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생각없어

아무생각없어 31

바라쿠다 2012. 3. 1. 21:24

" 제가 너무 늦었죠, 늦잠을 자는 바람에.히히.. 지송 ~~ "

청바지에 털실로 짠 쉐타를 입었는데, 꾸미지 않았아도 젊어서 그런지 싱싱해 보인다.

" 그래,임마. 니가 제일 어른이다.후후..  어제는 손님이 늦게까지 안가고 버텼는가 보네.. "

" 네, 매상이 많이 올라 사장님이 좋아했어요. "

" 같이 지낼 언니야, 처음이라 니가 많이 도와줘야 할거야..   얼굴이 이쁘니까 어쩌면 니가 편할수도 있겠구나.. "

손님들이 많이 찾을 얼굴이다.     더불어 혼자서 손님을 상대해야 했던 수봉이도 덩달아 쉴수 있는 쨤이 날 것이다.

" 잘 부탁해요, 내가 처음이라 잘 할지 모르겠네.. "

" 어려운건 없어요, 그냥 아는 사람하고 한잔한다고 쉽게 생각하면 되는데..  그리고 '아지트' 언니한테 얘기 들었어요,

나도 언니라고 부를테니까 언니도 동생처럼 말을 놔야 가게에서도 편할거구.. " 

나이는 어려도 이곳의 생리를 꿰고 있는 수봉이다.     둘이서 맘만 맞으면 제대로 재밌게 장사를 할수 있을것이다.

둘 다 남자들이 호감을 보일만한 미모다.     자신할순 없지만 그 근방에 있는 손님들에게 제법 인기를 끌수는 있지 싶다.

" 그래, 수봉이 말이 맞아..  처음 본 손님도 친한척을 해 주면 좋아 하는 법이지, 그건 그렇고 영업시간에 밥을 먹기도

힘들테니까 어디가서 간단하게 식사라도 하자구..  수봉이가 좋아하는거 있으면 그걸로 하자. "

든든하게 갈비탕이라도 먹이려고 했건만, 수봉이가 칼국수가 먹고 싶다고 하는 바람에 보리밥을 곁들여 식사를 했다.

" 근데, 사장님과 초희 언니는 아신지 오래 됐나여? "

칼국수 면발을 둘둘 말아 수저에 올리던 미숙이가 느닷없이 묻는다.      질문을 하는 의도를 몰라 잠시 그녀를 쳐다

보는데 수봉이가 대신 입을 연다.

" 언니도 참, 사람을 면전에 두고 그런걸 물어볼까.호호..  혹시 언니도 사장님한테 마음이 있는거 아냐? "

오히려 나이어린 수봉이가 취해야 할 태도를 아는 것이다.     이참에 미숙이도 말조심을 하게끔 짚고 넘어가야 했다.

"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지만 초희하고는 별로 말할게 없는데..  다만 '이차선 다리'에 있는 여사장하고는 친구처럼,

또는 애인처럼 지내는 중이죠..   숨길것도 없지만 그녀들한테는 말을 좀 아껴주면 좋겠는데.. "

" 어머~ 미안해요, 나는 그냥 별 뜻없이 물어본건데.. "

생기기만 이쁘게 생긴 여자는 눈치가 없는 경우가 많다.     수정이와 미진이 때문에 앞으로도 자주 이런일을 겪을것

같아서 조심스럽다.      

새로 식구가 되기로 한 미숙이가 성미나 인숙이까지 만날 일이 없다는게 그나마 다행이다.

'아지트'의 초희는 제 스스로 내게 부담을 주지 않는다고 했으니 별 문제는 없을듯 하다.

 

사람이 한사람 더 늘자 가게 식구들은 무슨 응원군이 온것마냥 활기가 넘친다.

