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여자

세여자 61

바라쿠다 2019. 1. 27. 07:00
"자기는 걱정안돼?"
"내가 왜, 처가집 식구 만나는데.."
"참 태평스럽다.."
다소 보수적인 부모님밑에서 자랐기 때문인지 몰라도 지금의 상황이 쉬울수는 없다.
애들은 다 키워낸거나 다름없지만, 딸자식의 이혼을 넙죽 받아들일리 만무하다.
해서 친정에는 모른척하고 있었는데, 진수와 여러번 만난 큰오빠 때문에 모두들 알게 
됐지 싶다.
불안한 나와는 달리 운전하는 진수는 콧노래까지 흥얼거린다.
"가볍게 굴지 말고 무게잡어."
"걱정마, 나 어린애 아냐."
세상 어느 부모가 12살이나 어린 남자때문에 이혼하게 된걸 이해하겠는가.
하물며 진수의 애까지 가져 이렇게 배가 부른걸 보면 어찌 생각할지 암담하다.
아무렇지 않게 불쑥불쑥 말실수를 하는 진수땜에 더 곤혹스럽다.

"어서와.."
"다들 계시지?
집앞에 차를 주차하고 초인종을 누르자 막내 선웅이가 나와 문을 연다.
이 곳 일산 전원주택 단지는 같은 평수의 비슷한 외향의 집들이 나란히 늘어 서 있다.
큰 대로변 뒤에 자리한 때문인지 주차때문에 걱정할 일은 없다.
늘어 선 각 집마다 앞마당이 있어 지나치는 사람들이 각기 다른 정원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응, ㅋ~ 키가 비슷하네.."
나름 체격이 좋은 친정집 남자 형제와 달리 키가 작고 안경까지 쓴 진수가 한방 먹은 
셈이다.
"이 친구가 선웅이야?"
"..응, 인사해.."
그리고 보니 막내인 선웅이보다 일곱살이나 어린 진수다.
"어서오슈.."
"오슈? 헐~ 매형한테.."
"매형? 아직 모르지.."
"얘~ 선웅아.."
처음 만나는 초장부터 기싸움처럼 되지 싶어 속이 상한다.
우려했던대로 어린 나이로 인한 언발란스가 시작되고 있다.
친정집에 새로이 소개하는 남자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두고봅시다, 언제까지 그러는지.."
"들어가자구, 아까부터 기다리셔.."
"..진수씨 들어가자.."

"..저 왔어요.."
"어서 오시게.."
"우선 앉아라.."
다들 거실에 앉았고 엄마만이 현관문 앞까지 나와 반긴다.
"또 보네.."
"잘 지내시죠?"
"후후..자네 덕에.."
그나마 진수와 여러번 만난 큰오빠가 어색함을 깨고자 아는척을 한다.
"절부터 하겠습니다."
"..절은 무슨.."
변죽있게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하는 진수를 바라다 볼 뿐이다.
다행스럽게 엄마의 안면애는 흐뭇한 미소가 띠고, 아버지 역시 싫은 기색은 아니다.
"자네가 큰 애 도움을 줬다며.."
"별거 아닙니다, 마침 아는 분이 있어서.."
"고마우이.."
"당연한거죠, 선미씨 오빠니까.."
"허허.. 벌써부터.."
말수가 적어 근엄하기까지 한 아버지가 의외로 살갑게 대하신다.
큰오빠를 통해 근황이나마 전해 들으셨지 싶다.
"이이는.. 한가족이나 마찬가진데.."
"언제 출산이냐.."
"..두달쯤.."
"큰아이 대학갔다며.."
"..네.."
"못가봐서 미안하구나, 그 놈 볼까싶어.."
"..네.."
애들 아빠인 태호를 탐탁지 않게 여기던 친정이다.
부동산업을 한다며 허세를 부릴때 친정집 돈까지 날려먹은 위인이다.
그랬기에 신혼시절때 말고는 처가집 근처는 얼씬 못하는 처지가 됐었다.
"뜬구름이나 잡는 그 놈보다는 훨 났구만, 자네.. 우리 선미 어디가 이쁘던가.."
"그냥 다.. 착해요."
"허허.. 여자보는 눈이 나랑 같아.."
"이이는.. 근데 뭘 그리 많이 보냈누?"
".........."
"처음이라 더 보내고 싶었는데.."
"이사람이.. 냉장고에 넣고도 남았구만.."
"큰냉장고도 보내 드릴께요.."
"허~"
"하하.."
"ㅋ~"
엊저녁 친정집 주소를 묻더니 딴 생각이 있었던 모양이다.
기회가 있을때마다 잔머리를 쓰는 진수의 면모가 유감없이 발휘돼 친정식구들의 
점수를 따는 중이다.
"형님일은 잘 되세요?"
"막내 삼촌덕에 재미보는 중일세, 고맙네.후후.."
"다행이네요, 혹 막히는게 있으면 연락주세요."
"후후..지금도 충분해."
"선웅이도 자리잡아야 하는데.."
"엄마는 또.."
40이 가까운 선웅이는 청년들이나 하는 피트니스 강사일을 아직도 하고 있다.
제 딴에는 체질에 맞는다지만 엄마의 눈에는 시덥지 않은 직업일 것이다.
"취직하면 어떨까.."
"취직?"
".........."
"응, 우리 사무실.. 마침 사람이 필요해.."
이혼한 전부인 친지가 경리일을 책임졌는데 돈이 새는 낌새가 있다 들었다.
아무래도 횡령하는 냄새가 난다며 전전긍긍 했더랬다.
"경리일은 모를텐데.."
"그건 직원들이 할거구.. 관리만 하면 돼.."
"그래두.. 운동밖에 모르는데.."
"누나 돈인데 훔치기야 하겠어, 안그래? 동생.."
"동생이라뇨.."
"누나 남편이니까 족보가 그렇잖어 ㅋ~"
"ㅋ~"
"그건 사위말이 맞구먼.후후.."
"그리되면 좋겠구나.."
보자마자 한방 먹은 진수의 역전타가 터지자 선웅이의 얼굴이 이즈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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