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생(殘生)

잔생 68

바라쿠다 2017. 10. 3. 23:03
"메세지도 없어"
"걍 냅둬."
"내일은?"
"오늘과 이하동문.."
용호선배가 온다는 소식을 접한 희정이가 가게문을 일찍 닫는단다.
인아까지 주방에서 거드느라 분주한 틈을 노려 지연이의 동태를 물어 온다.
"그만둬야 하는데.."
"꼴 좋다~ 그러니까 체했지."
"아니라고 했잖어."
"선배는 그 술이 문제야, 항시 긴장늦추지 말라니까.."
"..알았어."
"재미난 얘기야?"
"응, 선배가 거나하게 쏜대."
"역시 통이 크셔."
마무리가 됐는지 두여자가 웃으며 주방을 나선다.
이미 가게문은 닫았고, 둘은 가볍게 로션을 바른다.
"통이 커도 너무 크지, 먹는거라면 상한 음식까지 탐내는데.."
"어머머.. 큰일나요 괜히, 가려서 드셔야지."
얼굴색이 하얗게 변한 선배는 표정관리조차 어렵다.

"같이 가지.."
"걍 놀아."
"모르는 놈이랑 부르스 출거야.."
"이왕이면 괜찮은 놈 골라."
"피~"
"용호씨는.."
"국진이랑 한잔할께."
"알았어."
삐진것처럼 입술까지 삐죽이며 인아와 털고 일어난다.
신림동 할매네 매운탕집에서 한잔씩 걸치고 내친김에 나이트에 왔다.
희정이야 같이 땀 빼고자 하지만 솔직이 체력이 딸린다.
선배역시 아직도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내 눈치만 살핀다.
"아직도 걱정돼?"
"어떻게 한거야? 다시는 보고싶지 않은데.."
"기다려 봐, 내일도 출근못하면 선배 소원 이뤄지는 거니까.."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사주에 아귀 형상이 붙어 있는지라 욕심이 끝없고 자신밖에는 모른다.
나이먹어 노쇠해 진 부모까지도 산에다 버릴 년이다.
"나중에라도 찾아오면 한 이백정도 건네주고 끝내."
"..응."
"인아씨한테 더 잘하구.."
"알았어."
심심하길래 선배와 인아를 들여다 봤더니 제법 질긴 인연이다.
인아의 남편은 사주가 없어 볼수가 없다.
나중에라도 넌지시 인아에게 물어봐야지 싶다.

"더 할거지.."
"그러자구.."
당연히 인아와 용호선배는 소리없이 사라지고 희정이와 집으로 왔다.
장사하느라 피곤할텐데 욕실에서 머리를 털면서 나온다.
그전부터 그랬지만 일에 대한 불평은 뱉은적이 없다.
그러기에 믿음이 가고 그만큼 더 이쁘게 보인다.
며칠째 희정이의 명을 받들어 아침형 인간이 됐다.
가게문을 11시에 여니 8시30분에는 일어나야 한다.
그래도 콩볶듯 시장을 누벼야 겨우 오픈할수 있다.
"와.."
"벌써?"
"걍 냉장고에서 꺼냈어, 안주타령 사절~"
"이런 뻔순이.."
희정이가 차린 식탁에 마주 앉는다.
냉장고에서 꺼내기만 했다더니 제법 풍성하다.
며칠간 기사노릇했다고 몇까지 싸 온듯 하다.
"빨자."
"여자 입에서 빨자라니.."
"왜 싫어? 터프한 여자 좋아하는줄 알았는데.."
"맞아, 계속 터프모드로 가." 
"이래서 우리 국진이가 귀엽다니까.."
"갖고 놀다가 얌전히 내려 놔."
"싫어, 패대기칠거야.호호.."
일 자체가 체질에 맞는지 제법 표정이 밝아졌다.
처음 만났을때와는 많은 차이가 있다.
평소 바라던 이상형인지라 자주 만나 뜨거운 밤을 지새우면서도 어딘지 
그늘진 모습이 있었더랬다.
요즘은 그런 그늘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웃음이 많이 머물러 보기가 흐뭇하다.
"마님 맘대로,후후."
"토요일 집으로 온대, 동훈이 여친.."
며칠전 희정이 큰아들 여친이 임신했다고 하길래 둘의 궁합이 어떤지 들여다 봤다.
다행히 나쁜 조합은 아니지만 좋아하는 여인의 자식인지라 일견 그 여친을 만나 보기로 했다.
"걍 외식이나 하지, 어색해 할텐데.."
"그럴까.."
아직 어린 나이인지라 시어머니나 다름없는 희정이 집에 오는건 아무래도 부담이 있을게다. 
아무래도 사람이 많은 뷔페식당이 상대적으로 편안한 마음이 되지 싶다.
"그렇겠지, 아직 어릴텐데 식구들 눈이 자신한테만 쏠릴테니까.."
"그러지 뭐.."
"이만 들어가자구.."
"오늘은 그냥 자."
"그냥?"
"피곤해, 참어."
거짓은 아니겠지만 묘한 고문을 당하게 생겼다.
희정이의 살내음을 접하면서 똘똘이의 아우성을 어찌 견디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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