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생(殘生)

잔생 47

바라쿠다 2016. 12. 29. 18:02

새벽께에 순희의 가벼운 입맞춤으로 잠이 깻다.

어젯밤 마신 술이 꽤 되지만 모처럼 개운하다.

신림동 근처에 있는 해장국 집에서 소내장전골을 시키고 마주 앉았다.

" 술꾼이지, 우리 싸부. "

" 제자 못됐다, 싸부를 술꾼이나 만들고,호호.. "

" 쎄더라구, 겨뤄보고 싶을만큼.. "

누구든지 비슷한 성향을 가지고 있다면 동질감이 생겨 더 친해지는 법이다.

남녀간에도 제 눈에 안경이란 말이 있듯이 억지로 꿰어 맞출수는 없다.

" 술 마신지 얼마 안돼요, 엄마도 나 술 마시는줄 모를만큼.. "

" 믿어야지,후후.. "

" 바빳어요, 헤쳐 나가기.. "

" 자주 사 줘야겠다, 이쁨 받으려면.. "

보충 설명이 없어도 그녀의 사주는 뻔히 알고 있기에 초년 고생했지 싶다.

그랬기에 35인 그 나이에 온갖 풍파를 겪어 달관 비슷하게 했을 것이다.

속상한 과거가 생각나서일까 술 마시는 속도가 다소 빨라지고 진지해 지려는지 목소리에 힘마저 실린다.

" 실습 하실거죠.   어머~ 죄송해요, 바쁘시면 그냥 가시고.. "

" 아냐, 나 시간 무지 많어. "

천성이 여자에게 약한 것이 대 놓고 거절을 못하는 성격 때문이다.

순희가 싫어서가 아니라 혹여 정이라도 들면 끊기 힘들기에 조심하는 것이다.

 

" ..저기.. "

" 말 해,  가만 보면 싸부도 맘이 약해. "

" 안 믿으시겠지만 저 남자경험 그리 많지 않아요.   첫남편이나 지금 남편도 오랜시간 같이 하지 않았으니까..  여기가

퇴폐 업소가 아니니까 도사님같은 그런 경우도 없었구요.   정말이에요, 제 페이 쎄요..   아시겠지만 이상한 업소야

몸을 파는게지만 여기 시술소는 그런 사람 없어요.   도사님이 그런 여자로 오해 하실까 봐.."

말이 많은걸 보면 그만큼 강조하고 싶은게 있어서일게다.

서로간에 심중있는 말이 오가지는 않았지만 느낌으로 상대편이 어찌 생각하는지 지레짐작은 할수 있다.

또한 묻지 않았는데도 굳이 장황하게 얘기하는 이유는 나에게 호감이 있다는 말로 들린다.

" 그런 생각있었으면 자네를 찾아가지 않았어, 쓸데없는 걱정까지 하네. "

" 고마워요, 도사님이 남자로 보였나 봐요. "

" ........................ "

" 난 왜 이리 남자 복이 없나, 겪는 남편마다 왜 그럴까..  그래서 내 멋대로 도사님을 시험하고 싶었어요. "

" 굳이 의미를 두지 마, 우리가 만나게 된 것도 인연일지 몰라. "

순희 입장에서는 그럴수도 있지 싶다.

자신의 곁을 스치는 남자에 대한 의구심이 생기기에 날 대상으로 그걸 확인하고 싶었을게다.

그런 그녀를 거부한다는건 남자로서 할 짓이 아니다.

"도사님은 마조히스트에요. "

" 마조?   변태란 얘기네. "

" 네, 새디스트는 남에게 고통을 주면서 쾌감을 얻지만, 반대로 마조시트는 자신에게 가해지는 학대를 즐기죠. "

" 근데 내가 마조야? "

얘기를 듣기도 했고, 그런 영화를 본 기억도 나지만, 내 성향이 그렇다는건 처음 듣는다.

가장 정상적인 남자라 생각했고, 여자들에게 껄떡대는걸 자랑으로 알고 지낸 사람이다.

" 호호..네.  어제 모르셨어요? "

" 뭘.. "

" 아이~ 도사님 뒤에..  손가락인줄 아셨죠. "

" 궁금하더라, 손가락보다 굵지 싶어서.. "

" 장난감이에요, 남자 성기.. "

" 그랬어? "

" 애기 고추처럼 작은거지만.. "

" 헐~ "

" 새디스트는 채찍 따위를 휘두르는걸 좋아하지만 매조는 그 반대죠, 물론 도사님이 좋아한다는게 아니라 그걸 견디는지

알고 싶었어요. "

" 그랬구나.. "

" 앞으로 배울게 많아요,호호.. "

확실히 연장자인 나보다 그 방면에서는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다.

물론 섹스를 매개체로 먹고 살진 않겠지만 궁금한건 못 참는 성격이다.

뭐가 됐든 물러나지 않고 부디쳐 볼 생각이다.

" 헐 ~ 그 세계가 우주만큼 광오하네,후후.. "

" 내 말이 맞는지는 몰라도 여자의 그곳에 혀 대는걸 좋아하는 사람은 마조스트고, 자신의 물건을 여자의 입에 넣는걸

밝히는 사람은 새디스트에 가까워요.   좋다 나쁘다 할순 없어요, 쾌감은 같으니까.. "

" 햐~ 적어야겠다. "

" 이제 그만..  실습시간~ "

듣기로 아직까지는 두 성향 모두 드러내 놓고 밝히는 세상은 아니지 싶다.

마음속으로야 자신의 취향을 알고 있겠지만 그들마다 정도의 크기 역시 다를게다.

외국 영화에서처럼 여자의 생 살을 도려내는 끔찍한 취미만 없다면 말이다.

 

" 눈 가리지말고 안아 줘요. "

" 에이~ 가려야 재밌는데.. "

" 우리 이렇게 해요, 이론 시간에는 도사님 하고 싶은거, 실습 시간엔 그 반대,호호.. "

" 그러자구, 어차피 싸부한테 대들어 봐야 나만 손해볼테니.. "

" 정답~ "

그 전부터 순희에게서 희정이의 모습이 보였더랬다.

눈에 띄는 미모는 아닐지라도 곳곳을 살펴 보면 미운 구석이 없다는게 공통점이다.

해장술에 취해 알딸딸하지만 원초적인 대결이야 몸 사릴 일이 없다.

더구나 침대 위에 눈을 현혹하는 그녀가 누워있기에 투지가 불타 오른다.

" 올라가도 되지, 싸부. "

" 묻지 마요. "

 

불교에서는 옷을 스치는 것도 전생의 인연으로 여긴다.

내 사주 역시 한 여자에게 매여 순탄하게 살아갈 팔자는 못 된다.

지금 인연이 이어지는 여자는 희정이,연숙이,순희까지 세명이다.

희정이는 와이프같은 푸근함이 있어 아늑하고, 연숙이는 나 같은 엉터리 도사를 무슨 신주단지 모시듯 떠 받들어

우쭐하게끔 자존심을 세워 주는 편이다.

순희는 젤 어리지만 가장 큰 쾌감을 주기에 버리기 싫다.

어찌 됐든 인연이 된 그녀들과 화려한 향연을 펼치며 즐기고자 한다.

'잔생(殘生)'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잔생 49  (0) 2016.12.30
잔생 48  (0) 2016.12.30
잔생 46  (0) 2016.12.29
잔생 45  (0) 2016.12.29
잔생 44  (0) 2016.1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