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생(殘生)

잔생 89

바라쿠다 2019. 1. 9. 06:08
"좋아보여요.."
"왜 안좋겠어, 인아씨 옆에 있는데.후후.."
"까르르~"
"놀리는게 재밌냐, 이 도사야.."
젊은 애들뿐 아니라 크리스마스는 우리네 중년들까지 푸근하게 한다.
백화점 건너 자주 가는 복집에서 용호씨와 인아까지 오랜만에 넷이 뭉쳤다.
가게 오픈까지 여러 날 시간이 남기에 꿀같은 휴식을 보내는 요즘이다.
"이쁘긴 하지 인아년이,호호.."
"웬일이냐, 내 칭찬을 다 하구.."
"철드나 보네, 우리 희정이.."
"ㅋ~ 나이가 몇갠데.."
사실 지나치는 숫놈들이 흘깃거릴 정도로 이쁜 인아년이 부러웠다.
쓸데없는 자존심이랄수도 있고 지기 싫어하는 경쟁심일런지도 모르겠다.
이런 나를 좋아해 주는 국진이가 고맙기도 했지만, 당연하다는 중뿔난 건방까지 떨었다.
이뻐해주는 것도 모자라 아들녀석들마저 품어주려는 그의 마음세계가 새삼 느껴진다.
따지고 보면 국진이를 만나기 전 힘에 겨운 일상이었다.
그를 만난 처음에는 여느 숫놈처럼 몽뚱아리만 탐하려는 수작이려니 했다.
그의 말처럼 전생의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지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인아씨 딸 왔다며.."
"에구~ 그년만 생각하면 골치아포.."
"냅둬.. 그러다 말겠지."
가출했던 지연이가 왔다는 얘기를 인아에게서 듣긴 했지만 국진이가 화제에 올린다.
국진이에게 얘기하지 않은듯 싶은데, 용호씨에게 전해 들었지 싶다.
"그러지 말고 자기가 함 봐 줘.."
"참~ 그 생각을 못했네, 국진씨한테 부탁할걸.."
"데리고 와, 얼굴부터 봐야지.."
"OK~ 용호씨 나이트가자.."
"나이트?"
"크리스마스잖어.."
"에구~ 애들처럼.."
인아 말이라면 죽는 시늉까지 하는 용호씨가 총대를 맨단다.

"ㅋ~ 오빠 짱이다.."
"이럴때만 오빠지.."
중년들만 오는 나이트 역시 크리스마스 대목이라 테이블이 없단다.
총대를 매기로 한 용호씨가 평소 가격의 두배를 주고 룸을 얻었다.
"ㅋ~ 나가자, 근질거려.."
"둘이 다녀 와, 우리는 술이나 마시자구.."
국진이야 춤 추는걸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용호씨 역시 자리에 남겠단다.
룸 밖으로 나와 플로워에 가까워질수록 시끄러운 음악소리가 귀를 때린다.
"애아빠 집에 없어?"
"술마시러 나갔어."
"용호씨가 같이 있자고 할텐데.."
"같이 있슴 되지.."
"애아빠는.."
"너네 집에서 잔다고 해야지.."
"이런~ 순.."
"ㅋ~ 이 나이에 구속받아서야 되겠니.."
"헐~"
"김샌다, 흔들고 보자.."
하기사 남편 죽기 전에는 나 역시 되는대로 살았다.
남편이 저 세상으로 떠나 잠시 홀가분한 마음도 있었으나, 그나마 속만 썩이던 그 
인간이 반듯하지는 못하지만 울타리 노릇은 됐지 싶다.
막막하기만 했던 즈음에 국진이가 있어 삶이 고단하지만은 않다.
남편 대신 바람막이가 되어 주는 국진이가 날 좋아하는 크기가 궁금하다.

"잘 되겠어?"
"그래야지.."
"생각만 해도 지긋지긋하다."
"그러길래 왜 껄떡거려.."
"아니라니까.. 그럴 마음도 없었어.."
희정이와 인아가 나간 뒤 몸이 달았는지 용호선배가 바싹 다가 앉는다.
인아 딸 지연이에게서 만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단다.
천성이 모질지 못한 사람이기에 매몰찬 대응은 기대하기 어렵다.
아귀의 욕심을 타고 난 지연이와 맞닥뜨리면 이뤄놓은 모든걸 야금야금 뜯어 
먹힐 위인이다.
"함부로 내돌리지 마, 아무곳에나 기웃거리라고 달린 물건 아니니까.."
"..조심할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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