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여자

세여자 10

바라쿠다 2017. 9. 7. 12:28
"그래서 애를 저 지경으로 만들었단 말이야?"
"이 인간이 누구 편을 드는거야?"
급할때는 그렇게 연락이 안 되더니 느즈막히 소식을 접하고는 뒤늦게 병실로
찾아 와 무슨 독립투사라도 된 양 호들갑이다.
"누구편이라니, 자식이 저 꼴이 됐는데.."
"으이구~ 속터져."
울화통이 터져도 참아내야 한다고 속으로 골백번 되뇌이는 선미다.
제 아들의 잘못인데, 술을 쳐 먹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진짜로 그리 생각하는겐지
판단마저 흐려진다.
성질같아서는 한바탕 쏟아붓고 싶은데, 옆에 다른 환자들과 가족들도 있기에
화를 누르고 있는 중이다.
피해 당사자는 유경이고, 그 애의 엄마인 숙자 역시 분통을 터뜨려도 마땅찮을텐데
아마도 못된 태호놈이 콧잔등을 몇바늘 꿰매고 누워 있는지라 그 쪽 역시 벙어리
냉가슴 앓듯 참아내고 있는 중일게다.
"늦었으니 그만 갑시다."
"애가 이런데 벌써 가자구?"
나이는 세살 위지만 하등 나이값을 못하는 인간이다.
주위의 보는 눈이 있기에 존대를 했는데도 이 화상 답답하리만치 눈치가 없다.
"좋은 말 할때 따라 나와."
어금니를 악물고 째려보자 그제서야 겁 먹은 강아지처럼 꼬랑지를 내린다.

"담배나 내 놔."
끊은지 일주일정도 됐지 싶은데 도저히 참아내지지가 않는다.
"오줌싸고 올께."
술기운에 소변이 마려운지, 지레 겁 먹고 피하는건지는 몰라도 일단
레이다 반경을 벗어난다.
깊숙이 한모금을 빨아 허공에 뱉어내니 연기가 가로등 불빛 아래서 
춤을 춘다.
~띠링~
숙자나 유경이에게 어찌 사죄를 하나 고심중인데 메세지가 온다.
~애는..~
~괜찮어, 늦은 시간인데 그만 자. 와이프 화 낼라..~
잘 시간인데 아이의 안부까지 걱정해 주는 희철이로 인해 조금이나마 위로가 된다.
만난지 얼마 되지 않았건만 웬수같은 남편보다도 믿음이 간다.
~없어, 친정갔어~
~술먹고 싶은데~
~금방 갈께~
(에고~ 미친년, 헤어진지 얼마나 됐다구..)
괜시리 재롱을 떨어 아침 일찍 회사로 출근할 사람을 불러내지
싶어 희철이에게 미안하다.
그렇지만 열일 제쳐두고 자신을 보러 나온다는 그 정성에 가슴이 
뭉클하다.
"왜 가자는건데.."
상념을 깨뜨리는 남편의 목소리에 순간적으로 울화가 치밀다가
생각을 고쳐먹는 선미다.
(인간아~ 너 오늘 운수대통이야, 조상님께 감사드려..)
병실에서의 안하무인격인 남편의 행실이 못 마땅해 머리털이라도 쥐어 뜯을
생각이었다.
도대체 옆지기라는 것이 하등 도움이 안될뿐더러 창피하기가 이루 말할수 
없다.
"왜긴, 병실에서 술냄새 피우니까 그렇지.  먼저 들어 가, 경과보고 들어
갈테니까."
"알았어, 고생해."
휘적휘적 택시 정류장으로 가는 뒷모습에 약간은 미안스럽다.

"힘들겠다, 쉬지도 못하고.."
"자기가 더 힘들지, 회사 출근하려면.."
병원에서 조금 떨어 진 호프집에서 만났다.
이렇게 늦은 밤 만나리라는 생각도 못했기에 더 반갑기도 하거니와
청바지에 얇은 쉐타를 걸친 차림도 꽤 핸썸하다.
"바보야, 회사 안 짤려. 아침에는 싸우나 가면 되고.."
"끗발좋네, 우리 자기.."
내 스스로 놀랠만큼 그와 가까운 사이마냥 자기라는 호칭이 거침없이 나온다.
마치 젊었을때처럼, 뒤늦은 나이에 새로이 연애를 하는 기분이다.
"난 좋은데.. 귀여운 선미보게 돼서.."
"그렇게 좋아?  자주 보여줘야겠네."
"아무래도 병인가 봐, 자꾸 보고 싶으니.."
"어쩜~ 말도 이쁘게 하구.."
말도 말이지만 날 염려하고 행동하는 것이 도처에 묻어난다.
이 늦은 밤 병원을 찾은것이나, 한물 간 아줌마를 떠 받들고자 하는
그의 진심이 와 닿는다.
"내일 볼수 있을까?"
"글쎄.. 일단 아들놈 상태보고.."
골치 아픈 하루였지만, 희철이의 걱정하는 눈빛에 편안해진다.

"학교갔지?"
"응."
이무리 생각해도 그냥 있을수 없기에 숙자네 집에 왔다.
"미안하다 숙자야."
"니 잘못도 아니잖어."
"내 잘못 맞아."
"얘는.."
밤새 잠을 설치며 어찌해야 할지 고심을 한 선미다.
아들 교육을 어찌 시켰냐며 따져도 달게 잘못을 빌리라 작정했다.
그것이 자식을 키우는 부모의 도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착하긴 한데 점점 지 애비를 닮아가네."
"아무 일 없었으니 다행이지."
"얘는 다행이라니.. 유경이가 얼마나 놀랬을꼬.."
"시간지나면 잊혀지겠지."
"얘는.. 자기 딸인데, 남의 얘기하듯.."
"그럼 어쩌겠어, 돌이킬수 없는데.."
더 큰일이 벌어지지 않은게 천만 다행이지만, 그렇다고 죄가 없어지는건
아니다.
오랫동안 친하게 지내온 숙자와 딸에게 깊은 상처를 안겼음이다.
조금이라도 잘못이 희석될수만 있다면 어떤 댓가라도 감수할 생각이다.
"정말 너랑 유경이 볼 면목이 없다, 하두 이뻐서 며느리 삼고 싶었는데.."
"지지배가 별 소릴..  참~ 그때 그 남자 만나니?"
"응.  몇번 만났어, 사람이 참해 보여서.."
"자꾸 전화오네, 부담되게.."
"왜, 괴롭혀?"
"그건 아니고.."
희철이 친구이니 숙자에게 해가 된다면 대신 막아주라고 할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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