수정이의 속셈은 한사람이 더 늘어 맘에 들지 않는 손님자리는 되도록 피할수 있는 여유가 생겼고, 수봉이도 바쁘게

테이블마다 돌아 다녔던걸 나눠서 할수 있으니 든든한 지원군이 생긴 탓이다.

그만큼 한사람이 주는 의미는 클수밖에 없다.      이제는 단체 손님이 들어와도 허둥대지 않아도 되니, 각자 반가운 

마음들일 것이다.

조금 있으니 민식이 놈이 와서 하나밖에 없는 룸을 차지하고는 술을 마시기 시작한다.

그저 남는게 시간과 돈밖에 없는 놈인지라, 재밌는 곳만 골라 다니며 지 인생을 즐기며 사는 룸펜이다.

수정이와 미진이가 간간이 상대를 해주며 홀에 있는 테이블에도 신경을 쓴다.

특히 미진이는 민식이가 자꾸 들이대는 제스처를 취하자, 노골적인 귀찮은 표정으로 쌀쌀맞게 눈치를 준다.

저녁 9 시가 넘어서자 가게가 북적이며 활기가 넘쳐난다.      민식이를 달래 룸을 비우게 하고는 둘이서 근처에 있는

부침개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주인 할머니에게 간단한 파전과 막걸리를 시켰다.

" 야, 미치겠네.. 왜 그렇게 쌀쌀맞게 구는지.. "

미진이가 자신한테 넘어올 기미가 없자 조금은 서운했는지 막걸리 한사발을 원샷으로 들이붓는다.

" 그만해라, 싫다는데 보기 흉하게 자꾸 들이대냐.. "

다행히 수정이 친구인 미진이와도 내가 미묘한 사이인줄은 모를것이기에 안심은 된다.

" 지가 아무리 이뻐도 그렇지, 나처럼 잘해줄 남자도 없는데.. "

" 뭘, 잘해 주는데..  미진이도 재산이 많다더라, 괜히 어줍잖게 선물이나 사 줬다가는 망신 당하기 쉽상이야..   그리고

버젓이 남편까지 있는데 뭘 믿고 대드는지 모르겠다, 이 참에 맘을 돌려 먹어 임마. "

어쨋든 친구가 맘에 둔 여자를 모른척하고 만난다는게 편할수만은 없다.      녀석이 맘을 접어주기를 바랄뿐이다.

" 기분도 그런데 '아지트'나 가서 한잔 더 하자. "

미진이에게서 풀지 못한 찜찜함을 초희한테서라도 달래고 싶은 모양이다.     그곳에 간들 초희가 받아줄리도 만무하다.

" 너 혼자 가라, 조금후에 동대문에 가 봐야 돼. "

" 이 늦은 시간에 동대문엔 왜 가는데.. "

 

결국 민식이를 보내고 동대문으로 향했다.

자정이 다 된 시간인데 그곳은 대낮보다도 더 활기찬 모습이다.      곳곳에 조명들이 번쩍이며 지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보도 블럭위엔 포장마차들이 장사를 시작할 준비들을 하고있다.

내가 건달도 아니지만 성미에게 술주정을 했다는데 두고 볼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더군다나 막내딸을 삼고 싶을만큼

애교덩어리 소영이가 마음을 다쳤다.      두번다시 마주치지 않게 단도리를 할 작정이다.

성미가 가르쳐 준대로 옛날 동대문 야구장 뒷편에 있는 상가 계단을 올라, 가게마다 적혀있는 번지수들을 눈여겨 봤다.

마침내 덩치가 제법 큰 그 친구가 눈에 들어왔다.     젊은 종업원과 가게를 열어놓고 장사준비를 하고 있다.

성미와 다섯살 차이라고 했으니 나하고도 다섯살 터울이다.     나이로 대접 받을리야 없겠지만, 만만한 후배정도로

취급하려고 미리부터 작심했다.

점포 입구에 서서 미동도 없이 자신을 쳐다보자, 손님과는 다른 낌새를 느꼈는지 의아하다는 눈빛을 보내며 다가온다.

