠다.호호.. "

자꾸 장난기 서린 말을 내뱉는 미숙이다.       문사장의 남편이 '이차선 다리'에서 계산한 카드 명세서가, 집으로 날라갈수도

있음인데 자꾸 도발을 하는게 어떨지 한편으론 걱정도 된다.

 

7명이 회식한 계산이 무려 32만원이 나왔다.      고기도 배불리 먹었지만 소주도 꽤 많이 마셨지 싶다.

민식이는 벌써 혀가 꼬부라지고, 수정이도 이미 자신의 주량을 넘어선듯 하다.

미진이는 내 눈치를 살피느라 절제를 했지만, 새로온 미숙이는 술이 꽤 센듯 말짱스럽다.     

민식이가 자신이 2차를 쏘겠다며 나이트를 가자고 설쳐 댔지만 내일을 위해서라도 그들을 돌려보내야 했다.

미진이가 계속 눈치를 줬지만 술에 취한 수정이를 바래다 주라고 이르자 마지못해 택시를 타고 먼저 떠났다.

벌교 아줌마는 집이 근처라 걸어서 헤어졌고, 계속 마시자고 술이 취해 덤비는 민식이를 택시에 태우자, 방향이 같은

수봉이와 미숙이가 차비를 아끼자며 비좁은 택시안으로 들어온다.

서초동 아파트에 민식이를 떨구고 수봉이를 방배동 집앞에 내려주고는, 미숙이에게 집 방향을 묻자 '아지트'에서 초희를

만나기로 했다며 데려다 달란다.

저녁 10시가 넘었지만 우리집이 근처라는걸 알기에 할수없이 미숙이와 '아지트'로 가야 했다.

영업을 하는 날에 비하면 집으로 가기 이른 시간이라 초희랑 만나기로 했단다.

" 무슨 회식을 그렇게 오래했대, 그냥 집으로 간줄 알았다.얘.. "

일요일이라 '아지트'가 한산하다.      손님도 없이 혼자서 음악을 듣던 초희가 반갑게 맞는다.

" 워낙 인원이 많아서 늦어졌어, 우리 사장님 여친하고 친구분이 계속 술을 시키더라니까.. "

소영이 한테 늦어도 집으로 간다고 했는데 너무 늦으면 곤란하다.     오랜만에 들렸고 수봉이와 미숙이를 소개 해

줬기에 양주라도 한병 팔아줘야 했다.       대충 두사람의 기분을 맞춰주다가 자리를 뜰 생각이다.

" 사장님 여친 어떻게 생겼디, 너보다 이쁘던? 호호.. "

" 이쁘면 뭐해, 나이가 많아 보이는데.후훗.. "

당사자가 앞에 있는데도 둘이서 찧고 까불 태세다.      둘이서 입방아에 올리던 말던 놔 두기로 했다.

초희가 만들어준 양주를 언더락스 잔에 붓고 조금씩 목을 축여가며 그녀들의 하는양을 지켜봤다.

한참 쓸데없는 얘기를 주고받던 미숙이가 화장실에 다녀온다고 잠시 자리를 비웠다.

" 오빠, 이제 큰일났네.. 미숙이가 오빠를 꼬셔 보겠다고 큰소리를 치더라.호호.. "

무슨 호박에 봉침 찌르는 소린지 모르겠다.      자기하고도 몸을 섞은 나를 두고 남의 말 하듯 재밌어 한다.

" 그래서 그렇게 해 보라고 했단 얘기야, 너는.. "

" 미숙이가 돈이 없어서 일하러 간건 아냐, 오빠를 처음 보고는 맘에 들었는지 재밌겠다면서 그리로 간거야.. "

" 내 옆에 여자가 많다고 얘기를 했을거잖어, 더군다나 너는 어쩌구.. "

아무리 남녀관계가 엉망으로 엮이는 세상이라지만 초희의 개념은 이해 하기가 어렵다.

" 나야 처음부터 해바라기가 될수 없는 여자니까 미숙이한테는 비밀로 했지..  오빠 주위에 여자들이 많을거라고

얘기를 하기는 했는데, 한번 찍은 남자는 절대로 놓친적이 없는 애니까 나도 한번 지켜볼려구.호호..   재밌잖어.. "

편한 남자는 못될거라고 괜히 힘빼지 말라고 했는데도, 자기한테 빠지게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하는 미숙이와 나의

대결이 볼만 하겠다며 누가 이기는지 지켜보겠단다.     

졸지에 맘에도 없는 여자한테 픽업을 당하게 생겼다.      젊을때 같으면야 오는 여자를 마다하지 않겠지만 지금은

안그래도 골치가 아플 지경이라 미숙이의 관심이 귀찮을 뿐이다.

더군다나 색기가 흐르는 타입은 처음부터 싫어하는 편인지라, 더 이상의 인연을 만든다는건 애초에 맘에 두지 않을

생각이지만 은근히 승부욕이 생기는 것 또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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