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생(殘生)

ㄷ잔생 66

바라쿠다 2017. 9. 19. 12:21
"찌질이 아니져~"
"믿어요, 한두번 장사하나.."
단짝 친구인 정미랑 나이트에 놀러 온 지연이다.
동네 애들과 노는것도 시들해서 모처럼 강남까지 진출했다.
"피~ 먼저는 꽝이더라."
"아우디 타더라구, 인물도 캡이야."
"또 허풍을.."
"글쎄 믿으라니까.."
"가 보자 얘, 거짓부렁이면 단골 뺏기는거지 뭐." 
웨이타가 점찍어 놓은 킹카가 있다며 설레발을 친다.
물 좋은 곳이기에 기대를 하고 왔건만 제대로 된 물건이 없기에 그렇
무료한 참이다. 
웨이타를 따라 특실이라고 넘버대신 큼지막하게 패찰이 붙은 룸으로
들어선다.
"박이사님~ 나이트에서 가장 섹시한 두분 공주님입니다."
"안녕하세요."
"와~ 진짜 이쁘다."
이 큰 룸에 달랑 둘 뿐이다.
웨이타 말대로 어디 가도 대접 받을만한 인물들이다.
정면에 앉은 이는 남자지만 그림처럼이쁘게 생겼고 한쪽 귀에 커다란
귀걸이가 걸려 있다.
안쪽 쇼파에 깊숙이 몸을 파묻은 이는 흰 피부의 호남형으로 귀티마저 난다.
"이리들 앉으시지."
"그래요, 숙녀분들이 좋아하는 자리에.."
강남에서도 제법 인기가 높아 웬만한 명함으로는 예약조차 
들었다.
주머니 사정들이 가히 짐작된다.
찰나지만 정미와 눈이 마주쳤다.
이럴 경우 돈 씀씀이가 큰 친구부터 우선순위가 부여된다.
정미가 낼름 귀걸이쪽으로 가 앉는다.
둘 다 준수하기에 저울질하기 어려웠는데 차라리 홀가분하다.
"이름?"
"지연이.. 쟤는 정미."
"난 박윤철이구 저 놈은 경석이야."
"몇살?"
"스물여섯."
"다섯살 오빠네.."
"편한대로 불러."

"아야~"
"이래도 잘거야?"
잠결에 코가 찢어지는 아픔이 있어 잠이 달아난 국진이다. 
희정이 얼굴이 눈앞에 있는걸 보니 곤히 자는 날 깨웠지 싶다.
"몇신데.."
"아홉시.."
"왜 깨워, 가게 오픈하려면 멀었구만.."
"장 봐야지 인간아, 반찬거리 사야 돼."
기세 등등한 희정이의 성화로 침대에서 일어나야 했다.
눈에서 쏘아지는 레이저 불빛이 강렬해 죽치고 누워 있기에는 다소
위험이 따른다. 
"빨리 씻어."
"알았다니까.."
희정이에게 끌려 영등포 타임스퀘어 앞 시장으로 왔다.
처음 와 본 곳으로 식재료를 품목별로 판매를 하기에 우리처럼 소규모 식당을 
꾸려가는 이들이 많이 찾지 싶다.
좋은 재료를 저렴하게 사기 위해 빠삐 움직이는그들에게서 희망의 향기가 풍긴다.
희정이 역시 그들 틈에 섞여 물건을 고른다.
이곳저곳 남의 가게에서 허드렛 일을 하던 때와는 마음가짐부터 다르리라.
~출근을 않네~
~조금 더 기다려 봐~
어제 밤 늦게 작업한다는 보고를 받고는 용호 선배에게 지연이가 출근을 못 
할수도 있다는 쏘스를 줬다.
자세한 얘기까지야 전하기 어려운 늦은 시간인지라 선배는 궁금했을게다.
"누구야?"
"응, 용호선배.."
"왜?"
"바쁜 일이 마무리됐대."
"인아년 좋아하겠다."
우정이 각별하기에 인아의 딸이랑 용호선배가 얽힌 얘기까지는 못 하겠다.
모르긴 해도 나까지 덤태기 쓸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일이 상채기 없이 모쪼록 조용히 지나갔으면 하는 바램이다.
"선배도 마찬가지겠지."
"자갸~"
"목소리가 노리끼리하다.."
"자기가 도와주니까 넘 편하다."
코맹맹이 소리가 날때부터 익히 희정이의 속셤이 짐작된다.
가게를 꾸려 나가자니 자연스레 열정적인 노력이 필요할게고 부수적으로
신경써야 할일도 덩달아 많을게다.
영업하기 위해 미리 이곳으로 그 동안 부지런히 발품이나 기울였지 싶다. 
그녀를 품기만 했지, 세세하게 챙겨주지 못한 내가 밉다.
"어째 말투가 불순하네."
"아침마다 부탁해요~"
"드뎌 검은 속이 보이네, 맨날 이 시간에?"
"어허~ 장사가 잘 돼야지.."
"그게 내꺼냐? 
"니꺼가 내꺼고, 내꺼는 내꺼지.."
얄미운 대답이지만 그럴수록 희정이와 가까워지는 느낌이다.
근 한달여동안 가게를 개업한 뒤 혼자 동분서주 했을게다.
재료를 사면서 얼굴에 생기가 가득 감돌아 그걸 보는 내 맘도 흡족하다.
더불어 그녀가 얼마나 열심히 가게를 꾸려 왔는지 능히 짐작이 간다.

