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생(殘生)

잔생 50

바라쿠다 2016. 12. 30. 10:23

~ 어디 ~

~ 집 ~

~ 기다려 ~

그동안 참아내며 절제했던 술이 문제다.

골치 아픈 모든걸 잊고자 인아와 콜라텍에 놀러 온 희정이다.

미란이가 부킹시킬때마다 당연하듯 술자리까지 이어졌고 그에 따라 꽤 많이 마신 폭이다. 

11시쯤 그 곳을 나왔지만 허전한 마음 달랠길 없어 버릇처럼 메시지를 보냈다.

 

" 많이 마셨네. "

" 그래 마셨다, 떫으냐.. "

국진이의 잘못은 없건만 나도 모르게 심술이 난다.

" 아냐 안 떫어, 어서 와. "

" 까불지 말고 술이나 내 놔. "

" 그래, 알았다. "

" 쓰벌~ "

싫은 소리라도 해야 핑계삼아 시비라도 걸텐데 마냥 고분하니 재미가 없다.

국진이가 안주를 챙기는 동안 편한 옷으로 갈아 입어야지 싶다.

" 와, 식탁으로.. "

" ..알써. "

( 우쒸~ 술 먹기 싫은데, 차려놨으니 안 마시기도 그렇구.. )

식탁의자에 앉자 빈 소주잔에 술을 따라 내 앞으로 내미는 국진이다.

" 조금만 마셔. "

" 내 맘이야, 걍 냅둬. "

" 성질머리하고는.. "

" 언제는 이쁘다며.. "

아마 내 마음속에는 이미 그가 만만한 인간으로 자리 매김되었지 싶다.

술 마신 와중에도 스스로의 불뚝 성질이 못마땅스럽다.

" 후후.. 이쁘기야 이 근방에서 으뜸이지.. "

" 그럼 됐지, 왜 따져.. "

" 희정아.. "

" 왜~ "

" 울고 싶으면 울어. "

" ...................... "

" 어울리지 않아, 쎈 척 하지 마. "

" ...................... "

" 힘드니까 여기 왔겠지, 속상한거 있으면 나한테 풀어. "

머리가 띵하다.   생활이 힘들어도 남한테 지기 싫어 알량한 자존심을 놓치 않고 살았다.

굴곡있는 인생이야 어차피 내가 짊어져야 할 등에 진 무거운 짐이나 진배 없다.

그 어느 누군가가 대신 아파해 주거나, 고된 삶을 짊어질수도 없건만 받아주는 이 없는 투정이나 부렸나 싶다.

그나마 국진이에게라도 퍼 부울수 있음이 다행인지 모른다.

" 야~ 국진아. "

" 응.. "

" 니 똥 무쟈게 굵다. "

 " 그래, 내 질러. "

" 씁새.. 흑~ "

취하긴 취했는지 울컥이며 찌쩌기가 치밀어 올라 와 슬픔이 참아내지지가 않는다.

눈 앞이 뿌옇게 흐려지며 눈물이 쏟아지기로, 아마도 눌러 참던 설움이 터지는 중이리라.

어느틈에 내 곁으로 다가 와 토닥이는 국진이의 가슴에 얼굴을 감춘다.

" 바보같은 년.. "

" ..먼저 잘께. "

이토록 시원스레 울어 본 기억이 없는 희정이다.

10년전 남편이 제 할 도리를 못한 그 날부터 뒤쳐지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고 버티고자 했다.

 

꺼이꺼이 슬픔을 토해내던 외침이 잦아들기로 희정이를 침대에 눕혔다.

쓰러지듯 침대에 몸을 눕힌 희정이의 표정은 세상에서 가장 평온해 보인다.

울분을 토해 낸 그녀의 아픔은 얘기를 나눈 것보다 더 한 감동이지 싶다.

늘씬한 자태가 이뻐 바라보긴 하지만 덮치고픈 욕구가 일어나지 않는다.

( 에구~ 변변치 못한 년, 저렇게 형편없이 무너질때까지 독한 척 하며 버티다니.. )

내일 아침 일어나면 볼기라도 흠씬 두들겨 줘야겠다.

그나저나 잠이 와야 하는데, 느낌상 오늘도 일찍 잠자긴 틀렸지 싶다.

 

" 왜 여기서 자.. "

꿈결같은 희정이의 목소리에 눈을 뜬 국진이다.

" 잘 잤어? "

" 보기 좋네. "

잠을 청하기는 했지만 희정이의 아픔이 내내 지워지지 않아 맹숭한 기분이었다.

거실의 TV를 보면서 새벽까지 혼술을 했더랬다.

그렇게 버티다 쇼파에 누워 가물거렸고 어느틈엔가 잠에 빠졌지 싶다.

" 후후.. "

" 얼른 씻어, 찌개 끓여 놨어. "

" 오키바리~ "

간단히 양치와 세수로만 아침을 맞으며 주방으로 들어서니, 희정이가 렌지에서 끓고 있는 냄비를 장갑 낀 손으로

식탁으로 옮긴다.

" 홀애비 티 내나, 침대 놔 두고.. "

" 마님 편히 주무시라고.. "

해장 소주 한잔이 넘어가자 식도에서 싸하니 기분좋은 느낌이 온다.

" 말이나 못하면, 잡아먹을땐 언제고.. "

" 킥~ "

" 웃지 마, 정 들어.. "

맨 정신으로 돌아 온 희정이를 보니 잠 못자고 내내 생각하던 얘기를 꺼내야지 싶다.

" 희정아~ "

" 왜 불러. "

" 내가 가게하자고 한게 부담스러워? "

" ....................... "

" 너 어제 많이 취했어. "

" ....................... "

" 부담스러우면 내 이름으로 하자, 남의 집에서 고생하지 말고.. "

꼴난 일당때문에 시간에 쫒기기보다, 느긋한 여유속에서 제 삶을 헤쳐 가는게 낫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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