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봤지? "
" 응. "
" 미안해. "
" 뭐가. "
아침 나절에 하우스로 들어 온 선영이가 어제밤 일을 꺼낸다.
밤새 뒤척이며 그 둘의 향연이 생각나 잠이 들기란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로 이해하고자 맘을 먹었다.
" ...힘들어 해서.. "
" 잘 했어. "
" 보기 힘들더라. "
" ..그랬겠지. "
이미 서울로 떠난 선배를 두고 이러쿵 저러쿵하는게 이상하지만 서로간의 심중은 알고 싶었다.
한국이 아닌 적지 속에서 선영이를 그리며 모진 목숨을 이어가야 했다.
어쩌면 선배 역시 선영이를 그리워 하면서도 이 곳에 오기를 꺼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 자기가 보면 어쩌나 그 생각은 했어. "
" 나도 미안하다, 이층에 가지 말았어야 했는데.. "
" ...작부가 된 기분이야. "
어느 누구의 잘못도 아닌 이 운명을 바로 잡을 사람은 없지 싶다.
꼬여 진 실타래를 어거지로 풀기 위해 기를 쓰다가 더 망가질수도 있다.
그러느니 서로가 못 볼 꼴은 보이지 말아야 그나마 상처는 커지지 않으리라 본다.
" 선영아. "
" 응. "
" 난 그래.. 우혁이 아빠가 돌아 올 틈은 있어야 한다고 봐.. 가뜩이나 맘 둘 곳 없는데 기다리는 사람마저 없다면
얼마나 힘들겠어. 나만 해도 널 보겠다는 희망하나로 이 악 물었거든.. 선배도 그런 심정 아닐까.. 선영이 너도 그런
마음이었다고 봐. 나한테 위로를 했던것처럼 선배한테도 기회를 줬다고.. 미안해 하지 마. 네 잘못은 아니잖어. "
" ..고마워, 이해해 줘서.. "
선영이야 둘 사이에 낀 피해자나 다를바 없다.
본인이 좋아서 철새가 된건 아니니까 말이다.
양평에서 서울로 오니 미연이의 집이 비워져 있다.
싱싱하게 젊은 미연이가 내 소속은 아닌지라 별다른 느낌은 없지만 마음 한구석은 허전하다.
주차장에 나가 보니 며칠전 뽑은 자가용이 안 보인다.
그러려니 맘은 비웠지만 배신을 당한 기분이다.
뜨거운 국물 생각이 간절하기로 큰 길가로 나서는데, 눈에 익은 차 하나가 옆을 지난다.
집 앞에 멈춘 차 운전석에서 젊은 친구가 내리고 조수석에서 내린 미연이는 술이 취했지 싶다.
뻔한 둘의 애정 표현이야 보기도 싫은지라 내쳐 골목길을 빠져 나간다.
" 수고하십니다. "
" 어서 오세요. "
동네에 있는 중국집에서 짬뽕으로 속을 달래고 부동산을 찾은 민수다.
" 가게를 팔고 싶은데.. "
" 번지수가.. "
" 얼마나 건질까요. "
" 작자가 나서야죠. "
떠나버린 기차를 되 돌릴순 없다.
이제까지의 선로 이탈은 어쩔수없었다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궤도에 올리고 싶다.
"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
" 좋은소식 드려야죠. "
손해는 크겠지만 맘을 정하니 속은 후련하다.
" 어쩐 일이야. "
" 후후.. 보고 싶길래.. "
마담인 인희의 집을 찾기까지는 많은 망설임이 있었다.
이 사업을 시작하려 했을때 그녀의 입김이 작용했고, 모든걸 맡기고자 했다.
외상으로 깔린 돈이 무려 3천이다.
" 바쁜건 아니지? "
" 바쁘긴.. 아무도 없어, 들어 와. "
" 점점 이뻐지네. "
" 미연이만 할려구. "
하기사 미연이랑 많은 시간을 보냈으니 손바닥 보듯 알고 있을게다.
미연이 역시 그렇겠지만 화류계 연륜이 긴 그녀도 가시는 숨기고 있지 싶다.
" 수금할게 많더라. "
" 나도 걱정이야. "
인희가 내 준 커피를 마시며 전반적인 얘기를 하고 싶다.
겪어보니 체질상 맞지 않았고, 그랬기에 벌써 시들해 진다.
경험많은 사람이 가게를 인수한다면 얼마간의 손해는 감수할 생각이다.
" 손님은 좀 늘었어? "
" 그냥그냥.. 요즘 경기가 그렇잖어. "
관록있는 인희에게 맡기다시피 했기에 되도록 가게 출입을 자제했다.
영업부진을 따진다면 그것 역시 큰 이유에 속할 것이다.
한번 틀어진 잘못을 바로 잡기란 힘들겠지만 다시 일어나고 싶은 욕망은 있다.
다른건 차제하고라도 선영이에게 못난 꼴은 보이기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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