"피곤하지.."
"..오빠도 마찬가지지.."
노래방에 나가는 길순이의 영업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같이 퇴근을 한다.
택시 영업을 하지만 이럴때는 자가용 노릇을 한다.
새벽 5시쯤 일을 마친 길순이를 영등포에서 픽업해 집으로 가는 중이다.
오늘따라 길순이의 표정이 어둡다.
"진상 손님 만났어?"
"아냐."
"안주거리 사 가자."
".........."
집 앞에 택시를 주차시키고는 길순이와 24시 마트에 들렀다.
좁은 원룸에서 식생활을 해결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해서 음식점이나 마트에서 구입하는 경우가 잦다.
"왜 그래, 오늘.."
"..뭐가.."
"달라, 평상시랑.."
".........,"
마트에서 사 온 인주거리와 술을 작은 접이식 상에 얹었다.
전지렌지에 데운 닭다리와 어묵 국물뿐인 소박한 차림이지만 워낙 작은 상이
그득하니 빈 틈이 없다.
"걍 하던대로 해."
"..뭘.."
아마도 노래방에서 만난 손님과 육체적인 거래가 있었지 싶다.
그랬기에 눈도 마주치지 못할만큼 어색한 표가 나는 것이리라.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오리란걸 미리부터 예상했던 태식이다.
생때같은 자식을 떼어놓고 이 곳까지 온 길순이기에 쉽게 돈을 벌수있는 유혹이야 
항시 있으리라 짐작했다.
"돈 벌어야지.."
".........."
문득 목 마르기에 소주잔을 들어 들이키는 태식이다.
술이 약한 길순이기에 보통은 잘 권하지 않는다.
"나 신경쓰지 마."
".........."
"부지런히 벌어, 애들 뒷받침해야지."
".........."
"길순이한테 잘해주고 싶지만..  미안해, 능력이 없어서..  모른척 할테니까  
자기도 마음에 두지 마."
되바라 진 여자라면 밖에서 그 짓을 하고도 죄의식이라곤 갖지 않을것이다.
요즘같은 세상에 하등 이상하게 여기지도 않는다.
그런 맥락으로 보면 스스로 양심에 찔려 미안하는 길순이야말로 예전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순수한 여자다.
욕구를 풀수 없기에 이 나이에 매매업소를 기웃기웃했다.
그렇지만 그 곳을 나올때는 오히려 허무가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러다 길순이를 만났고 허전한 내 옆구리를 채워 줬다.
어찌보면 은인이나 다름없는 여자라고 늘 가슴에 품고 살았다.
그런 길순이기에 설사 오늘같은 일이 있더라도 모른척 눈감아 주는게
내 도리라는 생각마저 든다.
"나도 한잔 줘."
"그래 마셔, 그리고 우리 웃으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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