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생(殘生)

잔생 96

바라쿠다 2019. 4. 4. 06:33
"아휴~ 정신없지?"
"사람 더 써야겠어."
개업빨이려니 했는데 일주일이 지나도 손님들이 넘쳐 난다.
점심장사를 마치고 이모들이 식사를 준비중에 찬물을 거푸 들이켜야 했다.
옆에 인아가 있어 그나마 심적으로 도움이 된다.
"그러자."
"어머~ 웬일이래 짠순이가.."
알뜰하게 살아 온 모습이 친구인 인아의 눈에도 보였지 싶다.
하기야 이모 한사람의 인건비가 250을 넘으니 적은 돈은 아니다.
"그러래.."
"봉씨가?"
의례껏 바둥이며 사는게 팔자려니 했고 그걸 본 국진이가 안쓰러워 했다.
처음엔 그 의미를 몰랐으나 왜 그런 얘기를 했는지 어려풋 알것 같다.
"응."
"화해는 했니?"
"그런 셈이야.."
예전과 달리 급박하게 돈이 들어가는 일은 없다.
교통사고 휴유증으로 밥벌이를 나몰라라했던 남편 대신 가정을 책임져야 했다.
지나 온 세월이 작은 돈이나마 악착을 떨게 만들었고 그 운명에 힘겹게 순응했다.
국진이를 만나 조금씩 위로가 됐고 전세집이나마 갖게 됐다.
큰 놈 동훈이마저 일찍 앞가림하게 된 것도 순전히 국진이 덕이다.
이제는 악착을 떨지 않아도 생활비 때문에 쫒기는 일은 없다.
"화해면 화해지 그런 셈은 뭐야.."
"배신당했지 싶은가 봐."
"남자가 쫀쫀하기는.."
"내 잘못이야, 그나마 헤어지자고 안해 다행이야."
"너 피곤하겠다.."
보통의 여자들은 자기 남자가 길에서 지나치다 흘깃거리는 것도 싫어 한다.
하물며 외간 남자랑 섹스까지 했으니 어느 남잔들 이해하겠는가.
국진이 말마따나 다른 놈의 손때가 묻었으니 안고 싶은 생각이 사라질수도 있다.
"일주일에 5일간만 일하자."
"얘 좀 봐, 우리가 공무원이니?"
"등산도 다니고 놀러도 가자."
"그것도 봉씨가 그러라디?"
"예전부터 그랬어, 돈에 집착하지 말라고.."
"팔자 늘어졌네."
처음 사귈때처럼 국진이의 애뜻한 보살핌이 받고 싶다.
의례 그러려니 하고 우쭐했던 잘못을 고치고 싶다.

"오랜만일세, 바쁜 모양이네.."
"자기도 마찬가지자너.."
정애에게서 들은 얘기가 있기에 연숙이를 민물장어집으로 불러 냈다.
젊은 피를 가진 쌍동이와 놀아나니 세상 부러울게 없을게다.
"뭣땜에 사누?"
".........."
"하긴 즐기며 사는 것도 나쁜건 아니지.."
"누가 그래, 정애년이?"
"팔자대로 사는게야, 나중이야 어떻든.."
"악담하는거야?"
"그럴리가 있나, 후회남기지 않았으면 해서.."
남들이 부러워하는 미모를 타고 난 것도 복 받은게다.
그 미모를 바탕으로 즐기며 살겠다는데 뉘라서 딴지를 걸겠는가.
어려서부터 외모덕에 위함을 받았을게고, 그 대접이 만성이 되었을게다.
자신을 흠모하는 남자의 대쉬가 당연하다 여기며 살았을게다.
하지만 인간사란게 한쪽만의 일방적인 갑질은 응분의 댓가가 따르기 마련이다.
스스로 만드는 자신의 인생이지만 상대의 기분도 헤아릴줄 알아야 한다.
"같이 살기 싫다며.."
"그래서 멋대로 사시나.."
"그게 잘못이야?"
"엉덩이에 뿔 났구먼.."
".........."
"됐으이, 자네는 설명해도 몰라."
"치~ 그래, 니 똥 굵다."
"날 찾는 일 없도록 빌어 줌세, 가 봐.."
".........."
어차피 오래 갈 인연이 아니라면 이쯤에서 정을 끊어야 한다.
본 바탕은 나쁘지 않지만 세상을 너무 가볍게 보는 경향이 있다.
젊은 피를 수혈했으니 가뜩이나 이쁜 얼굴에 윤기까지 흐른다.
지금이야 껄떡대는 숫놈들로 인해 아쉬울게 없겠지만, 열흘 붉은 꽃 없다고 인생의 
반전은 소리소문없이 다가 온다.
짧은 인연이었지만 깊은 수렁에 빠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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