" 소영이 알지, 그 녀석의 아빠가 될 사람이야..  술 한잔 하고 싶은데 그 쪽이 안내 좀 하지. " 

잠시 머리를 굴리는가 싶더니 종업원한테 뭐라고 이르고는 복도를 따라 휘적휘적 걸어간다.

뒤태를 봐도 힘깨나 쓸만한 덩치다.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먼저 기선을 잡느냐에 따라 승부가 결정나는 법이다.

여기 오기전까지 어찌 대응을 할지 여러각도의 경우를 두고 미리 생각을 해 뒀다.

여차하면 주먹다짐까지 해야겠지만, 그럴 경우에도 나라는 인간을 확실하게 기억하도록 세차게 밀고나갈 작정이다.

상가건물 뒤쪽으로 두사람이 겨우 지나갈만큼 좁은 골목으로 들어서더니 허름한 식당안으로 들어간다.

" 이모 ~ 여기 머리고기 하나 주슈, 두꺼비도 주시고.. "

녀석이 위세를 보이고 싶은지 말투가 걸찍하다.      그의 맞은편에 앉아 표정없이 눈동자를 들여다 봤다.

김치와 함께 소주가 먼저 나오자 술병을 든 그가 내 쪽에 있는 소주잔을 향해 술병을 까딱인다.

술을 따를테니 잔을 들라는 뜻일게다.      반응없이 무덤덤한 눈으로 바라만 보자 멋적은 표정으로 빈잔 두곳에 술을

따른다.

자신의 앞에 있는 잔을 들어 한모금에 털어 놓더니, 일부러 소주잔을 탁자가 울릴만큼 세게 내려놓더니 나를 쳐다본다.

" 사람을 불러냈으면 가타부타 얘기가 있어야 하는건데.. "

눈에 힘까지 줘 가면서 나를 흉내 내려는지, 말꼬리까지 자르며 대차게 나오는 폼이다.

" 난 말이야, 얘기를 하러 온게 아냐.. 자네 얘기를 들으러 온거지, 듣자니까 소영이 에미한테 손까지 댔더구만.. "

탁자에 술잔을 소리나게 내려 놓은 행동이나 눈에 힘까지 줘 가며 나를 떠 보자고 했겠지만, 전혀 겁먹는 반응이 없자

조금은 당황스러울만도 했을게다.

" 그나저나 댁이 소영이 아빠가 될거라고 했는데, 성미에 대해 알고 있기나 하는거요.. "

말끝에 자신도 모르게 존대가 붙었다면 이미 힘겨루기는 끝났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제부터는 지금의 위계질서가

뒤 바뀌지 않게끔 허점만 보이지 않으면 되는 일이다.

" 자네하고 말장난이나 하자고 온건 아니지만 설명은 해주지, 내가 능력이 없다고 돈 많은 친구를 만나겠다며 몇년전에

나를 떠났어..   여태껏 여자를 윽박질러 본적이 없는 놈이야, 나는..   그래서 니가 원하는 길이라면 가서 행복하게

살라고 떠나 보냈는데 몇달전에 찾아 왔더군, 잘못했으니까 다시 받아달라구..  좋아하는 돈을 마음대로 쓰지도 못하게

하면서 남자행세만 하려고 해서 끝냈다고..

앞에 보이는 소주잔을 들어 마신다음 녀석과는 다르게 조용히 잔을 내려놓고는 말없이 두잔이나 더 따라 안주도 없이

마셨다.     

내가 하는 행동을 바라보며 다음에 이어질 내 말을 기다리고 있는 녀석이다.

'아무생각없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무생각없어 33  (0) 2012.03.12
아무생각없어 32  (0) 2012.03.05
아무생각없어 30  (0) 2012.02.29
아무생각없어 29  (0) 2012.02.28
아무생각없어 28  (0) 2012.0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