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여자

세여자 41

바라쿠다 2018. 11. 24. 20:27
"에구~ 오랜만이네요; 회장님."
"그동안 잘 계셨죠."
차대봉과 아침 일찍 식당에서 황태해장국으로 속을 달래고, 그를 따라 홍대 근처의 
5층쯤 되는 건물 뒤편 주차장으로 왔다.
머리가 허연 노인 한분이 반기는데 오랜 친분이 있어 보인다.
"하는 일도 없이 월급만 축내고 있죠,후후.."
"아저씨 덕에 건물이 깨끗해요."
"좋게 봐 주셔서 그렇죠."
"차 좀 꺼내 주세요."
"시골 가시게요?"
"네,후후.."
그들의 대화로 미루어 이 건물은 차대봉과 연관이 있지 싶다.
이윽고 지하에서 올라 온 차는 빨간색 SUV차량으로 얼마나 오랫동안 묵혀 뒀는지 
먼지가 수북하다.
" 타.. 갈께요."
"운전 조심하시구여."
다분히 허풍이 섞인 인간이다 싶었는데, 서서히 실체가 드러나려 한다.
승용차처럼 안락한 맛은 없는데, 차체가 크기 때문일까 시야가 넓어 좋긴 하다.
"아직 젊은데 무슨 회장씩이나.."
"내 말이..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했는데.."
"세차 좀 하지, 주인이나 자동차나.."
"내부만 깨끗하면 되지, 겉만 반지르하면 뭐해."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싸구려처럼 보이잖어."
"체로키 모르는구나."
"체로키?"
"이 차 체로키야, 싸구려 아니거덩."
"뻥치시네."
"어제도 그러더니 도통 신뢰가 없는 여자네.. 기술이 발전해서인지 요즘 자동차들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이 찦은 
매니아들 사이에서 거의 전설이야."
"아무리.."
"됐네, 소귀에 경읽기지."
"잘난척은.."
"학생이 배우려는 자세가 없어."
"또 개똥 철학이나 씨부리고 꽁술 마실 심뽀겠지."
"저기나 잠깐 들리자구.."
어느새 서울을 벗어 나 구리에 들어섰는데, 제법 큰 운동화 할인매장 앞에 차를 세운다.
"여긴 왜.."
"힐은 불편해, 운동화 신어야지."
"등산이라도 가나.."
"비슷해."
보면 볼수록 연구대상이다.
처음엔 술이나 얻어 마시려는 노숙자처럼 보였다.
이해못할 언변으로 헷갈리게는 했지만, 딱히 허풍처럼 들리지도 않았다.

"경치는 좋네."
춘천가도를 지나는 동안 별 말이 없던 인희가 입을 뗀다.
이정표가 춘천이 가까움을 알려 준 곳에서, 좌측으로 꺽어 들면 강물이 구비구비 흐르고, 그 강을 따라
우거진 나무들과 시골집들이 띄엄띄엄 한가로운 조화를 이룬다.
이 곳이 맘에 들어 무작정 땅을 산지 5년이 넘는다.
"눈은 보배네."
"어려서부터 좋아, 지금도 1.5야."
"시력만 좋으면 뭐하누, 남자보는 눈은 꽝인데.."
예전과는 달리 여자와 얘기하다 보면 불뚝심이 생겨 엉뚱한 말이 터져 나온다.
이제는 희미해져 모습조차 지워 진 그 여자 때문일게다.
믿었던 여자에게서 배신을 당한 뒤, 그들을 싸잡아 속물들이라 단정짓고 살았다.
어제 처음 만난 인희 역시 별반 다르지 않은 속물로 보인다.
"근데 이 인간이.."
"나이만 먹었다고 어른이 아닐세, 세상 살아가는 이치를 알아야지."
"그럼 어떤 남자를 골라야 하는건데.."
"나같은 사람."
인연이라 믿었던 여자를 잃고, 오랜 시간 애써 속물들이라 무시하며 살았다.
그렇게 수도승처럼 공들인 시간이 무색할만큼 인희는 이쁘게 보였다.
"여자 싫어하는줄 알았는데.."
"다 싫은건 아니지, 사랑하고픈 여자를 못만나 그렇지."
"나한테는 왜 찝적거렸어.."
"이쁘니까.."
"사내들이란..  미녀를 옆에 두고 잠이 와?"
"의미없는 섹스는 싫어."
젊어서 약간은 내성적이었지 싶다.
사랑하는 여자가 떠난 뒤 된통 홍역을 치뤘다.
활달한 성격이었으면 훌훌 털고 다른 여자를 찾았으리라.
외곬수처럼 여자가 싫어졌고, 한발짝 물러 나 주위를 둘러 봤다.
그녀들의 습성이나 행동에는 분명 이유가 있었다.
거창한 목표의식이 아닌 스스로 우월의식만 지녔고, 남자 따위는 발바닥쯤으로 여겼다.
요즘 트랜드가 그런게지만, 아무리 외롭다 한들 그런 사고방식을 가진 여자들과는 엮이기 싫었다.
"또 그 소리.."
"다 왔어."

"또 그 소리.."
"다 왔어."
강변을 끼고 달리던 차가 좁은 소롯길로 접어 든다.
그 뒤로도 5분여를 비포장길을 가니, 철조망을 꼬아 엮은 목재 기둥 사이를 지난다.
황토길 언덕을 한참 올라가니 드넓은 분지가 펼쳐 진다.
산중턱에 있는 그 땅은, 높은 지대에 어울리지 않게 억새풀이 마치 바다처럼 끝이 안 보인다. 
억새풀이 찦 앞에서 후두둑 소리내며 좌우로 갈라진다.
끝이 없을것 같은 억새밭 뒤로 창고인양 스레트 지붕이 얹혀진 제법 큰 건물이 있다.
"내리시게.."
".........."
"삐리릭~"
익숙하게 창고를 열어 문 옆 스위치를 켜니 환한 조명이 실내를 밝힌다.
바깥 벽은 여느 공장인 듯 벽돌 마감인데, 안쪽은 마치 까페처럼 아기자기 꾸며져 있다.
바닥은 목재로 마루를 만들어 밟힐때마다 또각이는 소리를 낸다.
맞은편 벽은 무대로 꾸며 져, 드럼이며 올겐, 전자 키타와 섹스폰까지 있다.
"뭐하는 곳이야.."
"내 집.."
"집? 부근에 아무것도 없는데.."
"내 성을 만들거야."
"템플?"
"ㅋ~ 청강생 수준은 돼."
"이 인간이~"
"삐지긴.. 우리 커피 마시자."
한켠에 주방있는 곳으로 가 커피포트를 올려 놓고 물을 끓인다.
그의 얘기처럼 기본적인 모든게 갖추어 져 잠깐의 생활은 가능하지 싶다.
도회지를 선망하는 보통의 사람들과 달리, 외진 곳을 선호하는 그의 정신세계가 못내
궁금해 진다.
"우리 좋아하네, 여기 왜 데려 왔는데.."
"인희가 어떤 여잔지 궁금해서.."
"나 별로라며.."
"그러게.. 그게 의문이야."
"뻔하지, 남자들 떠 받들어줘야 좋아하자너."
"요즘 여자들 남자한테 원하는게 뭐야.."
"그건 왜.."
"가능하면 해 보려구.."
요즘 사람이 아닌듯 싶어 연구대상이라 여겼건만, 대시하려는 기색을 보인다.
차츰차츰 그의 실체를 알아가는 재미가 생기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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