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생(殘生)

잔생 31

바라쿠다 2016. 12. 26. 13:20

~ 뭐해 ~

~ 자려구 ~

막 씻고 잘 준비를 하는데 희정이의 메시지가 왔다.

일 할 시간인데 가게가 한가해 심심해 한다 싶었다.

~ 술 마시자 ~

~ 어디야 ~

신림동이긴 하지만 그녀가 알려준 곳은 국진이도 처음 가 본 외진 포장마차였다.

" 오셨네요. "

" 네. "

" ..................... "

뜻하지 않게 인아가 대신 아는척을 하고 희정이는 술을 많이 마신듯 하다.

" 미안해요, 먼저 가야해서.. "

" 네. "

" 담에 봐요. "

하기야 밤 12시가 넘은지라 웬만한 유부녀는 귀가할 시간이 넘었다.

밖으로 나가는 인아를 배웅치도 못하고 희정이 앞에 앉아야 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녀의 분위기가 사뭇 슬픔을 담고 있는지라 덩달아 어색해 진다.

" 여보두 한잔해야지. "

" ..응. "

그녀가 따라 주기에 무심코 잔을 들었더니 술병이 초점없이 벗어 나 식탁에 술을 흘린다.

아무리 술이 취했기로 이 정도의 모습은 없었다.

" 무슨일인지 얘기해 줘야지. "

" ..아냐 아무것도.. "

결국 몸을 못 가누는 그녀를 부축해서는 집으로 와야 했다.

술이 취해 옷 벗는 엄두도 못 내는지라 대신 벗기우고 편한 옷을 입혀 침대에 눕혔다.

잠 든 모습을 가만히 지켜 볼수밖에 없는 지금 그녀가 겪은 일이 궁금하다.

( 진작에 인아 폰번호 저장했어야 하는데.. )

사랑하는 여인의 아픔이 맘 한편으로 다가 오기에 편안히 잠 들기는 틀렸지 싶다.

 

" 못 잤구나. "

" 괜찮어. "

한번인가 일어나 화장실을 다녀왔고 냉장고에서 물도 꺼내 마시긴 했지만 이내 시체처럼 다시 침대로 쓰러졌던

희정이다.

" 당분간 못 만나. "

" ..왜. "

새벽께에 부시시한 모습으로 일어난 그녀와 내린 커피를 가져 와 마주 앉았다.

잔잔히 풀어내는 독백같은 얘기를 말없이 듣기만 할수밖에 없다.

오늘의 분탕같은 일 때문이 이니라, 그 일로 인해 그녀가 받은 정신적 슬픔이 내게로 전해지기 때문이다.

그 아픔이 내 것인양 고스란히 몸으로 스며들어 몽둥이로 난타당한 그런 기분이다.

" 기다려줄수 있지. "

" 응, 그럴께. "

( 남편 만나고 싶다.   남자답게 정정당당히 얘기하고 싶다.   무릎꿇고 두들겨 맞더라도 널 놓치기 싫다.)

속으로 하고 싶은 말이야 굴뚝같지만, 아파하는 그녀에게 할 얘기는 아닌듯 싶다.

당사자인 그녀의 아픔은 상상도 할수없는 크기인지라 스스로 추스릴때까지 기다리고자 한다.

" 바보..  나 같은게 뭐 이쁘다구. "

" 이뻐, 이 여자야..  당신처럼 이쁜 여자는 없어. "

" 웃기지 마, 나 힘들어. "

" 에이 씨브럴~ "

속상해하는 어린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오빠가 된 듯 하다.

철부지같은 고집이지만 그 고집까지 인정하는 맘으로 그녀를 다독인다.

" 한잔 더 할까? "

" 속 안 쓰려? "

" 해장해야지. "

그녀의 명령이 무엇이든 그걸 따라야 한다.

부랴부랴 소반에 몇가지 반찬을 얹고 소주까지 대령해 잔을 채웠다.

한잔을 들이키더니 입이 쓴지 찡그리는데 그 모습마저 고와 보인다.

" 갈께. "

" 지금?   이 시간에? "

두잔인가 거푸 들이키더니 자리에서 일어 나길래 덩달아 그녀를 따랐다.

" 따라오지 마, 미행할지도 몰라. "

" 응, 가 그럼. "

현관밖으로 사라지는 그녀를 멀거니 지켜봐야 했다.

이 새벽에 집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짐작되고도 남는다.

아픔마저 감수하려는 귀가일수 밖에 없으리라.

 

( 쓰벌~ 잘 해 놓고 사네.   누구는 뭐 빠지게 고생하는구먼. )

기분도 꿀꿀한지라 녹화를 떠서 연숙이 집으로 가져 온 국진이다.

웬만큼 사는줄이야 알았지만 50평 가까운 아파트에 인테리어가 장난이 아니다.

" 팔짜 좋네. "

" 아이~ 놀리지 마세요. "

연숙이가 출처를 알수없는 음료를 내 왔기로 컴으로 가 화면을 보여주기로 했다.

" 그림 어때, 잘 나왔지. "

" .................... "

남편과 아가씨가 집에 있는 시간대를 재편집 했기에 날짜별로 입고 있는 옷들이 틀리다.

예상했겠지만 제 남편의 짓거리에 터지는 울화를 꾹꾹 눌러 참는지 얼굴이 벌겋다.

" 아파트 명의 돌려주면 얼마나 줄래. "

" 시간되면 한잔해요. "

볼일이 끝났기에 밖으로 나가려는 그녀를 따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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